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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초노후주택' 2.3만 채... 그중 56%는 차도 못 가는 골목에 있다

입력
2022.12.19 04:30
수정
2022.12.20 18:37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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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좁은 골목, 낮은 담, 녹슨 철대문. 금 간 벽에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단독주택. ‘응답하라 1988’에서나 봤던 그 낡은 집들은 지금 얼마나 남아 있을까요? 한국일보는 3개월의 작업을 통해 1970년 전에 지어진 노후 단독주택의 구체적 규모와 세부 입지를 통계화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 늙은 집들은 좁은 길과 가파른 언덕에 포위되어 도시 곳곳에 섬처럼 존재하고, 그 안에선 늙은 집을 탈출할 수 없는 사람들이 집과 함께 늙어가고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서울 노후주택 2만3,000채와 거주자 5만 명(추정)의 이야기를 3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이 기획취재는 저희가 정성 들여 제작한 인터랙티브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박제된 나의 집: ①도시의 섬이 된 늙은 집들]

서울 소재 건축 52년 이상 된 노후 단독주택의 모습. 각각의 사진은 모두 다른 주택의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이한호 기자

서울 소재 건축 52년 이상 된 노후 단독주택의 모습. 각각의 사진은 모두 다른 주택의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이한호 기자

서울에서 1970년 이전에 지어진 오래된 단독주택(다가구 주택 포함)이 총 2만2,980채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주택의 통상 내구연한인 50년을 넘어선 초(超)노후 주택들인데, 이 주택의 상당수가 안전진단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수리·수선마저 할 수 없는 악조건에 처한 것으로 나타났다. 건축 50년 이상인 서울 노후 단독주택의 구체적 규모와 주택별 세부 입지 조건이 전수통계로 집계된 것은 처음이다.

특히 노후 단독주택의 56%는 차 한 대도 못 들어가는 좁은 골목으로 포위된 '길 없는 집'이었다. 35%는 가파른 경사로에 위치했고, 대지 면적이 85㎡(약 25.7평)에도 못 미치는 소규모 주택 비율이 36%에 달했다. △협소한 통행로 △가파른 경사 △좁은 대지면적은 노후주택의 주거환경 정비에 큰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본보·밸류맵, 서울 건물 96만동 전수조사

노후 단독주택의 정확한 규모와 주거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한국일보는 토지·건물 빅데이터 플랫폼 ‘밸류맵’과 함께 서울의 모든 건물 약 96만 동의 건축물 대장 및 토지 대장을 수집했다. 여기서 단독주택 25만3,000여 채를 분류한 뒤, 준공 52년을 경과한 노후주택 2만2,980채를 추출했다.

그래픽 김대훈 기자

그래픽 김대훈 기자

지어진 지 50년 이상 지난 단독주택을 따로 뽑아 이들 가옥의 층수, 구조, 입지(도로조건·형상·경사)를 전수조사해 종합한 결과는 행정청도 보유하고 있지 않다. 이번 자료를 활용하면, 사용 승인 반세기를 넘긴 초노후주택의 실태 파악 및 관련 정책 연구·설계에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일단 지역별 분포를 봤더니, 서울 25개 자치구 중 성북·용산·강북·동대문·종로구 순으로 노후 단독주택이 많이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타 지역에 비해 개발이 늦게 진행되었고 토지 가치가 높은 강남구엔 1970년 이전에 지어진 노후 단독주택이 하나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강북구 소재 건축 52년 이상 된 노후 단독주택들의 입지. 국민주택 규모 미만 면적에 지어진 집의 경우 약 70%는 차도 못 들어가는 좁은 골목으로 포위된 '길 없는 집'이었다. 35%는 가파른 경사로에 세워진 집이었고, 대지 면적이 85㎡(약 25.7평)에도 못 미치는 소규모 주택 비율이 36%에 달했다. △협소한 통행로 △가파른 경사로 △좁은 대지면적은 이 노후주택들의 주거환경 정비에 큰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서울 강북구 소재 건축 52년 이상 된 노후 단독주택들의 입지. 국민주택 규모 미만 면적에 지어진 집의 경우 약 70%는 차도 못 들어가는 좁은 골목으로 포위된 '길 없는 집'이었다. 35%는 가파른 경사로에 세워진 집이었고, 대지 면적이 85㎡(약 25.7평)에도 못 미치는 소규모 주택 비율이 36%에 달했다. △협소한 통행로 △가파른 경사로 △좁은 대지면적은 이 노후주택들의 주거환경 정비에 큰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대지면적 좁을수록 도로조건 열악했다

노후 단독주택 2만2,980채는 서울 24개 자치구 312개 법정동에 분포했다. 이 노후주택들의 열악한 주거 환경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특성은 바로 주택 주변의 '길'이다. 전체 노후 단독주택의 절반 이상인 1만2,971채(56.4%)가 좁은 골목에 포위돼 있었다. 오토바이 통행만 가능한 골목에 걸쳐 있거나, 아예 골목길조차 접해 있지 않은 경우(맹지)를 합친 숫자다.

특히 대지면적이 좁을수록 도로 조건이 열악했다. 대지면적 85㎡ 미만인 주택 8,384채 중 도로 조건이 나쁜 집은 66.9%인 5,613채로 집계됐다. △대지면적 60~85㎡ 미만 65.6% △45~60㎡ 미만 69.2% △20~45㎡ 미만 70.8% 등 집이 좁을수록 도로 조건이 나빠지는 경향을 보였다. 이에 비해 85㎡ 이상 대지에 들어선 노후주택 1만4,596채 중 도로 조건이 나쁜 집은 7,358채(50.4%)로 절반에 머물렀다.

