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인이 양모 "발로
밟은 적 없다"면서
사형 구형에 눈물 사죄

생후 16개월 된 입양아 정인이를 학대해 숨지게 한 양모에게 검찰이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했다. 학대에 동조한 양부에게도 징역 7년 6개월의 중형을 구형했다. 14일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3부(부장 이상주) 심리로 열린 '정인이 사건'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살인 및 아동학대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양모 장모(34·구속)씨에게 사형과 함께 아동기관 취업제한 명령 10년, 전자장치 부착 명령 30년, 보호관찰 명령 5년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검찰은 "피고인은 이미 심각한 폭행으로 복부 손상을 입은 피해자의 배를 사망 당일 또다시 강하게 밟아 치명상을 가했다"며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다"고 구형 이유를 밝혔다. 아동학대 혐의를 받는 양부 안모(36·불구속)씨에 대해선 징역 7년 6개월 및 아동기관 취업제한 명령 10년 선고를 요청했다. 검찰은 "피해자가 보내는 무언의 구조 요청을 방관해 죽음으로 몰고 나서는 장씨에게 책임을 돌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재판에는 검찰 의뢰로 부검 결과를 재감정한 법의학자 이정빈 가천의대 석좌교수가 증인으로 출석, 사망 당일 장씨가 정인이 배를 2차례 이상 밟아 장간막이 손상된 것이 사인이라는 소견을 재확인했다. 검찰은 휴대폰 포렌식을 통해 확보한 두 피고인의 대화 내용을 공개하며 정인이가 일상적인 학대를 겪었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지난해 3월 대화에서 장씨는 '오늘 온종일 신경질. 사과 하나 줬어. 폭력은 안 썼다'고 했고, 다른 대화에선 '지금도 안 처먹네'라는 장씨의 문자에 안씨가 '온종일 굶겨보라'며 학대를 종용하는 답을 했다. 장씨는 피고인 심문에서 학대와 폭행은 시인하면서도 살인 혐의는 부인했다. 그는 "아이를 발로 밟거나 던진 적이 없다"며 "다만 주먹이 아니라 손바닥으로 복부를 여러 번 세게 때린 적은 있다"고 말했다. 또 "내가 때린 것은 맞지만 (아이가) 심각한 상황에 이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며 고의적 살인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변호인도 최후변론에서 "피고인이 발로 정인이를 밟았다고 단정할 수 없고 단순폭행에 따른 손상이 누적돼 췌장이 끊어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항변했다. 다만 두 피고인은 검찰 구형을 들은 뒤 눈물을 흘리며 사죄했다. 장씨는 "상상하기 힘든 일을 저질렀고 아이가 얼마나 힘들고 무서웠을지 감히 상상할 수 없다"며 "용서받을 자격도 없고 진심으로 죄송하다. 어떤 처벌도 달게 받겠다"고 말했다. 안씨도 "아내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지 못하고 아이를 지키지 못한 나쁜 아빠였다"고 반성했다. 다만 "평생 감옥에서 처벌받아 마땅하지만 화장실까지 따라오는 첫째(정인이 언니)를 보자니 마음이 무겁다"며 선처를 구하기도 했다. 이날 법원 앞에는 이른 아침부터 모여든 50여 명의 시민들이 '살인자 양모 무조건 사형' '정인이 몸이 살인의 증거다' 등의 문구가 쓰인 피켓을 들고 엄벌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개정 직전 양모가 탑승한 호송차가 법원에 들어설 때는 경찰이 호송차 접근을 막으려 설치한 펜스가 무너지며 시민들이 엉켜 넘어지는 소동도 있었다. 선고공판은 다음 달 14일 열릴 예정이다.

