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은의 ‘삶도’ 시즌3 : 애도] <3>김우진(가명)
편집자주
‘자살 사별자(Suicide Bereaved)’. 심리적으로 가까운 이를 자살로 잃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자살 사별의 아픔이 비단 가족에게 국한되는 일이 아님을 내포한 말이기도 합니다. 자살은 원인을 단정할 수 없는 죽음이라 남은 이들을 더욱 힘들게 합니다. 고인을 쉬이 떠나보내지 못하고 ‘왜’라는 질문에 맴돕니다. 죄책감이나 원망이 들어차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들이 ‘애도’에 이르는 길은 멀고도 험난한 여정입니다. 한국일보는 올해 자살 사별자들의 그 마음을 들어보려고 합니다. ‘자살 사별자들이 마음으로 쓰는 부고, 애도’입니다.
2년간 함께 살았던 파트너의 죽음
“늘 슬펐지만 어디서도 말할 수 없었다
성소수자 자살, 몇 겹의 금기 겹친 죽음”
동성 연인과 수년 전 사별한 김우진(가명·오른쪽)씨를 3월 21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만났다. 인터뷰로 우진씨에게 생길 수 있는 여파를 고려해 이름은 가명으로, 나이나 직업 같은 신상 정보는 적시하지 않았다. 사진 역시 그의 의견을 반영해 촬영했다. 정다빈 기자
‘오늘은 내가 짜파게티 요리사~!’
그가 유명한 광고 카피를 되뇌었다. “이 우스꽝스러운 말이 그 사람한테 한 마지막 말이 됐다는 것도 너무 이상해요.” 김우진(가명)씨는 9년 전,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
두 사람은 동성 연인이었다. ‘쌍둥이가 아닐까’라고 생각했을 만큼 취향도, 성격도, 생각도 닮았다. 부연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얘기가 잘 통했다. 우진씨는 “처음 볼 때부터 ‘운명의 상대’라고 여겼다”고 말했다. 우진씨는 파트너를 “애인님”이라고 불렀다. 사귀기 시작하면서 함께 살다시피 했다. 그렇게 지낸 기간이 2년이다.
그런 연인이 9년 전 세상을 등졌다. 우진씨는 애인과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존재였는데, 그 사람이 죽고 나니 세상은 그걸 알아주지 않았다. 경찰은 “두 사람이 그럼 친구냐”고 물었고, 우진씨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애인의 가족은 심지어 ‘죄인’ 취급을 했다. “도둑Ｘ”이란 소리도 들어야 했다. 두 사람의 내밀한 대화가 축적된 카카오톡 메시지는 가족의 손에 쥐어졌다. 연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슬픔, 배신감, 고통이 우진씨를 덮쳤다. 거기다 수치심과 모멸감, 공포까지 감내해야 했다.
한 사람이 죽고 나니, 다른 한 사람은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지 증명할 사람은 둘뿐이었으므로. “영정 사진으로는 무엇을 쓸지, 장례는 어떻게 치를지, 유품 정리는 어떻게 할지 같은 그 사람의 죽음과 관련된 소식이 제게 전해질 경로가 없었죠.” 우진씨는 담담히 말했다.
만나기로 한 날, 우진씨의 품엔 두툼한 일기장 한 권과 앨범이 있었다. 두 사람이 살던 집에서 도망치듯 나올 때 간신히 챙긴 것들이다. 일기장은 죽은 연인의 영혼이, 앨범엔 두 사람의 시간이 담겨 있었다. 우진씨가 말했다. “늘 슬프고 외롭지만, 늘 마음 한편에 죽음이 짙게 깔려있지만 그래도 죽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해요.” 자신마저 죽어버린다면 가장 사랑스럽고 행복했던 연인의 모습까지도 사라져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한 마지막 말 “나는 짜파게티 요리사!”
그는 한동안 연인이 자살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고 했다. 그의 죽음을 나누거나 실감할 수 있는 시간이나 공간도 허락되지 않았다. 장례식장엔 발을 디딜 수 없었고 주위에 슬픔을 편히 터놓고 말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정다빈 기자
-연인이 죽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굉장히 충격이 컸을 것 같아요.
