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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뜻대로' 반영되도록... 건강할 때 유언장 쓰고 쏠림 없이 나눠줘야

입력
2024.01.11 14:00
수정
2024.01.16 16:16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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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 전쟁: 가족의 배신]
<4>망자도 산 자도 품위 있으려면
전문가들이 말하는 유언장 잘 쓰는 '팁'
상속인 최소 몫 보장 유류분 고려 필요
금전 거래·간병비 등 효도 증거 남겨야
핏줄 아닌 이에게 상속 땐 유언장 필수
남은 가족이 쉽게 발견하도록 보관해야

편집자주

상속 분쟁, 더는 남 얘기가 아닙니다. 사망자는 늘어나고, 가족 형태도 복잡해졌습니다. 부모님 사망 후 부동산에 욕심내는 형제도 눈에 띕니다. 저성장 추세까지 고착화되면서 상속은 '이 시대 마지막 로또'가 됐습니다. 이래도 가족과 안 다툴 자신 있습니까. 죽은 자도 산 자도 걱정이 없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한국일보가 취재했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유언장을 일곱 번까지 갈아 치우는 집도 봤어요. 병들어서 거동조차 힘든 아버지를 거의 납치하다시피 해서 삼남매가 유언 공증 받으러 변호사 사무실을 돌아다니는 거죠. 처음에는 장남이, 다음에는 차녀가 움직이니까, 남동생도 가만히 안 있죠. 다른 형제들이 알면 안 되니까, 혼자 계신 아버지를 모시고 조용히 나가서 자신한테 유리하게 유언장을 바꾸는 겁니다. 유언장은 고인이 돌아가시기 직전 마지막에 작성된 것만 효력이 있어서 끝까지 안심을 못 하는 거죠."(이우리 변호사)

아름답게 삶을 마무리하기 위한 '웰다잉'의 핵심 가치는 '자기 결정권'이다. 평생 일군 재산을 누구에게 어떻게 남길 것인지 스스로 유언장에 남기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다. 선진국에선 유언장 문화가 보편화됐지만 "한국은 돌아가시는 분의 0.5%만 쓸 정도로 유언장 후진국"(원혜영 웰다잉문화운동 공동대표)이다. 유언장을 안 남기는 것을 두고 "물려줄 돈이 없다", "법정 상속분대로 나눠주면 되는 것 아니냐" 등의 이유를 대지만, 죽음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인식과 문화가 부족한 게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떠나는 사람도, 남는 사람도 상속 분쟁 걱정 없이 품위 있게 죽음을 맞이할 순 없을까. 상속 전문 변호사 5명의 조언을 토대로 유언장을 잘 쓰기 위한 다섯 가지 팁을 정리했다.

①복잡한 유언장, 이렇게 쓰세요

우리나라 법에서 정한 유언장의 종류는 다섯 가지(자필증서, 녹음, 공정증서, 비밀증서,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다. 자필증서는 별도 증인이나 공증인, 비용 발생 없이 유언자 본인의 의지만 있다면 작성할 수 있어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자필 유언장은 유언 전문(全文), 날짜, 주소, 성명의 각 자서와 날인(도장 혹은 지문 날인) 등 다섯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하나라도 빠지면 유언장은 무효다. 날짜의 경우 월일까지 명시해야 하고, 주소도 구체적인 번지까지 상세히 적어야 한다.

자필 유언 방식이 너무 엄격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독일에선 손으로 직접 쓴 유언 전문과 서명만으로도 유언장이 인정된다. 노종언 변호사는 "유언자의 진정한 의사를 확인할 수 있는 수준이면, 일반 계약서와 동일하게 효력을 인정하는 게 사적 자치라는 헌법 대원칙에 부합한다"고 말했다.

반면 "유언장 작성 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요건을 완화하는 것은 위험하다"(고윤기 변호사)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유언장 요건을 정한 것은 진실성에 관한 다툼을 피하기 위한 목적"(윤지상 변호사)이 크기 때문이다. 이우리 변호사는 "요건이 엄격해 유언장 작성을 꺼리는 것은 아니고 작성 필요성에 대한 인식 자체가 부족하다. 심리적 장벽을 낮추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②몰아줘도 소용없어요, 최대한 공정하게

상속 과정에서 유언보다 앞서는 게 유류분이다. 고인(피상속인)이 제3자나 기관에 유산을 기부하겠다고 유언장을 작성해도, 자녀나 배우자가 최소한의 몫을 주장하면 유류분 반환청구 소송을 통해 받아낼 수 있다. 이 때문에 유류분이 망인의 자기 결정권을 침해해 재산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반면 △유족들의 생존권 보호 △상속재산 형성에 대한 기여 및 기대 보장 차원에서 여전히 필요하다는 견해도 적지 않다. 상속에서 배제된 딸들이 각자의 몫을 챙길 수 있었던 것도 유류분 제도 때문이었다.