그래픽 김대훈 기자

그래픽 김대훈 기자

차가 못 다니는 좁은 골목을 끼고 있다는 것은 단순히 ①이동이 불편하다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좁은 골목 특성상 ②대로에 비해 치안이 나쁠 개연성이 높고, ③사생활 침해나 절도 등 가능성이 높으며, ④좁은 길이 수리나 각종 주거환경 개선의 장애물로 작용해 해당 주택의 개발 가치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변창흠 세종대 교수는 "사업성 측면에서나 실현 가능성으로 봐도 좁은 골목에 둘러싸이고, 입지가 나쁜 낡은 집 한 채의 거주자가 '스스로' 열악한 조건을 바꾸기는 지극히 어렵다"고 진단했다. 대규모 재개발은 1만㎡(약 3,000평) 이상 토지에서만 가능하고, 소규모 저층주택을 대상으로 하는 서울시의 '모아주택' 개발도 대지면적 합계가 1,500㎡(약 450평) 이상이어야 한다.

전수조사에서 확인된 노후 단독주택의 두 번째 특성은 '언덕집'이 많다는 점이다. 전체 노후 단독주택 중 8,051채(35.0%)는 15도에 가까운 완경사 및 급경사 또는 고지대에 지어진 집이었다. 이것 역시나 수리나 재개발에서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서울 용산구의 사용승인 1970년 이전 노후주택을 잇고 있는 진입로. 상당수는 경사가 졌거나, 좁은 골목이었다. 윤현종 기자

서울 용산구의 사용승인 1970년 이전 노후주택을 잇고 있는 진입로. 상당수는 경사가 졌거나, 좁은 골목이었다. 윤현종 기자


노후주택 상당수, 2개 이상 불리한 조건 갖춰

노후 단독주택의 세 번째 특징은 대지 모양이 고르지 않다는 점이다. 집을 짓기 부적합한 △삼각형 △역삼각형 △사다리꼴 등 특이한 모양을 가진 주택이 많았다. 이런 대지는 정사각형이나 직사각형 대지에 비해 수리나 재건축에 불리하다.

열악한 입지 조건을 두 가지 이상 가진 집들도 많았다. ①좁은 골목 ②경사지 ③특이한 모양 등의 변수가 겹치는 경우가 다수였다. 분석 결과 길 없는 노후주택 1만2,971채 중 6,857채(52.9%)가 열악한 조건을 하나 이상 추가로 안고 있었다.

서울의 한 노후주택 밀집지 사이로 나 있는 골목. 서울 노후주택의 특징은 좁은 골목과 길 사이에 갇혀 있으면서 다른 조건까지 좋지 않은 ‘복합적 열악함’으로 요약된다. 조승훈 밸류맵 PD, 윤현종 기자

서울의 한 노후주택 밀집지 사이로 나 있는 골목. 서울 노후주택의 특징은 좁은 골목과 길 사이에 갇혀 있으면서 다른 조건까지 좋지 않은 ‘복합적 열악함’으로 요약된다. 조승훈 밸류맵 PD, 윤현종 기자

전문가들은 서울의 노후 단독주택들이 안고 있는 문제가 통계 형태로 구체적으로 도출된 이상, 열악한 입지의 이 주택들의 환경 개선을 위한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창동 밸류맵 리서치팀 리더는 “서울 노후주택의 특징은 좁은 골목과 길 사이에 갇혀 있으면서, 다른 조건까지 좋지 않은 ‘복합적 열악함’으로 요약된다"며 "이렇게 고립된 주택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서울의 도시재생 사업이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재개발이 어려운 곳에서는 집 자체를 수리해 성능을 올리는 노력도 병행될 필요가 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도시계획에서 재개발 등 특정 사업 하나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은 없다"며 "사업성 등의 문제로 철거→신축의 개발 방식이 안 통하는 곳도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전제했다. 그리고 “집수리가 대안 중 하나로 가능한데, 좀 더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며 "서울시의 집수리 사업은 '주택성능개선지원구역'에서만 진행되고 있어 이를 전면적으로 시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 특정 지역에 대한 낙인효과 등을 우려해 기사에서는 세부적인 자치구-법정동별 분석을 최대한 지양했습니다. 대신 원하는 독자만 살펴볼 수 있도록 인터랙티브 페이지에 별도의 지역별 검색 기능을 갖췄습니다.


* 한국일보 인터랙티브 '박제된 나의 집' : (링크가 열리지 않을 경우 아래 URL을 복사해서 이용해 주세요) https://interactive.hankookilbo.com/v/old_house/



[박제된 나의 집:서울 노후주택 리포트] 서울 ‘초 노후주택’ 2.3만채 통계화 어떻게 했나 기사로 이어집니다.


▶‘박제된 나의 집:서울 노후주택 리포트’ 몰아보기(☞링크가 열리지 않으면, 주소창에 URL을 넣으시면 됩니다.)

①서울 '초노후주택' 2.3만 채... 그중 56%는 차도 못 가는 골목에 있다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120316290003977

②서울 ‘초 노후주택’ 2.3만채 통계화 어떻게 했나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121814340000766

③수리도, 재개발도, 이사도 안돼요... 늙은 집 끌어안고 사는 사람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120121190000960

④[단독] 쩍쩍 갈라지고 파여도...노후주택 75% 점검조차 없었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120522110004952

⑤노후주택 가구주 절반이 60대 이상... 집과 사람이 함께 늙어간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120414270003639

⑥서울서 연탄 쓰는 노후주택 여전히 600가구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121617240000973


글 싣는 순서

<박제된 나의 집: 서울 노후주택 리포트>

①도시의 섬이 된 늙은 집들
②오래된 집에 갇힌 사람들
③개발-재생의 이분법을 넘어


윤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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