“실감이 잘 나지 않았고요. 영화가 상영되듯이 장면들이 눈앞에서 지나가는 느낌이었어요. 유류품이나 (마지막 순간이 담긴) CCTV를 확인해야 하는 순간에도 현실감이 없었어요. 마치 제 눈으로 누가 대신 봐주는 것 같았어요.”
당시 두 사람은 연인의 자취 집에서 함께 살고 있었다. 연인은 “짜파게티를 해달라”고 졸랐고, 우진씨는 “사 오면 해줄게”라고 했다. 짜파게티를 사러 나가는 연인을 보며 우진씨는 “오늘은 내가 짜파게티 요리사!”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런 평범한 저녁이었다. 다음 날 새벽녘에야 현관문을 두드린 건 경찰이었다. 나갔던 연인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런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나요.
“그 사람은 가족과 갈등이 매우 심했어요. 저야 아예 절연을 해서 연락이 오가지 않는 상태였지만요. 우리 둘 다 우울증이 있었어요. 앞으로의 삶이나 미래를 생각했을 때 암담하고 희망이 없다는 얘기를 많이 나눴죠. 나중에 아예 한국을 떠나서 외국의 해변가에서 함께 살자고도 했어요.”
-그전에도 연인이 자살 시도를 한 적이 있다고 들었어요.
“바다에 들어가는 걸 제가 달려가서 끌고 나온 적이 있어요. 목을 매려고 한 적도 있었죠. 제가 보곤 끈을 자르고 119에 신고해서 입원을 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목을 매려던) 그 끈이 제가 마술을 보여주면서 함께 놀 때 썼던 로프였어요. 너무 원망스럽고 야속했죠.”
-함께 살았던 연인이었으니 상실감도 컸을 거예요. 그 이후 어떤 시간을 보냈나요.
“장례식엔 가지 못했어요. 정신도 없었고 무서웠죠. 물론 유품 정리나 영정 사진 고르는 것도 어떻게 했는지 듣지 못했죠. 그 사람은 가족과 관계가 매우 좋지 않았기 때문에 영정 사진을 어디서 찾을지 걱정이 되기도 했어요.”
-그럼 고인에게 마지막 인사도 하지 못했나요.
“나중에 그 사람의 가족이 납골당에 데려가 줬어요. 향을 어떻게 피우는지 몰라서 당황했던 기억이 나요.”
-그래도 가족이 배려를 해준 거군요.
“그렇다기보다는 몇 가지를 확인하려고 그랬을 거예요. 함께 살 때 저는 가족과 절연한 상태라 아르바이트만으로 생활비와 대학 학비를 해결해야 했어요. 그래서 그 사람이 돈이 생길 때마다 저에게 얼마씩 주곤 했죠. 그 사람의 가족은 저에게 ‘통장 내역을 보니 너에게 간 돈이 총 200만 원쯤 된다. 물건도 갖고 있는 게 있으면 다 돌려줘라. 그렇지 않으면 신고하겠다’고 했죠. 그 과정에서 험한 말도 들었고요. 둘이 나눈 카톡 메시지 내역도 들이밀었어요. 수치스럽고 공포스러웠어요.”
◇그를 기억할 실마리가 너무나 없다
그와 연인의 추억이 담긴 스크랩북이다. 주로 연인이 꼼꼼히 모아둔 것들이다. 함께 마셨던 티백 포장지, 주고받았던 쪽지, 같이 갔던 은행 대기표(맨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 거리의 화가가 그려준 두 사람의 소묘, 전시 관람권 등이다. 두 사람만이 아는 역사고, 시간이다. 정다빈 기자
-그래도 납골당에 가보긴 했으니 다행이란 생각도 들어요.
“나중에라도 혹시 유골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납골당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거기도 기간을 정해놓고 자리를 대여해주는 방식이 아닐까요. 약정기간이 끝난다면 제가 인도받아서 간직하고 싶다는 게 저의 어떤 (삶의) 희망이에요.”
-왜 간직하고 싶은가요.
