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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사장 앉혀 조종 ‘판박이’…추적 힘든 현금으로 기업 인수도

입력
2022.12.22 10:00
수정
2022.12.22 17:06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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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왕국:쌍방울·KH그룹의 비밀]
<2> 기이한 덩치 키우기
2014년 김성태·배상윤 주가조작으로 함께 유죄
가족·측근 핵심 보직에 두고 M&A로 사세 확장
쌍방울 먼저 물었던 배상윤 돈 못 갚아 김성태에
두 사람 ‘악어와 악어새’… 계열사 다수 수사 받아

편집자주

한국일보는 M&A를 통해 사세를 확장한 쌍방울·KH그룹의 수상한 역사를 두 달간 추적했다. 이들은 전환사채(CB)를 발행해 덩치를 키웠고, 수상한 자금이 모이는 곳에 모습을 드러냈으며, 검찰·정치권 인사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별종 왕국을 건설한 두 그룹을 해부했다.


※[수상한 왕국:쌍방울·KH그룹의 비밀] [단독]"배상윤 회장 돈 세탁기였나" CB폭탄 돌리기 피해자의 절규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지난 10월 서울 용산구 쌍방울그룹 본사에서 직원들이 오가는 모습. 뉴스1

지난 10월 서울 용산구 쌍방울그룹 본사에서 직원들이 오가는 모습. 뉴스1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은 본 적 없어요. 계약 체결 자리에도 나타나지 않았어요. 다만 나노스가 인수되고 당시 이인우 광림 대표가 나노스 대표에 올랐는데, 취임식 날 김 전 회장이 왔다고는 들었어요. 저는 보지도 못했고, 악수한 적도 없습니다."

대북송금 의혹의 중심에 있는 쌍방울그룹 계열사 나노스(현 SBW생명과학)가 2016년 10월 쌍방울·광림 컨소시엄에 인수될 당시 법정관리인이던 김모씨가 전해준 말이다. 법정관리 중이던 나노스는 470억 원에 쌍방울·광림에 매각됐다. 김씨는 법원 감독 아래 매각은 투명하게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다만 김성태 전 회장에 대해선 기억하는 게 별로 없었다. 김씨는 한국일보에 "김 전 회장이 나노스 계약 당시 관여한 건 없었다"고 말했다.

김씨가 말한 것처럼 김 전 회장은 2010년 쌍방울 인수 뒤 12년간 '그림자 경영'을 해 왔다. 그는 계열사 등기이사로 오른 적도 없다. 2015년 3월 주식 75만 주(0.85%)로 쌍방울의 '비등기 임원 회장'에 올랐다는 공시자료가 전부다. 대신 가족과 측근을 경영 전면에 내세웠고, 책임은 피하고 이득을 챙길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김성태 전 회장과 닮은꼴이라는 배상윤 KH그룹 회장의 경영 방식도 비슷했다. 다만 꽁꽁 숨은 김 전 회장과는 달리 배 회장은 2020년 9월부터 지주사인 건하홀딩스 등기이사에 이름을 올리며 전면에 등장했다.

한국일보는 베일에 가려진 쌍방울·KH그룹의 사세 확장 방식을 추적했다. 김 전 회장과 배 회장은 가족을 핵심 보직에 배치하며 '바지사장'으로 내세웠고, 자금 추적이 어려운 현금을 인수 대금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두 사람 모두 2014년 쌍방울 주가조작 사건으로 유죄를 선고받으면서 인수합병 무대에서 전면에 나서기 부담스러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두 사람은 인수 경쟁을 펼치다가도 서로 도우며 각자의 이익을 챙겼다. 배 회장은 기업 인수를 위해 김 전 회장에게 돈을 빌렸고, 돈을 갚지 못해 넘긴 경우도 있었다. 실제로 배 회장이 인수에 나섰던 쌍방울과 광림 모두 김 전 회장이 차지했다. 두 사람 주변에선 이들의 관계를 ‘악어와 악어새’ 관계로 표현했다.

사채업자서 쌍방울 인수…김성태 그림자 속에

김 전 회장이 실소유한 레드티그리스는 2008년 10월 설립됐다. 경영 자문과 투자 등을 내세웠지만 실상은 대부업체였다. 하지만 2010년 쌍방울을 인수하며 김 전 회장은 본격적인 기업 인수합병에 나섰다.

