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26시간 34분. 여야 국회의원 13명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을 두고 벌인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시간입니다. 그만큼 찬반 논쟁이 치열했는데요.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지 8개월 만인 지난달 30일, 결국 국회의 문턱을 넘었죠.
하도 언론에서 떠들어대니 공수처 얘기는 지겹게 들었겠지만, 막상 공수처가 뭘 하는 기관이고 왜 논란이 됐는지 잘 모르시는 분들도 많을 거예요. 그래서 ‘이슈레터’는 여전히 태풍의 눈으로 남아있는 공수처를 집중적으로 파헤쳐 봤습니다.
◇공수처? 초면은 아닌 듯 한데…
그렇습니다. 공수처 신설은 무려 23년 전부터 제기돼온 주장입니다. 주로 여당의 추진과 야당의 반대로 끊임없는 시도와 무산의 역사를 반복해왔죠. 1996년 노태우ㆍ전두환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을 계기로 참여연대가 국회의원 151명과 시민 2만여 명의 서명을 받아 공수처를 포함한 부패방지법안을 입법 청원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발의된 지 한 달 만에 회기를 넘겨 폐기됐지만요.
이듬해인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내세우기도 했지만 검찰과 야당의 반대로 통과되지 못했습니다. 2002년 신기남 당시 새천년민주당 의원도 대표발의 했지만 임기 말이었던 데다 역시나 반발이 거세 이겨내지는 못 했죠.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또한 공직부패수사처 정부안을 만들었지만 당시 한나라당이 야당 탄압이라며 거부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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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들 필요하다는 거야?
‘그랜저 검사’, ‘벤츠 여검사’ 기억들 하실 겁니다. ‘공짜 주식’ 진경준, ‘몰래 변론’ 홍만표, ‘고교 동창 스폰서’ 김형준 등 전ㆍ현직 검사들의 비위 사건도요. 어느새 검찰 내부가 썩을 대로 썩었지만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인 듯 합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팔짱을 끼고 ‘황제조사’를 받는 장면은 제 식구 감싸기라는 여론의 불을 지폈습니다.
또 이명박 전 대통령 관련 ‘BBK’ 사건 등 권력형 비리에 대해 검찰이 사건을 은폐했다는 주장에 재수사가 벌어지기도 했죠. 역설적이지만 이 같은 은폐 의혹에 반해 지난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청와대 관련 수사 과정에서는 ‘검찰이 정치적 목적으로 과잉 수사를 한다’는 지적이 나왔는데요. 이와 맞물리면서 현 정권의 의지와 함께 정치적 중립성을 갖는 공수처에 대한 논의에 가속이 붙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관련기사 조국, 공수처법 통과하자 “눈물 핑 돌 정도로 기뻐”
◇그래서 통과된 공수처법 내용이 뭔데.
이번 공수처 법안 초안은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2명이 발의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인데요. ‘백혜련 안’이라고 불렸죠. 이후 민주당 외 바른미래당ㆍ정의당ㆍ민주평화당에 대안신당을 포함한 ‘4+1 협의체’를 거치면서 대폭 수정이 이뤄졌고요. 이번에 통과된 안이 ‘4+1 협의체 안’입니다.
공수처의 수사대상은 대통령, 국무총리, 국회의원 등 차관급 이상 정무직공무원과 광역단체장ㆍ교육감, 대통령비서실ㆍ경호처ㆍ안보실ㆍ국정원 3급 이상, 장성급 장교, 판사ㆍ검사, 경무관 이상 경찰관 등의 고위공무원인데요. 직무유기, 직권남용, 피의사실공표, 공무상비밀누설, 뇌물 등 고위공무원의 직무 관련 범죄 전반을 수사하게 됩니다. 퇴직 이후에도 재직 당시 범죄가 밝혀지면 기간 제한 없이 수사대상이 되죠.
공수처장은 법무부 장관ㆍ법원행정처장ㆍ대한변협회장ㆍ여당 추천 2명ㆍ야당 추천 2명으로 총 7명으로 구성된 추천위원회가 2명을 추천하면, 대통령이 1명을 지명해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하도록 했는데요. 여당과 야당의 몫을 2명씩 나누고, 7명 중 6명 이상이 찬성해야 의결되도록 했습니다. 야당 추천 위원 2명이 모두 반대하면 진행할 수 없도록 한 거죠.
◇막판에 가장 시끄러웠던 조항이 들어갔다던데?
맞아요. 법 24조 ‘다른 수사기관과의 관계’의 2항 “다른 수사기관이 범죄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고위공직자 범죄 등을 인지한 경우 그 사실을 즉시 수사처에 통보해야 한다”는 규정이 새로 포함된 게 엄청난 논란을 불렀어요. ☞관련기사 공직자 범죄, 검경 등과 사건 중복 땐 공수처에 우선권
이 조항은 중복 수사를 하게 되는 비효율을 막기 위해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요. 만약 공수처와 검ㆍ경에서 중복되는 범죄를 수사하고 있었다면 공수처장이 이첩을 요청할 수 있고 다른 수사기관은 무조건 응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다른 수사 기관이 범죄를 수사하던 중 고위공직자 범죄를 인지했다면 즉시 공수처에 통보해 수사개시 여부 답변을 기다려야 하고요.
검찰은 ‘독소조항’이라고 반발했습니다. 공수처가 검ㆍ경의 상급기관이 아닌데다 인지 단계부터 보고를 받아 사건을 가져간 후 사안별로 입맛에 따라 과잉 또는 부실 수사를 할 수 있다는 논리를 폈는데요. 처장을 포함한 공수처 검사 임명에 대통령과 여당이 관여하는 구조에서 수사정보가 새나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죠.
◇정말 통제 불가능한 공룡이 등장하는 거야?
‘감시자는 누가 감시하는가’ 로마의 시인 유베날리스가 당시 권력자들의 부패를 풍자하며 쓴 유명한 구절이죠. 이 국면에 적용하면 권력기관인 검찰을 견제하기 위해 ‘또 다른 권력기관’을 만드는 것이 과연 최선의 방법이냐, 공수처의 수사 오ㆍ남용은 누가 감시하느냐는 물음으로 읽힙니다. 검찰개혁의 찬성론자들조차 일부 우려를 하는 대목이죠.
법무부의 견제를 받는 검찰과 달리 공수처는 일단 임명 후에는 대통령에게 보고조차 하지 않도록 하면서 행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도록 규정했습니다. 국회의 요구가 있을 경우 공수처장이 출석해 ‘수사나 재판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한’ 보고ㆍ답변을 하도록 규정해 놨지만, 공수처가 정부부처에 소속된 기관이 아닐뿐더러 헌법상에도 근거가 명시돼있지 않다는 점에서 국회가 과연 견제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헌법학계의 원로인 허영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는 언론 기고 등을 통해 “헌법적 근거가 없는 공수처를 헌법기관인 검찰 위에 두겠다는 발상은 위헌적”이라며 “검찰의 힘을 뺀다고 그보다 더 통제받지 않는 공수처를 만드는 것이 어떻게 검찰 개혁인가”라고 역설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검찰을 견제할 기구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당위성까지 훼손해서는 안 될 텐데요. 국회는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독소조항’에 대해선 추가 논의를 하겠다는 전제를 달았죠. 악법이 아닌 양법이 될 수 있도록 앞으로의 논의에 국민들의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유지 기자 mainta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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