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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남은 왜 셋째 동생을 죽였나…패륜, 유산 앞 악마로 변한 형제들

입력
2024.01.08 13:00
수정
2024.01.16 16:12
3면
0 0

[상속 전쟁: 가족의 배신]
<1>다사 시대와 ’마지막 로또‘
상속 살인·폭행 10년 판결문 전수조사
유죄 선고 기준 살인 36건·폭행 161건
신고·형사처벌 적어 실제는 더 많을 듯
5060 베이비부머 세대에서 분쟁 급증
한 명이라도 부모 재산 노리면 '아수라'
분쟁 원인 자산 중 부동산이 74% 이상

편집자주

상속 분쟁, 더는 남 얘기가 아닙니다. 사망자는 늘어나고, 가족 형태도 복잡해졌습니다. 부모님 사망 후 부동산에 욕심 내는 형제도 눈에 띕니다. 저성장 추세까지 고착화되면서 상속은 '이 시대 마지막 로또'가 됐습니다. 이래도 가족과 안 다툴 자신 있습니까. 죽은 자도 산 자도 걱정이 없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한국일보가 취재했습니다.

5남매 중 장남 박성중(가명)씨는 2021년 5월 21일 전남 여수의 자택 인근 버스 정류장에서 셋째 동생을 흉기로 찔러 사망케 했다. 살인 혐의로 기소된 박씨는 징역 18년이 확정돼 복역 중이다. 1심 판결문과 사건 발생 장소를 겹쳐 보이도록 촬영했다. 여수=하상윤 기자

5남매 중 장남 박성중(가명)씨는 2021년 5월 21일 전남 여수의 자택 인근 버스 정류장에서 셋째 동생을 흉기로 찔러 사망케 했다. 살인 혐의로 기소된 박씨는 징역 18년이 확정돼 복역 중이다. 1심 판결문과 사건 발생 장소를 겹쳐 보이도록 촬영했다. 여수=하상윤 기자


"유심천 쪽 올라가면 그짝 땅이 있어. (부모 사망 후) 장남 앞으로 돼있는디, 죽은 셋째하고 그 땅 가지고 시비가 좀 붙었어. 평소에도 셋째가 장남을 무시혔어. 형한테 욕하고 때리고 그랬당께. 이상하게 봐부렀다고. 그러니 형이 동생을 칼로 죽여부렀지."

'여수 버스정류장 살인 사건'은 2021년 5월 21일 발생했다. 2년 넘게 지났지만, 인근 마을 경로당에서 만난 80대 노인은 당시 사건을 또렷이 기억했다. 노인의 증언과 판결문 등에 따르면, 5남매 중 장남인 박성중(64·가명)씨는 그날 오후 4시쯤 버스정류장 앞에서 셋째 박길중(57·가명)씨를 흉기로 찔렀다. 사건은 형이 동생을 만난 지 10초도 안 돼 벌어졌다. 급소를 찔린 셋째는 결국 당일 오후 9시 30분쯤 사망했고, 장남은 현장에 출동한 경찰에 긴급체포됐다.

두 사람의 원한은 깊었다. 넓게 보면 장남과 네 남매로 사이가 갈라졌다. 장남과 셋째는 특히 전화번호도 저장하지 않았을 정도로 감정의 골이 깊었다. 갈등은 부모가 남겨준 상속 재산에서 비롯됐다. 10년 전쯤 부친은 사망하기 전 장남에게 거주 중인 주택과 토지 1,983㎡(600평)과 선산 2,644㎡(800평)을 물려주기로 했다. 다른 형제들에 비해 많은 재산을 물려받았는데도, 장남은 부모 제사를 챙기지 않는 등 집안일을 등한시했다. 동생들과 상의 없이 땅을 팔아 개인적으로 사용하면서 갈등은 더욱 커졌다. 셋째는 주변 사람들에게 "형은 정신병자이고, 부모 재산을 다 말아 먹었다"고 말했다.

