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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의료는 왜 의사 집단행동에 취약한가... "민간병원 90% 넘는 의료체계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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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의료는 왜 의사 집단행동에 취약한가... "민간병원 90% 넘는 의료체계 탓"

입력
2024.03.23 04:30
수정
2024.03.23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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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병원 비율, 한국 5.7%·미국 22.8%
민간병원 의사 파업하면 대체인력 없어
전문가 "공공의료 확충 안정성 높여야"

15일 오전 고려대학교 구로병원에서 환자와 보호자가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범국민 서명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뉴스1

15일 오전 고려대학교 구로병원에서 환자와 보호자가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범국민 서명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뉴스1

정부가 대학별 정원 배분으로 '의대 2,000명 증원' 정책에 쐐기를 박았지만 의사들은 집단행동을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대정부 의료파업 경험을 통해 의사는 대체불가능하고 오래 자리를 비우면 결국 원하는 결과를 얻어낸다는 믿음을 체득했기 때문이라는 분석 한편으로, 의료 공급의 90% 이상을 민간에 의존하는 한국 의료체계의 구조적 취약성이 의사 집단 이기주의 발로의 근본 원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공공의료를 확충해야 지역·필수의료 살리기는 물론 의사 집단행동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고 제안한다.

지난 20일 정부가 전국 40개 의대의 내년 신입생 정원을 확정하자 의사단체는 한층 보조를 맞추는 분위기다. 한 달 전 전공의들의 수련병원 집단이탈 이후 서로 교류가 없다시피 했던 전공의(대한전공의협의회), 의대생(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 의대 교수(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개원의(대한의사협회)는 의대 정원 확정 당일 온라인 회의를 열고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의료공백을 촉발한 당사자인 전공의들이 복귀 조짐 없이 면허정지 처분 위기에 몰리자 의대 교수들과 기성 의사들이 정부에 '처벌 불가'를 주장하며 적극 엄호에 나선 것도 의사 사회 단결의 계기가 되고 있다. 의협은 22일 정례브리핑에서 "현 정부를 대한민국 정부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며, 정상적인 정부가 만들어질 때까지 끝까지 싸워나갈 것임을 천명한다"고 격하게 반응했다.

정부가 압박을 가할수록 의사들이 똘똘 뭉치는 이유를 두고 의료계 안팎에서는 '의료파업 학습효과'를 지목한다. 실제 의사들은 2000년 의약분업, 2020년 의대 증원 추진 국면에서 집단행동을 통해 정부의 양보를 받아낸 경험이 있다. 이번에도 전공의에 이어 교수까지 장기간 병원 이탈을 불사해 의료체계가 한계에 다다르게 되면, 결국 정부가 국민의 고통과 여론을 의식해 '백기'를 들 거라는 전망을 의사들이 암암리에 공유하고 있다는 것. 여기에 '의사 인력은 대체할 수 없다'는 현실적 판단이 깔려있는 것은 물론이다. 노환규 전 의협 회장은 의대 정원 배분에 반발하며 "죽는 건 국민이고 의사들은 살길을 찾을 것"이라고 말해 공분을 샀다.

한국 의료가 의사 집단행동에 휘둘리는 보다 근본적 이유로는 낮은 공공병원 비율이 꼽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국내 공공병원 비율은 5.72%로 OECD 회원국 평균(33.62%)을 크게 밑돈다. 우리와 비슷한 의료 체계를 가진 일본(18.45%)과 민간 영리병원 비중이 큰 미국(22.79%)도 우리보다 한참 높다. 한국 의료는 '전 국민 건강보험 적용'이라는 강력한 공적 의료시스템을 세우고도 정작 의료 공급은 90% 이상을 민간에 의존하는 구조인 셈이다.

공공병원이 적으니 민간 병원 의사들이 자리를 비우면 비상의료대책을 세우기 힘들다. 이번에도 대형병원 전공의들이 집단사직을 감행하자 전국 공공병원이 소방수로 나섰지만 중증환자 처치에도 버거워했다. 이렇다 보니 군의관은 물론이고 취약지 의료의 보루인 공보의까지 빼내 대형병원에 투입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조승연 인천의료원장은 "공공병원 비율이 충분했다면 의사 집단행동에도 진료체계 유지가 가능하고 정부의 협상력도 올라갔을 텐데, 그렇지 못해 정부가 의사들에게 휘둘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이해관계에 휘둘리지 않고 필수적 의료 개혁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공공의료 강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조 원장은 "장기적으로 미국이나 일본 수준으로 공공병원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며 "공공병원이 많은 나라에서는 의사 정원을 늘린다고 해서 의사들이 파업하는 건 상상할 수 없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 의료개혁안에 공공의료 확충 대책이 부실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나백주 서울시립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개혁안 가운데 공공정책수가 정도가 공공의료 부문에 해당하는데, 수가 지원만으로는 지역 공공의료를 살릴 수 없다"고 지적했다. 나 교수는 "수가 인상은 안 그래도 환자가 많이 오는 병원에 유리한 구조"라며 저출산·고령화 여파로 환자가 없는 지역 병원에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부연했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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