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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주택 가구주 절반이 60대 이상... 집과 사람이 함께 늙어간다

입력
2022.12.20 04:30
수정
2022.12.20 19:04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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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좁은 골목, 낮은 담, 녹슨 철 대문. 금 간 벽체에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단독주택. ‘응답하라 1988’에서나 봤던 그 낡은 집들은 지금 얼마나 남아 있을까요? 한국일보는 3개월간의 작업을 통해 1970년 전에 지어진 노후 단독주택의 구체적 규모와 세부 입지를 통계화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 늙은 집들은 좁은 길과 가파른 언덕에 포위되어 도시 곳곳에 섬처럼 존재하고, 그 안에선 늙은 집에서 탈출할 수 없는 사람들이 집과 함께 늙어가고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서울 노후주택 2만3,000채와 거주자 5만 명(추정)의 이야기를 3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이 기획취재는 저희가 정성 들여 제작한 인터랙티브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 소재 1978년 건축된 한 단독주택의 모습. 촬영은 소유주 신영준(86·가명)씨의 동의하에 이뤄졌다. 윤현종 기자

서울 소재 1978년 건축된 한 단독주택의 모습. 촬영은 소유주 신영준(86·가명)씨의 동의하에 이뤄졌다. 윤현종 기자

※ [박제된 나의 집:서울 노후주택 리포트] [단독] 쩍쩍 갈라지고 파여도...노후주택 75% 점검조차 없었다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날씨 좋을 땐 여기 내리막길에 모두 노인들만 나와 앉아 있어요. 내가 올해 예순인데, 나보다 스물네 살 많은 할머니하고도 친구 사이예요."

(서울 강북구 노후주택 주민 유승호씨)



[박제된 나의 집 ②: 오래된 집에 갇힌 사람들]

좁은 골목 안 낡은 담을 끼고 협소한 대지 안에 들어선 노후주택에는 과연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한국일보가 정부 전수조사인 인구주택총조사 자료를 근거로 서울 노후주택 가구주의 특성을 추출했더니, 전체 가구주 평균과 비교해 유의미하게 △나이가 많고 △단순노무직 비율이 높고 △정부 보조금에 의지하는 비율이 높았으며 △상대적으로 학력 수준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오래된 집에 사는 사람일수록 사회·경제적 관점에서 약자 혹은 소외계층일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 통계로 입증된 것이다.

한국일보와 한국도시연구소(소장 최은영)는 2020년 실시된 인구주택총조사의 마이크로데이터 중 1979년 이전 건축된 서울 노후주택 12만8,929가구의 가구주 특성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했다. 인구주택총조사 자료를 이용해 노후주택 가구주의 사회·경제적 지위 수준을 분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노후주택 가구주 절반은 60대 이상

분석 결과, 서울 전체 노후주택 가구주 중 27.2%가 70대 이상의 고연령인 것으로 나타났다. 60대 연령 가구주(22.4%)를 합치면, 노후주택 가구주의 49.6%가 60대 이상의 고령층이었다. 이 비율은 서울 전체 가구(398만2,290가구) 가구주의 60대 이상 비율(31.1%)보다 18.5%포인트나 높은 수치다.

서울 노후주택 밀집지역을 잇는 가파른 오르막길의 모습. 주민 유승호(60)씨는 "한겨울에도 미끄러질 염려 없이 다닐 수 있도록 길에 열선 하나만 깔아줘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한호 기자

서울 노후주택 밀집지역을 잇는 가파른 오르막길의 모습. 주민 유승호(60)씨는 "한겨울에도 미끄러질 염려 없이 다닐 수 있도록 길에 열선 하나만 깔아줘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한호 기자

자치구별로 구분하면 강북구(59.9%), 은평구(58.8%), 양천구(58.2%), 구로구(58.0%) 등에서 고령층 가구주의 비율이 높았다. 이런 경향에 대해 15년간 현장에서 노후주택 대상 주거복지를 지원해 온 한 활동가는 “오래된 집일수록 거주자와 집이 함께 늙어가고 있는 추세가 확실히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은퇴가 임박하거나 이미 퇴직한 고령층 비율이 높다 보니, 노후주택 가구주가 아예 경제 활동을 하지 않는 비율도 일반 가구보다 유의미하게 높았다. 경제활동 상태를 물었을 때 "일하지 않음"이라고 답한 노후주택 가구주의 비율은 44.3%로 일반 가구 평균(30.1%)보다 훨씬 높았다. 정부의 도움을 받는 비율도 높았는데, 노후주택 가구주 중 생활비 원천이 정부 보조금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13.0%로 일반 가구 평균(6.6%)의 2배에 달했다.

