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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탈환을 위한 남쪽 교두보 확보

입력
2024.05.01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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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민스미트 작전- 2

1943년 민스미트 작전을 추진하던 당시의 이웬 몬태규 중령(오른쪽). 위키피디아

1943년 민스미트 작전을 추진하던 당시의 이웬 몬태규 중령(오른쪽). 위키피디아

1943년 4월 30일 새벽, 영국 잠수함 HMS세라프(Seraph)호는 윌리엄 마틴스의 시신을 2차대전 중립국 스페인의 우엘바(Huelva) 해안 17km 지점에 투기했다. 해류 등을 감안해 스페인 어부 등이 우연히 시신을 발견할 수 있도록 면밀히 계산된 지점이었다. 양다리를 걸치고 있던 스페인 당국은 비밀문서를 은밀히 복사해 나치 정보국에 넘긴 뒤 영국 측에 시신과 서류가방을 인도했다. 6월 4일 영국 일간지 ‘더타임스(The Times)’에는 마틴스의 부고 기사가 실렸고, 진짜 유족 등이 참석한 가운데 장례식도 열렸다. 나치 정보국은 저 일련의 과정을 면밀히 조사했다.

가짜 문서에는 북아프리카 연합군이 나치 주력 방어선인 시칠리아를 우회해 서쪽 사르데냐를 기습 점령하고 후발대가 그리스 발칸반도에 상륙, 시칠리아를 협공한다는 작전 계획을 담고 있었다. “의심의 여지 없는 확실한 정보”라는 보고를 받은 히틀러와 나치 수뇌부는 5월 중순부터 시칠리아 주둔군을 사르데냐와 코르시카 요새에 재편성하고 에르빈 롬멜을 아테네로 급파해 연합군의 기습 상륙에 대비토록 했다.

민스미트 작전은 한마디로 대성공이었다. 7월 9일, 조지 패튼이 이끈 연합군 제7군과 버나드 몽고메리의 제8군은 시칠리아 해안에 큰 희생 없이 상륙, 8월 17일 무렵 잔존 방어군을 완전 섬멸함으로써 유럽 진군 남쪽 교두보를 확보했다.

전시여서 시신은 지천이었지만, 작전에 부합하는 연령대와 군 장교에 어울리는 외모와 체격, 위장에 적합한 사인(死因)의 시신을 찾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고 한다. 어렵사리 찾아낸 게 경범죄 전과자였던 유령 군인 ‘마틴스’였고, 그의 유족은 절대 신원이 공개되지 않도록 해달라는 조건을 달아 군 요청에 응했다. 이웬 몬태규는 그 약속을 지켰다. 1977년 회고록에 그는 “그(시신)가 한 일 중 유일하게 가치 있었던 일은 그가 죽은 후에 행한 일이었다”고 썼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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