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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 때문에 잔잔한 바다에서 어부가 죽었다

입력
2024.08.09 12:00
수정
2024.09.19 11:19
0 0

한국일보 특별취재팀
[추적 : 지옥이 된 바다]

편집자주

콧구멍에 플라스틱 빨대가 박혀 피 흘리는 바다거북, 뱃속에 찬 쓰레기 탓에 죽은 향유고래. 먼바다 해양 생물들의 비극은 뉴스를 통해 잘 알려졌죠. 우리 바다와 우리 몸은 안전할까요? 한국일보는 3개월간 쓰레기로 가득 찬 바다를 찾아 다녔습니다. 동해와 서해, 남해와 제주에서 어부와 해녀 63명을 만나 엉망이 된 현장 얘기를 들었고, 우리 바다와 통하는 중국, 일본, 필리핀, 미국 하와이를 현지 취재했습니다. 지옥이 된 바다. 그 가해자와 피해자를 추적했습니다.

일러스트=신동준 기자

일러스트=신동준 기자

그날 파도는 잔잔했다. 파고는 1m 남짓. 2021년 8월 8일, 북동쪽에서 불어오는 한여름 바람도 초속 6~8m로 거세지 않았다. 갈치와 조기, 병어를 주로 잡는 21톤짜리 안강망 어선이 조업하기에는 무리 없는 날이었다. 물살이 빠른 곳에 그물을 던져 닻으로 고정시켜 놓으면 조류에 밀려온 물고기들이 걸릴 것이다. 오후 4시가 넘어도 맹렬히 내리쬐는 뙤약볕, 그리고 평소와 달리 그르렁거리는 엔진 소리 정도가 뱃사람들의 신경에 거슬릴 뿐이었다. 그때까지는 누구도 이렇게 평화로운 바다에서 사람이 죽을 줄 몰랐다.

지난 6월 전남 목포항 인근에는 여전히 많은 어선들이 만선을 기대하며 드나들고 있었다. 목포=최주연 기자

지난 6월 전남 목포항 인근에는 여전히 많은 어선들이 만선을 기대하며 드나들고 있었다. 목포=최주연 기자


불길한 엔진 소리, 또 '그놈'이 걸렸다

전날 새벽 전남 목포시 동명항에서 출항한 어선은 갈치 떼 길목인 신안군 흑산도 매몰도 등대 근처 해상에서 한창 조업 중이었다. 배에는 선주(67)와 선장, 9명의 선원이 탔다. 한창 투망(그물을 바다에 던지는 것) 작업을 하던 밤 8시가 넘었을 때였다. 배 바닥에서 들려온 둔탁한 소리가 선주의 귀를 때렸다. 이때부터 배는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아, 또 스크루(선박 추진용 회전 날개)가 탈이 났나.”

시커먼 밤바다는 속이 들여다보이지 않았고, 날씨도 궂었다. 누군가 물속에 들어가 무슨 일인지 살필 상황이 아니었다. 경험 많은 선주는 일단 인근 해상에 배를 정박시키도록 했다. 다음 날 아침 날이 밝자 선원들은 준비한 그물을 서둘러 쳤다. 작업이 마무리될 즈음 덜컹 거리던 엔진이 아예 멈춰섰다.

“뭔가 걸린 것 같은데…누가 물속에 들어가 봐야겠네."

선주가 입을 뗐다. 스크루 고장은 두 달에 한 번꼴로 있는 일이라 선원들도 익숙할 만했다. 평소 성실했던 선원 A가 잠수를 자청했다. 주섬주섬 잠수복을 입고는 호흡기를 입에 물었다. 한 손에 칼을 든 그는 우현 선미에서 내린 임시 사다리를 한 발씩 딛고 물속으로 사라졌다.

1분 뒤, 그는 갑자기 수면 위로 얼굴을 내밀었다. 수중에서 칼을 놓친 탓이다. 동료에게 새 칼을 받아 들고 다시 잠수했다. 2분 뒤, 사다리로 다시 올라온 그는 물밑 상황을 선주와 선장 등에게 알렸다.

"스크루에 로프(밧줄) 같은 게 많이 걸려 있어요."