서울 노후주택 가구주의 경제·사회적 특성. 김대훈 기자

서울 노후주택 가구주의 경제·사회적 특성. 김대훈 기자



"직업 없이 산 지 수십 년이 지났어. 수입이라곤 나라에서 주는 노령연금이 전부야."

(강북구 단독주택 거주자 신영준(86·가명)씨)

노후주택 거주자는 일자리 질도 낮아

돈을 벌고 있는 노후주택 가구주의 경우에도 그 일자리 질이 일반 가구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후주택 가구주 중 단순노무직에 종사하는 비율은 14.8%로 일반 가구 평균인 8.7%를 훌쩍 뛰어넘었고, 고용원 없이 혼자 일하는 자영업자의 비율도 19.5%에 달해 일반 가구 평균(12.7%)보다 훨씬 높았다. 반면 노후주택 가구주가 의사·변호사·IT개발자 등을 포함하는 ‘전문가 및 관련 종사자’의 직업을 가진 비율(17.0%)은 일반 가구 평균(27.3%)보다 현저하게 낮았다. 정리하자면 노후주택 가구주의 직업적 특성은 ①무직이 많고 ②단순노무직 비중이 높으며 ③나 홀로 자영업자가 많다는 것이다.

학력에서도 뚜렷한 차이가 관찰됐다. 노후주택 가구주 중에서 학력이 대졸 이상이라고 답한 비율은 36.7%였는데, 이는 서울 전체 가구주의 대졸 이상 비율(54.7%)에 크게 못 미쳤다. 다만 노후주택 가구주라 하더라도 강남구(64.5%)와 서초구(58.0%)에서는 대졸 이상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특히 강남구 노후주택 가구주 중 직업이 전문가(관련 종사자 포함)로 분류되는 비율은 33.3%에 달했고, 정부 보조금에 의지하는 비율(3.0%)도 매우 낮았다.

신씨가 살고 있는 집의 모습. 철제 난간 하나가 떨어져 있는 상태다. 신씨는 현재 국가에서 주는 노령연금이 수입의 전부다. 윤현종 기자

신씨가 살고 있는 집의 모습. 철제 난간 하나가 떨어져 있는 상태다. 신씨는 현재 국가에서 주는 노령연금이 수입의 전부다. 윤현종 기자

자료를 분석한 한국도시연구소는 노후주택 거주자들이 열악한 주거 환경에 처해있는 동시에 경제·사회적으로도 소외받고 있다는 점이 통계에서 드러났다고 해석했다. 이 연구소의 홍정훈 연구원은 "이번에 나온 노후주택 가구주의 특성은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 거주자에게서 발견되는 특성과 유사하다"고 진단했다.

홍 연구원은 "노후주택의 고령 소유주는 직업·소득 없이 유동화조차 어려운 자산을 갖고 있어 각종 주거복지 혜택기준서도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며 "아파트 소유자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는 주택연금 제도가 이런 분들에게도 충분히 활용될 수 있도록 보증료 지원 등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노후주택 소유주들은 낮은 소득 탓에 50%에 달하는 자부담금 내기가 어려워 서울시 집수리 사업도 포기하고 있다"며 "집이 재개발된다 해도 아파트 분양을 위한 최소한의 자금조차 없는 사례가 많다"고 해석했다. 이어 "재개발 때문에 영세한 기존 거주자들이 퇴거당하지 않도록 최소한의 주거권이 보장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한국일보 인터랙티브 '박제된 나의 집' (링크가 열리지 않을 경우 아래 URL을 복사해서 이용해주세요) : https://interactive.hankookilbo.com/v/old_house/

▶‘박제된 나의 집:서울 노후주택 리포트’ 몰아보기(☞링크가 열리지 않으면, 주소창에 URL을 넣으시면 됩니다.)

①서울 '초노후주택' 2.3만 채... 그중 56%는 차도 못 가는 골목에 있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120316290003977

②서울 ‘초 노후주택’ 2.3만채 통계화 어떻게 했나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121814340000766

③수리도, 재개발도, 이사도 안돼요... 늙은 집 끌어안고 사는 사람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120121190000960

④[단독] 쩍쩍 갈라지고 파여도...노후주택 75% 점검조차 없었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120522110004952

⑤노후주택 가구주 절반이 60대 이상... 집과 사람이 함께 늙어간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120414270003639

⑥서울서 연탄 쓰는 노후주택 여전히 600가구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121617240000973


글 싣는 순서

<박제된 나의 집: 서울 노후주택 리포트>

①도시의 섬이 된 늙은 집들
②오래된 집에 갇힌 사람들
③개발-재생의 이분법을 넘어


윤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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