"물건 직접 찾아가시라"
택배 800개 앞 찬바람 분 고덕동

"(갑질 프레임에) 무릎이 닳도록 사과할 테니 입주자대표회의는 대화에 임해주십시오." (택배 노조) "아파트를 다시 지을 수도 없고. 간식도 드리고 대화 의지도 충분히 내비쳤습니다." (고덕동 아파트 관리사무소) 서로 대화 의지만 내세웠을 뿐, 실제 이뤄진 대화는 없었다. 14일 낮 12시 30분 서울 강동구 고덕동의 한 아파트 단지 앞은 10년 만에 찾아왔다는 4월 한파주의보보다 더 냉랭했다. 이날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산하 전국택배노동조합(택배노조)은 아파트 입구 왼편에다 배달된 물품 800여 개를 쌓아두고 "물건 찾아가시라"는 문자를 보냈다. 수신인은 아파트 입주민이다. 좀 있다 주민들이 직접 입구까지 걸어나와 자기 물건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냉동식품 같은 것을 주문한 주민은 허겁지겁 뛰어나오기도 했다. 입주민 이모(61·여)씨는 "시골에서 농사지은 걸 받아야 하는데 오늘 이렇게 하는 걸 보니 보내지 말라고 해야 겠다"고 말했다. 택배 기사도 마냥 속 편한 것만은 아니었다. 배달 물건의 분실이나 파손은 막아야 하니, 사람들이 찾으러 나올 때까지 아파트 입구를 떠나지 못했다. 이날 오후 6시까지 절반 정도만 주인이 찾아갔다. 이날 사태는 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지난 1일 택배차량의 아파트 지상 공간 진입을 금지하면서 시작됐다. 이 아파트는 상가 쪽을 제외하곤 지상주차장이 없는 아파트다. 2011년 허가받은 아파트는 주차장 높이를 2.7m로 규정해둔 2018년 개정 주차장법 적용을 받지 않아 주차장 높이가 2.3m다. 화물칸 높이만 1m80㎝에 이르는 택배 차량은 들어갈 수 없다. 1m27㎝짜리 저상 차량만 진입할 수 있다. 택배노조는 "저상 차량으로 개조하려면 150만 원을 택배기사가 부담해야 하고, 개조한다 해도 화물칸이 낮은 트럭은 허리에 부담이 많이 가 기사들이 힘들어한다"고 주장했다. 택배차량을 지상에 못 들어가게 한다면 아파트 입구에다 물건을 쌓아두겠다고 경고한데 이어, 이날 실력행사에 들어갔다. 진경훈 택배노조 위원장은 한술 더 떠 "택배회사도 이 아파트에 대한 택배 접수를 중단하는 등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달라"고 주장했다. 택배차량 지상 진입 금지에 대해선 주민들 반응이 엇갈렸다. 입주민 입장에선 주민들의 안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옹호론도 있지만, 안전 운전을 강하게 요구하면 되지 굳이 진입까지 막을 필요가 있겠느냐는 주장도 있다. 주민들이 반발하는 지점은 그보다 '갑질 아파트' 이미지였다. 108동 주민 장명섭(53)씨는 "재작년에 자전거를 탄 아이가 후진 중이던 택배 차량에 부딪히는 사고가 있었기 때문에 택배차량은 지하로 들어오라는 것"이라며 "이미 1년 전부터 예고를 해왔고 이해를 구했음에도 우리만 갑질하는 사람처럼 죄인 취급 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의 한 직원은 "예전부터 우리 아파트에 오시던 택배기사님들 가운데 90% 이상은 협의를 다 마쳤다"며 "저상차량으로 이미 출입을 잘하고 있는 CJ대한통운과의 협의 사항도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등 택배노조가 더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이 아파트의 택배 소란은 당분간 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입주자대표회의는 "갑질 프레임에 대한 해명이 우선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택배노조도 지상 주차를 허용할 때까지 아파트 입구까지만 배달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코로나 시대 택배물량 폭증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고민거리였다.