“아무것도 남은 게 없어서요. 물론 살던 집에서 나오면서 정신없는 와중에도 제가 몇 가지는 필사적으로 챙겼죠. 그 사람의 일기, 함께 만든 앨범, 같이 보던 책, 주고받은 쪽지 같은 거요. 하지만 그것 말고는 없잖아요. 2년간 함께 산다는 건 굉장히 많은 삶을 공유했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그 시간의 실마리를 찾을 수가 없어요. 제 기억에서만 있을 뿐이죠.”
-일기장은 왜 꼭 갖고 오고 싶었나요.
“그 사람은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이었어요. (나중에) 글을 쓰고 싶어 하기도 했죠. 그러니까 당연히 일기장에 남긴 말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평소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궁금했고요. 게다가 가족과 사이가 좋지 않았으니, (제가 아닌) 남이 일기를 보는 것에 모욕감을 느낄 거라고 생각했어요. (가족이 갖고 간다면) 보존될 수 있을지 알 수도 없는 일이고요. 그 친구의 레거시(유산)가 있다면 제가 보존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잘 알고 이해했던 사람인데 사후에 제대로 장례 절차에 참여하거나 추모하지 못했어요.
“장례라는 의식이 왜 있는지 알 것 같아요. 망자를 떠나보내면서 그를 아는 사람들이 모여서 추억을 나누는 자리잖아요. 장례를 치르면서 죽음을 실감할 수도 있고요. 저는 그러지 못했으니까, 한동안 그 사람이 죽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어요. 실은 살아있는데 내가 미쳐서 죽었다고 상상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했죠.”
우진씨는 최근에도 이런 꿈을 꿨다고 했다. 연인이 “사실은 그간 살아있었어. 시간이 이젠 많이 지났으니 말해도 될 것 같아 연락했다”고 하는 꿈. 우진씨는 큰 배신감을 느끼면서도 너무 좋아 이렇게 말했다. “그런 거 다 괜찮으니까 우리 빨리 만나.” 그런데 꿈이었다. 깨어난 뒤 생각했다. 한 번 더 그 사람을 잃었다고.
-사랑하는 사람을 자살로 잃고 나면 수없이 마지막 순간을 재생하게 돼요. 우진씨는 어땠나요.
“그때 쓰던 휴대폰 기록을 다 지웠었어요. 전화번호도 바꿨고요. 그의 가족에게 연락이 오는 것도 싫었죠. 그 죽음에 사로잡혀 있으면서도, 그것에서 도망치고 싶었어요. 그러다 2, 3년 전에 기록을 복원했어요. 그런 뒤에도 함께 주고받은 카톡 내역을 보지 못하고 있다가 나중에야 봤죠. 알고 보니 그날 새벽에 그 사람이 저에게 보이스톡을 보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당시엔 몰랐거든요. 저도 정신과에 다니던 때였고 이미 저녁치 약을 먹은 상태라 약에 취해 잠들어서 듣지 못했던 거예요. 그걸 보고 새로운 죄책감이 들었죠. ‘내가 깨어 있었어야 했는데. 그걸 받았어야 했는데’라는. 물론 제가 어떻게 했어도 일어날 일이었을지 몰라요. 만약 제가 그때 붙잡았어도 다른 때 또 자살 시도를 했을지도 모르고요. 그래도 그 생각을 하면 너무나 괴로워져요.”
◇죽음을 얘기할 더 많은 공간이 필요하다
그는 “우리 사회가 자살을 더 많이 얘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다빈 기자
-연인이 죽고 나서 힘든 시간을 보낼 때 그래도 내 마음을 알아주고 슬픔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래도 좀 견뎌지잖아요. 그런 존재가 있었나요.
“제가 지금까지 살아있는 건 수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은 덕분이라는 걸 알아요. 그런 사람들이 그때그때 제 곁에 있어서 제가 살 수 있었죠. 굉장히 행운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기가 싫었죠. 그래서 미안해요.”
-아직도 우리 사회엔 자살을 뭔가 문제 있는 죽음으로 여기는 시선이 많아요. 성소수자인 자살 사별자들은 다른 어려움도 더 많을 거예요.
