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위원회, 검토 끝 권고안 발표
야당 반대로 입법 과정은 험난할 듯
유럽 안에서 임신중지(낙태)에 비교적 보수적 태도를 취해온 독일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정부가 꾸린 전문가 위원회가 "임신 12주 이내 임신중지를 합법화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15일(현지시간) 미국 AP통신·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임신중지 처벌 제도를 검토해온 독일의 '재생산 자기결정·생식의학 위원회'는 이날 보고서를 통해 정부에 이같이 권고했다.
"국제 표준 못 미쳐, 임신 초기 합법화해야"
이 위원회는 지난해 중도좌파 성향의 사회민주당 올라프 숄츠 총리가 이끄는 독일 연립정부(사민당·녹색당·자유민주당) 주도로 출범했다. 정부는 법학·윤리학·의학 전문가 18명으로 위원회를 꾸리고 임신중지 처벌 여부와 범위에 대한 검토를 요청했다.
위원회는 이날 임신 초기(12주 이전) 임신중지 전면 합법화를 권고했다. 영국 가디언은 "위원회는 독일의 기존 법률이 국제 기준과 맞지 않으며 현대화될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또 위원회는 임신 중기(12주~22주)의 임신중지 허용 여부는 의회에서 결정해야 하며, 임신 후기(22주 이후)에는 중대한 사유가 없는 한 임신중지가 불법이어야 하지만 반드시 처벌할 필요는 없다고 제언했다.
현행 독일 형법은 임신중지를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범죄 피해로 임신했거나 산모 생명이 위험한 경우에만 합법적 임신중지가 가능하다. 다만 임신 12주 이내에 지정된 기관에서 상담을 거쳐 임신중지를 했을 경우 처벌이 면제된다.
면책 조항은 있지만, 원칙상 불법이란 점에서 독일은 유럽 내에서 임신중지를 엄격하게 제한하는 국가에 속한다. AP에 따르면 독일 여성 다수는 임신중지 전 상담 의무를 굴욕적으로 느끼고, 임신중지 시술을 하려는 의사도 점점 줄고 있다. 일부 독일 여성은 임신중지를 위해 네덜란드 등 이웃 국가를 찾기도 한다.
이번 권고로 독일은 임신중지 합법화 논의를 본격 시작하게 됐지만 실제 법률 개정까지는 난관이 예상된다. 보수 성향 야당인 기독민주당·사회민주당 연합,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임신중지 합법화에 반대한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야당 일각에선 합법화가 이뤄진다면 헌법재판소에 제소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칼 라우터바흐 독일 보건부 장관은 "정부는 이번 검토 결과를 논의한 뒤, 관련해 정부와 의회 차원의 절차를 제안할 것"이라면서도 "사회를 분열시키는 논쟁은 필요치 않다"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했다.
유럽에 불어온 '임신중지권 법제화' 바람
최근 유럽에서는 임신중지권을 법적으로 보장하려는 흐름이 뚜렷해졌다. 보수화한 미국 연방대법원이 2022년 임신중지권을 보장한 '로 대 웨이드 판결(1973년)' 판결을 뒤집으며, 정치사회적 변화에 따라 권리가 퇴보할 수 있다는 경각심이 커진 영향이다.
프랑스는 지난달 세계 최초로 임신중지권을 헌법에 명시했고, 유럽의회도 지난 11일 임신중지권을 유럽연합(EU) 기본권 헌장에 포함하자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유럽에서 임신중지를 가장 엄격히 제한하는 가톨릭 국가 폴란드도 임신중지 합법화를 지지하는 여론에 힘입어 법 개정을 논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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