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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후죽순 대통령 직속 위원회, 10년 내다보고 힘 실어줘야

입력
2024.07.05 09:00
수정
2024.07.05 17:57
6면
0 0

<5>정치가 정권 한계 넘어서려면
尹정부 장기 플랜, 합의 도출 못 한 채 지지부진
여야정 협의체, 개헌까지… '초당적 틀 마련' 요구
따로 노는 중·장기 계획에 컨트롤타워 필요성도
저고위 대신할 인구전략기획부, 시금석 될까

편집자주

인구소멸과 기후변화 등으로 구조적 위기가 닥쳐오고 있지만 5년 단임 정부는 갈수록 단기 성과에 치중해 장기 과제는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입니다. 정권교체마다 전 정부를 부정하는 정치적 갈등으로 정책적 혼선도 가중됩니다. 한국일보는 창간 70주년을 맞아 이런 문제를 진단하면서 구조 개혁을 이루기 위한 초당적 장기 전략을 모색하는 기획 기사를 연재합니다.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이 열린 2022년 5월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사를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이 열린 2022년 5월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사를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급변하는 국제 정세와 인구 및 지역 소멸 문제, 기후 변화에 디지털 전환까지. 한국 사회는 분야와 시기를 헤아리기 어려운 다양한 현안들에 대응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이런 시대적 과제에 대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초당적 해법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를 외면한 채 위기이자 기회인 '대전환기'를 흘려보낸다면 국가의 미래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확실성의 블랙홀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3년 차를 맞은 현재, 전망은 밝지 않다. 장기 비전을 그려야 할 위원회 상당수는 존재감을 발휘하지 못하고 극심한 여야 대치 속 개혁 과제에 대한 논의는 가로막혀 있다. '개혁 과제 하나라도 완수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지만, 21대 국회에서 마무리돼야 했던 연금개혁도 결국 뒤로 미뤘다. 이런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장기 플랜을 짜는 틀을 원점부터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속도 못 내는 尹정부 장기 플랜

역대 정권 때처럼 윤 정부 역시 출범 초부터 중장기 과업에 강한 추진 의지를 드러냈다. 3대 개혁 목표를 강조하는 것은 물론 국민통합위원회와 지방시대위원회,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등 각종 국정과제에 맞춘 중·장기 플랜을 짜기 위한 대통령 직속 위원회를 여럿 출범시켰다. 현 정부에서 활동이 가장 활발한 위원회로 꼽힌다. 국민통합, 약자 문제, 지역 균형 발전, 디지털 전환 등 각 분야에서 핵심 목표를 수립하기 위한 청사진과 정책을 속속 내놓고 있다.

다만 이를 위한 사회적 합의 도출과 장기 비전 수립으로 눈을 돌리면 속도가 더디기만 하다. 현 정부에서 행정위원회로 새로 출범한 국가교육위원회는 핵심 과제인 10년 국가교육발전계획 마련을 앞두고 존재감이 미미하다는 평가가 많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정권 초부터 정부와 노동계가 격렬히 대립한 탓에 올해 2월에야 첫 본회의를 열었다. 연금개혁은 국회 특위 중심으로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려 했지만 공회전만 하다 21대 국회 임기가 끝났다.

저출생 대책 역시 컨트롤타워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예산 집행권이 없는 자문기구에 불과하다는 한계 속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다 최근에야 '인구전략기획부' 신설로 가닥을 잡게 됐다. 장기 비전을 관통하는 뚜렷한 메시지가 부족하다 보니 국민통합위 등 힘을 실은 위원회들의 활동은 물론 의료개혁 등 기타 과제들 역시 충분한 지지와 추진력을 얻지 못한다는 평가다.

5년 단임 개헌론 한계 명확...여야정협의체 시발점 될 수도

특히 '국정과제 매몰' '진영 대립' '유명무실한 위원회' '컨트롤타워 부재' 등 과거부터 누적된 구조적 문제가 여전히 발목을 잡고 있다. 임기 내내 여소야대 국면을 맞게 된 윤 정부를 향해 '이참에 초당적 정책을 위한 기반을 새로 짜라'는 요구가 나오는 배경이다.