“우연한 기회에 자살 사별자 자조모임을 알게 됐어요. 가서 감동을 받았던 게 팔찌였어요. 가면 고인과의 관계에 따라 색깔별로 찰 수 있는 팔찌가 있거든요. 그런데 연인(배우자나 파트너)이 있는 거예요. 저는 그 팔찌를 차면 그걸로 끝이었어요. 그동안 수많은 말로 설명하려다 포기하고, 거짓말을 하다가 아예 말을 하지 않게 되기도 했는데 거기선 아니었죠. 다른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서 얘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됐어요. 나만의 비극에 빠져있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비극에도 함께 울고 공감할 수 있다는 게 참 특별했죠. 죽음에 대해, 자살에 대해 함께 얘기할 수 있는 공간이 더 많이 만들어지면 좋겠어요. 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있고 그 죽음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게다가 이 높은 자살률 중 큰 비중을 성소수자가 차지하고 있을 거고요.”
-기일은 어떻게 보내나요.
“3주기까지는 그 친구가 좋아하는 맥주를 한 병 사서 죽었던 장소에 가서 붓기도 했어요. 그런데 환경에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만뒀고요. 그 이후엔 집에서 작은 재단을 꾸며 촛불을 켜두고 기도를 해요. 그 친구의 사진을 펼쳐놓고 그 가운데 앉아서 얘기도 나누고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건 인생에서 정말 큰 상실이에요. 그 죽음이 내 인생에서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생각할 때마다 달라지더라고요. 저에게 준 의미는 ‘나는 죽지 않아야겠다’예요. 자살 유가족의 자살률이 높다고 하잖아요. 저도 그 이후 자살 시도를 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죽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해요. 남은 사람들이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삶을 보내게 되니까. 그리고 (살아서)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친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얼마나 귀여웠는지요. 그 사람이 그저 ‘자살했다’는 의미로만 기억되면 너무 슬플 것 같아요. 그 사람이 어땠는지는 저밖에 모르잖아요. 저에게 즉석에서 창작한 동화를 들려주기도 했고, 수란을 해준다면서 난리를 피우다가 다 엎어서 (부엌이) 달걀로 뒤범벅이 된 적도 있어요. 볶음밥 재료를 사러 마트에 가서는 당근을 넣느냐, 마느냐 가지고 티격태격하기도 했죠. 제가 없어지면 그런 일들도 다 사라질 것만 같아요. 그래서 죽지 말자고 계속 다짐을 해요, 힘들지만.”
‘내가 죽지 않아서 내 안의 그 사람도 살려야겠다’는 우진씨의 말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렇게 죽은 연인과 함께 살고 있었다.
◇너의 죽음을 부고로 쓴다면
그는 연인을 기리는 부고를 부탁한다는 청에, 앉은 자리에서 자신만이 아는 연인의 모습을 담아 읊었다. 10주기가 다가오지만 그의 마음과 머릿속에 연인은 아직도 함께 있는 듯했다. 정다빈 기자
우진씨에게 자신만이 아는 연인의 면모를 담은 부고를 청했다. 이 시리즈 ‘애도’의 부제는 ‘자살 사별자들이 마음으로 쓰는 부고’다. 잠시 생각하더니 그는 이렇게 읊었다.
‘이런 사람이 있었다. 다시 태어나면 나무나 돌고래가 되고 싶어 하던 사람, 삼각형과 동그라미 낙서를 많이 하던 사람, 정리를 매우 잘했던 사람, 섬세하고 다정했던 사람, 잘생기고 손이 굉장히 따뜻했던 사람, 미숙한 부분도 많았지만 그만큼 재능과 가능성이 있었던 사람, 삶을 힘들어했지만 그만큼 삶에 진지했고 열성적이었던 사람,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끝까지 노력했던 사람. 그런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이 원하던 대로 언제나 자유롭고 평안할 것이다.’
-편지를 써본 적도 있나요.
“2022년에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에서 ‘성소수자 추모의 공간 KISS & CRY’라는 행사를 한 적이 있어요. 당시 제가 활동하던 ‘아는언니들’이란 합창단도 그 행사에서 공연을 했죠. 그런데 공고를 보니까 추모 편지를 받더라고요. 행사 때 게시도 하고요. 그때 저도 냈어요.”
-어땠나요.
