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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노동보호 앞장서는데, 우리는... "노동자·경영자·학자 참여하는 통합 거버넌스 필요"

입력
2024.02.21 08:00
수정
2024.02.22 14:06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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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AI 규제 행정명령에 '노동자 지원' 명시
"노동부 대책 마련하라" 실질적 방안 주문
한국 고용부·과기정통부 아직 움직임 없어
기술·노동 상호 보완토록 정책 뒷받침해야

편집자주

인공지능(AI)은 인간 노동자를 돕게 될까요, 아니면 대체하게 될까요. AI로 인해 새로운 직업이 생기기도 했고, AI와 인간의 경쟁이 촉발되기도 했습니다. 이미 시작된 노동시장의 '지각변동'을 심층취재했습니다.

그림 생성형 인공지능(AI) '미드저니'가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한 세상'이라는 주제로 그린 그림. AI 로봇이 고뇌에 빠져 있다. 미드저니 캡처

그림 생성형 인공지능(AI) '미드저니'가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한 세상'이라는 주제로 그린 그림. AI 로봇이 고뇌에 빠져 있다. 미드저니 캡처

인공지능(AI) 기술 개발이 노동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다양한 예측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정부 차원의 대비 움직임이 미국을 중심으로 시작됐다. 직업이 AI로 대체될 우려는 얼마인지, 대처 방법은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기술의 이점을 극대화할 수 있을지 각계각층과 논의를 거쳐 해법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저출산으로 인한 경제성장 둔화 위기에 놓인 한국 정부도 더 늦기 전에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기술 발전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는 만큼, 현명하게 대응해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AI 도입->노동자 해고->실업률 상승' 우려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이 2023년 10월 30일(현지시간)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인공지능(AI) 규제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이 2023년 10월 30일(현지시간)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인공지능(AI) 규제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미국 조 바이든 정부는 지난해 10월 서명한 '안전하고, 보안이 보장되며, 신뢰할 수 있는 인공지능(AI)의 개발과 사용에 대한 행정명령'에 'AI의 책임 있는 개발과 사용을 위해 노동자를 지원한다는 약속이 필요하다'는 점을 주요 원칙으로 명시했다. AI 도입으로 새로운 직업이나 산업이 생기는 등의 변화가 찾아올 텐데, 이때 노동자가 더 좋은 삶을 누리고 불이익을 입지 않게 정부·경영·노동계가 모두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AI 관련 정부 규제에서 노동자, 노동시장을 다룬 것은 미국이 처음이다.

미국 정부는 구체적으로 노동자 교육과 훈련을 돕겠다 밝혔고, 일터에서는 AI가 노동자 인권 하락·일자리 질 저하·지나친 감시·대량 실업 등을 야기하는 식으로 사용돼선 안 된다고 못 박았다. 또 노동부를 중심으로 실질적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은 AI가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 분석 및 대응책을 담은 보고서를, 노동부 장관은 AI 시대 노동자를 지원할 방법을 분석한 보고서를 180일 이내에 제출하게 했다. 이때 교육부·상무부 등 관련 부처나 노동계 등과 협의해 마련하라는 당부도 덧붙였다.

미국은 AI 발전 흐름 속에서 노동자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행정부가 큰 틀을 제시하고, 각 부처 간 협력을 기반으로 구체적인 지원책을 마련하게끔 한 것이다. 박성필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지식재산학과 교수는 "미국은 비교적 해고가 자유로운 국가이다 보니, AI 때문에 해고되는 사람이 늘어 실업률이 올라가면 큰 문제"라며 "그래서 국가와 기업이 조율에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사전적으로 제시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조 바이든 정부가 지난해 10월 서명한 '안전하고, 보안이 보장되며, 신뢰할 수 있는 인공지능(AI)의 개발과 사용에 대한 행정명령' 속 노동자 보호와 관련된 부분. 미국 정부는 최초로 'AI의 책임 있는 개발과 사용을 위해 노동자를 지원한다는 약속이 필요하다'는 점을 주요 원칙으로 명시했다. 그래픽=신동준 기자

미국 조 바이든 정부가 지난해 10월 서명한 '안전하고, 보안이 보장되며, 신뢰할 수 있는 인공지능(AI)의 개발과 사용에 대한 행정명령' 속 노동자 보호와 관련된 부분. 미국 정부는 최초로 'AI의 책임 있는 개발과 사용을 위해 노동자를 지원한다는 약속이 필요하다'는 점을 주요 원칙으로 명시했다. 그래픽=신동준 기자


"노동 친화적 기술이 곧 미래 성장동력"

박성필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지식재산학과 교수가 지난달 12일 서울 강남구 KAIST 도곡캠퍼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오지혜 기자

박성필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지식재산학과 교수가 지난달 12일 서울 강남구 KAIST 도곡캠퍼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오지혜 기자

그런데 미국을 제외하곤 뚜렷한 정책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나라가 거의 없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고용노동부는 장관이 올해 신년사에서 "(AI로 인해) 우리가 마주하는 노동 환경이 예측 불가능한 형태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우리의 대응이 미래 모습을 결정할 것"이라는 원론적 내용을 밝힌 정도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올 초부터 이어오고 있는 'AI의 일상화 간담회'는 시장 상황과 기술 발전 정도를 살피는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고용부나 과기정통부를 구심점으로 삼아 경영계·노동계·학계 등과 함께 일종의 'AI 거버넌스'를 구성해 합의점을 도출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성필 교수는 "AI는 인간의 전유물로 여겨진 지적 활동을 해낼 수 있어, 시장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이전과 다를 것이다. 과거의 산업혁명보다 더 근본적 변화를 이끌 것"이라며 "거버넌스를 통해 현실을 직시하고, 노동자 재교육이나 기술 활용 방안 같은 대책을 마련해 빠르게 산업 재편 과정을 밟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박재혁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가 6일 세종 반곡동 KDI 내 연구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KDI 국제대학원 제공

박재혁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가 6일 세종 반곡동 KDI 내 연구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KDI 국제대학원 제공

탄탄한 대책 마련이 미래 성장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박재혁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AI로 노인·장애인·외국인을 포함한 노동가능 인구의 생산성을 보완하는 식으로 현명하게 기술을 도입한다면 저출산과 경제성장 둔화 문제도 해결하고, 차세대 선진 노동시장 모델까지 제시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노동시장의 가장 큰 우려는 기업이 노동자를 대체하는 수단으로 AI를 활용하는 사례가 확산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기 전에 기술과 노동자가 상호보완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정부가 틀을 제시하고 기업과 국민의 협력을 이끌어 낸다면 노동 친화적 기술 도입이 가능해질 거란 예상이 설득력을 얻는다.

아울러 'AI 리터러시'도 중요하다. 노동자들이 AI를 경계만 하는 게 아니라 잘 알고 활용해야 실제 맞닥뜨렸을 때 무리 없이 적응해 나갈 수 있다. 박재혁 교수는 "부동산·주식 이야기를 일상 속에서 나누는 것처럼 AI 기술을 주제로 대화할 수 있게끔, 대중 강연이나 TV 프로그램 등을 활성화해 국민 이해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세종= 오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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