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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옷 가게 된 오징어게임 체험관…'상우 엄마' 살림살이는 나아지지 않았다

입력
2023.08.29 14:00
수정
2023.08.31 19:10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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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마을 : 오버투어리즘의 습격>
지역 상인에 도움 안 되는 K콘텐츠 투어 왜?
오버투어리즘 몸살… 돈 안 쓰는 '반짝 인기'
지자체도 '상상력 한계'… 급조 전략 탓 실패
"물 들어올 때 노 젓지 말고 물을 더 채워야"

편집자주

엔데믹(코로나19의 풍토병화)과 유커(중국 단체 관광객)의 귀환이라는 희소식에도 웃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마을형 관광지 주민들이다. 외지인과 외부 자본에 망가진 터전이 더 엉망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한국일보 엑설런스랩은 국내 마을형 관광지 11곳과 해외 주요 도시를 심층 취재해 오버투어리즘(과잉관광)의 심각성과 해법을 담아 5회에 걸쳐 보도한다.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에서 조상우(박해수 분)가 생선가게에서 일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숨어서 지켜보고 있는 모습.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에서 조상우(박해수 분)가 생선가게에서 일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숨어서 지켜보고 있는 모습. 넷플릭스 제공


"오징어 게임 2요? 여기서 또 찍겠다고 하면 반대할 거요. 번거롭고 불편하기만 했지 득 된 게 없어서…"

21일 오후 4시, 서울 도봉구 백운시장에서 46년째 장사한다는 상인 김모(73)씨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이 시장은 2021년 세계를 휩쓴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주요 촬영지다. '쌍문동 천재' 조상우(박해수 분)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생선가게가 있고, 성기훈(이정재 분)과 상우가 자판기 커피를 뽑아 먹던 장소도 이곳이다. 촬영지로 소문이 나면서 60년 된 낡은 시장에는 한때 관광객 500여 명이 매일 찾아왔다. 시장뿐 아니라 쌍문동 전체가 오징어 게임 특수 기대감에 들떴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상인들은 속편 촬영 소식에도 큰 기대를 하지 않는 분위기다. 잠깐 관광 인파는 몰렸지만, 지갑을 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인기 드라마·영화 촬영 장소가 되면 열성팬들의 '성지순례'로 상권이 살아나는 현상. '콘텐츠 투어리즘' 효과가 백운시장과 쌍문동에선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한국일보는 현장 상인과 전문가들 분석을 토대로 촬영 관광지의 실패담을 정리했다. 한국관광공사는 올해 초 외국인 등을 위해 '한류관광 대표코스 51선'을 펴내며 △오징어 게임 △기생충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의 촬영지 투어를 추천했다. 하지만 대다수는 특수를 누리고 있지 못했다.

쌍문동 카드매출 분석해보니 "오징어 게임 효과 없었다"


21일 서울 도봉구 쌍문동 백운시장의 팔도 건어물 외경. 이 가게는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에서 상우 어머니가 운영하는 생선가게로 등장했다. 송주용 기자

21일 서울 도봉구 쌍문동 백운시장의 팔도 건어물 외경. 이 가게는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에서 상우 어머니가 운영하는 생선가게로 등장했다. 송주용 기자


K콘텐츠 관광지가 반짝 인기에 그친 주된 이유는 역설적으로 '콘텐츠'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몰려오는데 이들이 돈을 쓰며 즐길거리는 마련하지 못한 탓이다. 상우 어머니 가게로 나온 백운시장의 '팔도 건어물' 사장 송점숙(58)씨도 시행착오를 털어놨다. 송씨는 "외국인들이 가게 앞에서 사진을 찍어댔지만, 정작 그들에게 팔 게 없었다"고 했다. 가게의 주요 상품은 고등어와 갈치 등 수산물이다. 송씨는 비어 있던 옆 점포를 급히 빌려 쥐포 등 간식을 팔았다. 하지만 오징어 게임 스토리와는 무관한 상품이다 보니 인기가 없었다. 송씨는 "오징어 게임 방영 직후 6개월간 월매출이 10만~20만 원 정도 오른 게 전부"라고 했다.

오징어게임으로 유명세를 탄 쌍문동 백운시장 매출액은 채 2년을 유지하지 못하고 제자리로 돌아왔다. '상우네 생선가게'로 유명한 팔도건어물 매출 역시 드라마 방영 직후 20% 반짝 상승했던 것이 전부다. 한편 외국인 관광객의 86.2%는 '독특하고 고유한 문화'를 기대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래픽=박구원 기자

오징어게임으로 유명세를 탄 쌍문동 백운시장 매출액은 채 2년을 유지하지 못하고 제자리로 돌아왔다. '상우네 생선가게'로 유명한 팔도건어물 매출 역시 드라마 방영 직후 20% 반짝 상승했던 것이 전부다. 한편 외국인 관광객의 86.2%는 '독특하고 고유한 문화'를 기대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래픽=박구원 기자

상인들의 'SOS' 요청을 받은 지원군(지방자치단체)도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K콘텐츠 관광이 실패한 또 다른 이유다.

쥐포 팔기로 큰 재미를 못 본 송씨는 오징어 모양 반죽 안에 진짜 오징어를 넣어 구운 '오징어빵'을 개발하려고 했다. 하지만 생선가게 운영도 벅찬 자영업자에게 신제품 개발은 버거웠다. 경험 있는 전문가가 도와주길 바랐지만 현실화되지 못했다.