부동산 호재 → 땅값 상승 → 상속 갈등 격화

5남매 중 장남 박성중(가명)씨는 2021년 5월 21일 전남 여수의 자택 인근 버스 정류장에서 셋째 동생을 흉기로 찔러 사망케 했다. 사건이 발생한 여수 버스정류장 모습. 여수=하상윤 기자

5남매 중 장남 박성중(가명)씨는 2021년 5월 21일 전남 여수의 자택 인근 버스 정류장에서 셋째 동생을 흉기로 찔러 사망케 했다. 사건이 발생한 여수 버스정류장 모습. 여수=하상윤 기자

대규모 아파트 건설 호재로 장남이 상속받은 유심천 일대 땅값이 상승하면서 형제 사이의 갈등은 극에 달했다. 결국 토지 사용을 둘러싸고 동생과 말다툼을 하던 끝에 장남은 끔찍한 범행을 저질렀다. 장남은 경비원 일을 하던 중 집에 가서 소주 한 병을 마신 뒤 흉기를 챙겨 나와 버스정류장에서 동생을 찔렀다. 경찰 관계자는 "장남은 흉기로 위협만 하려고 했다는데, 폐쇄회로(CC)TV를 보면 정류장에 도착한 후 주저 없이 동생의 복부를 찔렀다"고 설명했다.

장남은 결국 살인 혐의로 징역 18년이 확정됐다. 숨진 동생의 유족들은 장남을 용서하지 못했다. 동생 자녀들은 큰아버지(장남)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2022년 9월 3억여 원을 배상받았다. 이들은 소송 과정에서 큰아버지(장남)가 물려받은 집에 가압류를 걸기도 했다. 해당 집은 현재는 넷째 소유가 됐다. 마을 인근에서 만난 한 친척은 현재 5남매의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그렇게 (교도소) 갔는데, 누가 예뻐서 (면회를) 가. 형님이 형님다워야지. 언제 막둥이가 왔길래 (면회) 가봤냐? 긍께 다 안 간다 그래. 우리도 안 가고. (교도소) 어디 있는지도 모른대."

상속 살인·폭행 197건… 가해자 227명, 피해자 246명

여수 정류장 살인 사건처럼 상속 분쟁은 강력 범죄로 이어지기도 한다. 한국일보가 판결문 열람과 소병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의 도움 등으로 최근 10년간 상속 문제로 발생한 살인(미수 등 포함)과 폭행 판결문을 전수조사한 결과, 총 197건(살인 36건·폭행 161건·유죄 선고 사건 기준)에 달했다. 하지만 강력 사건은 겉으로 드러난 수치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가족 분쟁은 일반 사건보다 형사처벌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지 않은 데다, 문제가 발생해도 외부로 드러내기를 꺼려 하는 분위기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픽=김대훈 기자

그래픽=김대훈 기자

한국일보는 강력 범죄가 상속 분쟁의 가장 극단적 형태라는 점에 주목하고 △분쟁 유형 △가해자와 피해자 관계 △범행 장소 △수법 △상속재산 종류 △합의 여부 △피해자 용서 여부 등을 기준으로 구분해 사건의 특징을 분석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상속 범죄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강력 범죄는 2013년 14건이었지만, 2022년 23건으로 증가했다. 가해자는 227명, 피해자는 246명에 달했다. 혐의는 폭행이 81건으로 가장 많았고, 상해 42건, 협박 16건, 살인 15건, 특수상해 14건이었다.

그래픽=김대훈 기자

그래픽=김대훈 기자


상속 강력 범죄 트리거는 '부동산'

상속 분쟁의 원인이 된 자산은 토지(38.9%), 주택(25.6%), 건물(10.0%) 등 부동산(74.4%)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부동산 비율은 우리나라 가구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76.1%)과 비슷하다. 물려줄 재산의 대부분이 부동산이다 보니 분쟁 대상이 돼버렸다는 얘기다. 반면 예금 등 현금성 자산이 분쟁의 단초를 제공한 경우는 23.3%에 그쳤다.

그래픽=김대훈 기자

그래픽=김대훈 기자

부동산이라는 자산 특성도 분쟁을 촉발시킨 측면이 있다. 자녀들이 부동산을 공동으로 물려받으면 현금화 시점을 두고 갈등이 발생했다. 부동산은 매매도 쉽지 않은 데다 현금이 필요한 시점이 상속인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여러 부동산을 각각 상속했을 때도 다툼이 발생했다. 누군가 더 비싼 부동산을 물려받거나, 상속 시점엔 가격이 비슷해도 이후 일부 부동산만 시세가 급등하면 분쟁의 단초가 됐다. 여수 정류장 살인 사건도 형이 물려받은 토지의 가격이 상승하면서 갈등이 고조됐다.