“처음으로 제가 이 죽음을 숨길 필요 없이 공적인 공간에서 안전하게 풀어놨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뭔가가 한 꺼풀 벗겨진 것 같았죠. 너무나 큰 일이 일어나서 인생이 이렇게 뒤흔들리는데, 저는 그간 사실대로 설명할 수가 없었거든요. 거짓말을 하거나 숨기거나 핑계를 대야 했어요. 그런데 그 공간에선 그럴 필요가 없었어요. 저와 비슷한 경험들이 펼쳐져 있었고 저도 그 일부였죠. 누군가의 죽음에 다들 함께 울었어요. 저를 누군가 안아주기도 했고요. 혼자가 아니었죠.”
-이 인터뷰에 응한 이유가 궁금해요.
“제가 할 수 있는 것 중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니까요. 이 인터뷰를 다른 자살 사별자, 특히 퀴어 사별자가 우연히라도 듣게 된다면 그걸로 된 것 같아요. (애인이 죽은 지) 이제 9년이 됐거든요. 아직 저는 살아있어요. 그게 중요하다고 봐요. 너무 힘들다는 걸 알아요. 그래도 살다 보면 완전한 순간, 평온한 순간, 행복한 순간이 찾아오거든요. 이겨냈다는 말을 하는 게 아니에요. 지금도 제 인생은 너무나 심란하고 고통스러워요. 그 죽음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더라도 그런 순간이 찾아오거든요. 그걸 말해주고 싶어요. 그리고 그런 순간이 점점 늘어날 거예요.”
자기 자신도, 그리고 같은 경험을 한 다른 사람도 살길 바라서 한 인터뷰. 그가 여러 걱정과 두려움을 무릅쓰고 ‘애도’ 인터뷰에 응한 이유였다. 그가 바란 대로, ‘살리는 인터뷰’가 되기를.
아래, 우진씨가 2022년 연인에게 쓴 추모 편지를 싣는다. 편지엔 연인의 죽음 이후 그가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가 담겨있다. 그 죽음이 어떤 의미인지도.
거리의 화가가 그려준 우진씨와 사별한 연인의 인물화 데생을 블러 처리했다. 두 사람이 만든 스크랩북에 간직된 것이다. 정다빈 기자
‘네가 얼마나 오래 죽어있었는지 알겠니’
너에게 한 번도 제대로 된 편지를 준 적이 없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너와 나 둘 다 언어를 매우 중시하는 사람들이었는데, 우리 연애에서 언어의 전달은 자주 실패했지. 지난 몇 년간, 너와 어떤 방식으로든 대화가 가능하다고 단 한 번도 믿지 않았다. 죽은 사람에게 진심으로 말을 걸기에는 이미 충분히 내 마음이 무너져 있었고.
너는 많은 것을 모르지. 코로나도 몰라(하하)! 수많은 것들. 그래서 너를 청자로 한다면 먼저 네가 모르는 개념과 사물을 설명하지 않으면 글의 내적 모순이 너무나 뚜렷해져 우습게 느껴졌거든. 내가 청자의 죽음이라는 주제 하단에 얼마나 회의적인 소제목들을 생성해 왔는지 아니?
대화의 성립 가능성을 전혀 믿지 않음에도 일기에 너를 끝없이 적기를 반복했어. 하지만 오직 나만을 위해 썼기 때문에 편지라고 생각하지 않았어.
너의 죽음에 대해 나는 처음에 아주 많이 말했어. 질문했고 탐구했고 나만큼은 죽지 않겠다고 다짐도 했어. 그러다 점점 적게 말하게 되었고, 그러다 무엇에 대해서든 잘 말하지 않게 되었어.
적절한 애도란 가능할까? 모두 해봤어. 말하지 않기. 말하기. 잊기. 잊지 않기. 숨기기. 떠들기. 회상하기. 회상하지 않기. 거칠게 다루기. 조심스럽게 다루기. 무시하기. 떠받들기. 정리하기. 헤집기. 무엇을 해도 이 죽음에 대해 부적절한 것 같다는 느낌이 사라지지 않아. 나는 흔들리고 방향을 바꾸고 영향을 받아. 내 애도는 시스템이나 내적 논리도 없이 그냥 미끄러져 버려. 빗나가 버려. 그래서 나는 알게 돼. 죽음을 아무리 따라다니며 기록하고 관찰해 본들 결코 이해할 수도 소유할 수도 없을 거라고.
