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 개척자들을 만나러 갑니다...

커리업

‘죽자고 싸워라’, 하이브 리모델링한 건축 회사가 맨땅 개척한 비결 - 푸하하하프렌즈 맨땅브레이커

푸하하하프렌즈 편

2023.12.20

윤한진, 한승재, 한양규 소
윤한진(39)소장
윤한진, 한승재, 한양규 소
한양규(40)소장
윤한진, 한승재, 한양규 소
한승재(40)소장

“우리에겐 공통된 특징이 있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열정을 드러내는 데
주저함이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특별히 자랑할 만한 일인가 싶지만,
자기 직업에 대해 열정을 드러내는
사람이 무척 드문 요즘이다.
그 점이 우리 자신을 특별하게
여기게끔 한다.”

- ‘우리는 언제나 과정속에 있다’ 프롤로그

오늘의 커리어 포인트
  • 과감한 퇴사
  • 무모한 창업
  • 10년째 동업
  • 믿어야 싸울 수 있다
  • 싸워야 새로워진다
오직 커리업에서, 오늘의 뷰 포인트
  • 푸하하하프렌즈를 알린 작품들
  • 어느 젊은 건축가의 수첩
  • 비포 & 애프터
  • 푸하하하 어워즈

기상천외한 작품을 만드는 건축사무소, 푸하하하프렌즈(FHHH Friends)

'푸하하하프렌즈(FHHH Friends)'는 이름처럼 기상천외한 건축사사무소입니다. 2021년 용산으로 터를 옮긴 하이브(HYBE)의 신사옥 리모델링을 맡으면서 주목을 받은 그 건축가 집단입니다.

이들은 무정형의 좁은 땅 위에 삼각형의 건물을 계단처럼 쌓아 올리거나, 대형쇼핑몰의 한가운데 커다란 옷장을 세워 미로를 닮은 길을 내어 쇼룸을 만듭니다. 카페 중심에 폭이 60m가 넘는 초대형 스테인리스 테이블을 배치하기도 하죠. 왜 이름을 푸하하하프렌즈로 지었느냐는 질문에도 “별 이유가 없다”는 예상치 못한 답을 내놓습니다. 2014년 '김해건축대상', 2016년 '서울시 건축상', 2019년 문화체육관광부 '젊은 건축가상'. 10년 동안 푸하하하프렌즈가 이룬 성취입니다.

시작은 2013년 서울 마포구 망원동 16.5㎡(5평)짜리 옥탑의 창고였습니다. 20대의 젊은 건축가 세 명은 이곳에 둥지를 틀고 오래된 연립 주택의 리모델링이나 동네 카페 인테리어부터 시작했죠. 992㎡(300평) 규모의 상업 공간이나 6만6,116㎡(2만 평)에 달하는 사옥을 디자인하는 대형 프로젝트를 맡은 건 최근의 일입니다. 이들의 성장 궤적을 뜯어보면, 마치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탄탄히 쌓아 올린 건축물 같습니다.

이들은 ‘열정을 드러내는 데 주저함이 없다’는 걸 자신들의 ‘무기’로 꼽습니다. “남들에겐 없지만 우리에겐 있는 것, 그 점이 우리를 특별하게 만든다”고 말합니다.

자신만의 궤도를 맨땅에 헤딩하며 개척한 퍼스트 펭귄의 커리어 이야기, ‘맨땅 브레이커’의 7호 인터뷰이는 푸하하하프렌즈의 윤한진(39)·한승재(40)·한양규(40) 공동소장입니다.

커리어 그래프

Chapter1. 성실한 놈, 비범한 놈, 이상한 놈 ‘푸하하하프렌즈’

#S1. 신입사원들은 고민했다, '언제 퇴사하나'

고향도, 학교도 다른 세 사람이 친구가 된 곳은 한 건축사무소였다.

한양규는 유일하게 붙은 회사가 이곳이라서, 윤한진은 친구 따라 대충 휘갈긴 원서가 덜컥 합격해서, 한승재는 그저 원목 책상이 좋아 보여서. 이들이 첫 회사를 선택한 이유다. 양복 입고 출근하지 않아도 돼 좋았고, 점심 메뉴를 마음껏 고민할 수 있는 곳이라서 더할 나위 없던 스물여섯, 스물일곱이었다.

이 셋이 꾀죄죄한 행색으로 소주를 나눠 마시며 자주 입에 올렸던 안주거리는 “그래서 우린 언제 퇴사하냐”는 자조였다. 그 와중에 한양규는 “회사 관두면 이발소나 라면 가게를 하겠다” 흰소리를 자주 했다. 윤한진과 한승재는 그 얘길 들으며 낄낄대곤 했다.

그땐 몰랐다. 나중에 세 사람 모두 정말 회사를 그만두게 될 줄은.

‘회사 나가고 싶다’는 소리를 습관처럼 하긴 했지만 실은 모두 회사를 아주 좋아했습니다. 회사에 얕잡아 볼 만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거든요. 단단하게 내실을 갖춘 선배들의 틈에 껴 있다 보면, 어디에 숨었는지도 몰랐던 의욕이 꿈틀대며 부풀어 오르곤 했습니다.

“제가 한승재, 윤한진보다 1년 먼저 입사한 선배였어요. 겉으로 보기엔 둘 다 꼬질꼬질한데 일할 땐 남달라 보이는 게 있었죠. 평소에 보면 그저 익살스럽고 장난기가 넘치는 애들이거든요.

