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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담할 수 없지만, 20년 후에는

입력
2021.04.16 22:0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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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꿈을 이런 식으로 실현하려던 건 결코 아니었다. 2021년을 맞아 세 가지 목표를 세웠다. 그 첫째가 ‘고향 땅 텃밭에 열매채소 3모작 하기’였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 파종 때 자리 지키며 일하는 시늉 좀 내고 나서 가끔 내려가 그사이 자란 푸성귀며 열매채소를 거둬 오면 되겠거니 생각했다.

추운 겨울이 슬슬 녹아내리던 2월 중순,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연락이 왔다. 집 마당에서 푹 쓰러지시는 바람에 119를 불러 병원으로 후송했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후들거리는 무릎을 꽉 잡고 엉엉 울었다. 지난 가을 폐렴으로 병원 신세를 진 후 완전히 회복하셨다고만 믿었다. 부모님 나이가 80대 후반이었음에도 이때껏 두 분이 안 계신 미래를 구체적으로 상상해본 일조차 없다는 자각이 나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오른쪽 경동맥이 거의 막히고 심근경색이 온 때문이라고 담당 의사는 말했다. 여기에 폐렴이 도졌다는 진단이 나왔다. 다행히 아버지는 한꺼번에 진행된 경동맥과 심장 스탠트 삽입술을 잘 마쳤다. 폐렴도 곧 잦아들어 열흘 만에 퇴원하셨지만, 이전 체력으로 돌아가자면 적잖은 시간이 필요할 듯했다. 게다가 의사와 면담할 때마다 관용구처럼 따라붙는 ‘워낙 연로하시니까’라는 말이 나는 못내 걸렸다. 삶이 유한하다는 당연한 이치를 그제야 피부로 절감했다.

피치 못할 사유가 없는 한 주말마다 고향 집에 가자고 마음먹었다. 올봄 농사를 위해 아버지가 일찌감치 흙을 갈고 거름까지 뿌려두었던 밭에 누군가는 작물을 파종해야 했다. 쉽지 않겠지만 이참에 제대로 해보자 싶은 결심 같은 게 생겼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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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첫 주, 마늘 모종을 내고 완두콩과 파 씨 뿌리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다음 주에는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밭이랑에 멀칭(검정 비닐)을 깔고 감자 씨를 넣었다. 보름 시차를 두고 옥수수 모종을 두 이랑씩 심는 틈틈이, 갓과 유채를 솎아내고 봄나물을 뜯었다. 냉이, 달래에 이어 쑥이 올라오는 시기가 되자 집을 빙 둘러싼 매화나무, 복숭아나무, 살구나무가 일제히 꽃을 피웠다. 흡사 꿈결 같은 풍경에 취한 나는 이 좋은 것들이 왜 이제야 내 눈에 들어왔을까를 곰곰 생각했다. 어처구니없게도 설날 이후부터 5월 초까지, 이곳이 제일 분주하고 아름다웠을 3~4월에 고향을 찾은 일이 거의 없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아버지는 매주 당신 곁으로 달려오는 딸을 흐뭇하면서도 미안한 눈으로 바라보신다. 엄마는 “힘드니까 이다음에는 내려오지 마.” 하다가도 전화 걸어 “너 혹시 이번에도 내려올 거니?” 떠보신다. “왜요?” “온다고 하면, 지난번에 너랑 아버지가 뜯어온 쑥으로 절편 하려고.”

말랑한 쑥 절편을 먹고 나서 할 일들을 미리 생각해두었다. 지난주 아버지를 따라 뒷산에 들어가 두릅과 엄나무 순을 땄다. 나 어릴 적 이 산에서는 분명 못 보던 수종이었다. “20년 전쯤 밭과 산 경계에 두릅나무하고 엄나무 대여섯 그루를 심었지. 그 녀석들이 이렇게 세를 불려가며 군락을 이룰 줄 누가 알았겠니?” 물오른 두릅 순을 똑똑 꺾으면서 나는 모든 것을 압도하는 시간의 위력을 생각했다. 장담할 수 없지만 20년 후에도 내가 이곳에 서게 된다면, 저 아래 3단 텃밭 둔덕쯤에서 무성하게 여문 체리 열매를 따 먹고 싶다는 열망이 뜬금없이 솟구쳤다. 그래, 저기에 스무 그루 체리 나무를 심자.



지평님 황소자리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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