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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연휴 직장인 '빈익빈 부익부'...10명 중 4명 '수당 0원'

2023.09.29 15:00
“10월 2일 빨간날이 돼서 좋았는데, 회사에서 연차를 사용하고 쉬라고 합니다.” “빨간날 일을 해도 두 달 연속 개근한 사람만 휴일수당을 준다고 합니다.” 정부가 다음 달 2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며 추석과 개천절이 있는 이번 연휴 시즌은 최장 6일 휴일이 가능하게 됐다. 하지만 휴일을 온전히 쉴 수 없는 직장인이 여전히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5인 미만 사업장일수록, 저임금 노동자일수록, 직위가 낮을수록 더 쉬기 어려웠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와 아름다운재단이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엠브레인 퍼블릭'에 의뢰해 직장인 1,000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직장인 31.3%는 명절ㆍ공휴일 등 빨간날에 유급으로 자유롭게 쉴 수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직장 규모가 작고 임금을 적게 받을수록 유급휴일로 쉬지 못했다. 정규직은 86%가 빨간날에 유급으로 쉴 수 있었지만, 비정규직은 42.8%만 그럴 수 있었다. 쉬는 날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도 나타났다. 300인 이상 기업의 노동자는 77.4%가 빨간날을 유급으로 쉴 수 있었지만, 5인 미만 기업의 노동자는 47.3%에 그쳤다. 500만 원 이상을 받는 노동자는 90.3%가 빨간날 유급으로 쉬었는데, 150만 원 미만을 받는 노동자는 31%만 유급으로 쉬었다. 노동조합 가입 여부도 영향을 미쳤다. 노동조합 비조합원(66.2%)은 조합원(86.9%)보다 빨간날 유급휴가를 더 적게 사용했다. 직위에 따른 편차도 나타났다. 실무자ㆍ중간관리자ㆍ상위관리자는 80% 이상이 빨간날을 유급휴일로 쉬었지만 일반 사원급은 50%에 그쳤다. 성별로는 남성(75.4%)이 여성(60%)보다 휴식권을 잘 보장받았다. 업종별로는 건설ㆍ제조ㆍ교육서비스업 종사자의 70% 이상이 빨간날 유급휴일로 쉴 수 있었던 데 비해 도소매업(57.7%), 숙박 및 음식점업(23.2%) 등은 그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이번 추석 연휴로 한정하면, 한국경영자총협회의 706개 기업 조사 결과 연휴 기간을 온전히 쉴 수 없는 기업이 14.8%였다. 82.5%가 6일 휴무를 실시하고 2.7%는 7일 이상 휴일을 줬지만, ‘4일 이하 휴무’(11.6%)와 ‘5일 휴무’(3.2%)에 그치는 기업도 적지 않았다. 취업정보회사 인크루트가 직장인 927명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응답자 14.7%가 임시공휴일에 출근한다고 답했다. 5인 이상 기업은 임시공휴일에 출근하면 휴일근로수당을 지급받아야 한다. 그러나 인크루트 조사 결과 이번 추석에 근무하는 직장인 중 ‘수당’을 받는다고 응답한 경우는 41.9%에 그쳤다. 휴일근로수당을 받지 못하는 응답자가 가장 많은 기업은 △5인 미만 영세기업(69.7%) △중소기업(38.5%)이었다. 직장갑질119는 정부가 지정한 임시공휴일의 경우 ‘일하지 않아도 임금을 받는 날’이라고 설명했다. 만약 일을 했다면 통상임금의 150% 수준으로 임금을 받아야 한다. 가령 통상임금 1만 원인 직장인이 다음 달 2일 8시간을 일했다면 12만 원(1만 원×8×1.5)을 받는다. 시급ㆍ일급제 직장인은 유급휴일 임금(유급휴일분)도 그날 정산해 받는 것이므로 위 계산식에 유급휴일분 100%를 추가해 통상임금의 250%를 받아야 한다. 만근을 하지 않았더라도 5인 이상 사업장에서 일한다면 모두에게 적용되는 규정이다. 유급휴일에 ‘연차를 내고 쉬라’는 것도 근로기준법 위반이다. 만일 빨간날 쉬는 조건으로 연차를 차감했다면 임금체불로 노동청에 진정해 연차수당을 받을 수 있다. 1일 단위로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일용노동자는 원칙적으로 공휴일과 휴일근로수당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다만 형식은 일용직이라도 반복해서 근무한 ‘종속관계’가 있다면 상용노동자(1년 이상 계약)와 같이 유급으로 쉬거나 휴일근로수당을 요구할 수 있다. 