유류분의 존폐 여부는 가족 형태와 부모 부양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바뀌느냐에 달려 있다. 이양원 변호사는 "유류분은 1인 가구 증가와 부양 의무 약화 등 달라진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유언자가 자신의 뜻에 따라 상속 재산을 100% 처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시기상조론도 만만치 않다. "가족 간 유대관계가 끈끈한 우리나라에서 망인의 재산 처분 자유만 강조하면 더 큰 분쟁과 사회적 혼란을 키울 수 있다"(이우리 변호사)는 것이다.

그래픽=신동준 기자

그래픽=신동준 기자


③주는 자도 받는 자도 '투명 기록'

"재산 배분에 대한 유언장을 쓰지 않는다면 상속인들에게 폭탄을 돌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본인이 마무리해야 할 일을 자식에게 떠넘기면 분쟁은 커질 수밖에 없고 가족들은 원수지간이 될 수 있습니다."(고 변호사)

그렇다면 불상사를 막기 위해 피상속인(유언자)과 상속인은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유언자의 경우, 몸과 마음이 건강할 때 죽음을 미리 준비한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질병이나 노환으로 불안정해진 심신 상태를 악용해 정상적 판단을 왜곡하도록 유도하는 자식들이 많은 데다, 중증 치매가 되면 유언장 효력을 인정받기 어렵기 때문"(노 변호사)이다. 피상속인이 건강할 때 자신의 의사를 유언장에 명문화하고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는 게 필요한 이유다. 이우리 변호사는 "서구에선 부동산 매매 계약과 동시에 유언장을 작성하기도 한다"며 "유언장이 자산 관리 개념으로 통용된다면 유언장 작성 문화가 확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부모와 자녀 사이의 금전 거래나 비용 처리를 기록으로 남겨 공유하는 것도 필요하다. ①결혼자금, 사업자금 등 생전에 재산을 증여하거나 ②부모 간병을 전담한 자식이 있다면 병원비, 치료비, 생활비를 투명하게 공개해 부모 생전에 효도한 사실에 대해 증거를 만드는 것도 방법이다. 효도와 기여분에 대한 '비용적 측량'이 가능해야 불필요한 분쟁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④핏줄 아니어도 유언장 있다면 괜찮아

비혼이나 동거 가족 등 비친족가구원이 100만 명을 넘어서면서 가족이 핏줄로만 묶이던 시대는 사실상 끝났다. 문제는 다양해진 가족 형태가 법의 테두리 안으로 수용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노 변호사는 "사실혼 배우자의 경우 고인이 사망할 때까지 곁을 지켜도 어떤 상속 권한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건 상식에 반한다"며 법 개정 필요성을 강조했다.

핏줄이 아닌 동거인에게 재산을 상속하고 싶다면, 유언장을 작성하거나 유언대용신탁(생전에 유언자 뜻에 따라 신탁 계약을 체결해 고객이 사망하면 유언 집행을 대행해 주는 서비스) 등으로 자신의 뜻을 남기면 된다. 이양원 변호사는 "다양해진 가족 형태를 감안한 입법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며 "내 뜻대로 내 재산을 법정 상속인 이외의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현재로선 유언을 하는 것뿐"이라고 강조했다.

⑤유언장 잘 보관하는 것도 중요

유언장은 잘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보관하는 것도 중요하다. 자필 유언장의 경우 분실, 위조, 변조 위험을 우려해 장롱 속에 꽁꽁 숨겨 놓는 게 다반사다. 피상속인이 유언장의 존재를 알리지 않고 사망하면 상속인들 입장에선 찾을 길이 없어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 변호사 조력을 받아 진행하는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 역시 마찬가지다. 유언자가 공증 사실 및 위치를 알리지 않고 사망하면 파악할 길이 없다. 또 공증 사무소에서 유언장 원본을 보관하는 기간은 최대 10년으로, 그 이후에는 사실상 관리가 어렵다.

일본 정부가 자필 유언 활성화를 위해 도입한 유언장 보관소처럼 우리나라도 유언장을 공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부동산 매매계약이 등기소에 신고되듯, 보통 여러 건의 부동산 등의 소유권 이전이 포함되는 유언장의 경우에도 작성 이후 행정기관 등에 신고하도록 하고, 시스템을 전산으로 구축해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윤지상 변호사)는 것이다.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9월 가정법원 등에서 유언증서를 보관 관리하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유언장 보관 장소로 행정복지센터(동사무소)를 활용하자는 방안도 제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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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주 기자
박지영 기자
이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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