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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배상윤 회장 돈 세탁기였나" CB폭탄 돌리기 피해자의 절규

입력
2022.12.22 04:00
수정
2022.12.22 17:07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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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왕국: 쌍방울·KH그룹의 비밀]
<2> 기이한 덩치 키우기
100억 투자 약속한 KH전자, 실제 투자는 48억
"CB로 돌려줄게" "회장님 급전"... 다시 가져가
주가조작·5:5 계좌 운영 정황 시세차익 극대화
검찰 수사 중… KH 측 "배 회장과 관련 없어"

편집자주

한국일보는 M&A를 통해 사세를 확장한 쌍방울·KH그룹의 수상한 역사를 두달 간 추적했다. 이들은 전환사채(CB)를 발행해 덩치를 키웠고, 수상한 자금이 모이는 곳에 모습을 드러냈으며, 검찰·정치권 인사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별종 왕국을 건설한 두 그룹을 해부했다.


[수상한 왕국: 쌍방울·KH그룹의 비밀] <1> 자신 구속한 검사 사외이사로… 대형 로펌 통해 로비 시도 정황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2020년 1월 22일 디에프코리아플러스(DFKP) 관계자가 서울 강남구 필룩스 건물 앞에서 KH전자 사내이사이자 감사였던 조모(49)씨의 수행원에게 현금 1억 원, 수표 7억 원을 전달하는 모습.

2020년 1월 22일 디에프코리아플러스(DFKP) 관계자가 서울 강남구 필룩스 건물 앞에서 KH전자 사내이사이자 감사였던 조모(49)씨의 수행원에게 현금 1억 원, 수표 7억 원을 전달하는 모습.


“배상윤 회장님의 ‘돈 세탁기’로 임명이 됐다. 축하한다고 말하더군요. 당시엔 투자만 받을 수 있다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목적이 돈세탁이든 뭐든 간에. 그런데 KH그룹의 전환사채(CB) 폭탄을 떠안고 돈을 뜯길 줄은 몰랐습니다.”

디에프코리아플러스(DFKP) 관계자

화장품 면세 사업을 하는 디에프코리아플러스(DFKP)는 KH그룹 계열사인 KH전자(삼본전자)로부터 100억 원 투자를 약속받았다. 그러나 실제 투자금은 48억 원에 불과했고, KH전자 관계자와 그 지인들은 오히려 투자를 빌미로 더 많은 돈을 갈취해 갔다. “배 회장님 급전이 필요하다”는 게 이유였다.

왜 '급전(急錢)'이 필요했을까. 업계에선 기형적으로 많이 발행된 KH그룹의 전환사채(CB)를 이유로 꼽았다. 무자본 인수합병(M&A)를 위해서라면 무한대로 CB를 찍어낼 수는 있지만, 문제는 그다음이다. 주식으로 전환된 다량의 CB가 매도되면 KH그룹 주가는 폭락할 가능성이 크고, CB 만기일이 다가오면 어마어마한 현금을 상환해야 할 수도 있다. 21일 기준, KH그룹 계열사 중 상장회사 5곳의 시가총액은 3,781억 원이지만, 그것의 2배가 넘는 7,811억 원을 CB로 발행했다. CB 발행이 불법은 아니지만, 시가총액의 2배에 달하는 돈을 CB로 충당하는 경우는 이례적이다.

"이 조합은 어차피 상윤이형 거"...품앗이로 일수 찍는 CB 일당

KH그룹 로고

KH그룹 로고

21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KH그룹은 'CB 폭탄'을 처리하기 위해 계열사 곳곳에서 돈을 돌려 막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DFKP 관계자는 “2019~2020년쯤 KH전자 사내이사 조모씨 사무실 앞에는 금요일 오전만 되면 사채업자와 채권자들이 줄을 서 있었다”며 “(연예기획사) IHQ 인수하는 데 펑크가 나서 CB 찍어서 돈 맞춰야 해서 힘들고, 알펜시아 인수 건이 마무리되면 돈이 생기니 갚겠다고 했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KH그룹 계열사들의 CB 발행 대상에는 유독 ‘사모투자조합’들이 많다. 솔로몬 1호, 블루마운틴 1호 투자조합 등이 대표적이다. 이 투자조합에는 KH그룹 계열사 및 배 회장과 친분이 있는 이들이 다수 포진된 것으로 확인됐다. KH계열사의 사내이사가 투자조합의 최대주주인 경우도 있었다. 한 투자조합 관계자는 “주가가 오르면 돈을 벌 수 있어서 서로 회사에 CB를 발행해주곤 한다”며 “이 조합은 어차피 상윤이형 거고, 주식으로 까는 순서만 지켜진다면 원금뿐 아니라 확정 수익도 보장되는 편”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들이 사실상 ‘CB범단’처럼 활동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CB를 주식으로 전환할 때 시세차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주가조작도 서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한국일보가 입수한 단체 카카오톡방 대화내역에 따르면, 이들은 내부정보를 적극 활용해 주가를 띄우고 전환 타이밍 오더(지시)를 내렸다. “삼본전자 필룩스 구주 내일 종가로 20프로 먹기. 당일 입금 당일 출금. 입금은 오전 9시 전, 출금은 오후 4시. 회장님 구주라서 우리 쪽만 15억 정도 깜”이라고 보낸 메시지가 대표적 사례다. 현금이 부족하다 보니 CB 투자자들에게 '내일 종가가 20% 정도 이익을 벌 수 있는 가격대에서 형성될 테니, 이 돈을 먹고 빠지라'는 의미다.

