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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잘 따르던 착실한 딸이 공범이 돼 돌아왔다

입력
2024.04.25 13:00
수정
2024.07.19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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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자들의 10년]
세월호 3등 항해사 박한결 이야기

참사 직후 얼굴을 가린 채 수사기관에 출석하는 박한결. 일러스트=신동준 기자

참사 직후 얼굴을 가린 채 수사기관에 출석하는 박한결. 일러스트=신동준 기자


“내가 교도관들한테 그랬다니까? 우리 딸은 교도소 문을 열어두고 도망가라고 해도 그 자리에 가만히 있을 애라고. 그러니까 걱정 말라고.”

60대 중반의 노파가 감옥살이한 딸의 됨됨이를 확신에 찬 목소리로 설명했다. 3월 14일 전남의 한적한 소도시, 자신의 낡은 아파트 안에서 처음 본 기자와 마주한 자리에서다. 노파는 과거를 떠올리는 걸 괴로워하면서도 ‘착한 딸’이 오해받는 건 참을 수 없는 것 같았다. 어떤 유혹이 있어도 절대 달아나지 않을 것이라는 그 딸은, 자신이 살려야 했던 300명을 버린 채 도망간 죄로 5년간 교도소에 갇혀 지냈다. 박한결. 세월호 3등 항해사다.

안전을 조작한 죄, 얼마나 큰지 몰랐다

박한결은 착실한 아이였다. 선원이 되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엄마의 권유 때문이었다. 자격증만 따면, 고되지만 오래 할 수 있는 일. 고3 때 아버지를 여읜 뒤, 어머니와 여동생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박한결에게는 매력적인 직업이었던 것 같다. 그는 집에서 멀지 않은 해양대학교에 진학해 4년간 배를 탈 준비를 했다. 책임감이 강한 탓이었는지 졸업도, 취업도 동기들을 앞섰다.

2012년 11월, 박한결은 외항 여객선 선원으로 처음 뱃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듬해 12월, 제법 규모 있는 선사로 직장을 옮긴다. 본사가 있는 인천은 살아 본 적도 없는 도시였지만, 친한 친구가 그 선사의 기관사로 일했던 터라 든든했다. 그는 승객 956명과 화물 1,077톤을 실을 수 있는 카페리호의 3등 항해사를 맡았다. 청해진해운의 세월호였다.

2014년 4월 15일 출항 직전 인천항에 정박한 세월호 모습. 중앙해양안전심판원 제공

2014년 4월 15일 출항 직전 인천항에 정박한 세월호 모습. 중앙해양안전심판원 제공

스물다섯의 박한결은 착실한 선원이었다. 상사의 지시에 좀처럼 토를 달지 않았다. 그것이 위험하고 부당한 지시라도. 선배 항해사들은 그런 박한결에게 ‘출항 전 여객선 안전점검보고서’ 작성을 맡기며 당연한 듯 가르쳤다.

“거기 항목들 모두 ‘양호’로 체크하면 돼.”

보고서 작성은 원래 선장과 기관장이 해야 할 몫이었지만 박한결에게 맡겨졌다. 그는 제멋대로 서류를 꾸미는 일이 얼마나 큰 잘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2014년 4월 15일 저녁, 박한결은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는 자신의 40번째 항해에 나섰다. 이날도 그는 성실히 '범행'에 동참했다. 박한결은 출항 전 해운조합 운항관리실에 안전점검보고서를 제출했다. 배에 탄 승객과 컨테이너, 자동차 수 등을 적어야 할 칸이 비어 있었다. 운항관리실에는 아직 화물 등을 다 싣지 않았다는 이유를 댔다. 사실 청해진해운은 이번 항해에서 2,210톤의 짐을 실을 작정이었다. 배가 감당할 수 있는 최대 적재량을 배 이상 넘긴 무게였다. 점검을 책임진 운항관리사 전정윤은 눈으로 서류를 훑은 뒤 서명했다. 박한결은 빈칸 숫자들을 출항 뒤 무전으로 불러줬다. 엉터리 수치들이었다.

배가 넘어지자 주저앉아 운 당직사관

“아저씨, 140도요.”

출항 이튿날 오전 8시 45분, 당직 근무였던 박한결이 조타수 조준기에게 침로 변경을 지시했다. 조류가 무척 빨라 긴장했던 전남 진도 인근 맹골수도를 막 빠져나온 참이었다. 이 해역을 지날 때는 늘 선장이 직접 지휘했지만, 이날은 입사 4개월 차인 박한결에게 배의 운명이 맡겨졌다. 원래 선장인 신보식이 휴가 간 까닭에 전임 선장인 이준석이 대신 탔는데, 그는 선장실에서 사각팬티 차림으로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조준기는 박한결의 지시를 복명복창하며 조타기를 돌렸다. 하지만 낯빛이 이내 어두워졌다. 이를 눈치채지 못한 박한결은 재차 변침을 지시했다.