레드티그리스는 2010년 1월 대한전선의 쌍방울 1대 주주 지분 40.86%를 200억 원에 사들였다. 김 전 회장 아내 등 4명 이름으로 쌍방울 2대 주주(클레리언파트너스) 지분 28.27%도 90억 원에 매수했다. 쌍방울 주가조작 사건을 맡았던 법원은 김 전 회장이 인수 자금을 댔을 거라고 봤다. 서류상으로는 이름이 없지만, 그가 레드티그리스를 차명 소유했다고 본 것이다. 레드티그리스가 쌍방울을 인수해 등기이사를 구성할 때도 김 전 회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레드티그리스 출신들과 김 전 회장 동생 등이 2010년 쌍방울 대표이사와 감사, 사내이사에 이름을 올렸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그래픽=송정근 기자


쌍방울 인수 시도 배상윤… 자금 부족해 김성태에게

KH그룹을 설립하기 전에 배상윤 회장은 서울 강남에서 3층 규모의 고급 사우나를 운영했다. 배 회장은 고향인 전남 영광에서 중국 음식점을 운영하는 등 사업체 경영에 익숙하고 수입·지출 계산에 능숙했다고 한다.

쌍방울 인수를 처음 시도한 것도 김 전 회장이 아니라 배 회장이다. 그러나 인수 자금이 부족해, 김 전 회장에게서 쌍방울 인수 계약금 19억 원을 빌렸다. 그러나 잔금을 확보하지 못했고, 계약금조차 갚지 못하게 되자, 김 전 회장에게 쌍방울 인수권을 넘겼다. 두 사람의 관계를 잘 아는 한 지인은 "배 회장이 김 전 회장보다 나이가 더 많지만, 김 전 회장의 빚 독촉을 견디지 못해 쌍방울 계약권을 통째로 넘겼다"고 말했다.

쌍방울그룹의 주요 상장사인 광림도 배 회장이 먼저 인수했다. 2012년 5월 브이더블유홀딩스를 내세워 205억 원에 광림 지분 24.44%를 사들이며 최대주주에 올랐다. 광림 사외이사와 감사에도 배 회장 처형과 친척을 선임했다. 브이더블유홀딩스의 인적 구성을 보면 배 회장 친척과 측근들이 등기이사로 올라가 있다.

그러나 6개월 뒤 김 전 회장의 실소유 회사인 칼라스홀딩스가 광림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광림 지분 18.18%를 확보했고, 브이더블유홀딩스는 기존 주식을 5.54%만 남기며 최대주주 자리를 넘겼다. 이를 계기로 배 회장 측 인사들이 등기이사에서 물러나고, 김 전 회장 측 인사들로 채워졌다. 배 회장이 회사 인수자금을 갚지 못하며 김 전 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긴 것으로 보인다.

사채시장과 무자본 인수합병(M&A)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이 바닥에선 모두가 돈만 쫓다 보니 불편한 감정 제쳐두고 큰돈 벌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어제 싸워도 오늘 친구가 된다"고 설명했다.

KH필룩스는 배상윤 인수…현금 100억 동원

배 회장이 2016년 3월 인수한 KH필룩스는 김 전 회장이 먼저 눈독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회장 측은 당시 필룩스 경영진에게 인수 의사를 피력했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그러나 철강업체였던 케이티롤을 앞세운 배 회장은 필룩스 인수에 성공했다. 필룩스 소유주가 차기 경영진을 고를 때 숙고하다가 포스코에도 납품하는 케이티롤을 선택한 것이다.

그래픽=박구원 기자

그래픽=박구원 기자

배 회장에게 필룩스 인수는 '일석이조'였다. 필룩스 인수 호재로 코스닥 상장사였던 케이티롤 주가가 두 배 넘게 상승했기 때문이다. 필룩스 인수로 배 회장의 이익이 가장 큰 것으로 추정되지만 당시만 해도 그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케이티롤 등기에는 배 회장 친인척 등만 있었고, 인수 당시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배 회장은 필룩스와의 인수 계약이 끝나고 모습을 드러냈다. 이때부터 배 회장이 소유주와 직접 만난 것으로 전해진다. 배 회장은 2020년 9월 설립된 건하홀딩스를 통해 등기이사로 경영 전면에 등장했다. 배 회장은 2018년 8월 상장사인 KH전자(구 삼본전자)를 인수했고, 2019년 2월 장원테크, 2019년 3월 KH건설을 사들이면서 사세를 키웠다.