KH그룹 관계자와 그 지인들은 '5:5 계좌'를 운영했다. 지인들에게 투자 관련 내부정보를 전달한 뒤, 고수익이 나면 회사와 투자자가 5:5로 나누는 방식이다.

KH그룹 관계자와 그 지인들은 '5:5 계좌'를 운영했다. 지인들에게 투자 관련 내부정보를 전달한 뒤, 고수익이 나면 회사와 투자자가 5:5로 나누는 방식이다.

타인 명의의 증권 계좌를 통해 ‘5:5 계좌’를 운영한 점도 드러났다. 5:5 계좌는 내부자 거래나 다름없어 투자시 고수익이 보장돼 확정 수익을 회사와 투자자가 5:5로 나누게 되는 방식이다. 내부자 입장에선 내부정보를 제공하는 대가로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수익을 얻게 되는 셈이다. DFKP 관계자는 “이들은 대놓고 주가조작으로 걸릴 위험을 피할 수 있다고 얘기했다”며 “5:5 계좌와 관련해 정보를 돌린 부분이 걸린다면 유사수신 행위로 처벌받을 텐데, 이건 꼬리 자르기도 쉽고, 해봤자 집행유예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유사수신은 은행법에 의해 인·허가를 받지 않고 불특정 다수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것을 뜻한다.

"'상윤이형' 그렇게 팔더니..."

그래픽=송정근 기자

그래픽=송정근 기자

“회장님 급전이 필요하다” “나중에 CB로 돌려주겠다” “상윤이형 도박 빚 때문”

KH그룹 관계자와 그 지인들이 돈을 빌려가며 DFKP 측에 자주 댄 이유들이다. DFKP 관계자들은 자신들이 '돈 세탁기'로 이용됐다고 주장했다. KH그룹을 통해 들어온 투자금이, 다시 KH그룹 관계자들의 △CB 돌려막기 △배 회장 급전 △잔고 증명 △사적 용도 등으로 빠져나갔다는 것이다.

KH전자는 당초 100억 원 투자 유치를 약속했으나, 실제 투자금은 48억 원뿐이었다. 이들은 DFKP에 자신이 지정한 계좌로 돈을 입금하지 않으면 투자를 무산시키겠다고 협박했다. DFKP는 이에 당시 KH전자 사내이사이자 감사였던 조모(49)씨, KH전자 명함을 쓰던 A(44)씨, 암호화폐 상장 자문회사 대표 B(38)씨 등에게 40여 차례에 걸쳐 약 55억 원(계좌이체 금액 42억6,000만 원)의 돈을 보냈다. 주주들 쌈짓돈까지 끌어 모은 돈을 KH그룹 관계자와 그 지인들에게 건넸지만, 한번 나간 돈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픽=신동준 기자

그래픽=신동준 기자

이들은 배 회장과 막역한 관계임을 과시했다고 한다. 한국일보가 입수한 이들 회의 녹취록에도 배 회장과 조씨 등이 돈을 주고받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이 다수 존재했다. 조씨가 DFKP 관계자에게 “IHQ 조합 관련해서 오늘 5억7,000이 들어왔어. 내가 320억 정도 FI(재무투자용 주식·채권 등)를 갖고 있는데 사실 그 자금도 문제가 좀 됐고, 회장님이 나한테 돈을 좀 모자라게 준 것도 문제가 됐는데...”라고 언급했다. 조씨는 “회장님 개인 돈 펑크 난 걸 내가 CB로 풀어서 5대 5 한 게 불법이에요? 불법 아니에요. 회사에서 너한테 돈 넣으라고 해서 걔랑 5대 5 수익 난 거 먹는 거 불법 아니에요. 그런 걸로 다 살림해요. (중략) 모든 회사의 CB 관리 제가 해요. 안 되면 내가 회사 CB로 해서 풀어서 수익을 내지. 30억? 1년도 안 걸려서 내가 갚을 수 있어요”라는 말도 건넸다.

