한국일보

코로나로 날개 못펴는
'블랙 이글스'…
해체 요구까지 '2중고'

우리 공군의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가 1년 넘게 지속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에어쇼를 비롯한 대규모 행사가 취소되면서 화려한 곡예비행을 선보일 무대가 줄어든 데다, 블랙이글스가 주둔한 강원 원주 공군기지 인근 주민들의 '특수비행팀 해체 요구'까지 거세지고 있어서다. 코로나19로 블랙이글스의 비행 훈련이 원주·횡성 일대에 집중되자, 이곳 주민들은 소음과 대기질 악화를 이유로 해체까지 요구하고 있다. 17일 공군에 따르면, 블랙이글스의 에어쇼는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지난해 11회에 그쳤다. 부산 유엔 참전용사 국제추모식, 서울 국제 휠체어 마라톤 대회 등 총 42차례 비상했던 2019년의 4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2018년 37회 △2017년 37회 △2016년 36회에도 크게 못 미쳤다. 올해는 3월 공군사관학교 졸업식과 지난 5일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 상공에서 15분간 어린이날 축하비행을 한 것이 유일하다. 행사가 줄었다고 훈련 횟수까지 줄어들진 않았다. 조종사들의 기량 유지를 위해선 매년 일정 시간 비행 횟수를 채워야 한다. 국산 초음속 훈련기 T-50 8대가 호흡을 맞추며 급상승과 급하강을 반복하는 고난도 기동과 '태극마크 그리기' 등 묘기를 선보이는 특수비행의 경우 더욱 그렇다. 평소라면 에어쇼가 예정된 지역에서 하는 비행훈련 대부분을 지난해부터 원주 기지에서 소화하고 있다. 이에 지역 주민들은 지난해 12월부터 부대 앞에서 블랙이글스 해체를 요구하는 1인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소음뿐 아니라 훈련기가 배출하는 흰색 연막인 스모크 문제도 제기됐다. 흰색 연막을 만들기 위해 상공에 뿌리는 경유가 인체에 유해하다는 게 주민들의 항의다. 소음 문제는 지난해 시행된 '군용비행장·군사격장 소음 방지 및 피해 보상에 관한 법'에 따라 별도 소송 없이 보상을 받을 수 있지만, 연막 문제는 딱히 방법이 없다. 공군 관계자는 "블랙이글스 임무가 특수비행이다 보니 기량 유지 차원에서 훈련 자체를 안 할 수가 없다"면서 "스모크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기 위해 지자체와 공군, 공신력 있는 측정 업체 등 민관군이 협의체를 통해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다만 공중에서 분사되는 연막의 유해성을 정확히 입증할 방법이 현재로서는 마땅치 않다. 이 때문에 지역 주민들은 훈련 중단을 넘어 해체까지 주장하고 있다. 군 입장에서 블랙이글스 해체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블랙이글스가 수행하는 에어쇼는 단순한 볼거리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국력과 공군력을 과시할 수 있는 가장 평화적인 방법으로 통한다. 해외 에어쇼 참가를 통해 국격 제고와 방산 수출 등 국익에도 기여한다. 2012년 블랙이글스가 영국 와딩턴 국제에어쇼 디스플레이 부문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고, 2017년 아시아·태평양 지역 최대 규모 항공우주 방위산업전시회인 ‘말레이시아 LIMA’에서 에어쇼를 선보여 현지 왕족이 T-50의 우수성에 지대한 관심을 보인 것은 유명한 일화다. 미국 공군과 해군이 각각 '선더버드'와 '블루앤젤스'로 불리는 특수비행팀을 운영하고, 일본(블루임펄스), 영국(레드애로스), 러시아(러시안나이츠) 등 내로라하는 항공 강국들이 특수비행팀을 두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 'F-51 무스탕'으로 시범비행을 선보인 이후, 1966년 '블랙이글스'란 이름으로 정식 출범한 특수비행팀은 현재까지 두 차례 활동을 중단했다. 1978~1993년 공군기지 이전과 군 대비태세 증강으로 잠정 해산했고, 1994년 재창설된 후 2007년 기종을 미국산 경공격기 A-37에서 국산 훈련기 T-50으로 변경하기 위해 3년간 비행을 멈췄다. 공군 관계자는 "비행 과정에서 시민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에어쇼 일정은 지역 언론과 인터넷을 통해 사전 공지하고 있다"며 "저공비행은 최대한 자제하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낙연 "윤석열의 5·18?