조업을 계속하려면 제거해야 했다. 곧바로 3차 입수. 이번엔 잠수 시간이 10분이 넘어갔다. 선주는 배 뒤편 바닷속에서 낡은 로프 등이 떠오르는 것을 봤다. 뱃사람들이 흔히 쓰고 바다에 버리는 작업용 밧줄. 스크루에 엉켜 엔진을 괴롭혔던 놈들인 듯했다. 문제가 해결된 줄 알고 긴장했던 마음이 풀어질 때쯤 선주 눈에는 다른 물체가 들어왔다.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는 사람의 발 끝이었다. 선주는 직감했다. ‘뭔가 잘못됐구나.’

“야, 줄 당겨! 당겨!”

선원들은 호흡기 줄을 급히 당겼다. 동시에 선원 2명이 바다로 뛰어들었다. 갑판 위로 끌어올려진 A의 얼굴에 잠수 마스크는 이미 벗겨져 있었다. 동료들은 정신없이 그의 흉부를 압박했다. 계속된 심폐소생술에도 호흡은 돌아오지 않았다. 목포해경 연안구조정과 접선해 부랴부랴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그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났다. 사인은 익사였다. 다른 어선이 버린 것으로 보이는 쓰레기 탓에 사람이 죽었다. 바다가 사람을 집어삼킨 것이다.


조업 중 바다에 유실되거나 버려진 어망과 밧줄 등은 해양 생물은 물론 인간에게도 위협으로 돌아온다. 지난 6월 20일 전남 목포 북항에서 어민들이 그물을 정리하고 있다. 목포=최주연 기자

조업 중 바다에 유실되거나 버려진 어망과 밧줄 등은 해양 생물은 물론 인간에게도 위협으로 돌아온다. 지난 6월 20일 전남 목포 북항에서 어민들이 그물을 정리하고 있다. 목포=최주연 기자


쓰레기 탓에 사람이 죽었다

3년이 흐른 지난 7월 25일, 목포의 한 카페. 불쑥 찾아온 기자를 만난 선주는 그날의 기억을 끄집어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안전 책임을 다하지 않은 죄(업무상과실치사)가 인정돼 금고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선장은 6급 항해사 업무가 1개월 정지됐다. 선주는 고개를 들지 않고 커피잔에 시선을 맞춘 채 말했다. “할 말이 없지요. 제가 잘못한 거니까.” 잠수하면 호흡기를 문 입으로만 숨을 쉬어야 하는데, 당황하면 물을 먹는 경우가 있다. 물을 크게 먹은 A가 호흡을 제대로 하지 못해 심장마비까지 온 게 아닐까. 잠수 경험이 있는 선주는 그렇게 추측했다.

광주지법 목포지원은 2022년 4월 안전관리에 소홀한 점을 인정해 선주에게 금고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왼쪽) 그해 10월 해양사고를 조사하는 목포지방해양안전심판원은 선장에 대해 6급항해사 업무를 1개월 정지하고 선주에게는 안전관리 개선 권고를 내렸다. 진달래 기자

광주지법 목포지원은 2022년 4월 안전관리에 소홀한 점을 인정해 선주에게 금고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왼쪽) 그해 10월 해양사고를 조사하는 목포지방해양안전심판원은 선장에 대해 6급항해사 업무를 1개월 정지하고 선주에게는 안전관리 개선 권고를 내렸다. 진달래 기자

인력소개업체를 통해 일하게 된 중국인 A(사망 당시 42세)는 선주가 2020년 2월 배를 구입한 후부터 같이 일했던 선원이다. “착했어요. 부모님 두 분 다 아프셨던데···그 친구가 생계를 맡았던 것 같더라고요. 잘 살아보겠다고 여기(한국)까지 온 건데.” 중국에 있던 부모는 아들 장례에 오지 못했다. 한국에 있던 친척이 대신 사고 뒤처리를 맡았다.

우리나라 연근해에서 조업하는 뱃사람들에게 이 배가 겪은 비극은 남일 같지 않다. 바다에 버린 낡은 그물이나 로프 등 폐어구가 스크루에 엉켜 배를 고장 내는 일이 너무 흔하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너무 잦아서, 전문 잠수사나 예인선을 불러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 아니라면 자체적으로 해결하고 조업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

해양 부유 쓰레기 감김 사고는 신고 건수를 기준으로 연평균 1,686건으로 집계됐지만, 실제 사고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픽=신동준 기자

해양 부유 쓰레기 감김 사고는 신고 건수를 기준으로 연평균 1,686건으로 집계됐지만, 실제 사고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픽=신동준 기자


어업인 대상 설문조사 결과 어민의 95.5%가 '부유물 감김 사고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그래픽=신동준 기자

어업인 대상 설문조사 결과 어민의 95.5%가 '부유물 감김 사고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그래픽=신동준 기자

한국일보 특별취재팀이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임미애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해양수산부 비공개 보고서 ‘부유물 감김사고 원인 및 사고예방 정책연구’에 따르면, 연간 부유물 감김 사고는 1,686건(2019~2022년,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 기준)에 달한다. 어업인 대상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문제가 된 부유물 중 93.4%가 버려지거나 유실된 어구다. 어민의 95.5%가 물에 떠다니는 쓰레기에 배가 감기는 사고를 경험했을 정도로 일상적이다. 보고서는 실제 사고 발생 건수는 통계보다 5.5배 더 많을 것으로 봤다.