"아파트 못지 않네"
LH가 공개한 중산층 공공전세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시세의 80~90% 수준으로 공급하는 '공공전세주택' 실물을 14일 처음 선보였다. 지난해 정부의 '11·19 전세대책'으로 도입한 공공전세주택은 곧 입주자 모집이 시작된다. 이날 LH가 언론에 공개한 공공전세주택은 경기 안양시 만안구 안양동의 14층 오피스텔 한 동으로, 총 52가구다. 지난해 12월 준공됐고 지난달 LH가 매입했다. 공공전세주택은 LH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도심 내 오피스텔 등 신축 주택을 매입약정 방식으로 사들여 중산층 가구에 제공하는 전세주택이다. 무주택 가구라면 소득이나 자산 요건 없이 누구나 입주를 신청할 수 있고, 최대 6년간 거주가 가능하다. 안양동 공공전세주택은 3, 4인 가구가 쾌적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전용면적 54~83㎡에 방 3개 이상으로 이뤄졌다. 최신 주거 트렌드에 맞게 고품질 자재와 빌트인 옵션(시스템에어컨, 인덕션 등)으로 마감됐다. 지하주차장은 52면이라 가구 당 1대 주차가 가능하다. 임대보증금은 1억8,000만 원~2억5,000만 원으로 책정됐다. 주변 오피스텔·연립주택 시세의 82%에 해당한다. 인근 단지형 아파트와 비교하면 60~70% 수준이라는 게 LH의 설명이다. 대중교통과 교육시설 접근성이 좋은 것도 장점이다. 윤경수 LH 주거복지사업처 매입임대공급부장은 "걸어서 15분 내에 1호선 안양역·명학역은 물론 국공립 어린이집과 초·중·고가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해 12월 경기 수원시 장안구의 매입임대주택에서 지적된 안전 문제도 개선됐다. 해당 매입임대주택은 환기와 통풍이 용이하지 않고 화재 시 대피할 곳이 미흡했다. 강기관 LH 주거복지사업처장은 "내진이나 화재에 대한 내부 기준을 통과한 안전한 주택으로 매입했다"며 "아파트 전세 수요가 많은 것은 알지만 신속한 공급을 위해 오피스텔과 연립주택 매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공개한 오피스텔을 포함해 LH는 1차로 공급하는 공공전세주택 117가구에 대해 이달 19일부터 21일까지 청약신청을 받는다. LH는 올해 상반기 중 서울 및 인천에 약 200가구를 추가로 공급하는 등 2개월 단위로 공공전세주택 신규 공급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Liveissue

Deep & wide

"왜 오세훈이냐고?
박영선 찍을 이유는 뭔데?"

지난 7일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구조사 결과, 20대 남성, 이른바 '이남자'의 72.5%가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를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보수적이라는 60대 이상 남성들보다도 높은 수치다. 예상치 못한 결과에 더불어민주당은 ‘멘붕’에 빠졌고, 이 현상을 놓고 다양한 해석과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20대 남자는 문재인정부 임기 초만 해도 가장 큰 지지세력 중 하나였다. 그런 이들이 왜 이렇게 등을 돌리게 되었을까. 도대체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분노하게 한 것일까. 현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6월, 한국갤럽 정기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직무수행을 잘하고 있다고 답변한 20대는 90%에 달했다. 남성 87%, 여성 94%였다. 그랬던 이들이 이탈하기 시작한 건 2018년 초, '공정'이 화두로 떠오르면서다. 평창동계올림픽 여자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구성을 놓고 논란이 계속되면서 지지율이 급락했다. 청년들에게 이 문제는 단순히 한반도평화를 위해 우리 선수들의 기회를 다소 제한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그 반발 속에는 정치 논리에 따라 불공정한 희생을 강요하는 정치권에 대한 분노가 자리 잡고 있었다. 오늘날 20대가 공정에 민감한 건 그들이 유달리 속이 좁거나 이기적이라서가 아니다. 경쟁의 강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물론 이전에도 경쟁은 있었지만, 지금은 그 경쟁의 보상 격차가 하늘과 땅만큼 벌어졌다. 인천국제공항공사로 대표되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두고 공정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건 그런 이유에서다. 과거에는 대학에 안 가도 괜찮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고, 일자리 간 격차도 그다지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대기업(또는 공기업)이냐 중소기업이냐,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에 따라 삶의 수준이 극복할 수 없을 만큼 갈린다. 중소기업연구원에 따르면 1997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월급 격차는 39만 원에 불과했지만 2016년에는 190만 원까지 확대된다. 비정규직 역시 양과 질에서 꾸준히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시험문제 하나로 대학의 당락이 갈리고, 그 대학이 일자리의 수준을, 일자리의 수준이 삶의 계층을 결정짓는 현실에서 경쟁은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당연히 공정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거세진다. 