노무현 소탕 어찌 설명하나"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5·18 광주민주화운동 정신'을 언급하며 정부를 비판한 것과 관련해 "검찰이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 가정에 한 것처럼 소탕하듯 하는 건 뭐라고 설명한 건가 계속 의문을 갖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 의원은 18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단순한 건 정치에서 좋은 것이지만, (윤 전 총장의 메시지는) 너무 단순한 것 같다. 광주를 독재와 저항으로만 볼 것이냐"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윤 전 총장의 메시지는 현 정부가 광주의 정신에서 일탈해 있다는 문제의식이 깔렸다는 지적이 있다'는 질문에 "저는 그렇게 읽지 않았다"고 말했다. 윤 전 총장은 앞서 16일 "5·18은 현재도 진행 중인 살아 있는 역사다. 어떠한 형태의 독재와 전제든 이에 대한 강력한 거부와 저항을 명령하는 것"이란 입장을 냈다. 이 의원은 대선후보들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한다는 일부 초선 의원들의 주장에 대해선 "균형 있게 봤으면 좋겠다"며 "당시 검찰은 한 가정을 거의 소탕하지 않았나. 이런 문제도 빠뜨려선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이 의원은 앞서 광주선언을 발표하며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론을 주장한 데 대해 사과했다. 그는 이에 대해 "생각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시기와 방법이 좋지 않았다"며 "국민의 뜻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했다고 생각해 그 점에 대해 사과드렸다"고 설명했다. 이 의원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면론에 대해 "사법적 정의라는 가치가 있다"면서 "그 문제는 문재인 대통령께서 취임 4주년 기자회견 때 종합적인 판단을 하겠다는 말씀이 있었기 때문에 더 보탤 얘기는 없다"며 말을 아꼈다. 당장 개헌 논의를 시작하고 한 이 의원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에 "차기 대통령이 취임과 동시에 힘이 빠져 싫어하니 안 되고, 임기 말기에는 힘이 없어 못 한다고 하면 (개헌은) 못 한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러니 대선에서 서로 공약하자는 것"이라며 "권력 구조보다 국민의 기본권, 평등권에 중점을 두면 반대는 훨씬 적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이재명 경기지사가 당내 대선 후보 경선 연기론에 반대한 것과 관련해 "그걸 후보들에게 맡기는 것 자체가 온당한 태도가 아니다"라며 "운동선수한테 시합 규칙을 물어보면 안 된다. 규칙을 정하는 건 선수들의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앞서 당내 경선 연기론이 나오는 데 대해 지도부가 최대한 빨리 결정해야 한다고 요구한 바 있다. 이 의원은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D 김포~부천 노선 축소와 지하철 5호선 연장 무산 위기로 경기 김포 주민들이 거세게 반발하는 것과 관련해 "최소한 정부가 약속한 5호선 연장은 지켜야 한다"며 "주민들이 원하는 GTX-D에 대해서도 언제쯤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이라도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전날 '지옥철'로 불리는 김포골드라인을 체험했다. 그는 "이런 곳이 아직도 있구나 해서 의아했다"며 "정부가 왜 그런 판단을 했는지 탐지하고 싶었다. 이걸 더는 외면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심각성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빅쇼트' 마이클 버리가 "테슬라 6천억원 공매도"로 머스크 겨냥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예측해 '빅 쇼트'의 주인공으로 유명해진 투자자 마이클 버리가 이번엔 테슬라를 '빅 쇼트(대규모 공매도)'했다. 