근데 작업물을 보면 좀 비범한 구석이 있었달까. 두 사람 모두 건축을 정석대로 하는 느낌이 아니었어요. 청개구리마냥 다 비틀어 버렸죠. 결과를 보면 특이하기만 한 게 아니라 자연스럽기도 해서 놀라웠어요.”

한양규

‘비범한 놈’ 윤한진, ‘이상한 놈’ 한승재, 그리고 이 셋 중 유일한 현실주의자였던 ‘성실한 놈’ 한양규.

기질도, 성격도, 개성도 천차만별로 다른 세 사람이 어울려 놀다 보니 의외로 한 가지 통하는 게 있었습니다. ‘건축에 대한 태도’였죠. 이들에게 건축이란 ‘하다 보니 좋아진 일, 좋아하다 보니 더 잘 해내고 싶은 일’이었습니다.

문제는 일에 애착이 커질수록 회사가 답답하게 여겨진다는 거였죠.

푸하하하 건축사무소 윤한진, 한승재, 한양규 소장이 1일 서울 종로구 사무소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푸하하하프렌즈의 한승재(맨 왼쪽부터)·한양규·윤한진 소장이 그들의 첫 회사 생활 시절을 회상하고 있다. 첫인상을 물으니 주로 “웃기게 생겼다고 생각했다”, “꾸질꾸질했다”는 혹독한 외모 평가가 주를 이뤘다. 이들은 끊임없이 놀리고 놀림당하는 사이다. 이한호 기자

“회사를 재미있게 다니고 있었지만 끝내 해결되지 않는 갈증이 남아있었어요. 건축 회사의 말단 직원은 클라이언트를 직접 만날 수도 없었고, 현장에 나가볼 수도 없거든요. 소장의 지시에만 의존해서 좁은 시야로 일할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한승재

건축사무소가 창작자들의 집단이라고는 하나, 이곳 역시 어쩔 수 없는 조직이었습니다. 위계와 규칙에 따라 절차를 거치다 보면 뾰족했던 아이디어도 뭉툭하게 깎여 나갔죠.

승재씨는 당시를 떠올리며 “열정이 축적되지 않는 느낌이었다”고 표현합니다. 입사 3년 만인 2013년, 결국 승재씨와 한진씨가 먼저 회사를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건축사 자격증을 준비하던 양규씨만 1년 뒤로 퇴사 시점을 유예했죠.

“그동안 우리는 무언가를 위한 노동이 아닌, 순수하게 우리를 불태울 수 있는 노동을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순수함이라는 단어가 파생시키는 많은 제약은 우리를 여러 번 주춤하게 했습니다. ‘순수한 열정이 순수하게 받아들여지는 창작’. 그것이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입니다.”- 사직의 변

승재씨가 사직서에 첨부했던 글입니다. 일종의 ‘사직의 변’이죠. 델 것처럼 뜨거운 날것의 갈망이 느껴지지 않나요. 진짜인 마음을 담아서였을까요. 이들의 첫 회사였던 디엠피건축사무소의 문진호 대표는 두 사람의 사직서에 사인과 함께 뜻밖의 덕담을 남겼습니다.

‘이건 사표가 아니라 멋진 출사표, 성공을 빕니다.’ 기록으로 남기지 않을 수 없었겠죠. 이들은 아직도 그 사직서의 사진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문을 나서려는 그들의 뒤통수에 대고 문 대표는 이런 바람도 덧붙였습니다.

“너희는 뭐든지 다르게 했으면 좋겠다.”

커리어 그래프

Chapter2. 이 작업, 우리만 할 수 있는 거 맞아?

#S2. 일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씩씩하게 회사를 나오고 보긴 했는데, 일을 주는 사람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문진호 대표의 덕담 대로 뭘 다르게 하고 싶어도 일이 있어야 다르게 할 것 아닌가.

고객은 포털 사이트 검색 창에 ‘마포구 인테리어’를 치고 찾아온 손님이 대부분이었다. 예산은 매번 100만 원을 넘기지 못했다. 작업 규모도 영세했지만, ‘초짜’ 대표들은 수익을 남기는 데도 재주가 없었다. 공사에서 남는 돈이라고 해봐야, 몇 십만 원 수준.

아직 첫 회사에 남아 건축사 시험을 준비하던 한양규가 보다 못해 “우유 배달이든 신문 배달이든, 돈 되는 건 뭐든 해서 나라도 돈을 보태겠다”고 할 정도였으니. 그게 독립 초창기, 푸하하하프렌즈의 일상이었다.

당당히 독립했지만, 이들의 처음은 허름했습니다. 한겨울 옥탑의 사무실은 뼈마디가 아릴 정도로 추워서 스티로폼 박스를 밭밑에 깔아야만 겨우 동상을 면할 정도였죠. 궁상스러운 데뷔였습니다.

하지만 지켜보고 있는 관객이 없으니 창피할 것도 부끄러울 것도 없었다고 합니다. 춥고 배고프고 돈 없는 처지조차도 웃음거리 삼아 낄낄거리기 바빴을 뿐이었죠. 그런 그들을 두고 업계의 사람들은 “무모하다”, “용감하다”, “주제 모르고 까분다”고도 했지만, 이들은 개의치 않았어요. 이들에겐 ‘이들만의 진지함’이 있었습니다.

