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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선 쫓아내고, 저기선 들여오고... '외국인 정책' 이 모순 어쩔 건가

입력
2024.06.27 10:00
수정
2024.06.27 14:15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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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이민정책-①사회구조 전략으로]

편집자주

인구소멸과 기후변화 등으로 구조적 위기가 닥쳐오고 있지만 5년 단임 정부는 갈수록 단기 성과에 치중해 장기 과제는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입니다. 정권교체마다 전 정부를 부정하는 정치적 갈등으로 정책적 혼선도 가중됩니다. 한국일보는 창간 70주년을 맞아 이런 문제를 진단하면서 구조 개혁을 이루기 위한 초당적 장기 전략을 모색하는 기획 기사를 연재합니다.

한 미등록 이주민이 3월 서울 용산구 나눔의집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한 미등록 이주민이 3월 서울 용산구 나눔의집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저라고 불법 체류자 되고 싶었을까요? 하지만 그 곳에서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어요."

사회적 소수자를 위한 생활인권센터인 서울 용산나눔의집에서 필리핀 출신 A(49)씨를 만났다. 그는 미등록 이주민, 소위 사람들이 말하는 불법 체류자다. 그가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는 '그 곳'은 바로 서울의 한 섬유공장이었다.

지옥 같은 환경이었다. 휴식 시간도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 업무 환경에, 사장의 욕설과 폭언은 시도 때도 없이 계속됐다. 임원들의 삿대질과 성난 표정, 호통치는 목소리가 A씨를 종일 옥죄었다.

애초에 누가 숨어 사는 불법 체류자가 되고 싶었으랴. 외국인 노동자가 무단으로 사업장을 벗어나면 곧장 체류 자격을 잃게 된다. 이성적으로라야, 어떻게든 버티는 게 맞았다. 부당한 처우를 받는 외국인 노동자는 사업장을 바꿀 수 있지만, 그 '부당함'을 스스로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언어도 서툴고 제도도 모르는 A씨에게 이는 감히 못 할 도전이었다.

그러나 1년도 버티기 어려웠다. 그렇게 공장을 뛰쳐나와 A씨는 미등록 이주민이 됐다.

그는 단속을 피하며 움츠린 생활을 이어나갔다. 다른 봉제공장에 다시 취업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야간 근무만 했다. 대체로 주간에 이뤄지는 단속을 피하기 위해서다. 공장에선 A씨의 요구대로 근무표를 짜줄테니, 야간 수당을 받아가지 말라는 조건을 들이밀었다. A씨는 "생체 리듬이 무너지고 야간 수당을 받지 못해도 괜찮다"며 "욕설을 퍼붓는 예전 사장님에 비해선 지금 사장님이 나쁘진 않다"고 말했다.

불법체류자, 왜 생기는 지 따져보자

최근 5년간 미등록 이주민 변동 추이. 그래픽=송정근 기자

최근 5년간 미등록 이주민 변동 추이. 그래픽=송정근 기자

인구문제가 국가 비상사태로 규정(윤석열 대통령)되면서 이민 문턱을 낮춰야 한다는 공감대가 점점 커지고 있다. 정부 역시 올해 역대 최대 규모로 이주 노동자를 받겠다고 발표하는 등 외국 인력 도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제도는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다. 불법 체류자를 솎아내는 데만 초점이 맞춰져 있고, 이주민의 안정적 정착을 유도할 장치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경직된 제도가 미등록 이주민을 양산하고, 동시에 이주지로서 한국의 매력을 떨어뜨린다는 전문가들의 우려가 이어진다.