본업보다 금융시장에서 더 화제를 뿌리고 있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를 정조준한 것이다. 버리의 자산운용사 사이언에셋매니지먼트가 17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공시를 통해 공개한 바에 따르면 이 회사는 3월 말 기준으로 테슬라 주식 80만 100주, 시장가치 기준 5억 3,400만달러(약 6,000억원)어치를 공매도하고 있다. 정확한 매도매입가나 계약 만기 등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체 포트폴리오의 39.47%를 특정 기업 공매도에 올려 놓는 움직임은 이례적이다. 버리는 이미 테슬라와 머스크에 대해 꾸준히 회의적 입장을 내놓았다. 1월 그는 "테슬라가 탄소배출권 거래를 통한 수익 확보에 지나치게 의존한다"고 지적했다. 전기차를 생산하는 테슬라는 여러 전통 차량 제조사에 탄소배출권을 팔아 이익을 얻었지만, 최근 이들이 전기차 생산으로 전향하면서 배출권 판매가 감소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최근 테슬라는 일론 머스크가 트위터에서 비트코인과 도지코인을 끊임없이 언급하면서, 덩달아 주가가 오르락내리락을 되풀이하고 있다. 머스크는 가상화폐에 전반적으로 우호적이지만, 지난주 테슬라가 비트코인을 통한 결제를 돌연 중단한 것에 대해선 "비트코인 채굴과 거래에서 대량의 화석연료 소비가 유발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비트코인 지지 진영이 반박하면서, 지난주 금융 및 자산시장에서는 그동안 공동 전선을 폈던 '머스크파'와 '코인파'의 대결 구도가 벌어지기도 했다. 테슬라 주가는 최근 한 달간 20%대의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마이클 버리의 테슬라 공매도 결정이 가상화폐 문제와 연결돼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2월, 테슬라가 비트코인을 대량 매입하고 결제를 허용하겠다고 한 것에 대해 그는 "중국 시장에서 곤란을 겪고 있음을 가리기 위한 눈속임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버리는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있다. 다만 현재 가격 상승은 투기적 거품이라는 입장이다. 그는 현재 물가와 금리가 상승하고 자산의 가치가 전반적으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버리는 2005년 초 미 주택시장의 붕괴를 예측해 결과적으로 발생한 금융위기 국면에서 큰 수익을 얻었고, 이 때문에 해당 사태를 다룬 영화 '빅 쇼트'에도 주인공 중 한 명으로 등장했다. 또 올 초 개인투자자 사이에서 열풍이 불었던 게임 유통사 '게임스톱'에 2018년부터 투자한 투자자 중 한 명이기도 하다. 게임스톱 열풍을 일으킨 커뮤니티 사이트 레딧에서도 그가 게임스톱에 투자했다는 것이 투자의 근거 중 하나로 제시됐다. 결과적으로 '쇼트 스퀴즈' 사태의 불씨 중 하나가 된 셈이다. 다만 게임스톱의 주가가 조금씩 오르기 시작한 지난해 하반기에 그는 이미 지분 전량을 매도했기 때문에 올 초 발생한 급등의 이득을 보진 못했다. 추정 수익률은 270% 수준이다. 게임스톱 열풍 당시 버리는 "내 투자 덕분에 여러분이 게임스톱을 알고 큰 수익을 얻었다면 축하한다"면서도 "이 상황은 광기이고 위험하다"는 의견을 냈다. 그의 예측대로 게임스톱 주가는 다시 폭락했지만 현재는 연초 대비 10배 수준의 주가에서 안정된 상태다.

/Liveissue

"하루만…" 힘겨운 장애 가족

재활치료 아동 7%뿐… 文정부 공공병원 공약도 후퇴

"할 수만 있다면 병원에 입원시켜서 치료받게 하고 싶죠. 근데 대기만 수년씩 걸려요. 아이가 성장을 멈추고 기다려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에요." 발달장애 아동을 키우고 있는 30대 A씨는 아이의 재활치료를 위해 사설 센터를 이용한다. 병원은 외래 치료를 받으려 해도 최소 몇 달을 기다려야 한다. 정확히 언제 순서가 돌아올지 알 수도 없다.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복지관 재활치료 프로그램도 대기 줄이 만만치 않다. 차례를 마냥 기다릴 수 없는 엄마는 사설 센터의 비싼 비용을 감수하고 있다. 장애 아동의 조기 치료를 위해 이곳저곳 옮겨 다녀야 하는 '재활 난민' 문제가 여러 차례 지적됐지만 현실은 크게 변한 게 없다. 