그런데 정부 여당이 내세운 가치들은 늘 공정과 대립했다. 남북단일팀 사건은 물론 대입 학생부종합전형(학종) 비율 문제, 그리고 조국 전 장관 임명 당시 ‘부모찬스’ 논란이 그랬다. 남북 화해, 공교육 정상화, 검찰개혁과 같은 대의명분이 당장 눈앞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20대들에게 와 닿을 리 없었다. 공정성을 두고 벌어지는 갈등은 젠더 이슈와 결합하면서 확장, 증폭되었다. 젠더 갈등이야말로 20대 남성의 지지층 이탈을 가속화한 결정적인 원인이다. 20대 남성들의 불만은 단지 현 정부 들어 대폭 확대된 여성경찰 채용이나 성인지 예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이른바 ‘곰탕집 성추행 사건’으로 대표되는 ‘성인지감수성 판결’처럼 공정한 심판이 되어야 할 정부가 일방적으로 여성의 편에 선다고 여기고 있다. 실제로 문 대통령에 대한 20대 남성의 여론은 젠더 이슈에 정부 여당이 편향적으로 개입한다고 느껴졌을 때 출렁이는 경향을 보였다. 여성가족부 장관이 ‘혜화역 시위’에 참석한 소감을 SNS에 남겼을 때나, 여권 정치인들이 ‘이수역 사건’ 발생 초기에 사실관계도 제대로 따져보지 않은 채 이를 여성혐오 범죄로 규정했을 때가 그랬다. 불에 기름을 끼얹은 건 정부 여당의 자세였다. 20대 남성들의 불만이 터져 나올 때마다, 경청하기 보다는 무시하거나 나무라는 식으로 대응했던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남성들의 여성징병제 청원을 “재밌는 이슈”(2017년 9월)로 일축한 것이나, “젠더 갈등이 특별한 것 아니라고 생각한다"(2019년 신년 기자회견)며 대수롭지 않게 치부했던 게 대표적이다. 20대 남성 지지율이 안 나오는 이유를 두고 “이명박, 박근혜 때 교육을 잘못 받아서(설훈 의원)”, “반공교육으로 보수화되어서(홍익표 의원)”라고 답한 여당 정치인들의 발언들도 반감을 키웠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 박영선 후보는 청년들이 “역사 경험치가 낮다”고 주장해 거센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이건 어떻게 보면 반은 맞는 말이다. 정치는 연속적이지만 세대에 따라 단절적이기도 하다. 586세대의 민주화운동은 그들 자신들의 역사일 뿐, 1993~2002년에 태어난 지금의 20대들에겐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를 이룩한 영광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추억도 없다. 현 여권이 성취했던 도덕적 상징은 적어도 20대엔 '유통기한'이 지난 셈이다. 20대들로선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이룩한 586의 업적을 감안해 줄 이유가 없다. 그래서 철저히 현재 모습들로 정치권을 판단한다. 걸핏하면 '내로남불' 논란이 불거지는 건 이 때문이다. 정부 여당은 늘 검찰·보수언론·재벌 대기업을 기득권으로 매도하지만, 청년들 눈에는 그들 역시 명문대학 나와 강남에 살면서 법이 바뀌기 전에 월세를 대폭 올리는 기득권일 뿐이다. 노 전 대통령과 검찰 사이의 갈등을 직접 목격한 적 없는 이들에게는 검찰개혁의 필요성보다, 조국 전 장관의 각종 의혹이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옛날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모습을 놓고 봤을 때 과연 그가 개혁에 적합한 인물이냐는 것이다. 선거 이후 20대 남성들이 왜 야당을 선택했는지에 대한 물음이 쏟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반대로 묻자. 20대 남성들이 현 정부 여당을 지지해야 할 이유는 있었나. 민주세력, 개혁세력이기에 뽑아야 한다는 구호는 더는 호소력을 갖지 못한다. 진영에 따른 ‘묻지마 투표’를 하지 말자는 것, 이것은 현 여권이 과거 지역주의를 비판할 때 주장한 메시지다. 정치란 결국,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고 거기에 더해 좋은 공동체를 만들 사람을 선출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4년 전 대선 당시 유승민·심상정 후보의 득표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건 20대였다. 이후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20대 남성의 부동층 비중은 다른 연령대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비록 이번 선거에서 국민의힘이 20대 남성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고는 하지만, 황교안·나경원 시절 보수 유튜버와 태극기부대에 휘둘렸던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간다면 다시 외면받을 것이다. 지금의 20대에게는 산업화·민주화보다 IMF나 2000년대 신자유주의 물결이 더 가까운 역사다. 경쟁은 살아남기 위한 수단일 뿐, 사실 이들은 불평등을 체화한 세대로 보는 게 맞다. 태어난 집안, 지역에 따른 삶과 꿈의 격차가 어마어마하게 크다. 이 세대가 하나의 의제로 뭉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공통된 부분은 하나 있다. 남북단일팀 구성 문제부터 최근의 부동산 폭등과 LH 사태까지, 청년들의 요구는 다른 듯해도 일관되었다. 우리 일상에 놓인 문제를 잘 해결할 능력과 비전을 갖춘 세력에 표를 주겠다는 것이다.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 대학에서 언론학을 전공하고 정치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한 뒤 2016년 청년정책 싱크탱크 '청년정치크루'를 결성했다. 진보·보수에 구애받지 않고 취업준비생보호법, 채용 사기 등 청년들의 당면문제 해결을 위해 뛰어왔으며, '진보도 싫고, 보수도 싫은데요' '어른이 정치사'를 출간했다.