24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 따르면, 올해 5월 기준 미등록 이주민은 41만5,230명으로, 체류 중인 전체 외국인(243만2,888명)의 17.1%에 달한다. 외국인 6명 중 1명 꼴로 미등록 이주민인 셈이다. 정부가 올해 새로 받겠다고 밝힌 인원(16만5,000명)보다 두 배 이상 많은 미등록 외국인이 지금도 어딘가에서 열악한 근로 환경을 감수하며 '숨어서 일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관장하는 외국 인력 도입 제도인 고용허가제(E-9비자)를 통해 외국인 근로자들이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입국장에 입국하고 있다. 뉴스1

고용노동부가 관장하는 외국 인력 도입 제도인 고용허가제(E-9비자)를 통해 외국인 근로자들이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입국장에 입국하고 있다. 뉴스1

미등록 이주민이 늘어나는 원인을 보면, 법을 지키지 않는 외국인 개인의 문제도 있겠지만 주로 경직된 이주 정책이 지목된다. 취업비자 중 비중이 가장 큰 고용허가제(E-9) 비자의 경우, 사업장 변경 횟수와 경우가 극히 제한돼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비전문 외국인력 고용을 위해 마련된 이 제도에 따르면, 외국인 근로자는 △최초 3년간 3회 △다시 고용된 1년 10개월간 단 2회만 사업장 변경이 허용된다. 허용 범위도 △사용자가 근로계약을 해지하거나 △근로자가 부당한 처우를 '직접 입증'하는 경우만으로 제한돼 있다.

미등록 이주민이 된 국내 체류 외국인 중에는 A씨처럼 부당한 상황을 스스로 입증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언어가 미숙하고 제도에 대한 이해가 쉽지 않은 탓에, 임금체불 같은 일을 장기간 겪어도 제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적다. 이주 근로자의 인권 활동을 해 온 최정규 변호사는 "언어가 서투른 이주민이 열악한 노동 환경을 스스로 입증하기란 쉽지 않다"며 "현행 제도가 미등록 체류자를 양산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책임은 무조건 이주노동자에게

지난달 22일 사회관계망서비스 페이스북 영상통화로 네팔 미등록 이주민 B씨(오른쪽)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정확한 상황 설명을 위해 네팔 출신의 한 이주노동자(왼쪽)가 통역을 돕고 있다. 화면 캡쳐

지난달 22일 사회관계망서비스 페이스북 영상통화로 네팔 미등록 이주민 B씨(오른쪽)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정확한 상황 설명을 위해 네팔 출신의 한 이주노동자(왼쪽)가 통역을 돕고 있다. 화면 캡쳐

체류 자격이 비교적 안정적인 숙련기능인력 점수제(E-7-4) 비자 취득자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까다롭고 유연성이 없는 조건 때문에, 까딱하면 미등록 이주민이 돼 한국을 떠나야 하는 처지에 몰린다. E-7-4의 경우, 체류기간을 연장하려면 △연간소득 2,600만 원 이상을 받고 △산업기여가치 부분에서 52점 이상을 취득해야 한다.

바로 이 비자를 갖고 있던 네팔 출신 B(29)씨는 작업장 변경 과정에서 농장주가 이적 동의서를 써주지 않아 일하지 못하는 기간이 생겼다. 이로 인해 체류 연장에 필요한 점수에 단 3점이 모자라 미등록 신분이 됐다. 당시 B씨는 돼지농장에서 월 220만 원을 받으며, 휴일 없이 하루 12시간 이상을 일했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때 네 명이 할 일을 둘이 맡고, 수술을 받고 퇴원한 당일에도 일했지만 한국에서 버림받을 상황에 몰렸다. B씨는 "가장 마음 아픈 건 아내를 한국으로 데려오려 했는데 이제 다 무산이 됐다는 것"이라며 "감기약이 필요해도 언제 단속에 걸릴지 몰라 동네 약국에 가기 무섭다"고 털어놨다.