푸하하하 건축사무소 윤한진, 한승재, 한양규 소장이 1일 서울 종로구 사무소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푸하하하 건축사무소 윤한진, 한승재, 한양규 소장이 1일 서울 종로구 사무소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이들이 ‘버텨냈다’는 표현을 쓰지 않은 게 인상적이었다. 한승재 소장(왼쪽)이 한양규 소장을 보며 말했다. “좀 힘들긴 했어도 재미있었는데, 그치? 추운 거 말고는 다 재미있었어.” 이한호 기자

“우리가 돈이 없어서 고생하긴 했어도, 한 번도 ‘견딘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실제로도 참는다, 버틴다 그렇게 느낀 적이 없었거든요. 돌이켜 보면 앞날이 캄캄하니 불안했을 법도 한데.

그때나 지금이나 승재나 한진이는 사서 걱정하는 애들이 아니에요. 얘네 옆에 있으니까 저도 그렇게 닮아가더라고요.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자? 그런 다짐 한 적도 없어요. 일단 눈앞의 것만 본다. 그게 우리의 방법이었죠.”

한양규

그런 와중에 한 줄기 빛이 비쳤습니다. ‘흙담 프로젝트’입니다. 한진씨 어머니의 의뢰였습니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죠.

처음으로 설계다운 설계를 해볼 기회였으니까요. 경남 김해의 전통 다원 ‘흙담’을 허물고 그 자리에 새 건물을 짓는 프로젝트였습니다. 다원과 카페테리아, 기숙사와 효모 재배용 마당이 함께 있는 복합 건물을 신축하는 계획이었죠. 푸하하하프렌즈의 첫 번째 공식 기록이 될 작업이었습니다.

세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의욕을 남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각자의 설계안을 들고 와서 동시에 건축주에게 들이밀었죠.

예견된 난장판이 벌어졌습니다. ‘내 것이 낫네, 네 것이 구리네’ 손가락질하며 서로를 흠집 내고 헐뜯기 시작한 거죠. 양보할 생각도 없었습니다. 셋 다 자기 창작에 있어서만큼은 누구보다도 욕심이 많은 사람들이었거든요.

그래도 공통점은 있었습니다. 평화를 유지하겠답시고 세 가지 안을 어설프게 절충해 어정쩡한 결과를 만들긴 싫다는 것.

“아이디어란 게 절충하고 조율할수록 점점 별 볼 일 없고 평범해지는 법이거든요. 결국 셋 중에 하나, 한진이의 안을 따르자는 결론을 냈죠. 이때 깨달았어요. ‘우리는 절대로 설계를 같이 하면 안 되겠구나.’ 셋 모두가 자기만의 설계를 현실화하기까지 그런 싸움은 계속되더라고요. 친구끼리 동업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그때 알았어요.”

한승재

두 달여 동안 비비고 붓고 닦고 쓸고 빼내고 씻고 하며 8000여개가 제작했습니다. 디자인 특허? 괜찮습니다. 어차피 아무나 쉽게 못 만듭니다.
두 달여 동안 비비고 붓고 닦고 쓸고 빼내고 씻고 하며 8000여개가 제작했습니다. 디자인 특허? 괜찮습니다. 어차피 아무나 쉽게 못 만듭니다.
2경남 김해시 ‘흙담 프로젝트’ 시공 현장. 윤한진 소장이 디자인한 블록을 현장에서 제작해 쌓아 올렸다. 총 8,000여 개의 블록을 만드는 데만 꼬박 두 달이 걸렸다. 사진 푸하하하프렌즈 제공 경남 김해시 ‘흙담 프로젝트’ 시공 현장. 윤한진 소장이 디자인한 블록을 현장에서 제작해 쌓아 올렸다. 총 8,000여 개의 블록을 만드는 데만 꼬박 두 달이 걸렸다. 사진 푸하하하프렌즈 제공

경남 김해시 ‘흙담 프로젝트’ 시공 현장. 윤한진 소장이 디자인한 블록을 현장에서 제작해 쌓아 올렸다. 총 8,000여 개의 블록을 만드는 데만 꼬박 두 달이 걸렸다. 사진 푸하하하프렌즈 제공

“서울에 두 친구를 남겨 놓고, 저 혼자 김해에 내려가 컨테이너에서 9개월을 살았어요. 작업 초반에, 밤마다 할 게 없으니까 그저 설계도만 들여다봤어요. 그러곤 물었죠. ‘넌 누구냐.’

부끄럽게도 제가 만들려던 건 그냥 기성품 덩어리였다는 걸 깨달았어요. 고작 이런 작업을 하려고 회사를 나온 건 아닌데… 이걸 ‘푸하하하프렌즈의 첫 작품이다’라고 주장하려면 진짜 우리만의 뭔가가 들어 있어야 되잖아요. 그래서 한 거예요. 그런 짓까지(웃음).”

윤한진

건축사무소 푸하하하프렌즈 윤한진 소장이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윤한진 소장이 디자인한 블록은 건물 바깥의 빛을 자연스럽게 내부로 연결하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그는 “미친 짓이었다”고 회고했지만, 8,000개의 블록은 이 건물에 고유한 매력을 불어넣었다. 이한호 기자

한진씨는 훗날 작업 일지에 이렇게 썼습니다.

‘효율성만이 극대화되어서 대중에게 반복된 피로감을 주는 무책임함에 우리는 반대한다.’

‘남들 하는 대로’가 아닌 자신만의 근거를 마련해 가면서 만든 이 작품은 2014년 김해건축대상제에서 대상을 받습니다. 푸하하하프렌즈의 첫 번째 기준점이 된 것이죠.

바로 이겁니다. ‘이 작업에 우리만의 뭔가가 있는가.’ 만약 그 ‘뭔가’가 없다고 여겨진다면 손해를 보고서라도 뜯고 다시 짓는다는 게 이들이 공유하는 ‘대전제’입니다.