집 공간 사람

감자 닮은 땅에 육각형 집…"이젠 아파트엔 못 살아요"

서울 명륜동 언덕배기의 오래된 붉은 벽돌집 사이를 비집고 회색 집 하나가 비죽 올라왔다. 거미줄처럼 얽히고 설킨 골목에 흩어져 있는 철제 대문 사이로 목재 대문이 보석처럼 콕 박혀 있다. 이 집은 명륜동 토박이 김수연(43)·오민영(41) 부부가 1년여 전에 새로 지은 ‘호와원’(집 이름은 두 아이의 이름 한 자씩을 따 지었다)이다. 인근의 10평 남짓한 작은 주택에 살았던 부부는 아이들이 초등학생이 되자 각자의 방을 만들어주려고 집을 알아봤다. 부부는 “아이들이 크면서 활동량도 늘어나면서 좀 넓은 공간이 필요했다”며 “하지만 저희 예산으로 대출을 받아서 아파트를 사는 것보다 작더라도 단독주택을 지어 일부는 임대를 주고 월세를 받는 게 나았다”고 말했다. 부부는 다락이 있는 3층집(연면적 147㎡ㆍ45평)을 지어 1층은 임대를 줬다. 예산에 맞춰 구입한 땅(대지면적 112.4㎡ㆍ34평)은 비정형이었다. 가파른 경사지에 오밀조밀한 집들 사이에 있는 오래된 집을 철거하자 비뚤비뚤한 땅이 드러났다. “감자처럼 울퉁불퉁해서 처음엔 ‘감자집’이라고 불렀어요. 작고 경사진 땅을 많이 봤지만 가장 난해한 땅이었죠.” 설계를 맡은 이재혁 건축사(에이디모베건축사사무소 소장)의 얘기다. 이 건축가는 명륜동에 본인 집을 비롯해 여러 채를 설계했다. 면적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집도 불규칙한 대지의 형태를 따르다 보니 비스듬한 육각형에 가까워졌다. 집은 콘크리트로 기반을 닦았고, 목구조로 지었다. 1층부터 옥상까지 네모 반듯한 공간은 없다. 현관이 있는 2층은 네 식구의 방이 배치돼 있다. 투명한 창이 있는 목재 현관은 구조를 살짝 꺾어 내부가 훤히 드러나지 않게 배려했다. 내부에서는 투명한 창 너머까지 시선이 확장돼 더 넓어 보이는 효과가 있다. 현관 앞에는 들어올 때 손을 씻거나, 반려동물 발을 씻기기 위한 작은 세면대를 뒀다. 현관을 지나면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일렬로 배치된 방을 이어주는 복도가 나온다. ‘아이들에게 작더라도 각자의 방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부부의 요구대로 두 아이의 방이 나란히 붙어 있다. 이어 화장실과 부부의 방 순이다. 각 방의 맞은편 벽은 수납공간으로 만들었다. 좁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서다. 아이들 방문은 막힌 여닫이문이 아니라 유리로 된 미닫이문이다. 데칼코마니처럼 벽을 중심으로 두 아이의 방이 나뉜다. 공간을 나눈 벽에는 책상과 책장이 달려 있다. 두 아이의 방 앞으로는 폭이 좁은 베란다가 나 있다. 벽을 중심으로 앞뒤로 순환 동선이 자연스레 형성됐다. 베란다 좌우로 작은 창을 내어 현관과 화장실을 연결하고, 위로는 천장 없이 3층으로 연결된다. 3층 창으로 들어오는 빛이 아래까지 쏟아진다. 이 건축사는 “아파트의 각 방들처럼 문을 닫고 들어가면 막힌 공간이 되는 게 아니라 투명한 방문과 발코니, 창 등을 통해 각 공간들이 서로 연결되면서 확장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3층으로 오르는 계단의 한쪽 면은 밋밋한 벽 대신 다락까지 높은 책꽂이가 이어진다. 책뿐 아니라 화분, 액자, 그림, 기념품 등 가족들의 추억이 묻어나는 소품으로 채워졌다. 