선주는 증언했다. “맨몸으로 지뢰밭을 걷는 기분이죠. 바닷속 폐그물이나 로프는 눈에 보이지 않으니 피할 수도 없어요. 운 좋으면 안 걸리고, 일진이 사나우면 걸리는 거고.”

해양 쓰레기는 바다거북이나 고래 등 해양 생물만 괴롭히는 게 아니다. 이제는 무시로 사람 목숨을 빼앗고 있다. 스크루의 이물질을 제거하려 잠수했다가 숨진 이도 많고, 배가 전복돼 목숨을 잃은 선원들도 있다. 맨몸으로 일하는 해녀들도 매일같이 위협을 느낀다. 부산 영도에서 50년 넘게 물질을 한 해녀 이정옥(70)은 몸서리를 쳤다. “장마철처럼 바닷속 시야가 어두워지는 시기가 있어요. 그럴 때는 특히 얇은 그물이 잘 안 보여요. 작업하다 보면 순간 그물이 몸을 빨아 당기듯 해요. 얼마나 무서운데.”

매년 버려지거나 유실되는 폐어구는 4만 톤에 달하지만, 수거량은 1만1,000톤에 그친다. 그래픽=신동준 기자

매년 버려지거나 유실되는 폐어구는 4만 톤에 달하지만, 수거량은 1만1,000톤에 그친다. 그래픽=신동준 기자


매년 어구 4만톤이 바다에 버려져

어부들이 버리거나 유실한 바닷속 폐어구는 도대체 얼마나 될까. 해수부의 또 다른 비공개 보고서 ‘어구 전 주기 관리체제 기반 강화를 위한 어구실태조사’(2023년)를 보면, 우리 어민들이 한 해 쓰는 어구 19만 톤 중 약 4만 톤이 바다에 버려진다. 바다에서 줍는 폐어구 평균량(1만1,000톤)의 4배다. 결국 3만 톤의 그물과 통발 쓰레기가 매년 바다에 쌓여가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인천에서 하루에 발생하는 전체 쓰레기 양과 맞먹는다.

해양 생태계도 쓰레기 탓에 급속히 망가지고 있다. 바다는 예전같이 풍족하지 않다. 고기 대신 쓰레기를 낚는 게 일상이 돼버린 어부와 해녀들은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틴다. 더러워진 바다에서는 해초도 살기 어렵다. 육지의 나무처럼 탄소를 많이 머금는 해초가 죽으면 지구와 바다는 더 뜨거워질 수밖에 없다. 해초가 사라진 제주 바다를 설명하던 해녀 고송자(61)는 눈물을 글썽였다.

“어떨 때는 바다한테 미안할 정도야. 언제 가도 바다는 먹을 걸 다 내주는데 우리는 지켜주지 못해서.”

■한국일보 특별취재팀
팀장 : 유대근 기자(엑설런스랩)
취재 : 진달래·원다라·이서현 기자(엑설런스랩), 조영빈(베이징)·허경주(하노이) 특파원, 한채연 인턴기자
사진 : 이한호·최주연·정다빈 기자
영상 : 박고은·김용식·박채원 PD, 제선영 작가, 이란희 인턴PD


※<제보받습니다> 한국일보는 해양 쓰레기 문제를 집중 취재해 보도해 나갈 예정입니다. 해양 쓰레기 예산의 잘못된 사용(예산 유용, 용역 기관 선정 과정의 문제 등)이나 심각한 쓰레기 투기 관행, 정책 결정 과정의 난맥상과 실효성 없는 정책, 그 외에 각종 부조리 등을 직접 경험했거나 사례를 직·간접적으로 알고 있다면 제보(dynamic@hankookilbo.com) 부탁드립니다. 제보한 내용은 철저히 익명과 비밀에 부쳐집니다. 끝까지 취재해 보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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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진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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