그는 스스로를 배 회장의 '비서실장'이라 부르기도 했다. 조씨는 “나는 어떤 사람이냐 하면, 회장님의 비서실장이기도 하지만 모든 회사의 이사예요”라며 “내가 한 달에 술값 결제하는 게 5,000(만 원)이 넘어요. (중략) 1, 2차 한번 나가면 300씩이라고. 그게 내 일이에요. (배상윤) 회장님 모시고 술 먹어. 500씩 나가. 그거 다 내가 결제해요. (중략) 1억은 나한테 아무것도 아니라고. 지금 사고 난 거? 한 탕이면 다 꺼. 끌 수 있어”라는 말도 건넸다.

경찰은 지난 2월 조씨 등 KH그룹 관계자와 그 지인들 6명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공갈 및 사기 혐의로 송치했다. 이들이 변제할 능력이 없는데도 피해자를 속여 돈을 빌리고 협박했다고 본 것이다. 사건을 넘겨받은 서울중앙지검은 KH그룹 관계자들 간의 자금 흐름을 들여다보고 있다.

KH그룹 "사실 무근" 개인 일탈 주장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조씨와 A씨 등은 “이번 사건과 배 회장과는 관련이 없다”는 점을 여러 번 강조했다. 조씨는 한국일보 통화에서 “배 회장과 알고 지낸 지는 20년 정도 됐고 당시 금전 거래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DFKP에 개인적으로 돌려줘야 할 돈은 모두 줬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나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이 해결해야 할 DFKP와의 채무관계를 배 회장님과 KH그룹을 엮어 소설을 쓰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A씨도 “배상윤 회장님은 이 일을 전혀 모르신다”며 “투자금을 다 써버린 DFKP가 문제”라고 반박했다.

KH그룹도 연관성을 부인하고 있다. KH 관계자는 “조씨는 일방적으로 배 회장과의 친분을 주장하고 있다”며 “조씨 중심으로 채무관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회사는 DFKP에 투자했던 금액을 반환받지 못한 상태라 소송(면세사업 투자금 반환청구소송)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씨 등의 개인 일탈로 생긴 문제이며, 이들이 DFKP로부터 갈취해간 돈은 배 회장과 무관하다는 것이다.

KH서 잘린 뒤 쌍방울 관련 투자조합 대표로

배상윤 KH그룹 회장(왼쪽)과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오른쪽)

배상윤 KH그룹 회장(왼쪽)과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오른쪽)

DFKP가 갈취당한 돈과 관련해 법적 대응을 예고하자, KH그룹은 지난해 2월 3일 조씨를 해고했다. 그러나 조씨 이름은 한 달 뒤 비오에이치1호 조합 대표로 등장한다. 이 조합은 쌍방울의 CB를 매수해 주식 5.19%를 보유한 곳이다. 배 회장 비서실장 역할을 하며 CB 관련 핵심 업무를 전담하고 있는 조씨를 완전히 내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김성태 쌍방울그룹 전 회장과 배상윤 KH그룹 회장은 이른바 '경제 공동체' 관계로 알려져 있다.

조씨는 쌍방울과 KH그룹이 거래한 CB와 관련해 최근 수원지검에서 조사를 받았다. 조씨는 “당시 쌍용차 인수 건으로 쌍방울과 KH그룹이 컨소시엄을 만들며 두 회사 주가가 올랐고, 수익이 날 것 같아서 (쌍방울 CB를 사들이는 형태로) 참여했을 뿐”이라며 “CB를 87억 정도 샀고 15억 정도 시세 차익이 났지만 이 과정에서 불법적 행위는 전혀 없었다”고 강조했다.


◆수상한 왕국: 쌍방울·KH그룹의 비밀

<1> 유별난 검찰·정치인 사랑

<2> 기이한 덩치 키우기

<3> 대장동과 그들의 관계는

<4> 전환사채와 주가조작


수상한 왕국:쌍방울·KH그룹의 비밀 몰아보기(☞링크가 열리지 않으면, 주소창에 URL을 넣으시면 됩니다.) https://www.hankookilbo.com/Collect/8086

<1> 유별난 검찰·정치인 사랑

①[단독] 쌍방울·KH, 윤석열 대통령 친정을 방패 삼았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120421180003514

②빚 내 기업 산 뒤 전환사채 찍어 또…'무자본 M&A'로 덩치 키워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121116380003475

③자신 구속한 검사 사외이사로… 대형 로펌 통해 로비 시도 정황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120520480003947


<2> 기이한 덩치 키우기

①[단독]"배상윤 회장 돈 세탁기였나" CB폭탄 돌리기 피해자의 절규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121604510002993

②바지사장 앉혀 조종 ‘판박이’…추적 힘든 현금으로 기업 인수도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120421370003492


<3> 대장동과 그들의 관계는

<4> 전환사채와 주가조작


조소진 기자
김영훈 기자
이성원 기자
이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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