필요한 재활치료를 받는 아동 비율이 한 자릿수에 머물고 있는 현실에서, 공공 어린이재활병원 3곳 건립을 국정과제로 삼은 문재인 정부마저 재정 적자 등을 이유로 정책 후퇴를 보이고 있다. 장애 치료의 '골든타임'은 성장기이지만, 재활치료를 받는 아동은 많지 않다. 보건복지부의 지난 1월 발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장애 아동은 29만 명이지만 이 중 재활치료를 받는 아동은 1만9,000여 명, 전체의 6.7%에 불과하다. 이는 어린이 재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료기관이 턱없이 부족해서다. 복지부가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에서 아동 재활치료가 가능한 의료기관은 1,652곳뿐이다. 지역별 편차도 심해 수도권에 42%(698곳)가 몰려있고 가장 적은 제주에는 26곳(1.6%)밖에 없다. 이마저도 만 18세 이하 재활치료 수가를 1건 이상 청구한 기관을 전부 모은 수치다. 장애 아동만 전담 치료하는 병원은 단 한 곳, 2016년 지어진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뿐이다. 내원하려면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하는 건 당연지사. 병원 관계자는 "총 대기자가 1,500명 수준"이라며 "입원과 낮병동은 평균 6개월 이상, 외래는 2년 이상 기다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니 장애 아동을 둔 가족은 난민처럼 지역을 넘나들며 치료 기관을 찾아다닐 수밖에 없다. 2017년 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발달 지연 아동이 거주지 아닌 지역으로 이동해 치료받는 비율'은 수도권 거주자는 5.8%, 비수도권은 13.1%였다. 이에 현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공공 어린이재활병원 및 센터 건립'을 추진해왔다. 장애 아동이 저렴한 비용으로 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일본엔 200곳 넘는 어린이 재활병원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한 곳밖에 없다"며 "최소 5개 권역에 어린이 재활병원을 반드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당초 전국 9개 권역에 공공 어린이재활병원을 짓겠다던 정부는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인 2022년까지 경남권·충남권·전남권에 재활병원 3곳을, 전북권·강원권·경북권·충북권에 재활센터 6곳을 세우는 걸로 목표를 조정했다. 재활병원은 입원이 가능하며 재활의학과·소아과·치과를 필수로 갖춰야 하는 반면, 재활센터는 낮병동·외래만 운영하고 필수 진료과목이 재활의학과에 한정된다. 이런 계획에 따라 지난해 12월 대전에서 충남권 몫으로 공공 어린이재활병원 건립이 확정돼 내년 9월 개원을 목표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전남이 지난해 11월 병원이 아닌 센터(2곳)를 짓는 것으로 계획 변경을 요청하면서 정부 방침은 또 한발 후퇴했다. 재정자립도 꼴찌(27%)인 전남과 손잡고 병원 건립에 나서겠다는 의료기관을 못 찾은 것이다. 강선우 의원실에 따르면 복지부는 "전남권은 운영적자 부담 등으로 참여 의사가 있는 의료기관을 발굴하는 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며 "병원보다 필수 진료과·시설 규모 기준 충족이 용이한 센터 건립으로 사업 계획 변경을 희망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결국 요청이 받아들여져 7개 권역의 공공 어린이재활기관 건립 목표는 병원 2곳, 센터 8곳으로 수정됐다. 수도권과 제주권은 기존 의료기관 대상 공모 방식으로 어린이재활병원 2곳과 센터 1곳이 각각 생긴다. 공공 어린이재활병원 건립 운동을 해온 김동석 사단법인 토닥토닥 이사장은 "아이들의 생명과 건강을 책임져야 할 국가가 예산만 놓고 (사업 타당성을)평가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발달장애아를 키우고 있는 강선우 의원은 "어린이 재활 난민이라는 가슴 아픈 단어는 없어져야 한다"며 "권역별 공공 어린이재활병원 및 센터 건립 사업에 더는 후퇴가 없길 바란다"고 말했다.