커리어 그래프

Chapter3. 캐릭터는 타고나는 게 아니라 숙성되는 거야

#S3. 번뇌 위의 번뇌 위의 번뇌

이들의 현장에선 예상한 대로 풀리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완고한 건축주를 설득해야 했고, 막대한 돈을 쏟아부어야 했다. 그뿐인가. 땅을 파헤치며 이웃들과 싸워야 했고, 시공자들과는 팽팽한 기 싸움을 벌였다.

윤한진은 이것을 ‘원죄’라 불렀다. 수많은 사람의 몸과 마음이 다칠 수밖에 없는 과정이기에.

그럴 때마다 이들은 오래된 건물의 품으로 피신했다. 수백, 수천 년을 견디고 화석처럼 변하지 않는 풍경이 되어버린 건축의 품으로. 그들 역시 한 번 짓고 나면, 오래도록 그 자리에서 변하지 않는 건물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니 충분히 고민해야 했다.

분명한 건, 번뇌에 번뇌로 힘겨운 답을 내어 놓을 때마다 새로운 성장의 궤적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초짜들이 좌충우돌하는 현장엔 한여름 벌레떼처럼 변수들이 들이닥쳤습니다. 시공사의 날림 시공으로 건물이 무너질 위험에 처했을 땐, 그보다도 정신이 먼저 붕괴될 것 같았죠. 도망가려는 시공사의 목덜미를 붙잡고, 일단 사지에 뛰어들어야 했습니다.

“건물은 잘못 만들면 무너져요. 사람이 죽죠. 그게 제일 무서워요. 이 일이 얼마나 무거운 책임감을 필요로 하는지 그때 새삼 깨달은 거예요. 처음으로 ‘아 정말 이러다 스트레스로 죽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위기를 넘기지 못하면 내가 다시는 이 일을 못 하겠구나’ 싶었죠.

그래서 이를 악물고 끝까지 보강 공사를 했어요. 그 이후로는 이런 마음이 생겼어요. ‘이 정도는 괜찮지 않나’ 하는 생각이 곧 나를 향하는 화살이 될 수도 있겠구나.”

윤한진

푸하하하프렌즈의 소장 3인방이 그간 했던 프로젝트의 설계도와 스케치를 늘어놓고 추억에 잠겨있다. 지금의 그들을 만든 시간이다. 이한호 기자

푸하하하프렌즈의 소장 3인방이 그간 했던 프로젝트의 설계도와 스케치를 늘어놓고 추억에 잠겨있다. 지금의 그들을 만든 시간이다. 이한호 기자

한진씨가 현장에서 철두철미하게 꼼꼼한 사람으로 거듭난 건 바로 이런 경험 때문이었죠.

일터에서의 자아는 단순히 개인의 기질에 따르는 게 아니라, 경험의 영향을 받으며 점차적으로 만들어집니다. 같은 회사에서 같은 직무로 경력을 시작했다 하더라도, 몇 년 사이 서로 ‘딴판’인 캐릭터로 성장해 있는 경우가 많은 이유입니다. 어떤 경험, 어떤 성취, 어떤 실패를 거쳤는지에 따라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성장하기 때문이죠. 푸하하하프렌즈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새로운 도전을 요구받을 때마다, 새로운 캐릭터가 만들어졌죠.

캐릭터①
‘빨리빨리’와 ‘싸게싸게’에
맞선다

창업 2년 차, 푸하하하프렌즈는 한 프렌치 레스토랑의 공간 디자인을 맡게 됩니다. 레스토랑의 주인은 프랑스에서 수년에 걸쳐 요리 경험을 쌓고 돌아온 젊은 셰프였어요. 시안을 보여줘도 미지근한 표정만을 보여주던 그는, 어느 날 힘겹게 입을 뗐죠.

“디자인이 좋긴 한데, 제 요리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요.”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되짚다 보니, 그때야 셰프가 얼마나 공을 들여 자기 요리를 준비하고 있는지가 보이더랍니다. 그는 실내의 조도부터 식기의 크기, 가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자신이 선보일 요리에 맞춰 까다롭게 선택하고 있었죠. 승재씨는 그런 모습이 참 반가웠다고 합니다.

‘요즘처럼 빨리, 많이, 싸게 하려는 세상에 무언가를 제대로 하려고 애를 쓰는 사람을 보면 너무나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사람을 보면 더 열심히 합니다. 간단한 방식 대신 더 힘들고 복잡한 방식을 택하기도 하고, 공사비를 아껴 더 좋은 것을 살 수 있도록 배려하기도 합니다. 셰프가 프랑스에서 주문한 최고급 식기를 보여주고 지나가네요. 하, 저 순수한 눈빛이라니…’ - 2014년, 프렌치 레스토랑 작업일지 중에서

사직의 변부터 작업일지에 이르기까지, 푸하하하프렌즈의 기록에 꾸준히 등장하는 키워드는 ‘순수함’과 ‘진정성’입니다. 오랜 시간 이들 작업의 뼈대가 됐던 가치죠.

