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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줄은 무조건 가족?"…구하라 유족·박수홍 변호인이 말하는 상속 정의

입력
2024.01.12 04:00
수정
2024.01.16 16:1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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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 전쟁: 가족의 배신]
<5>상속 전문가 인터뷰
박수홍·구하라 유족 대리인 노종언 변호사
상속 분쟁은 장기간 누적된 불평등·편애 폭발
70년 된 민법 개정하고 재산은 고루 배분해야
"양육 의무 다하지 않은 부모, 상속 자격 없어"
"가족 범죄 처벌 면하는 친족상도례도 폐지를"
"구하라법 조속 도입하고 친족상도례 폐지를"

편집자주

상속 분쟁, 더는 남 얘기가 아닙니다. 사망자는 늘어나고, 가족 형태도 복잡해졌습니다. 부모님 사망 후 부동산에 욕심 내는 형제도 눈에 띕니다. 저성장 추세까지 고착화되면서 상속은 '이 시대 마지막 로또'가 됐습니다. 이래도 가족과 안 다툴 자신 있습니까. 죽은 자도 산 자도 걱정이 없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한국일보가 취재했습니다.

노종언 변호사가 지난달 20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는 모습. 박고은 PD

노종언 변호사가 지난달 20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는 모습. 박고은 PD

"예전엔 혈연이면 무조건 가족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아니죠. 구하라씨 유족의 상속 분쟁을 두고 사회적 공분이 커진 걸 보면 가족의 기준이 혈연이 아닌 실질적 관계로 변해 가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습니다."

노종언 변호사(46)는 구하라씨 유족과 방송인 박수홍의 법률 대리인이다. 그는 2020년 3월 구하라씨의 친오빠 구호인씨를 대리해 국민 10만 명에게서 동의를 얻어 '구하라법'(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표 발의)을 입법 청원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구하라법은 민법 1004조에 규정된 상속 결격 사유에 '양육 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한 경우' 조항을 추가하자는 민법 일부 개정안이다. 지금은 △살인·살인 미수 △상해 치사 △유언 방해 △유언 강요 △유언서 위조·변조·파기·은닉 등 극히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상속 순위에 따라 직계존속의 상속이 가능하다.

노 변호사는 지난달 20일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공무원 구하라법, 선원 구하라법은 특별법을 통해 해결할 수 있었지만, 구하라법은 모든 법의 근간이 되는 민법을 바꿔야 하기 때문에 지체되고 있다"며 "국회 통과가 늦어짐에 따라 또 다른 피해자들이 생겨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혈연 중심의 민법…가족의 의미 변화와 충돌

노 변호사 지적대로 우리나라 상속 관련 법(민법) 체계는 철저히 혈연 중심이다. 20년간 연락이 닿지 않던 친모가 구하라씨 빈소로 당당히 찾아와 자식 목숨값으로 구씨 재산의 40%를 상속받을 수 있었던 이유도 낡은 법 때문이다.

그럼에도 상속 정의를 바로 세우자는 취지를 담은 구하라법은 여전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3년째 표류하고 있다.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1대 국회 1호 법안으로 대표 발의했지만, 여전히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법안의 핵심 내용은 기존 상속인 결격 사유에 미성년 자녀를 버린 부모의 상속권을 원천적으로 박탈하자는 것이다.

법무부도 비슷한 취지로 민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다만 '상속권 상실 선고'(민법 1004조 2항)를 추가해 부양 의무를 위반한 부모를 상대로 상속권 상실 청구 소송을 제기해 가정법원 판단을 거치도록 했다. 서영교 안은 부양 의무를 게을리하면 상속인 자체로 보지 않는 반면, 법무부 안은 법적 절차를 거쳐 상속 권리를 없애도록 하자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노 변호사는 "법적 안정성 측면에선 법무부 안이 바람직하지만, 자식을 버리고 떠난 부모는 가족으로서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아야 한다는 요구가 많아지고 있어 서영교 안이 국민 상식에 더 부합하다"고 밝혔다.

그래픽=강준구 기자

그래픽=강준구 기자


친족상도례 폐지해야…점진적 폐지도 방법

노 변호사는 친족상도례 역시 폐지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친족상도례란 △부모와 자녀 △배우자 △동거 친족(8촌 이내 혈족 또는 4촌 내 인척) △동거 가족에 한해 가족 간 사기죄 등 재산 범죄는 처벌하지 않는 제도다. 동거하지 않거나 먼 친족에 대해선 고소장이 접수돼야 수사가 가능하다. 박수홍씨가 함께 살지 않는 친형을 횡령 혐의로 고소하자, 아버지가 법정에서 "내가 박수홍 재산을 관리했다"고 주장한 것은 친족상도례를 통해 박씨 친형이 처벌받지 않게 하려는 것으로 의심받았다.

노 변호사는 "가족 재산 문제는 가족 안에서 해결하라는 게 친족상도례의 취지지만 그건 70년 전(1953년 제정) 생각"이라며 "가족 간 경제 범죄는 형사처벌 대상에서 무조건 제외하라는 건 현실과 맞지 않다"고 강조했다.

노 변호사는 그러면서 사회적 혼란과 가족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국민 정서를 고려해 점진적 폐지도 고려해 볼 만하다고 말했다. 노 변호사는 "친족 재산 범죄에 대해 국가에서 굳이 처벌하지 않겠다고 못 박을 필요가 없다"며 "5억 원 이상 사기 범죄에 대해선 친족상도례를 적용하지 않는 등 절충안도 고민해봐야 한다"고 밝혔다.

자녀간 상대적 박탈감 없도록 재산 고루 분배해야

노 변호사는 다수의 법률 상담과 소송 대리 경험을 토대로 상속 분쟁의 본질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상속 분쟁은 단순히 고인의 재산을 두고 벌어지는 다툼이라기보다는 장기간 쌓였던 가족 간 불평등과 편애 같은 불만이 부모 사망 전후 한꺼번에 폭발하는 성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상속 분쟁 예방법에 대해 노 변호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부모님이 자녀들에게 '나 죽더라도 사이 좋게 지내라'고 말하잖아요. 그런데 말로만 해선 안 돼요.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도록 특정 자녀를 편애하지 말고 재산 배분에 대해서도 미리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그래야 고인과 남은 사람들 모두 품격을 지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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