가정법원 부장판사 출신인 윤지상 변호사는 "상속 재산이 많고 적고를 떠나 자신의 상속 권리를 적극적으로 찾으려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분쟁이 늘어나고 있다"며 "자녀 중 한 명이라도 부모 재산을 노리는 것 같으면 아수라장이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금이나 귀중품은 자녀 가운데 누군가 가져가버리면 그걸로 끝"이라며 "부동산이 아니라면 꼬리표가 없어서 누가 언제 가져갔는지 입증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강동 남매 살인사건'도 부동산이 문제였다. 사건은 2022년 11월 24일 새벽 1시쯤 서울 강동구의 다가구 주택에서 발생했다. 이곳은 피해자인 누나 김은지(34·가명)씨 소유로 부친이 2016년 3월 딸 명의로 구입했다. 김씨가 주택 2층에 살았고, 1층과 지하는 세를 주며 아버지가 관리했다. 동생 김정호(33·가명)씨는 누나가 아버지에게 이 주택을 받았는데도, 송파구 잠실동의 20억 원대 아파트까지 상속받은 게 불만이었다. 자신도 2022년 8월 아버지 사망 후 건물 한 채를 물려받았지만, 자신이 손해를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2022년 11월 서울 강동구에서 발생한 남매간 살인사건 현장 모습. 동생 김정호(가명)씨가 누나를 폭행하면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혈흔이 선명하다. 박고은 PD

2022년 11월 서울 강동구에서 발생한 남매간 살인사건 현장 모습. 동생 김정호(가명)씨가 누나를 폭행하면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혈흔이 선명하다. 박고은 PD

두 사람의 말다툼은 아파트 등기 일정에 대해 얘기하다가 시작됐다. 감정은 격해졌고, 휴대폰으로 서로를 촬영하며 싸웠다. 누나가 "언제 나갈 거야? 내 집에서"라고 말하자, 동생은 "이게 왜 니 집일까? 유류분 반환소송 걸려봐야 알겠지"라고 말했다. 동생은 이후 "아파트를 갖고 싶어하는 이 탐욕스러운 OO년을 동영상으로 직접 만나고 계십니다"라고 말하며,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함께 누나를 때렸다. 동생은 집에서 현관으로 누나를 끌고 나와 쓰러뜨리고 머리를 바닥에 8회 내리찍었다. 누나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한 달여 뒤 사망했다. 본지 취재가 시작되고 나서야 이웃들은 누나 김씨가 사망한 걸 알게 됐다며 안타까워했다. 서울동부지법은 동생에게 살인 혐의로 징역 18년을 선고했다.

부모 유산 상속 분쟁 최다… 살인 피해자는 모친 많아

강력 범죄로 이어진 분쟁을 유형별로 살펴보면 '부모 유산 상속 분쟁'이 62.5%로 가장 많았다. △조부모 유산 상속 분쟁(8.2%) △배우자 재산 노린 범죄(4.8%) △보험금·연금 노린 범죄(4.8%) △이혼·재혼가정 상속 분쟁(4.3%)이 뒤를 이었다.

그래픽=김대훈 기자

그래픽=김대훈 기자

가해자와 피해자의 가족관계를 살펴보면, 남성 형제의 비중이 특히 컸다. 부모 재산을 두고 자녀들이 다투다가 손위 남성(형이나 오빠), 또는 남동생이 가해자가 되거나 피해자가 된 경우가 많았다는 뜻이다. 남동생은 가해자의 16.7%, 피해자의 13.0%를 차지했고, 형이나 오빠의 경우 가해자는 16.3%, 피해자 11.4%로 조사됐다.

그래픽=김대훈 기자

그래픽=김대훈 기자

부모 유산을 두고 다툼이 발생하면 자녀들만 범죄에 연루되는 건 아니다. 당사자인 부모와 자녀는 물론이고 자녀의 배우자, 배우자의 가족, 사촌, 조카, 손자까지 범죄에 얽히는 경우도 있었다. 범죄 피해자의 나이는 50대(25.6%)와 60대(17.1%)가 가장 많았고, 40대(14.6%), 30대(9.3%), 70대(8.5%) 순이었다. 최근에는 베이비부머 세대(1956~1964년생)가 상속 분쟁의 주역이 됐다. 법무법인 존재 노종언 변호사는 "부모 한 분이라도 살아있다면 분쟁이 발생해도 배우자가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어 소송까지 가는 비율은 높지 않다"며 "부모 두 분 모두 사망하고 자녀들이 50~60대가 된 베이비부머 세대가 법률 상담을 받으러 많이 온다"고 설명했다.

