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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배역보다 극적인 삶을 산 배우

입력
2024.02.29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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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 해티 맥대니얼

1939년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마미' 해티 맥대니얼(왼쪽). 맨 오른쪽이 주인공 비비안 리(스칼렛 역). 위키피디아

1939년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마미' 해티 맥대니얼(왼쪽). 맨 오른쪽이 주인공 비비안 리(스칼렛 역). 위키피디아

바하마 출신 미국 흑인 배우 시드니 포이티어가 아카데미 역사상 최초로 1964년 남우주연상을 받았지만, 흑인 최초 수상자는 1939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주인공 비비안 리(스칼렛 역)의 하녀 마미(Mammy) 역으로 여우조연상을 탄 해티 맥대니얼(Hattie McDaniel, 1893~1952)이다. 당연히 그는 훨씬 엄하고 험한 인종차별의 시대를 살았다.

캔자스주 노예 출신 부모의 13남매 중 하나였던 그는 가스펠 가수 어머니 영향으로 10대 때부터 이런저런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고, 여동생과 함께 악극팀을 꾸려 그가 성장한 콜로라도 덴버를 중심으로 보드빌 무대와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곤 했다. 1929년 대공황 직후 할리우드로 이주해 32년 영화 ‘황금의 서부(The Golden West)’로 데뷔해 무명 단역배우로 활동했고, 일이 없을 땐 청소부와 가정부, 요리사 등으로 생계를 이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조연 선발 오디션은 주연 오디션만큼이나 치열해 당시 영부인 엘리너 루스벨트가 자기 하녀를 뽑아달라고 청할 정도였다고 한다. 맥대니얼은 실제 남부 흑인 하녀 복장을 갖춰 입고 참가해 배역을 따냈다.

남부지역 영화 포스터에는 흑인이 한 명도 등장하지 않았다. 시사회가 열린 백인 전용 극장에 입장하지 못했고, 40년 2월 29일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구석에 따로 놓인 2인석에 백인 에이전트와 함께 앉았으며, 축하연에도 당연히 초대받지 못했다. 그는 만 59세로 숨졌다. 할리우드묘지에 묻히고 싶다던 그의 마지막 소원도 사후 47년 만인 1999년에야 이뤄졌다.
포이티어가 백인들이 좋아할 만한 순종적인 흑인상을 연기한 덕에 아카데미의 사랑을 받았다고 손가락질당한 것처럼 생전의 맥대니얼 역시 연기자로서 인종 편견을 조장하는 데 일조했다는 비판을 흑인 사회로부터 듣곤 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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