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황, 살아있는 음악의 생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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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황, 살아있는 음악의 생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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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1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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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아
조은아피아니스트ㆍ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게티이미지뱅크


클래식 음악계는 독특한 공연문화를 갖고 있다. 윤리적인 에티켓이라 여길 정도로 콘서트홀의 청중들은 음악이 연주되는 동안 엄숙하고 진지한 침묵 속에서 온 정신을 몰두해 음악을 감상한다. 대중음악 공연장에선 옆 사람에게 음악이 잘 안 들리니 조용히 해달라 부탁하지 않는다. 하지만 클래식 공연장에선 이 요청이 용인될 만큼 집중, 몰입과 침묵이 우선한다. 악장 사이 박수가 금지될 정도로 음표 뒤에 숨어있는 맥락과 의미까지 찾아내기 위해 청중들은 심혈을 기울여 감상한다.

콘서트홀에서 연주되는 곡들은 작곡가가 죽은 후에도 연주되는, 소위 음악 박물관에 살아남은 작품들이다. 청중의 호불호와 시간의 풍화를 견뎌낸 이 곡들을 업계에선 ‘레파토리’라 일컫는다. 대중가요는 작곡자의 이름이 중요하지 않지만, 클래식 음악은 작곡가와 연주자 사이에도 수직적 위계가 형성될 정도로 보수적인 전통을 오랫동안 유지해 왔다. ‘불멸’의 거장이 남긴 ‘불후’의 명곡들을 전문 연주가의 완벽한 연주를 통해 재현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클래식 음악가는 세상에 등 돌리고 개인의 표현에 몰두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다. 대중의 취향에 영합해 인기를 얻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오히려 대중성이 부족할수록 진지한 예술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일시적 유행을 쫓아 이윤을 추구하는 것을 그 어느 분야보다 경계했다.

보수적인 악풍을 유지해오던 클래식 음악계에 기술의 발전은 패러다임의 여러 변화를 가져왔다. 20세기 초반, 기술복제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라디오와 레코드, 오디오 같은 기기가 음악계 판도를 바꿔나갔다. 예전에는 공연장에서만 실제 연주를 들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가정이나 거리에서 언제 어디서든 감상하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비일상적인 콘서트홀에 묶여있던 음악이 일상적인 공간으로 스며들고, 반복 가능한 감상을 통해 일회성 역시 극복되었다.

기술의 발달은 연주 스타일에도 전격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완벽하지 않은 연주를 영원히 기록할 수는 없는 법이다. 서투른 기교가 용납되지 않으니 기술적으로 완벽한 연주들만이 미덕으로 통했다. 음향의 섬세한 뉘앙스나 음악의 깊이 보다는 남들보다 빠른 연주, 고도의 테크닉을 시위하는 연주들이 난무했다. 이렇듯 틀린 음을 제거하고 속도가 빨라진 연주 스타일은 지역성의 개성마저 마모시킨다, 프랑스건 독일이건 러시아건 유사한 연주 스타일을 공유하게 된 것이다.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아무리 서툰 연주라도 음반이 라이브를 이길 수는 없다며 콘서트홀 실황이 주는 현장성, 그 아우라를 상실하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다.

라이브 실황의 현장성을 누군가는 이렇게 비유하기도 한다. 음반을 통해서 듣는 음악은 식당에서 메뉴판의 사진을 보고 음식의 맛을 상상하는 것과 같고, 공연장에서 직접 듣는 음악은 실제 음식을 맛보며 혀와 이빨로 생생하게 느끼는 미각이라는 것이다. 이때 실황음악의 현장성은 연주의 일회성이라는 특징으로 강화된다. 어떤 무대건 한 번 연주가 이루어지고 나면 다시 돌이킬 수 없다. 단 한번밖에 없는 라이브는 연주자들의 무대공포증을 유발시키는 원인인 동시, 청중들에게는 유일무이한 희소성을 제공해 만족감을 드높인다.

콘서트홀은 청중들을 혼잡한 일상으로부터 분리해 집중을 북돋는다. 순수한 음악 감상을 위해 바깥 소리는 완전히 차단되고 고도의 정신적인 체험이 일어나는 이상적인 공간이다. 콘서트홀의 현장성은 나무악기의 살아있는 배음이 자아내는 공간감으로 구현된다. 객석에서 함께 느끼는 공동체적 경험은 뿔뿔이 흩어진 개인의 청취보다 고양된 감정을 이끌어낸다. 코로나의 위협에도 콘서트홀을 닫아걸지 않으며 살아있는 연주, 실황이 존립해야할 이유이다.

조은아 피아니스트ㆍ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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