그래픽=김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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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사건만 따로 분석한 결과, 부모가 사망하기 전에 서둘러 상속을 받고자 살해하는 범죄가 증가하고 있다. 피해자는 모친(13.5%), 손위 남자(11.5%), 부친(7.7%), 남동생(7.7%) 순이었으며, 가해자는 남동생(21.3%), 아들(14.9%), 손위 남자(12.8%), 딸(10.6%) 순이었다. 피상속인 등을 살해하거나 살해하려 한 사람은 민법 1004조에 따른 결격 사유로 상속을 받을 수 없다.

사망 보험금을 노리고 모친을 살해한 박지은(38·가명)씨도 지난해 9월 존속살해 등 혐의로 징역 25년이 확정했다. 박씨는 2022년 9월 23일 인천 계양구의 한 빌라에서 모친에게 자동차 부동액이 섞인 음료수를 마시게 해 살해했다. 박씨는 2011년 부친에게 발생한 교통사고로 치료비와 간병비 등을 부담하면서 채무가 많아졌다. 빚을 갚고자 사채를 끌어다 쓰면서 이자 부담이 커졌고, 다단계사업 투자로 손실을 봤다. 결국 모친에게 채무를 전가하고 사망 보험금을 받고자 끔찍한 범행을 저질렀다.

검찰·법원·장례식장에서도 폭행

범행 장소로는 피해자 집이 45.7%로 가장 많았지만, 가해자나 피해자의 직장(14.2%), 가해자 집(8.1%)에서도 발생했다. 상속 분쟁으로 수사를 받거나 민사소송 중에도 폭행 사건이 일어나는 등 다툼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특히 경찰서 앞, 검찰청이나 법원, 부모가 입원한 병원 등 공공장소(12.2%)에서도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는 등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범행 수법을 보면 주먹 등을 이용한 폭행이 54.9%로 가장 많았지만, 흉기나 둔기를 사용하거나 수면제를 이용해 살해하는 등 잔혹한 범죄도 적지 않았다.

그래픽=김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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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는 건 고인의 죽음을 슬퍼해야 할 장례식장에서도 상속 다툼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2022년 2월 2일 광주시 북구의 한 장례식장에서 이상호(가명)씨는 의붓딸(44)의 어깨를 밀쳐 바닥에 넘어뜨렸다. 이날은 재혼한 이씨의 아내가 사망한 날이었다. 이씨는 아내의 신분증을 의붓딸에게 달라고 했지만, 딸이 거부하자 완력을 사용했다. 두 사람은 고인의 재산 배분을 두고 감정이 상해 있었고 소송전도 불사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피해자를 폭행해 다치게 하고, 피해자의 어린 자녀가 보는 앞에서 범행을 저질렀다. 다만 상속재산 관련 분쟁이 조정절차를 거쳐 원만히 해결됐다"며 이씨에게 벌금 200만 원을 선고했다.

그럼에도 가족?… 엄벌 탄원보단 처벌 불원 요구

특이한 현상은 서로 죽일 듯이 싸우다가도 수사기관과 법원에선 용서한다는 점이다. 상속 분쟁으로 인한 강력 범죄 피해자들은 엄벌 탄원(17.8%·35건)보다는 처벌 불원(24.9%·49건)을 더 많이 선택했다. 다만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면서도 합의를 못한 경우(26.4%·52건)가 합의한 경우(8.6%·17건)보다 더 많았다.

그래픽=김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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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성 한국법무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피해자 입장에선 합의하지 않는 게 상속 재산을 더 많이 확보하는 데 유리할 수 있다. 처벌 불원이 합의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고 분석했다. 용서하고 합의하는 것조차 진정한 화해라기보다는 부모 재산을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한 계산된 행위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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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이성원 기자
강윤주 기자
박지영 기자
이오늘 인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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