5년 단임의 대통령제에 대한 개헌 필요성도 이런 맥락과 맞닿아 있다. '5년 임기에 맞춘 근시안적 국정 운영'이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4년 중임의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 이원집정부제 등이 대안으로 거론되는데, 이런 주장의 저변에는 '초당적 정책 마련'이라는 공통의 함의가 깔려 있다. 정치권의 극단적 대치 국면이 이어지면서 개헌 요구가 더 자주 분출될 가능성이 크지만, 실제 행동에 나설 동력이 마땅치 않아 현실성은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대신 '여야정 협의체'가 단기적 해법으로 거론된다. 지난해 5월 김진표 당시 국회의장도 윤 대통령에게 비슷한 제안을 했고, 한덕수 총리도 4월 총선 직후 기자 간담회에서 "어느 한 당이 이니셔티브를 가지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앞으로 5년, 10년을 바라보며 국가 장기 대계를 위해 협조할 것은 협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4일 "과거 사례를 보면 성사돼도 지속되긴 어렵다"고 한계를 지적하면서도 "여야정 협의체라도 주기적으로 열어 나가며 신뢰를 구축하는 게 시발점이 될 수는 있다"고 강조했다.

"기본계획만 수백 개, 아우를 계획은 0개"

미래 비전 전반에 대한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지적도 정권 차원에서 풀어야 할 과제로 꼽힌다. 각 분야 중·장기 계획을 담당하는 위원회들은 정권에 따라 재편되기 일쑤이거나 형식적 활동에 그치고 있다. 대통령실 역시 현안 대응과 단기 목표 달성에 급급하고, 부처 간 칸막이까지 견고해 각 분야 장기 계획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현 정부로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문재인 정부 초대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이자 경제인문사회연구회(경인사) 이사장을 지낸 정해구 전 성공회대 교수는 "5개년 기본계획 같은 것들이 수백 개가 되는데, 그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전체 계획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경인사 이사장 당시 경험을 예로 들면서 "미래전략 같은 걸 다뤄보려 했는데 쉽지 않더라"고도 했다. 정부의 과제가 시급하다 보니, 당장 효과가 나지 않는 중·장기 과제는 정책 기여도 점수 등에서 후순위로 밀린다는 얘기다. 결국 부처와 정권의 이해관계를 떠나 큰 틀의 계획을 짜는 기구를 만드는 것이 해법으로 꼽힌다. 정 전 교수는 "경인사 등에 미래전략연구원 같은 곳을 만들면 당장 연구할 수 있는 인적 자원은 많다"면서 "동시에 국회미래연구원을 키우고, 국회 특위를 만들어 실현 가능성을 더하는 방법도 있다"고 제안했다.

컨트롤타워의 실효성 담보를 위해 결국 예산을 비롯한 권한과 대통령실 차원의 힘 싣기가 필요하다는 견해도 있다. 박형준 성균관대 행정학과 교수는 "현재의 대통령실은 부처를 마이크로매니징 하고, 장기 플랜은 실질적 권한 없는 위원회에 맡기면서 결과적으로는 부처 파견자들이 짜는 틀대로 위원회가 흘러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대통령 직속이든 다른 형태든 전체 미래 전략을 짜기 위한 자문 기구를 만들되, 대통령실 직제 자체를 해결하려는 과제들에 맞춰 편성하면서 힘을 싣는 구조가 이상적"이라고 제안했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유지될 틀 만들어야"

현실적으로 임기 반환점을 향하는 윤 정부에 대대적 조직 개편이나 장기 비전의 전면 재검토를 기대하긴 어렵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하나의 장기 개혁 과제만이라도 완수하는 걸 목표로 삼으라"고 조언하는 이유다. 특히 '인구전략기획부가 시금석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많다. 위원회 체제로 해결하지 못한 핵심 미래 이슈에 접근하기 위해 모처럼 여야가 뜻을 모은 사례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실은 인구전략기획부에 저출생 예산에 대한 사전심의권 및 지자체 사업에 대한 사전협의권을 부여하는 것을 비롯해 부처 출범의 실효성을 더하기 위한 방안들을 두루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저출산위 상임위원을 지냈던 홍석철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저출생 기본계획을 그간 5년에 한 번씩 바꿔 왔는데, 저출생과 관련돼 있는 사회의 구조적 문제, 인식 개선의 문제, 지역 소멸 문제 등은 모두 중·장기적 전략"이라며 "정권이 바뀌더라도 유지될 틀을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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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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