이 건축가는 “면적을 차지하는 계단은 낭비되는 공간으로 여겨지기 쉽다”라며 “하지만 벽면 책꽂이를 두거나 폭을 넓히는 등 기능을 부여해주면 공간 활용도가 높아진다”고 말했다. 벽에 작은 창을 내어 답답함도 덜어냈다. 거실과 주방이 있는 3층은 가족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다. 3층은 공간을 구획하지 않고 확 트여 있다. 정면의 높고 긴 창에서 들어온 빛은 가족들이 모이는 원형 식탁으로 흘러 내려온다. 동쪽으로는 주방과 홈카페가 있다. 이곳도 별도의 문이나 벽으로 공간을 구획하지 않고 수납공간과 조리대를 활용해 살짝 분리했다. 각 공간은 열려 있지만 아늑하다. 3층에서 시선은 끊임없이 외부로 향한다. 홈카페의 기울어진 벽을 따라 설치된 나무선반 위로 삼각형 천창과 모서리 창이 시선을 끌어당긴다. 하늘부터 아이들이 뛰노는 골목길 풍경까지 시원하게 보인다. 반대편엔 거실 너머 베란다에 설치된 목재 루버(여러 개의 얇은 판을 수직으로 배열하는 방식)가 시선을 바깥으로 끌고 간다. 부부는 “소파에 앉으니 루버가 외부 시선은 막아주면서 내부에서는 바깥이 잘 보였다”라며 “집이 비뚤비뚤 지어진 것 같아도 창의 위치, 동선, 구조 등이 현명하게 배치돼 어지럽거나 복잡하지 않다”고 말했다. 2, 3층이 생활 공간이라면 다락과 옥상은 놀이 공간이다. 다락과 옥상으로 가는 계단도 따로 만들어 온전한 공간으로 누린다. 박공 지붕 아래 놓인 다락은 일찌감치 남편이 점찍어 두었던 공간이지만, 집이 지어지자마자 아이들이 가장 먼저 차지했다. 아이들은 숨바꼭질도 하고, 보드게임도 하고, 책도 읽고, 그냥 뒹굴며 천창으로 하늘도 감상한다. 사계절을 만끽할 수 있는 옥상은 가족 전용 놀이터다. 지난해 코로나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옥상의 가치는 더욱 빛을 발했다. 남쪽으로는 서울의 남산타워가, 북쪽으로는 성곽길이 보인다. 옥상은 시시때때로 바비큐 파티장으로, 여름이면 수영장으로, 겨울엔 눈밭으로 변한다. 요즘은 텃밭도 가꾸고 텐트도 친다. “이 집으로 와서 가장 만족스러운 공간은 바로 이 옥상이에요. 마치 한 층만 올라가면 여행 가는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해주거든요.” 가족들의 삶은 집의 형태만큼이나 다채로워졌다. 특별히 뭘 하지 않아도 집에서 즐길거리는 많아졌고, 이야깃거리는 풍성해졌다. “사실 저희도 처음 집을 지어봤잖아요. 방은 몇 개가 있으면 좋겠고, 채광이나 통풍이 잘돼야 하고 이런 것만 말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건축사가 집을 지으면서 집에서 제일 많이 머무는 공간은 어딘지, 쉴 때는 뭘 하고, 평소에 좋아하는 카페나 공간은 어디인지, 가족들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묻더군요. 답을 하다 보니 우리 가족이 좋아하는 게 뭔지 명확해졌어요. 수영장을 설치할 옥상이 꼭 있어야 하고, 방은 작아도 홈카페는 있어야 하고요. 이 집은 우리가 좋아하는 걸 할 수 있는 집이에요. 이제 같은 값이라도 평평한 아파트에서는 살기 힘들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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