캄보디아에서 온 한 이주노동자가 충북 충주의 비닐하우스에서 상추를 따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캄보디아에서 온 한 이주노동자가 충북 충주의 비닐하우스에서 상추를 따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어렵게 소송을 결심했다가 미등록 이주민이 된 이들도 있었다. 캄보디아 출신 C(34)씨는 임금을 제때 지급하지 않은 사장을 상대로 소송을 하던 중, 체류기간이 만료돼 미등록 신분으로 전락했다. 수 년간 타국에서 일하고 빈손으로 본국에 돌아갈 순 없었다. 김이찬 지구인의정류장 활동가는 "임금체불이 없었다면 C씨는 본국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합법적 상태로 한국에 돌아올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체류기간 연장을 신청하는 과정에서 회사의 실수를 이주노동자가 책임지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방글라데시 출신 D(29)씨는 회사 측에서 정해진 기간 내에 고용노동부에 체류활동기간 연장을 신고하지 않아 미등록이 됐다. ①이주노동자 측의 잘못이 아니라는 점 ②D씨가 문제가 있음을 인지한 즉시 고용센터에 알렸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구제 요청을 했지만, 정부는 "특별한 사정으로 볼 수 없다"면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평범한 일상 잃은 미등록 이주민

졸지에 체류 자격을 상실한 이들은 어떻게 살고 어떨까. 미등록 이주민들은 언제 쫓겨날 지 모른다는 불안에 떨고 있었다. 이삿짐센터에서 근무하는 몽골 출신 40대 E씨는 "지하철역에서 단속이 빈번하게 일어난다"며 "마음 편히 가기 위해 시간이 두 배로 걸리더라도 전철이 아닌 버스를 이용한다"고 말했다. 가사 노동자로 종사하는 필리핀 출신 40대 F씨도 "제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멍이나 할퀸 자국을 입고 돌아와도 미등록이라는 신분이 들통날까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미등록 이주민들이 바라는 건 평범한 일상이다. 몽골 출신 30대 G씨는 "편의점 앞 파라솔 의자에 앉아 맥주 한 잔 마셔보는 게 소원"이라며 "남들 눈에 최대한 띄지 않아야 하니까 그럴 수 없다"고 털어놨다. 같은 연령, 같은 국적의 H씨는 "어린 자녀들이 조금이라도 큰 소리를 내면 이웃들의 소음 신고로 미등록인 게 밝혀질까 조마조마하다"고 전했다.

"경직성 완화하고 구제 대책 강화해야"

'2024년 세계노동절 - 이주노동자 메이데이 집회'에 참석한 이주노동자가 사업장 이동의 자유 보장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뉴시스

'2024년 세계노동절 - 이주노동자 메이데이 집회'에 참석한 이주노동자가 사업장 이동의 자유 보장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뉴시스

한 쪽에선 외국인을 몰아내고 다른 쪽에선 새로운 외국인을 들여오고자 안간힘을 쓰는 상황. 심지어 잘못한 게 아닌데도 쫓김을 당하는 이 현실이 과연 정의롭고 온당한지를 두고, 우리 사회가 깊은 고민을 해야 할 때라는 지적이 이어진다. 이한숙 이주와인권연구소장은 "미등록 이주민을 단속하면서 새 인력을 데려오는 현재 정책은 모순적이다"며 "제도와 내부 상황을 재정비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국민권익위원회 역시 외국인 노동자의 권익 보호나 인력 활용을 위해 사업장 변경이나 재고용 허가 조건을 완화해야 한다는 점에 동의했다. 권익위는 올해 초 고용노동부에 '외국인 근로자 고용허가제(E-9) 개선방안'을 권고했다.

체류 자격을 잃은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구제 대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정영섭 이주노동자평등연대 집행위원은 "이주노동자의 책임이 아닌 사유로 사업장 변경하거나 체류 기간 연장 신고 시일을 넘겼다면, 과태료로 대체하는 등 구제 기회를 줘야 하는데 그런 제도가 미비하다"고 비판했다. 이한숙 소장도 "최근에는 3개월이 구직기간 내 일자리를 찾지 못해 미등록 신분이 된 이들이 많다고 알고 있다"며 "불가피한 사정으로 이 기간을 넘긴 이들에게는 일종의 사면 조치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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