너를 ‘보고 싶어 하고 싶을’ 때가 있어. 하지만 단지 없는 존재라는 실감만 닥쳐오고, 그건 아무 느낌도 아닌 느낌이며 슬픔이 아니야. 이 비현실감이 내가 언제나 딛고 있는 곳인데, 아주 견디기 어려워. 사람들에게 설명하기 어려운 지점이 아마 여기인 것 같네.
중력이 시공간을 휘게 한다며 보여주는 화면의 선들처럼, 자살이라는 사건의 인력을 표시하면 아마 블랙홀과 비슷하겠지. 일절 개입의 여지가 없이 사건의 지평선 너머의 영역이 되어버린다는 점에서. 아무것도 나올 수 없다는 점에서. 한끝이 일방적으로 영원히 닫히고, 어떤 상호작용도 불가능해.
내가 가진 것은 단지 네가 살다 간 시간이야. 우리가 함께 있었던 나날, 그리고 너의 이야기와 모습이 하나의 몸체로 내 앞에 있어. 내밀한 일화들, 사랑스러운 이야기들, 이 세상에서 나만 아는 너의 어떤 것들을 강박적으로 잊지 않으려 노력해. 노력했지만 이제는 많이 잊었어.
대신 너의 끝에 가까운 날들, 죽은 날이 가장 명료하게 기억나. 엄격하게 순서도 기록되어서 마음의 보드에 핀으로 꽂혀 있다. 핀들은 노란 실로 연결되어 있고 나는 수사관이 된 듯 자문해. A점에서 G점까지 정확히 어떤 순간에 어떻게 개입했어야 했나? M점에서는 왜 이렇게 하지 않았던가? B점의 사건은 X점에서 이미 예견된 것이 아닌가?
내가 후회하며 자꾸 되돌아보는 것은 우리의 관계가 아니라, 우연성과 개연성으로 가득 얽혀 흘러가다 어느 시점에서 잘려 버린 너의 일대기야. 그 점에서 나는 너를 이제 인격이 아닌 사건에 가깝게 이해하고 있는지도 몰라.
나는 도저히 애인이 죽은 사람답지 않게, 등산을 하거나 학교에도 갔어. 얼마 지나지 않아 새 연애도 시작했고(그것도 아주 오래 지속되다 최근에야 끝났단다. 그러니 얼마나 네가 오래 죽어 있었는지 알겠니?).
이제는 알아. 너의 죽음만이 나를 떠민 게 아니라, 내가 적극적으로 시간의 팔짱을 끼고 가며 다른 사람이 되었단 걸. 그게 내 대응이었다는 걸.
이제 네가 남긴 노트를 더 느리게 넘겨. 더 잘 이해하기 때문이야. 이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까지도 이해하기 때문이야. 이전보다 너를 좀 더 알겠어. 슬픔과 절망이 잠깐이라도 잠잠해지게 하기 위해서 매번 무엇을 주어 보내야 했는지. 그게 얼마나 피로한 일이었는지.
네가 죽어서 나는 아주 힘들었어. 정말 괴로웠어. 하지만 내 인생이 거기서 끝나진 않았지. 좋은 사람들과 사랑과 도움과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있었어. 언제나 사람과 시간은 예상을 벗어났고, 내 이해와 짐작은 그 자체로는 아주 단면일 뿐이어서, 나는 너의 죽음 이후에도 반짝이는 순간과 사랑과 총체성과 평화를 경험할 수 있었다. 외롭고 슬플 때가 많지만, 나는 계속 살아갈 거야. 힘을 낼 거야.
영원히, 영원히 너를 사랑해.
자유롭고 평안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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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팀은 자살 사별을 경험한 분들의 사연을 받습니다. 가족이나 친구, 연인, 동료의 자살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계신다면 luna@hankookilbo.com으로 사연을 보내주세요. 몇 편을 골라 애도상담을 전문으로 하는 고선규 임상심리학 박사(한국심리학회 자살예방분과 위원장)의 조언을 전할 예정입니다. 고인을 기리며 쓴 ‘나만의 부고’도 좋습니다. 따로 기사로 정리해 싣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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