직장갑질119 김스롱 노무사는 "근로기준법의 적용 범위를 확대해 근로기준법 바깥에 서 있는 5인 미만, 프리랜서, 특수고용직 노동자를 보호해야 한다"며 "근로감독 강화로 열악한 노동조건과 직장에서의 낮은 지위로 인해 발생하는 휴식권 침해를 근절해 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연휴에 여행 간다는 친구들 얘기에 박탈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네요." 2년 차 교사 윤서영(25)씨는 올해 추석 연휴를 맞아 해외여행을 떠나려 급하게 항공권을 알아봤다. 하지만 가고 싶었던 베트남 나트랑은 왕복 항공비만 70만 원이었다. 월급이 200만 원을 갓 넘는 새내기 교사가 한 달 벌이의 3분의 1에 가까운 큰돈을 교통비로 쓰기는 쉽지 않았다. 그가 떠올린 '플랜B'는 국내여행. 그러나 이번엔 비싼 숙박비가 발목을 잡았다. 유명 관광지의 어지간한 숙소는 하룻밤 자는 데 40만 원을 달라고 했다. 안 그래도 고물가에 적금까지 해약한 터였다. 결국 추석연휴를 집에서 보내기로 한 윤씨는 "집에서 할 것도 없는데 차라리 출근해 돈이나 벌고 싶은 마음"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6일간의 휴식은 누군가에겐 '황금 연휴'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그림의 떡'이다. 치솟는 물가에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젊은이들은 해외로 떠나는 여행객들을 그저 부러운 눈으로 바라볼 뿐이다. 사회초년생은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출근을, 취업준비생은 정규직의 좁은 문을 뚫으려 이번에도 힘겹게 명절을 나야 한다. 28일 인천국제공항공사에 따르면, 27일부터 다음 달 3일까지 추석연휴 기간 공항 이용객은 121만3,319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가운데 출국 인원만 62만4,472명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9년 추석연휴(18만7,205명)의 3배를 훌쩍 넘는다. 다음 달 2일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돼 개천절까지 이어지는 엿새 휴식이 완성되면서 명절 해외여행을 택한 이들이 급증한 영향으로 분석된다. 해외뿐 아니라 국내여행에도 사람이 몰리고 있다. 정부가 먼저 추석연휴 기간 귀성객과 관광객 등의 소비를 기반으로 내수경기를 진작하겠다고 밝혔을 정도다. 그러나 들뜬 명절 분위기는 사회에 막 발을 들였거나, 구직을 준비하는 청년들에게는 남의 나라 일이다. 롯데멤버스가 추석 전 소비자 4,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30%가 '집에서 쉬겠다'고 답했다. '고향 방문(46.0%)'을 선택한 응답자보다는 적었지만, ‘여행을 가겠다’는 응답자(22.3%)보다는 많았다. 대학생 장시온(26)씨는 본가에 내려오라는 부모님 성화에도 귀성을 포기했다. 추석맞이 벌초를 지금까지 한 해도 빼놓지 않았지만, 올해는 취업이 결정되는 중요한 시기여서다. 장씨는 "취업만 시켜주면 추석에도 기꺼이 출근하고 싶은 심정"이라며 "오랜만에 만난 가족과 즐겁게 이야기꽃을 피울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연휴 단기 아르바이트에 지원자가 대거 몰리면서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 웃지 못할 상황도 연출되고 있다. 대학 졸업 후 토목기사 자격증 공부에 매진 중인 옥지연(25)씨는 인터넷강의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연휴 내내 와인 선물세트를 판매하는 마트 단기직에 지원했지만 떨어졌다. 옥씨는 "그저 놀고 있을 수만은 없어 물류센터 일일 포장 아르바이트에도 지원해 보려 한다"며 "센터 일용직도 경쟁률이 치열해 걱정"이라고 했다. 물류업계 관계자는 "연휴 때 물류센터 단기 일자리가 인센티브가 있다 보니, 귀성을 포기한 청년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며 "실제 청년층 지원자가 늘고 있는 추세"라고 귀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