당시 푸하하하프렌즈가 디자인한 프렌치 레스토랑. 음식을 섬기는 셰프의 태도에 감명받아 더 유난스럽게 공을 들였다. 푸하하하프렌즈 제공 당시 푸하하하프렌즈가 디자인한 프렌치 레스토랑. 음식을 섬기는 셰프의 태도에 감명받아 더 유난스럽게 공을 들였다. 푸하하하프렌즈 제공

당시 푸하하하프렌즈가 디자인한 프렌치 레스토랑. 음식을 섬기는 셰프의 태도에 감명받아 더 유난스럽게 공을 들였다. 푸하하하프렌즈 제공

“주변을 둘러보면 다들 휘뚜루마뚜루 고민 없이 막 사는 거 같아요. 집 하나를 고르려고 봐도 집답게 지은 집이 거의 없어요. 이토록 제대로 된 게 없는 세상이다 보니, 뭐 하나라도 ‘진짜’로 하려는 사람을 보면 저라도 응원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거예요.

이런 마음은 푸하하하프렌즈를 하는 동안 바뀌지 않았죠. 왜냐면 시간이 지날수록 진정성은 더 귀한 가치가 돼가니까. 그래서 저희는 행동 없이 말만 하는 사람, 날로 먹는 사람을 제일 싫어해요.”

한승재

캐릭터②
클라이언트가 0순위

어떤 건축가들의 작업을 보면, 주택을 짓든 사옥을 짓든 상가를 짓든 ‘자신만의 스타일’를 고수합니다. 반면 푸하하하프렌즈의 포트폴리오를 살펴보면, 눈에 띄는 스타일이 있다고 보기 어려워요. 소장 세 명이 가진 강점과 주력점이 저마다 다르기도 하지만, 이들 모두 클라이언트를 0순위로 고려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개성을 고수하고 싶은 마음을 한풀 꺾고, 건축주의 필요와 취향에 몰입하는 거죠. 예술가의 자아가 강해질수록 자기 폐쇄적인 작품을 내놓기 십상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입니다.

“2015년에 연희동의 오래된 단독주택을 개조하는 작업을 맡았어요. 이때 만난 클라이언트가 7년 만에 다시 찾아와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그간 너희가 만든 감옥에서 살았다’고. 그 말에 가슴이 쿵 내려앉았어요. 모든 디테일에 과한 의도를 넣다 보니 그것들이 사는 사람에겐 제약이 됐던 거예요.

그래서 결심했죠. 누군가 들어가 사는 집을 만들 땐, 내 의도를 철저하게 배제하고 드러내지 말아야겠다고. 욕심을 부린다고 다 좋은 게 아니더라고요. 건축주가 주인이 되어야지, 건축가가 주인이 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죠.”

윤한진

클립
빈 모서리집 2023 스탬프

다시 푸하하하프렌즈를 찾아주신 건축주, 친애하는 윤미씨에게

윤미씨. 보내주신 편지는 천천히 모두 읽었습니다. 처음 윤미씨를 만났던 때를 떠올려보면 우리가 회사를 그만두고 독립해 사무실을 꾸린지 만 2년이 되었을 때였을 겁니다. 첫 프로젝트를 끝내기 위해 1년 반을 필사적으로 보내고 난 이후 몇 개의 작은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경험이 전부였던 그야말로 새것과 다름없는 어린 건축가였었지요.

···가끔 찾아가 보기도 했었는데 공사비가 부족해 원목을 쓰지 못하고 합판으로 마감한 계단 밑창 고문이 점점 더 썩고 있는 장면을 볼 때마다 한숨만 쉬다 그냥 돌아오곤 했지요.

그렇게 5년이 지난 후 윤미씨에게 연락이와 정말 기뻤습니다.

···윤미씨가 보내주신 편지를 읽으며 부끄러움의 한숨을 쉬었어요. 누군가에게 집은 이렇게나 간절한 것임을 잊고 있었던것 같아요. 저는 이 집이 윤미씨에겐 최후의 보루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집이 가족과 내면의 나와 연결되는 유일한 끈처럼 느껴졌다면 제가 윤미씨의 의도를 너무 곡해를 한 걸까요?

···저는 처음부터 다시 설계를 진행해 볼 생각입니다. 제가 길을 잃지 않도록 윤미씨가 잘 도와주세요.

윤한진 드림

건축주가 주인인 집을 만들기 위해선 사람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필요합니다. 상대의 필요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알아야, 그 지점을 잘 겨냥한 집을 상상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이 세 사람에게 건축은 타인과 연결되는 방법 그 자체이기도 합니다.

이 여정이 늘 쉬운 것은 아닙니다. ‘뭐가 좋은지 모르겠다’며 애매한 미소를 짓는 방어적인 건축주에게서 취향의 맥을 찾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거든요.

그럴 때마다 이들이 자주 꺼내 드는 필살기가 있으니 바로 ‘푸하하하프렌즈 건축학 개론 시험지’입니다.

대화만으로 파헤치기 어려운 인간의 내면에 더 깊숙이 들어가고 싶어 만든 것이죠. 이들이 엄선한 문항들로 구성한 일종의 설문지입니다. 질문의 범위는 성격이나 기질부터 주거 패턴, 생활 습관, 집에 대한 가치관을 망라합니다. 무서움을 타는 사람인지, 대범한 사람인지, 집에서 소통을 원하는지, 몰입을 원하는지 묻고, 시간대나 휴일별로 달라지는 집 안의 동선을 추적하기도 하죠.

푸하하하프렌즈 스탬프

푸하하하프렌즈 건축학 개론 시험지

다음 문제는 각 실의 이해를 함양하기 위한 응용문제입니다.