강남역 사건 5주기, 보수 개신교가 '혐오범죄 방지법' 철회시켰다

2016년 5월 17일 서울 서초구 강남역 인근 주점의 남녀 공용 화장실. 한 사람이 살해당했다. 이유는 단 하나. '여성'이어서다. 가해자는 화장실에서 기다리다 남성 7명은 그냥 보낸 끝에 여성을 골라 무참히 살해했다. 평소 여성이 본인을 무시하는 것에 화가 나서라고 했다. 명백한 '혐오 범죄'였다. '강남역 사건'으로 한국 사회는 '혐오'와 '혐오 범죄'에 비로소 눈 떴다. 혐오의 대상이 되는 소수자·약자를 보호하고 혐오 범죄를 근절하겠다는 약속이 넘쳐났다. 그 후 5년. 혐오 범죄 대책 관련 논의는 얼마나 진전됐을까. 놀랍게도 '백지 상태'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무엇이 혐오이고, 혐오 범죄가 무엇인지를 법·정책 개념으로 정리하는 작업조차 제자리걸음이다. 국회는 이번에도 입법기관의 역할을 다하지 않았다. 사건 당시 정치권은 한목소리로 피해자를 애도하고 재발 방지책을 꺼내들었다. "강남역 10번 출구 벽면은 포스트잇으로 가득했습니다. '다음 생엔 부디 같이 남자로 태어나요' (어느 여성분이 쓰셨을 이런 글을 읽게 되는 현실이) 슬프고 미안합니다."(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 "여성에게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것은 책무. 범죄 피해자와 그 가족에 대한 사회적 구조에 소홀함이 없었는지 시행 과정 전반에 대한 면밀한 점검이 필요하다."(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 하지만 이들의 위로는 말뿐이었다. 강남역 사건 5주기를 맞은 17일, 정치권은 대체로 침묵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이날 논평으로도 강남역 5주기를 언급하지 않았다. 목소리를 낸 건 정의당뿐이었다.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는 "불법촬영, N번방, 정치권 성범죄 등 지난 5년간 여성을 상대로 한 폭력의 민낯이 수없이 드러났다"며 "여성이라는 성별이 더 이상 한 사람의 삶에 공포와 절망, 차별의 원인으로 작용하지 않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호영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개인 차원에서 추모페이지에 글을 올려 "단지 여성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슬픔"이라며 "차별적이고 혐오적 범죄가 발생하지 않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했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도 "우리사회가 여성혐오를 정면으로 인식하게 만든 충격적 사건"이라며 "차이를 차별하지 않고 다름을 혐오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추모페이지에 글을 남겼다. 상중인 정춘숙 민주당 의원도 "5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는 얼마나 변했나 돌아보게 된다"고 썼다. 혐오범죄 방지를 위한 입법 시도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발의된 법안들은 허무한 이유로 철회되거나, 논의 테이블에 오르지 못했다. 20대 국회 때인 2016년 12월 이종걸 당시 민주당 의원은 '증오범죄(혐오범죄)'에 대한 국가 차원의 조사와 분석을 통해 대책을 마련토록 하는 '증오범죄통계법'을 발의했다. 하지만 보수 개신교의 강력한 항의로 발의 10일 만에 철회됐다. 증오범죄를 단속하려다 동성애가 허용될 수 있다는 황당한 주장 때문이었다. 2018년 2월 발의된 혐오표현규제법안(김부겸 당시 민주당 의원 대표발의)도 같은 이유로 15일 만에 철회됐다. 혐오·차별을 목적으로 한 범죄를 가중 처벌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형법 일부개정안(강효상 당시 미래통합당 의원, 박광온 민주당 의원 각각 대표발의)'도 20대 국회에서 논의되지 못한 채 폐기됐다. 해당 법안이 상정된 2017년 9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전체회의 속기록에 따르면, 의원들은 '혐오' '강남역' '차별'이라는 단어를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논의를 시작하지도 않았다는 뜻이다. 21대 국회에선 '혐오범죄 방지법'은 아직 발의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혐오와 차별'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고, 특정 집단에게 정신적 외상을 입힐 수 있어 다른 강력 범죄와 구분해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17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혐오 범죄에 대한 법이 있었다면, 강남역 사건은 조현병 환자의 범행이 아닌 여성 혐오 범죄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수사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법이 만능은 아니지만, 이제는 혐오·차별에 대한 중장기적인 대책 마련을 위해 논의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홍 교수는 차별금지법이 혐오·차별 대응 정책의 물꼬를 틀 수 있다고 했다. '너와 나의 차이가 차별로 변질돼선 안 된다'는 차별금지법의 취지가 편견과 혐오를 막는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장도 "정치권이 '안티 페미' 논쟁이나 발화시키며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를 만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침묵하고 있는 것은 사회의 혐오 현상 확산을 부추기는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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