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 집행정지 신청을 심리한 항고심 재판부가 앞서 줄줄이 '각하' 결정을 내렸던 1심 재판부와 달랐던 지점은 정부에 '2,000명 증원'의 과학적 근거를 요구한 부분이었다. 법원의 요구는 의정갈등의 핵심인 정부 정책 결정 과정의 절차적 정당성 및 근거에 관한 것이라 어떤 판단이 내려질지 관심이 집중됐다.
항고심 재판부의 결론은 '2,000명 증원의 논리는 미흡하나, 그렇다고 정부가 제공한 근거의 타당성을 완전히 배척할 수는 없다'로 요약된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행정7부(부장 구회근)는 전날 의대 재학생들이 낸 증원·배분 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하면서 "현 단계에서는 의대생들의 교육을 일부 희생하더라도 의대 증원을 통한 필수·지역의료 회복 등 공공복리를 옹호할 필요가 있다"고 판시했다. 1심과 달리 의대생들의 신청인 자격은 인정하되, 정책 집행을 정지할 정도는 아니라는 취지다.
"2000명 근거 미흡... 그래도 인력 충원 필요"
재판부는 일단 큰 틀에서 의사 증원 필요성에 공감했다. 필수의료·지역의료 분야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만큼, 인력 재배치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의대 증원이 문제 해결의 기초이자 전제라는 사실을 명확히 한 것이다.
다만 정부가 정한 정원 규모 2,000명의 근거는 충분치 않다고 봤다. 발표 당일에서야 수치가 처음 제시됐고, 의대 교육과정(6년)을 고려한 산술적 계산에 따른 것일 뿐 직접적 인과관계가 뚜렷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정부는 2035년 의사 1만 명 부족을 예상한 3건의 보고서를 토대로 6년의 의대 교육과정을 감안해 증원 숫자를 결정했다. 재판부는 단순 계산에 따른 이런 수치를 들어 "신청인들(의대생)이 본안에서 패소할 것이 명백하다고 보이지는 않는다"고 결정문에 적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처분이 절차적 정당성과 합리적 근거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 재판부의 결론이다. 재판부는 "정부는 의료현안협의체 등을 통해 의사 인력 확충을 꾸준히 논의해 왔다"면서 "대한의사협회에 의견을 요청했지만 의협은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정부의 인력 증원은 의사들의 허락을 받거나 동의를 받아야 하는 사안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의협과의 협의 의무는 있을지언정, 반드시 합의에 이를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2,000명 증원 역시 "정부의 산술적 계산이 타당하지 않더라도 절대로 취할 수 없는 방법으로 보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문제 있어도 파업은 안 돼" 질책도
'집행정지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의료대란이 더욱 심화한다'는 의료계 주장도 물리쳤다. 재판부는 "전공의 이탈과 의대생 휴학 등의 혼란은 조속히 회복돼야 한다”면서도, 오히려 의사들의 파업을 더 큰 잘못으로 지목했다. 재판부는 "정부의 의료정책에 문제가 있더라도 국민의 생명과 건강이라는 헌법적 가치와 국가의 존재 이유를 고려할 때 정책에 반대하기 위한 의사의 파업은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재판부는 증원 규모를 놓고 정부에 당부하기도 했다. 의대생들의 학습권 침해가 공공복리에 우선하지 않더라도, 적정한 의사인력 수급으로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재판부는 "거점 국립대 총장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2025학년도 의대 정원 모집인원을 조정했듯, 향후에도 대학 측 의견을 수렴해 의대생들의 학습권 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의료계를 법률대리하는 이병철 변호사는 이날 대법원에 재항고했다. 이 변호사는 "대법원이 서둘러 진행하기만 하면 이달 말까지 최종 결정을 내리는 것도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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