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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새마을금고 '칼잡이'가 계좌번호 찍어 보냈다 “저희 딸 결혼합니다”

입력
2024.01.30 04:00
수정
2024.02.14 21:40
2면
0 0

<서민금융기관 민낯, 새마을금고의 배신>
검사부장, 검사 대상 금고에 '축의금 갑질' 논란
"일면식 없지만 찍힐까 봐 10만원 입금" 하소연
감사위원장도 딸 결혼 소식 단체 공지해 '빈축'

편집자주

새마을금고 계좌가 있으신가요? 국민 절반이 이용하는 대표 상호금융기관인 새마을금고가 창립 60여 년 만에 전례 없는 위기 앞에 섰습니다. 몸집은 커졌는데 내부 구조는 시대에 뒤처진 탓입니다. 내가 맡긴 돈은 괜찮은지 걱정도 커져갑니다. 한국일보 엑설런스랩은 새마을금고의 문제를 뿌리부터 추적해 위기의 원인과 해법을 찾아봤습니다.

축의금 이미지. 한국일보 자료

축의금 이미지. 한국일보 자료

"저희 딸이 동반자를 맞이하려 합니다. 금고가 바쁘고 어려운 때라 부담스럽겠지만… 축복해주시면 기쁨으로 간직하겠습니다. OOO 검사부장 올림"

지난해 9월 수도권의 한 지역 새마을금고 임원은 금고 중앙회 소속 A검사부장으로부터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았다. A씨의 계좌번호가 찍힌 모바일 청첩장도 첨부돼 있었다. 한번 만나본 적도 없는 인물이라 이름조차 낯설었지만, 메시지 끝에 적힌 '검사부장'이라는 직함이 눈에 들어왔다.

중앙회 검사부장은 일선 금고엔 '저승사자', '칼잡이'로 불린다. 전국 1,288개 지역 금고의 재산과 업무집행 상황 등을 들여다보고 문제 될 만한 거리를 찾는 자리다. 검사 결과에 따라 이사장이나 직원을 징계하라고 해당 금고에 요구할 수 있다. 파면까지 시킬 수 있으니 금고 임직원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셈이다. 청첩장을 받은 금고 임원은 "주변에서 '잘못한 일이 없더라도 찍히면 피곤하니 축의금을 10만 원이라도 보내라'라고 충고해 송금했다"고 토로했다. A부장은 지난해 장인의 부고 소식도 지역 금고 관계자들이 있는 단체 채팅방을 통해 알렸다. 그는 현재 지역 본부로 자리를 옮겼지만, 여전히 금고들을 검사하는 업무를 하고 있다.

지역 새마을금고 임직원 사이에서 "중앙회 간부급 직원들의 갑질이 도를 넘었다"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중앙회가 지역 금고를 감독할 수 있는 지위를 이용해 축의금, 조의금을 수시로 받는 등 사실상 상납을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선 금고 직원들은 일면식도 없는 중앙회 직원이 계좌번호가 찍힌 경조사 안내 문자를 보내오면, 적은 돈이라도 낼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한다. 특정 금고 임직원으로부터 거액의 축의금을 받은 중앙회 간부가 해당 금고의 건전성 등을 제대로 검사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도 나온다.

29일 한국일보의 취재를 종합하면, 새마을금고 중앙회 간부들은 자신의 경조사 때 지역 금고 임직원들에게 개별적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내거나 지역별 금고 관계자들이 모인 단체 채팅방에 공지하는 식으로 소식을 알려왔다. 예컨대 지난해 1월에는 중앙회 감사위원장인 B씨의 딸 결혼식 일시와 장소를 알리는 공지가 지역 금고 단체 채팅방에 올라와 빈축을 샀다. 감사위원장은 중앙회 내부를 감사하는 자리로 지역 금고를 직접 검사하지는 않지만 조직 내 감사 총책임자라는 상징성이 있다.

새마을금고 간부들이 피검사 금고에 자녀의 혼인을 알리며 보낸 문자를 재구성. 그래픽=박구원 기자

새마을금고 간부들이 피검사 금고에 자녀의 혼인을 알리며 보낸 문자를 재구성. 그래픽=박구원 기자

중앙회의 다른 직원들도 자신의 경조사 소식을 지역 금고에 수시로 알리고 있다. 예컨대 부산 지역을 담당했던 중앙회 간부는 부친상 당시 계좌번호를 적은 메시지를 지역 금고 단체 채팅방에 올렸다. 전직 중앙회 고위 관계자는 "현재는 다른 직무를 맡고 있더라도 언제든지 금고 검사 담당자로 돌아올 수 있기에 지역 금고 입장에선 모든 중앙회 직원의 경조사 안내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직무 관계자엔 경조사 통지 금지' 규정 지켜지지 않아

중앙회 측은 직원들의 '경조비 갑질'에 대비한 내부 통제 장치는 이미 마련해놨다는 입장이다. 중앙회 관계자는 "사내 경조사 관련 규정에 '직무 관련자에게는 (경조사 소식을) 통지해선 안 된다'고 돼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A검사부장은 본지가 경조사 문자를 보낸 이유를 묻자 "친분이 두텁지 않은데 소식을 받고 부담을 느낀 사람이 있다면 사과하겠다"고 밝혔다. 단체 채팅방을 통해 경조사 소식을 알린 다른 간부들은 "부하 직원이 내 의사와 무관하게 사내 게시판에 올린 경조사 안내를 퍼다가 채팅방에 나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원석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감독권자와 피감독 기관 사이에 돈이 오가고 친분이 쌓이면 감독과 견제가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다"면서 "금융기관의 자정 시스템이 무너질 수도 있기 때문에 경조사를 수시로 알리는 문화를 가볍게 생각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제보받습니다> 지역 새마을금고와 중앙회에서 발생한 각종 부조리(부정·부실 대출 및 투자, 채용·인사 과정의 문제, 갑질, 횡령, 금고 자산의 사적 사용, 뒷돈 요구, 부정 선거 등)를 찾아 집중 보도할 예정입니다. 직접 경험했거나 사례를 직·간접적으로 알고 있다면 제보(dynamic@hankookilbo.com) 부탁드립니다. 제보한 내용은 철저히 익명과 비밀에 부쳐집니다. 끝까지 취재해 보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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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주용 기자
유대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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