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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금자 98%는 5000만 원도 없다"…과연 그럴까요?

2023.03.26 17:00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로 23년째 그대로인 한국의 예금보호 한도를 둘러싼 논쟁에 불이 붙었습니다. "98% 예금자는 보호 한도인 '5,000만 원'도 없다"부터 "예보 한도를 높이면 대출금리가 높아진다"는 주장까지 제기됩니다. 팩트 체크를 통해 해당 주장의 진실을 알아보겠습니다. 우선 98%라는 수치가 뜻하는 바가 뭘까요. 예금보험공사에 따르면, 현재 '5,000만 원 이하 예금자 수 비율'이 98%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이 '한국 예금자들의 예금액을 전수조사했더니 98%가 5,000만 원 이하의 예금을 가지고 있다'라는 뜻일까요. 그게 아닙니다. 각 금융회사가 자사 고객의 예금 계좌를 봤더니 5,000만 원 이하 계좌가 98%고, 2% 계좌만 5,000만 원을 넘었다는 얘기입니다. 예컨대 제가 A은행에 4,900만 원을, B은행에 4,900만 원을 분산 예치했다고 해 볼게요. 그럼 예금 총액은 9,800만 원이죠. 그런데 각 금융회사는 개별 계좌 정보만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저는 5,000만 원 이하 예금자 수에 포함됩니다. 즉 예금자의 전략적 분산예치 가능성을 고려하면 5,000만 원 초과 예금자가 2%보다 많을 수 있는 셈이죠. 분산예치 여부를 따로 발라내기 위해선 다른 자료가 필요해요. 즉 금융회사 계좌당 예금액이 아닌 국내 전체 예금자의 1인당 예금액을 확인해야 하죠. 하지만 예보조차도 해당 자료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하네요. 결론적으로 현재로선 예금자 1인당 예금액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힌트를 얻을 수 있는 자료가 있어요. 바로 한국은행·통계청 등이 매년 작성하는 가계금융복지조사입니다. 지난해 가구당 평균 저축액 규모는 평균 8,548만 원이래요. 순자산 5분위별로 보면 대략 절반의 가구는 현행 예금 한도를 넘어선 예금액을 보유하고 있어요. 그러나 해당 조사는 '가구' 기준이기 때문에 저축액을 '가구원 수(2.54명)'로 나눠야 하죠. 이럴 경우 1인당 평균 저축액은 3,365만 원으로 떨어집니다. 순자산 5분위별로 보면 상위 20%만이 보호 한도를 초과합니다. 다만 가구원 중 미성년·청년 등을 고려하면 보호 한도 이상인 예금자 수는 20%보다 더 많을것으로 추측되네요. 예금보호 한도를 높이면 대출금리가 올라갈 수 있다는 반론도 나와요. 결론부터 말하면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려요.' 일단 예금보호를 통해 이득을 보는 주체는 금융회사·예금자 모두입니다. 즉 예보료는 금융회사와 예금자가 일정 수준에서 나눠 내는 게 합리적으로 보여요. 지난해 10월까지 예보료를 대출금리로 받는 게 가능했어요. 예를 들어 예금은 A은행에 맡기고, 대출은 B은행에서 받을 경우, 대출 고객은 B은행 예금자들을 대신해 예보료를 납부해 주는 꼴이었지요. 이런 부당함을 개선하기 위해 은행권은 '대출금리 모범규준'을 개정해 대출로는 예보료를 받지 않기로 했어요. 정리하면 현재로선 예보 한도 상향으로 인한 예보료 인상이 대출금리에는 전가되지 않습니다. 아직 남은 문제도 있죠. 대출금리로 예료보를 받는 게 불합리한 건 알겠는데, 도대체 예금금리에 예보료를 얼마나 반영해야 적당할까요. 대출금리와 달리 수신금리는 모범규준도 없고, 예보·당국의 가이드라인도 없습니다. 개별 금융회사들은 예보 전가율을 '영업비밀'로 간주해 공개하지 않고 있어요. 즉 현재로선 100% 전가도 가능하다는 거죠. 주요 5대 은행에 물어보니 4곳은 예금금리를 깎는 방식으로 예보료를 이미 징수하고 있다고 하네요. 결론적으로 만약 예보 한도 상향이 결정돼 예보료 상승으로 금융회사 부담이 커지면 각 회사들이 예금금리를 지금보다 더 깎는 방식으로 예금자에게 비용 부담을 전가할 유인이 커질 수 있습니다.