ㄱ. 거실ㄴ. 주방ㄷ. 현관ㄹ. 침실ㅁ. 서재ㅂ. 다용도실ㅅ. 화장실ㅇ. 옷방ㅈ. 식당ㅊ. 외부공간ㅋ. 세탁실ㅌ. 차고 ㅍ. 수납ㅎ. 파우더룸

상기 나열된 집의 각 구성요소를 나의 삶에 영향을 많이 미치는 순서에 따라 배치하시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상기 나열된 집의 구성요소를 기호에 따라 통합 혹은 분리하여 창의적인 새로운 실의 이름을 부여하시오

예) 현관 + 침실 = 잠깐침실: 퇴근하자마자 잠깐 누워있고 싶어

자신이 살게 될 집의 능력치 그래프를 완성하시오

캐릭터③
무채색의 평화를 거부한다

푸하하하프렌즈에선 언제나 3개의 프로젝트가 동시에 굴러갑니다. 공동 소장 3인이 각 프로젝트의 리더를 맡고, 3~4명의 팀원이 붙어 하나의 팀을 이룹니다. 팀은 약 1년 반을 주기로 구성원을 교체해요.

평소 작은 팀으로 갈라져 있는 이들이 다 함께 뭉쳐 ‘원팀’을 만들어야 하는 때가 가끔 있습니다. 바로 국제 설계 공모를 준비할 때입니다. 한때는 의뢰가 뜸할 때 활용하는 ‘비상 일거리’였지만, 지금은 연례행사가 됐죠. 이들에겐 건축가로서 올바르게 가고 있는지 정기적으로 확인하는 기회입니다.

서울 종로구 묘동에 위치한 푸하하하프렌즈 사무실 풍경. 문을 열자마자 사훈 ‘우리는 언제나 과정 속에 있다’가 적힌 현판이 보인다. 왼쪽부터 차례대로 윤한진·한양규·한승재 소장. 윤 소장이 기댄 사람은 푸하하하프렌즈의 첫 정규직 직원이자 사훈을 지은 김학성씨다. 이한호 기자

서울 종로구 묘동에 위치한 푸하하하프렌즈 사무실 풍경. 문을 열자마자 사훈 ‘우리는 언제나 과정 속에 있다’가 적힌 현판이 보인다. 왼쪽부터 차례대로 윤한진·한양규·한승재 소장. 윤 소장이 기댄 사람은 푸하하하프렌즈의 첫 정규직 직원이자 사훈을 지은 김학성씨다. 이한호 기자

푸하하하프렌즈가 국제 설계 공모를 준비하는 방식은 통상의 건축회사와는 다릅니다. 통닭을 시켜놓고 밑도 끝도 없이 떠들기 시작합니다. 첫째 질문은 늘 함께 만들고자 하는 건축물의 ‘본질’에 대한 것이에요. 여의나루 선착장을 설계할 땐 ‘한강이란 어떤 곳인가’를, 광화문광장을 구상할 땐 ‘광장이란 무엇인가’를 첫 질문으로 내세웠죠.

일단 질문이 던져지면 한껏 난상토론이 벌어집니다. 불이 붙은 대화는 한 달이 지나도 끝나지 않기도 합니다. 열세 명이 함께 먹은 통닭이 백 마리쯤 되면, 비로소 건축에 담아낼 ‘철학’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죠.

“얘기를 한참 하고 나서 어떻게 하냐고요? 그때까지 나온 모든 착안점과 아이디어를 한 사람이 싹 흡수해요. 딱 한 명이 모든 책임을 지고 밤을 새워가며 설계안을 짜죠.

우리가 절대 안 하는 건, 열세 명이 각자 설계안을 만들어와서 경합시키는 거예요. 그렇게 겨루는 방식으로 하면, 이것저것 조금씩 섞어 ‘절충안’이란 걸 만들게 되거든요. 큰 건축회사에서 그렇게 많이 하는데요. 그럼 결과가 이상해집니다.

생각해 보세요. 3명이 각각 동그라미, 세모, 네모를 가져왔어요. 이 세 개를 섞으면 둥그런 사다리꼴밖에 안 되거든요. 완전히 산으로 가는 거죠.”

한승재

한 달 동안의 난상 토론은 이들이 말하는 협업의 핵심입니다. ‘우리가 합의한 결론은 현실 가능한 최선이다’라는 것을 모두가 수긍하고 믿을 수 있어야, 각자의 일에 능률적으로 임할 수 있거든요.

커리어 그래프

Chapter4. 죽자고 싸운다, 상대를 믿기 때문에

#S4. 진심을 다해 싸운다

당신이 진심으로 싸울 수 있는 상대를 마음속에 떠올려보자. 속상하면 속상한 대로, 서운하면 서운한 대로 그 마음을 온전히 내보일 수 있는 상대는 누구일까. 아마 깊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다투면 다시는 못 볼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드는 상대와는 진심으로 싸울 수 없다. 회피하고 싶은 상대와는 싸움조차 단념하게 된다.

그러니 제대로 싸우기 위해선 제대로 믿어야 한다. 10년 동안 치고받고 투닥거리며 싸워온 푸하하하프렌즈는 그런 의미에서 ‘진짜 동업 관계’다. 단 한 번도, ‘가짜’인 마음으로 싸워본 적이 없을 정도로 이들은 싸우는 데에 진심이었다.

“헤어질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싸울 필요가 없어요. 그냥 갈라서면 되잖아요. 근데 우리는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으니까 싸워왔던 것 같아요. 우리가 싸우는 목적은 ‘해소’에 있어요. 감정이 쌓이지 않도록 그때그때 해소하는 거죠. 그러고 나면 다시 개운해져요. 그래야 또 함께 일할 수 있고, 놀 수 있는 거예요.”