“아저씨, 145도요.”
“어어, 안 돼. 안 돼.”
“뭐가 안 돼?”
“아, 조타기가 안 돼요.”

두 사람이 다급하게 문답을 끝내기 무섭게 뱃머리가 오른쪽으로 크게 돌아갔다. 반작용으로 제대로 고정시키지 않은 화물실의 승용차와 컨테이너 등이 왼쪽으로 쏠렸고, 배는 좌현으로 급격히 기울었다. 그렇게 침몰이 시작됐다. 박한결은 배를 다시 세워 보려 했지만 소용 없었다.

2014년 4월 16일, 해경 요원들이 전복된 세월호에 구조정을 대고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 해경은 승객들을 버리고 도주한 15명의 선원을 배에 태웠다. 해경 제공

2014년 4월 16일, 해경 요원들이 전복된 세월호에 구조정을 대고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 해경은 승객들을 버리고 도주한 15명의 선원을 배에 태웠다. 해경 제공

이후 당직사관인 박한결이 한 일은 조타실 한편에 쪼그려 앉아 운 것밖에 없었다. 자신이 해야 할 선내 방송도 우느라 하지 않았다. 선장 이준석이 책임자로서 역할을 포기한 까닭에 박한결 등 항해사 4명이 승객을 구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이들은 제 살 길을 궁리하기 바빴다. 오전 9시 45분쯤 승객을 구하러 온 해경 123정이 세월호 조타실에 배를 붙이자 선원들이 탈주하기 시작했다. 주저하던 박한결도 해경정에 올랐다. 파란색 작업복을 입고 있었지만 해경 중 누구도 그가 선원인지 확인하려 들지 않았다. 박한결과 선원들은 해경이 자신들을 구했듯 승객도 알아서 구출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스스로 부끄럽고 화난다" 때늦은 후회

연녹색 수의로 갈아입은 박한결은 법정에서도 울었다. 2014년 11월 광주지법 재판정에 선 그는 “스스로도 부끄럽고 화가 나서 고개를 들 수 없다”고 했다. 복받친 감정 탓인지 진술을 잇지 못하고 종종 입술을 깨물었다.

방청석에서 이를 지켜보던 참사 유가족 유병화의 마음은 착잡했다. 열일곱 살이던 그의 딸은 선원들이 구조를 포기해 숨진 300여 명의 승객 중 한 명이었다. 피고인석에 앉아 고개를 빳빳이 쳐든 선장 이준석과 다른 선원들 사이로 고개를 푹 숙인 박한결이 보였다.

"선장을 보면서는 '당신은 왜 살아 있어'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박한결은… 우리 딸보다 몇 살 더 많은 애가 부들부들 떨고 있는 걸 보니 한편으론 안쓰럽기도 했어요. 그래도 책임을 피할 수 없는 선원이잖아요. 감추는 것도 있는 듯 보였고요. 당시 감정을 뭐라 설명하기 어려워요."

박한결의 변호인은 '돈벌이에 혈안이 돼 배를 위험하게 개조한 선사 탓에 참사가 났다'고 주장했지만, 박한결의 죄는 줄어들지 않았다. 그는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청주여자교도소에 수감됐다.

세월호 참사 당시 배에서 도주한 선원들이 2015년 1월 광주고법에서 열린 항소심 재판에 출석해 피고인석에 앉아 있다. 선장 이준석(맨 왼쪽)과 박한결(왼쪽 세 번째)이 보인다.

세월호 참사 당시 배에서 도주한 선원들이 2015년 1월 광주고법에서 열린 항소심 재판에 출석해 피고인석에 앉아 있다. 선장 이준석(맨 왼쪽)과 박한결(왼쪽 세 번째)이 보인다.


참사 뒤엔 '예스맨'이 있었다

그날 팬티 차림으로 배에서 도주했던 선장 이준석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광주교도소에 수감된 그와 꾸준히 면회해온 목사 장헌권은 "외모와 말투 등만 보면 중범죄를 저지를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대신 그는 이준석의 다른 면모가 큰 죄를 짓는 원인이 됐을 것으로 추측했다.

"주변에서 이준석 선장이 '예스맨'이었다고 증언하더라고요. 상관에게 대드는 경우가 없었다는 거죠. 4월 15일 출항 전 선원들이 '짙은 안개 탓에 위험하니 출항하지 말자'고 애걸복걸했지만, 이준석은 '가야지 어찌하겠느냐'고 답했다고 해요."

회사의 말에 늘 고분고분했던 이준석은 그 덕분에 퇴직하고도 선장 일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의 악행은 상사의 말을 잘 따르던 '착실한' 동료 선원들이 도운 덕에 가능했다. 평범한 얼굴의 공범들이 서로 다른 무게의 죄를 쌓아 가다가 가라앉은 비극, 그것이 세월호 참사였다.

☞<세월호 참사 10주기-그날의 책임자들, 저울은 공정했을까> 인터랙티브 콘텐츠 보기https://interactive.hankookilbo.com/v/sewol/

그래픽=김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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