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3040 뉴스이용자 위원회]
지난달 20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한국일보 18층 회의실에서 모인 3040 뉴스이용자위원회는 본지 오피니언면 콘텐츠를 집중 점검했다. 위원장인 이나연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주재로 열린 이날 회의에는 오세욱 한국언론진흥재단 책임연구위원, 조용술 청년365대표, 우미연 변호사, 이준영 상명대 경제금융학부 교수가 참석했다. 양형국 메디컬벤처 루닛 디렉터(가정의학과전문의)와 이혜정 한국리서치 부장은 서면으로 의견을 냈다. 한국일보에서는 이충재 주필, 한창만 지식콘텐츠부장, 김영화 뉴스부문장이 참석했다.
오세욱
‘뉴스룸에서’ 코너를 한국일보가 노력을 기울인 특집, 기획 등에 대해 그 취지를 설명하고 이용자와 피드백하는 공간으로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 이용자는 뉴스룸의 작동 방식과 과정에 대해 잘 모른다. 언론사도 그 과정에 대해 이용자에게 상세하게 공개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기사 하나를 만들기 위해 투여되는 수많은 노력과 어려움이 이용자에게 잘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 한국일보 내부의 이야기들을 가지고 외부와 소통할 필요가 있다.
한국일보만의 특징은 아니지만 사설, 칼럼 등 오피니언면은 신문의 마지막에 위치해 있다. 신문이 자신의 관점을 전면에 내세우는 게 필요한 시기이다. 쉽지 않겠지만 사설과 칼럼을 마지막에 모아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기사와 함께 이슈별로 전면에 제시하는 실험을 해보길 제안한다.
조용술
오피니언면이 중요한 이유는 시대의 중요한 흐름을 진단하고 새로운 화두를 던지는 공간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3월 17~25일, 4월 12~17일 1면과 오피니언면의 키워드를 비교해봤다. 그 결과 1면과 오피니언면이 큰 상관관계가 없었다. 왜 이 시점에서 오피니언면에 이러한 이야기들이 나열되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신문을 1면부터 순서대로 보는 독자의 경우, 오피니언면에서 요즘 이슈들에 대한 시원한 논평이나 기고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배치도 더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 가령 오피니언 1면은 문화ㆍ예술과 같은 인문학, 2면은 정치ㆍ사회ㆍ경제에 대한 평가 및 제언, 3면은 미담 사례와 같이 구성을 심플하게 하는 것이다. 좋은 제목을 다는 노력도 필요하다. 어떠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는 제목이 많다. 물론 필자의 의견도 존중돼야 하지만 한국일보 차원에서 이 부분에 대한 보완을 해줘야 한다.
마지막으로 발칙한 상상을 해 보았다. 사설은 누가 썼는지 모른다는 답답함이 있다. 사설도 필명이나 실명을 쓰면 어떨까. 그렇게 하면 글에 대한 책임감도 더 생기고, 사설에 대한 찬성ㆍ반대의 입장도 더욱 분명해질 것이다. 이게 팬덤 문화의 시작이 아닐까 생각해봤다.
우미연
저는 법조 관련 칼럼 위주로 살펴봤다. 정형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어떤 판결’은 주제마다 구체적인 사례를 적시하고 일상의 언어로 독자의 눈높이에 맞춘 칼럼이어서 좋아하는 칼럼이다. 김주영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객원교수(변호사)의 ‘아침을 열며’는 판결의 의의와 한계를 모두 고찰하는 비판적 검토가 인상적이다. 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아침을 열며’는 판결뿐 아니라 정치, 정책, 법 관련 이슈를 아우르는 주제로 쓰고 있다. 여러 번 읽어야 글의 의미와 논지를 파악할 수 있는 깊이 있는 글이다.
사설ㆍ칼럼은 집필자의 의견을 피력하는 글이지만, 구체적 사례나 사실관계를 전제로 설명하는 경우에는 카드뉴스 형식으로 제작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게시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준영
독자가 좋은 칼럼을 읽었을 때 그 신문의 가치는 크게 올라간다. 칼럼은 신문의 깊이와 풍부함을 강화시켜줄 수 있는 핵심 콘텐츠이다. 다음은 최근 인상 깊게 읽었던 칼럼들이다.
‘삶과 문화: 도시락이 사라진 자리’(박찬일ㆍ3월 18일 자)는 도시락의 근대사, 현대적 변모, 향수와 트렌드를 역사적 관점에서 서술해 재미있게 읽었다. ‘2030 세상보기: 한 소셜 미디어의 죽음’(심너울ㆍ4월 3일 자)은 클럽하우스 SNS 현상 체험기를 호기심 있게 풀어냈다. 기성세대에는 생소한 영역인데, 재미있게 제시해 잘 읽었다.
중도 언론을 표방하고 있지만 현 정부에 대한 신랄한 비판도 잊지 않았다.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장인철 칼럼: 부동산 정책 지금 또 바꾸면 폭망된다’(4월 6일 자)는 정책을 바라보는 시선이 잘 드러났다. ‘이준희 칼럼: ‘적페론’에 대하여’(3월 19일 자)는 적폐 프레임을 경계하고 적대 정치의 무책임성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아침을 열며: 미국 속의 차별, 우리 안의 차별’(임채윤ㆍ4월 5일 자)은 동양인 혐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 안에서도 발생하는 미세차별을 언급했다. 우리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고, 성찰의 기회를 주고 있어 의미가 컸다.