윤한진

이들의 장점은 잘 싸운다는 것. 진심으로 싸우고 뒤끝이 없어야 한다는 의미다. 한양규 소장이 '이들의 전투 스토리'를 말하며 웃고 있다. 이한호 기자

이들의 장점은 잘 싸운다는 것. 진심으로 싸우고 뒤끝이 없어야 한다는 의미다. 한양규 소장이 ‘이들의 전투 스토리’를 말하며 웃고 있다. 이한호 기자

푸하하하프렌즈가 추구하는 건 ‘싸우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잘 싸우는 것’입니다.

저마다의 야욕으로 무장한 이들이 한곳에 모이면 팽팽한 긴장감이 생기기 마련이죠. 고집 있는 사람들이 대립하며 만들어내는 에너지는 나쁜 게 아닙니다. 쉽게 타협하지 않는 줏대 있는 성미야말로 자기만의 경쟁력이 될 때가 많거든요. 그러니 이 대립을 좋은 방향으로 풀면 오히려 활력이 되기도 해요. 푸하하하프렌즈의 작업이 참신하게 유지되는 비결 역시 이들이 제대로, 또 뒤끝 없이 싸우기 때문입니다.

물론 싸울 때의 원칙은 ‘우리는 한편’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겁니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한계나 약점을 상대가 보완해 줄 거라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습니다. 각기 다른 강점이 있는 채로 서로 등을 기대고 있는 이들은, 자신이 쓰러지지 않는 이유가 상대 덕분이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푸하하하프렌즈 세계관 용어사전

푸하하하 용어사전
푸하하하 용어사전
푸하하하 용어사전
푸하하하 용어사전
푸하하하 용어사전
푸하하하 용어사전
‘성실한 놈’ 한양규 소장은 그라운드 밖에서 더 빛나는 축구감독 스타일이다.

‘성실한 놈’ 한양규 소장은 그라운드 밖에서 더 빛나는 축구감독 스타일이다. 이한호 기자

성실한 놈 한양규

“한양규 소장은 그라운드의 현역이 아니라 그라운드 밖에 있을 때 더 빛나는 축구 감독 스타일이에요. 박항서 감독 같죠. 숫자에 밝고 멀리 계획하는 양규가 있어서 푸하하하프렌즈가 회사 꼴을 갖추고 굴러가는 거예요.”

한승재

‘비범한 놈’ 윤한진 소장은 동물적인 사냥 감각을 가진 사냥개 스타일이다.

‘비범한 놈’ 윤한진 소장은 동물적인 사냥 감각을 가진 사냥개 스타일이다. 이한호 기자

비범한 놈 윤한진

“윤한진 소장은 동물적인 감각을 가진 사냥개 같아요. 뭔가에 꽂히면 무섭도록 몰입하는 것도 대단한데, 어디선가 매력적인 먹이가 나타나면 먹던 걸 뱉고서라도 더 맛있는 것을 취하죠. 저한테는 정말 없는 능력이에요.”

한양규

‘이상한 놈’ 한승재 소장은 자신만의 괴상한 회로를 가진 몽상가 스타일이다.

‘이상한 놈’ 한승재 소장은 자신만의 괴상한 회로를 가진 몽상가 스타일이다. 이한호 기자

이상한 놈 한승재

“한승재 소장은 이상한 방식으로 열 수 앞을 보는 독특한 친구예요. 가만 보면 그 누구도 따라 하지 못할 이상한 방식으로 결과물을 내요. 남들은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자기만의 사고 회로를 가지고 있죠. 거기서 나온 것들이 늘 새로워요.”

윤한진

Epilogue. 우리는 언제나 과정 속에 있다

#S5. ‘싫어하는 게 같다’는 힘

윤한진·한승재·한양규의 공통점이 또 있다. 싫어하는 게 같다는 거다.

이를 테면 이렇다. ①셋 모두 게으름을 극도로 싫어한다. 행동이 아니라 말이 앞서는 사람들을 특히. ②꾸며낸 허세에 욕지기를 느낀다. #감성 숙소, #핫플레이스 해시태그 같은. 실제보다 부풀려진 언어를 싫어하고, 흉내 내는 것을 싫어하는 거다. ③자본에 부역하는 건축을 싫어한다. 예산이 남아돈다고 건물 외벽에 필요도 없이 최고급 자재를 바르는 행위들 말이다.

그러다 보니 알았다. 그들이 10년을 함께 할 수 있었던, 그들도 몰랐던 비결을.

부대끼며 일하는 10년 동안 세 사람은 거의 매일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헐뜯으며 지내 왔습니다. 똑같은 구조로 찍어낸 아파트, 줄넘기하는 꼬마들로 가득한 빌라 주차장, 가짜 돌로 치장한 타일 건물, 창문과 창문이 마주 보고 있는 연립주택, 햇빛이나 바람의 흐름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주거 공간…

싫어하는 것들을 끊임없이 말해 온 이유가 있습니다. 실수로라도 그것과 닮은 것을 만들어내기라도 할까 봐 지독히 경계하는 것이죠. 이들이 오랜 동업자로 함께 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상대가 싫어하는 것을 나도 싫어할 수 있는 사이’였기 때문입니다.