서울 사는 30대 직장인 A씨는 최근 실손보험에 들려고 동네 우체국에 갔다가 퇴짜를 맞았다. 작년 8월에 받았던 불면증 약 처방이 발목을 잡았다고 한다. 창구 직원은 "정신과 진료 기록이 있다면 실손보험은 아예 가입이 불가능하다"고 안내하며 "그 돈으로 가입 가능한 적금을 추천해 주겠다"고 다른 상품을 권했단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을 거치며 우울증 등 정신 관련 질환을 겪는 사람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국가기관인 우체국의 '정신질환 차별대우'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경미한 정신질환 치료 경험만 있어도, 실손보험 가입이 아예 불가능하다는 민원도 이어지는 중이다. 26일 한국일보가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우정사업본부(우본) 자료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동안 F코드(질병분류표의 F00~F99에 해당하는 정신질환) 병력을 가진 이들 중 우체국 실손보험 가입이 승인된 사례는 단 5건(건강체 보험 기준)에 그쳤다. 전체 실손보험 가입 건수(6만 3,564건)의 0.0078%다. 보험 가입이 승인된 비율(일반실손 인수율 기준)은 7.1%에 불과했다. 유병자 보험인 간편실손을 포함해도 인수율은 33.6%에 불과하다. 보험 가입이 어렵기로 유명한 고혈압(59.0%), 당뇨(64.4%)보다 높은 잣대를 정신질환 병력에 들이대는 것이다. 정신질환 병력자에 대한 우체국 가입 심사는 단 70건밖에 이뤄지지 않았는데, 이는 A씨 사례처럼 아예 창구에서부터 거절돼 정식 심사에도 올라가지 못한 경우가 많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어렵게 창구를 통과하더라도 보험에 실제 가입하려면 매우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우본은 우울증 병력자의 경우 완치 후 2년(경증)에서 5년(중증)이 지나야 실손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한다. 경증은 치료가 '단발적 통원'이었어야 하며, 정기적·장기적 진료를 받으면 중증으로 분류될 수 있다. 우울증을 이유로 한 휴직 역시 중증 판단의 근거가 된다. 이에 대해 우본 관계자는 "가이드라인은 기준일 뿐, 실제 가입은 신청자 면담 등 세부 심사를 거쳐 결정된다"며 "특정 약물을 복용했다는 이유만으로 가입이 거절되진 않는다"고 해명했다. 정신질환 병력자의 가입 승인율이 지나치게 낮은 것에 대해서는 "일반실손(건강한 사람이 가입) 가입이 아예 불가능한 고혈압·당뇨와 달리, 정신질환은 간편실손(유병자 보험)은 물론 일반실손까지 가입이 가능하다"며 "오히려 소비자에게 유리한 구조"라고 설명했다. 다만 "차별이 없다"는 우본 방침과 달리 우체국 각 지점은 정신질환 병력자의 실손보험 가입을 창구에서부터 차단하고 있었다. 본보가 복수의 우체국 지점에 "지난해 졸피뎀(수면제) 처방을 받은 적이 있는데, 유병자 실손보험 가입이 가능하냐"고 문의한 결과, 각 지점은 "우체국에는 유병자 보험이 없다"거나 "졸피뎀을 처방 받았으면 유병자 보험도 가입이 안 된다"고 답했다. 최근 3개월 이내 입원 등 몇 가지 경우만 제외하면 모든 가입이 허용되는 게 원칙이지만, 실제 "유병자 보험 가입이 된다"고 말한 곳은 하나도 없었다. 우체국 창구에서 벌어지는 정신질환 병력자 실손 가입 거부는 사실상 국가인권위원회 권고에 배치되는 것으로 이해될 소지도 있다. 인권위는 지난해 8월 "정신과 약물 복용을 이유로 실손보험 가입을 거부하는 것은 차별"이라는 취지의 결정을 내렸다. 우체국을 포함한 보험사들이 정신질환 병력자들의 보험 가입을 꺼리는 것은 '정신질환이 다른 질환이나 상해(자해)로 연결되는 가능성이 높아, 손해율(납입 보험료 대비 지급 보험금 비율)을 높인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합리적이지 못한 판단이라고 지적한다. 정신과 전문의인 하주원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홍보이사는 "우울증 등을 치료하지 않으면 스스로 건강 관리를 하기 어려워질 순 있지만, 당뇨·고혈압 환자에게 뇌·심혈관질환이 발생하는 것처럼 의학적 인과 관계가 직접적인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실손보험에서 정신질환 병력자를 차별하는 관행이 계속되는 경우,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증상이 있음에도 사람들이 정신과 진료를 피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하주원 이사는 "치료 받았다는 사실을 문제 삼는 불합리한 관행이 계속되면, 치료가 늦춰져 국민 정신 건강을 위한 사회적 비용은 오히려 증가하게 될 것"이고 강조했다. 차별 개선을 위한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강선우 의원은 "인권위 결정이 있었음에도 보험가입 시 차별이 여전히 존재하는 상황"이라며 "정신 관련 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차별 및 편견을 해소할 수 있도록 제도적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강 의원은 보험사가 정신질환 병력자 차별 금지 권고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보건복지부 장관이 시정명령이나 과태료 처분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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