배 회장과 관련해선 기업을 인수하며 증권사에 현금 100억 원을 들고와 직원들이 현금을 세느라 퇴근이 늦어졌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배 회장은 당시 사채를 끌어와 현금으로 납부한 것으로 보인다. 현금을 이용하면 자금 출처를 숨기거나 추적을 피하는 데 용이하다.

쌍방울과 KH그룹의 지배구조도

쌍방울과 KH그룹의 지배구조도


쌍방울은 아이오케이컴퍼니, KH는 IHQ 인수

쌍방울과 KH는 여러 공통점이 있다. 특히 연예기획사를 인수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쌍방울은 2020년 9월 아이오케이컴퍼니를 인수했다. 배우 고현정과 김하늘, 조인성 등 유명 연예인이 소속돼 있다. 아이오케이는 지난해 10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내곡동 자택을 38억 원에 매입해 눈길을 끌었다. KH도 2021년 2월 IHQ를 인수했다. 싸이더스HQ가 전신으로 전지현을 비롯해 정우성, 차태현 등이 소속됐던 연예기획사다. 그러나 현재 스타급 연예인들은 모두 떠났다.

쌍방울과 KH가 연예기획사에 특별히 관심을 보인 것을 두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인수합병 분야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연예인 출연료 등은 정가제가 아니기 때문에 가격을 부풀리기 좋다”며 “상대 회사만 승인해 주면 현금을 빼돌리기에 최적의 구조”라고 설명했다.

돈만 받으면 그만…M&A 과정서 인수자 적격성 심사 없어

그렇다면 두 그룹의 인수합병 과정에서 절차상 문제는 없었을까. 한국일보는 두 그룹에 회사를 넘긴 인사들을 찾아 당시 상황을 물었다. 매도한 기업인들의 공통적인 얘기는 "절차상 문제는 없었다"는 것이었다. 인수 대금을 제대로 받았고, 건실한 회사를 내세우거나 지주회사인 '홀딩스'를 내세워 깔끔하게 보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기업은 쌍방울과 KH에 넘어간 뒤 상황이 달라졌다. 쌍방울은 현재 전환사채 허위공시 및 대북송금 의혹에 연루돼 있고,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에게 억대 뇌물을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알펜시아를 인수한 KH도 입찰방해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김 전 회장에게 회사를 매각한 한 기업 대표는 "금융권과는 달리 M&A 시장에서 인수자 적격성을 심사하는 제도는 따로 없다"며 "회사 재무 상황이 나빠져 매각하는 것이기에 제대로 돈을 받을 수 있는지가 중요하지, 매수자의 도덕성과 기업 운영 능력은 고려 사항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기업 M&A에 정통한 한 변호사는 "상장사 공시 규정이 있지만 사후적으로 뒤따를 수밖에 없고, 공시만으론 문제 있는 회사를 분간하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수상한 왕국: 쌍방울·KH그룹의 비밀

<1> 유별난 검찰·정치인 사랑

<2> 기이한 덩치 키우기

<3> 대장동과 그들의 관계는

<4> 전환사채와 주가조작

수상한 왕국:쌍방울·KH그룹의 비밀몰아보기(☞링크가 열리지 않으면, 주소창에 URL을 넣으시면 됩니다.) https://www.hankookilbo.com/Collect/8086

<1> 유별난 검찰·정치인 사랑

①[단독] 쌍방울·KH, 윤석열 대통령 친정을 방패 삼았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120421180003514

②빚 내 기업 산 뒤 전환사채 찍어 또…'무자본 M&A'로 덩치 키워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121116380003475

③자신 구속한 검사 사외이사로… 대형 로펌 통해 로비 시도 정황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120520480003947


<2> 기이한 덩치 키우기

①[단독]"배상윤 회장 돈 세탁기였나" CB폭탄 돌리기 피해자의 절규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121604510002993

②바지사장 앉혀 조종 ‘판박이’…추적 힘든 현금으로 기업 인수도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120421370003492


<3> 대장동과 그들의 관계는

<4> 전환사채와 주가조작





이성원 기자
조소진 기자
김영훈 기자
이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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