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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취한 배로 남부군 심장부를 가로지르다

입력
2024.04.05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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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플랜터호의 노예 로버트 스몰스

미국 워싱턴DC 국립 아프리카계 미국인 역사 문화 박물관의 '미 하원의원 로버트 스몰스'의 동상. flickr

미국 워싱턴DC 국립 아프리카계 미국인 역사 문화 박물관의 '미 하원의원 로버트 스몰스'의 동상. flickr

미국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2년 5월 13일 새벽, 남부연합군 전략 기지 중 한 곳이던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 인근 리플리 해군항에 정박한 수송용 증기선 ‘플랜터’호에 만 23세 문맹의 흑인 노예 로버트 스몰스(Robert Smalls, 1839.4.5~1915.2.23)가 승선했다. 노예로 태어나 10대 때부터 주인의 지시에 따라 부두 노동자로 조타수와 정비공 돛 제작공으로 일해온 기술자였다. 그는 플랜터호의 실질적인 조타수였지만 흑인은 누구나 ‘선원 노예’일 뿐이었다. 그 새벽 그는 선장 제복을 훔쳐 입고 선장이 쓰던 것과 흡사한 밀짚모자로 얼굴을 가렸다.

장교 3명을 포함한 플랜터호의 백인 병사들은 규정을 어긴 채 하선해 육지에서 단잠을 자고 있었고 배에는 스몰스와 처지가 같은 흑인 노예 8명만 남아 있었다. 그는 일상적인 연안 항해처럼 느긋하게 출항한 뒤 피아 식별 증기 호각신호로 5개 남부군 항구 요새를 거쳐 최종 관문인 섬터 요새까지 통과했다. 앞서 그는 미리 약속한 대로 인근 항구에서 대기 중이던 선원 가족을 모두 태웠다. 스몰스의 5세 연상 아내도, 몸값이 없어 노예 신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그의 두 아들도 당연히 승선했다.
플랜터호는 해상 약 7마일 너머에서 대치 중이던 연방 해군 함대를 향해 곧장 나아갔다. 배에는 남부연합군 깃발과 사우스캐롤라이나 주기(Palmetto flag) 대신 스몰스의 아내가 침대 시트를 뜯어 급조한 백기가 걸려 있었고, 남부군 리플리 요새에 싣고 갈 예정이던 탄약 200파운드와 대포 4문 외에 남부 해군 암호책자와 찰스턴 항구 기뢰 매설 지도 등도 실려 있었다. 뉴욕타임스는 “전쟁 기간 가장 영웅적인 행동 중 하나”라 소개했고, 남대서양 연방해군사령관 새뮤얼 듀폰 제독은 “가장 멋지고 용감한 해군 작전 중 하나”라 평했다.
자유민이 된 스몰스는 전후 사업가로, 사우스캐롤라이나 시의원과 연방 하원의원으로 활약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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