상인들은 지자체에 지원 요청을 했다. 빵이나 어묵, 국수 같은 먹거리를 팔 수 있게 장소와 도구, 사람을 지원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속 시원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흥행 당시 오징어 게임 체험관으로 운영됐던 자리는 속옷 가게로 변했다. 송주용 기자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흥행 당시 오징어 게임 체험관으로 운영됐던 자리는 속옷 가게로 변했다. 송주용 기자

도봉구도 넋 놓고만 있었던 건 아니다. 2021년 12월 시장 내 빈 점포 한 칸을 얻어 '오징어 게임 체험관'을 만들었다. 관광객에게 초록색 트레이닝복 등 드라마 의상을 빌려주고, 즉석사진도 찍어줬다. 하지만 관(官)의 상상력은 거기까지였다. 매달 500명쯤 오던 관광객이 점점 줄자 11개월 만에 문을 닫았다. 체험관 자리는 결국 속옷 가게로 바뀌었다. 도봉구 관계자는 "시장 안에 체험관을 만들면 방문객이 계속 오고 돈도 쓸 것으로 봤는데 기대와는 달랐다"고 털어놨다.

지역 사회 전체적으로도 경제적 파급 효과는 반짝하는 데 그쳤다. BC카드는 한국일보 의뢰로 백운시장 인근 쌍문동 지역의 음식점, 카페, 편의점 등의 외국인 결제금액을 분석했다. 오징어 게임 첫 공개 당시 100이었던 지역 소비지수는 1년 후인 2022년 9월 에미상 6관왕에 오르자 622까지 올랐다가 최근 다시 100으로 떨어졌다. 에미상 효과로 결제금액이 6배 늘었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는 얘기다.

문 닫은 우영우 김밥집…"콘텐츠를 연관산업으로 확장해 생명력 이어가야"

지자체가 세심한 접근 없이 영화·드라마 흥행에 편승하려고 하면 역효과가 생긴다. K콘텐츠 관광의 세 번째 실패 원인이다. 영화 '기생충' 촬영지였던 마포구 아현동이 대표적이다. 서울시가 2020년 2월 영화에 나왔던 낡은 슈퍼마켓과 동네 계단 등을 탐방코스로 묶어 소개하자 관광 인파가 몰렸다. 하지만 주민과 상인은 '오버투어리즘'(과잉관광)으로 소음과 쓰레기 투기, 주차난 등 불편만 겪었다. 영화에 등장했던 '돼지쌀슈퍼' 벽면에는 여전히 '주민 거주지입니다. 조용히 대화해주세요. 쓰레기 버리지 마세요'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반지하집이 밀집한 달동네를 구경거리 삼는 듯한 시선도 상처가 됐다. 한 주민은 "주민 입장에서 가난한 마을이라는 이미지가 붙으면 당연히 싫지 않겠느냐"고 했다. 마포구는 기생충 촬영지 일대를 관광명소로 만들겠다며 전담 팀까지 만들었지만, 재개발이 추진되면서 흐지부지됐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우영우(박은빈 분) 아버지의 김밥집으로 나왔던 수원시 팔달구의 일식집은 최근 문을 닫았다. 관광당국이 가볼 만한 촬영 현장으로 외국인에게 소개하던 곳인데, 매력을 유지할 수 있는 전략은 따로 없었던 셈이다.

25일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우영우(박은빈 분) 아버지의 김밥집으로 나왔던 경기 수원시 팔달구의 일식집을 찾아갔더니 문을 닫고 영업을 접었다. 점포 출입문에는 전기요금 고지서 등 확인하지 않은 문서들이 꽂혀 있었다. 수원=유대근 기자

25일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우영우(박은빈 분) 아버지의 김밥집으로 나왔던 경기 수원시 팔달구의 일식집을 찾아갔더니 문을 닫고 영업을 접었다. 점포 출입문에는 전기요금 고지서 등 확인하지 않은 문서들이 꽂혀 있었다. 수원=유대근 기자

정부는 한류 드라마와 영화, 음악 등과 연계한 관광 프로그램을 앞세워 2027년까지 외국인 관광객 3,000만 명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양적 팽창 위주의 정책을 지양하고 K콘텐츠 관광 전략을 새로 짜야 한다고 조언한다. ①관광객들이 촬영지에서 작품 세계관을 느낄 수 있게 해주고 ②콘텐츠를 연관 산업으로 확장해 생명력을 이어가야 한다는 얘기다.

해리포터 시리즈는 참고 사례로 거론된다. 해리가 마법세계로 들어가는 9와 ¾ 승강장이 있는 영국 킹스 크로스역은 해리포터 팬들에겐 성지가 됐다. 이 역사에는 벽면에 반쯤 걸친 카트가 전시돼 있는데, 관광객들이 마법세계로 넘어가는 것처럼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소설에서 시작한 해리포터는 영화, 게임, 뮤지컬, 굿즈(기념품), 테마파크까지 연관 산업으로 꾸준히 영역을 넓혀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이병민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단순히 콘텐츠 흥행에 묻어가려는 '물 들어올 때 노 젓자' 전략보다는 촬영지 등에도 관광객이 즐길 콘텐츠를 계속 채우는 '물 들어올 때 물 붓자'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관광의 역습 - 참을 수 없는 고통, 소음> 인터랙티브 콘텐츠 보기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0825171400007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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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주용 기자
유대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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