세 사람의 일대기를 영화로 만들면 ‘놈놈놈’에 가깝지 않을까. 각자 가장 사랑하는 공구를 들고 카메라 앞에 섰다. 이한호 기자

세 사람의 일대기를 영화로 만들면 ‘놈놈놈’에 가깝지 않을까. 각자 가장 사랑하는 공구를 들고 카메라 앞에 섰다. 이한호 기자

“유독 이 일을 선택하기 잘했다 싶은 순간이 있는데요. 건물이 완성되는 순간에 다다를 때가 그래요. 완성되면 끝일 거 같잖아요? 근데 완성이 되자마자 건물의 생애는 새롭게 시작돼요. 또 다른 과정이 시작되는 거죠. 그 ‘과정’에 함께한다는 게 너무 좋더라고요.”

한양규

“이 문장을 통해 우리는 과정 속에 있는 사람임을 선언했어요. 동시에 완벽하지 않은 사람임을 시인하기도 했고요. 몰라서 창피하고, 부족하다고 느껴서 괴로웠던 감정에서도 벗어날 수 있게 됐죠.”

한승재

‘우리는 언제나 과정 속에 있겠다’는 말은 영원히 ‘완성되었다’고 자부하지 않겠다는 겸허한 선언입니다. 무언가를 다 이루게 되는 정점이란 오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당장의 번뇌를 멈추지 않겠다는 포부고요. 정형화된 뭔가를 답습하기보단, 매번 새로운 질문을 던져서라도 어렵고 유난스럽게 그 답을 고민하겠다는 각오이기도 하겠죠.

‘우리는 언제나 과정 속에 있다’는 선언이었다. 특정한 계보나 스타일에 속하려 하기보다는, 그때그때 주어지는 문제에 맞는 답을 찾아가는 과정 가운데 자신들의 정체성을 쌓겠다는 결심이다. 이한호 기자

‘우리는 언제나 과정 속에 있다’는 선언이었다. 특정한 계보나 스타일에 속하려 하기보다는, 그때그때 주어지는 문제에 맞는 답을 찾아가는 과정 가운데 자신들의 정체성을 쌓겠다는 결심이다. 이한호 기자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푸하하하프렌즈의 사훈을 다시 되뇌어 봤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과정 속에 있다.’ 다섯 어절 중, 파문을 남기고 지나가는 지점이 바뀌어 있었습니다.

처음엔 ‘과정’이 눈에 띄었습니다.

결과, 결론, 결말만을 빨리 감기로 확인하고 싶어 하는 시대에 ‘과정’이란 조바심 없이 경험하기 어려운 경로입니다. 쉽게 결론 내리기를 거부하고 과정의 흔들림에 머물겠다는 그 뜻이 비범해 보였죠.

하지만 세 사람과 긴 대화를 나누고 다시 보니, 마지막에 이르러선 ‘우리’가 보이더군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들의 깬 맨땅이란 우리라는 이름의 기대와 책임을 동시에 짊어져 온 것이겠구나.’

그들이 첫 책 에필로그에 적은 이 구절이 그제야 다시 보였습니다.

“‘우리’라는 말이 좋다. ‘우리’는 세상과 다르다고 자부하며 외부 세계와 선을 긋는 천진함이다. ‘우리’라는 낱말은 그 자체로 낭만적이고 무모하고 조심스럽지 않아서 좋다.” ‘우리는 언제나 과정 속에 있다’ 467쪽

읽기에
집중할래요

맨 위로
커리어 그래프

목차

  • Chapter1. 성실한 놈, 비범한 놈, 이상한 놈 ‘푸하하하프렌즈’
  • Chapter2. 이 작업, 우리만 할 수 있는 거 맞아?
  • Chapter3. 캐릭터는 타고나는 게 아니라 숙성되는 거야
  • Chapter4. 죽자고 싸운다, 상대를 믿기 때문에
  • Epilogue. 우리는 언제나 과정 속에 있다
윤한진, 한승재, 한양규 소장

<푸하하하프렌즈> 건축사무소 윤한진, 한양규, 한승재 공동 소장

푸하하하프렌즈(FHHH Friends)는 한승재, 한양규, 윤한진 건축사가 2013년에 설립한 건축사 사무소다. 낙천적이고 유머러스한 태도로 작업하지만, 이들의 건축은 사뭇 진지한 고민을 담고 있다.

ASK YOURSELF

7호 맨땅브레이커 푸하하하프렌즈가
당신에게 던지는 질문

툴키트 질문에 당신의 답을 적은 뒤 제출하기 버튼을 눌러보세요. 커리업지기가 직접 읽어보고 이메일로 답장을 보내드립니다.

Q. 1

‘우리는 언제나 과정 속에 있다’는 푸하하하프렌즈의 사훈은 공동 소장 3인방의 커리어에서 등대와도 같은 역할을 해왔습니다. 당신이 만든 일터의 좌우명은 무엇인가요? 그 좌우명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Q. 2

함께 일하는 동료 사이에서 갈등이 발생했을 때, 당신은 어떻게 대처하나요? 정면 돌파하는 편인가요, 회피하는 편인가요? 그 행동의 결과는 어떠했나요?

Q. 3

'좋아하는 게 같다'는 건 ‘취향이 통한다’는 뜻이죠. 반면 '싫어하는 게 같다'는 건 ‘본능이 통한다’는 의미 아닐까요. 그래서 좋아하는 건 수시로 바뀌지만, 싫어하는 건 쉽사리 바뀌지 않아요. 당신이 싫어하는 태도나 행동은 무엇인가요?

Q. 4

당신이 한 번쯤 동업해 보고 싶은 이상적인 사람을 떠올려 보세요. 동업자에게 기대하는 자질은 무엇인가요? 또 당신은 상대에게 어떤 동업자가 돼줄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