‘삶과 문화: 쿠팡거지 사건과 라이더가 살아가는 법’(박정훈ㆍ3월 30일 자)은 긱 이코노미 시대, 새로운 플랫폼 시대의 노동 인권 문제를 다루고 있다. ‘삶과 문화: 우리에게 남은 취미란 쇼핑뿐일까’(박초롱ㆍ4월 3일 자)는 모든 것들을 거대 자본주의가 흡수하고 사람들의 취향까지도 상업주의로 전락했다는 칼럼이다. 지금 시대에 주목해야 할 부분이라 의미가 있었다.
‘조은아의 낮은음자리표: 실황, 살아 있는 음악의 생명력’(3월 19일 자)은 예술가의 시각에서 수려한 필력으로 오프라인 공연의 생명력과 가치를 잘 서술했다. ‘삶과 문화: 장담할 수 없지만, 20년 후에는’(지평님ㆍ4월 17일 자)는 살면서 잊고 지냈던, 삶의 소소하고 소중한 가치를 일깨워주는 글이다. ‘내가 살린 환자, 나를 깨운 환자’는 생명에 대한 소중한 가치를 이야기하는 코너다. 재미있게 읽고 있다.
이나연
다양한 주제로 다채로운 시각의 접근이 이뤄지는 것은 긍정적이다. 다만 현재 필자와 코너가 너무 많다는 생각도 들었다. ‘메아리’는 논설위원이 작성하는 코너지만, ‘뉴스룸에서’와 ‘36.5도’의 차이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하나는 데스크가, 하나는 평기자가 쓴 거 같긴 한데, 굳이 구분할 필요가 있나. 아울러 사내 필자의 글이 더 많아야 할 거 같다.
정치, 경제, 사회 등의 주제에 한정되지 않고 다양한 읽을거리를 제공하는 점은 긍정적이다. 예를 들어 ‘내가 살린 환자, 나를 깨운 환자’ 시리즈는 감동적이고 사회적으로도 긍정적 기능을 한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삶과 문화’는 요리사, 편집인, 작사가, 전 신문인, 여행작가 등 다양한 직종의 필진으로 구성돼 내용이 매우 신선하다. 다만 때로는 신변잡기적 소재와 내용으로 꾸려져 조율할 필요가 있다.
뉴스레터 ‘이충재의 인사이트’를 열심히 보고 있다. 한국일보 주필이 지금 우리 사회의 화두와 의견을 전달하고 있다. 관련된 기사, 칼럼도 연결해준다. 좋은 시도 같다. 한국일보 주필이라는 무게감으로 전달해주니 남달랐다.
양형국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쓰는 ‘36.5도’, 영화나 드라마를 매개로 주제를 풀어가는 ‘라제기의 영화로운’, 그리고 ‘특파원의 시선’을 재미있게 보고 있다.
인공위성을 만드는 물리학자 황정아 박사가 들려주는 ‘황정아 박사의 우주적 시선’과 우리말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는 ‘우리말 톺아보기’는 평소 접하기 어렵거나 무심히 지나친 것들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고 있다.
한국일보 오피니언 내용들을 보면 전반적으로 차분한 기운이 느껴진다. 사설이나 ‘뉴스룸에서’와 같이 때론 분석적이고 강한 의견 제시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지만, 타 신문사에 비해선 강렬한 언어나 논조가 덜하다. 부담 없이 읽고 지나갈 수 있지만, 사람들을 확 휘어잡는 부분은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혜정
한국일보 애플리케이션과 PC 화면을 통해 오피니언 탭을 들어가 보았다. 가장 먼저 오피니언이 배치된 것이 눈에 띄었다. 타 언론사 중에서는 조선일보를 제외하고는 오피니언이 먼저 배치되는 경우가 없어서 더 인상적이었다. 그만큼 한국일보에서 오피니언에 공을 들이고 자신감이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또 지면보다 PC나 모바일을 통한 오피니언 화면이 더 보기 좋고 읽기도 편했다.
‘2030 세상보기’는 주제 선정부터 남달랐고 글쓴이들의 이력도 관심을 가지기 충분했다.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의 ‘LH 사태도 결국 헬피엔딩?’(3월 26일 자), 곽나래 이커머스 기획자의 ‘성실히 일하고 적당히 잘 살고 싶을 뿐인데’(4월 9일 자)는 제목과 내용 모두 어떻게 해야 젊은 세대에게 어필할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칼럼이었다.
신문을 많이 읽지 않는 사람들, 특히나 단편적인 가십이나 정보 위주로 취사선택해서 디지털 기사를 읽는 사람들에게 칼럼이나 사설은 대하기 어려운 섹션이다. 하지만 좋은 칼럼은 충성 독자를 만들 수 있는 강력한 오리지널 콘텐츠가 될 수 있다. 지금의 한국일보는 오리지널 콘텐츠에 심혈을 기울이는 넷플릭스와도 비슷한 느낌이다. 다만 퀄리티 높은 사설과 칼럼을 더욱 부각할 수 있는 홍보 전략이 필요하다. 칼럼의 제목이 가지는 의미를 작게 서술해준다든지, 레이아웃의 변화를 준다든지, 지면과 디지털의 특성을 각각 고려해 배치를 한다든지 다양한 시도를 해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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