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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년 준비한 수술까지 미루다니... 의료공백 현실화 초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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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년 준비한 수술까지 미루다니... 의료공백 현실화 초읽기

입력
2024.02.18 17:00
수정
2024.02.18 18:53
1면
0 0

집단행동 강행에 수술 연기·취소 속출
의사들 잇단 실언... 여론은 성토 일색
의협·정부 "강경 대응"... 차질 불가피

1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로비. 이서현 기자

1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로비. 이서현 기자

"사람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데 수술을 미루다뇨."

30대 직장인 A씨는 주말 내내 속이 타들어갔다. 다음 달 골종양을 제거하기로 한 동생의 수술이 연기되거나 아예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는 병원 측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여러 의사가 함께 집도해야 하는 데다, 수술 난도도 높아 지난해 여름부터 의료진과 일정을 조율하는 등 신경을 써온 터였다. 하지만 20일 전공의(인턴·레지던트) 총파업이 예고되면서 모든 노력이 허사가 됐다. A씨는 18일 "취업한지 얼마 안 된 동생이 병을 얻은 것도 속상한데, 계속 자라고 있는 종양을 보고만 있어야 한다니 기가 찰 노릇"이라며 "한 번 취소된 수술 일정을 다시 잡으려면 적어도 3개월이 걸린다"고 분노를 드러냈다.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하는 전공의 파업이 다가오면서 의료공백 현실화도 초읽기에 들어갔다. 수술 연기나 취소 통보를 받은 환자가 속출하고, 병원들에는 불안감을 토로하는 문의 전화가 쇄도했다. 잘못된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을 바로잡겠다며 거리로 나선 의사들의 여론전에서도 외려 특권의식만 도드라지자, 안 그래도 싸늘했던 여론은 더욱 차갑게 얼어붙고 있다.

수술 못 하나... 파업 강행에 환자들 전전긍긍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로비. 김태연 기자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로비. 김태연 기자

의료계에 따르면,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이른바 '빅5' 병원(서울아산·서울대·삼성서울·세브란스·서울성모) 전공의 대표들과 논의한 결과를 토대로 파업을 강행할 계획이다. 19일까지 전공의 전원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20일 오전 6시를 기해 업무에서 손을 뗀다는 내용이다. 서울의 한 병원 관계자는 "사직서를 제출하는 전공의가 매일 늘고 있다"며 "19일 상황을 봐야 파업 동참 윤곽이 드러날 것 같다"고 말했다.

의대생들도 전공의 파업에 맞춰 '동맹휴학'으로 맞선다. 전국 40개 의대·의학전문대학원 학생 대표자로 구성된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는 16일 열린 비상대책위원회 임시총회에서 20일부터 동맹휴학 및 이에 준하는 행동을 개시하기로 확정했다.

18일 수술 연기에 대한 불안감을 호소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캡처

18일 수술 연기에 대한 불안감을 호소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캡처

병원 실무를 전담하는 젊은 의사들의 실력 행사가 현실로 나타나면서 환자들의 불안감은 증폭되고 있다. 아들이 서울성모병원에 대장암으로 입원한 김모(62)씨는 "아들 병세가 나아지지 않아 병원을 바꾸려 했는데, 다른 병원으로 옮겨도 진료나 입원이 가능한지 알 수가 없어 걱정이 태산"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갑상선암 환자를 4년째 돌본 이모(80)씨도 "다행히 19일 잡힌 수술은 진행된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아직 안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수술이 미뤄졌다는 경험담이 다수 올라왔다. 특히 일정 연기만 통보받았을 뿐, 자세한 설명을 듣지 못해 답답하다는 호소가 많았다. B씨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어머니가 20일 암센터에서 수술을 받기로 했는데 결국 취소됐다"면서 "주말이라 고객센터도 문을 닫아 문의할 방법이 없다"고 속상한 심경을 전했다. 다음 주 수술이 잡혔던 C씨도 "병원에 전화를 해도 상담대기 노래만 한 시간 듣다가 끊긴다"고 적었다.

동네병원까지? "목숨 담보로 파업하나"

김택우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장 겸 투쟁위원장이 17일 서울 용산구 협회에서 열린 의대 정원 증원 저지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뉴스1

김택우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장 겸 투쟁위원장이 17일 서울 용산구 협회에서 열린 의대 정원 증원 저지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심지어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전날 '총력투쟁'을 위해 전국의 동네병원까지 집단휴진에 돌입하는 방안을 거론하자, 여론은 성토 일색으로 돌아섰다. 낙상사고로 다리가 부러져 2주 전부터 병원 치료를 받고 있는 박모(81)씨는 "수술할 수 있는 동네 병원을 찾느라 한참을 떠돌았는데, 휴진까지 하면 의사 집단 전체가 환자 건강에는 관심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머리를 다쳐 아들이 서울대병원에 입원 중인 손모(50)씨도 "사람 목숨을 담보로 한 파업을 보노라면 그들(의사)의 고충을 절대 이해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에 파업을 둘러싼 의사들의 잇단 실언은 격앙된 국민 감정에 기름을 더 끼얹었다. 주수호 전 의협 회장은 8일 SNS에 의대 증원을 비판하며 "지방에 부족한 건 ‘민도(民度)'"라고 했다가 논란에 휩싸였다. 민도는 국민의 생활·문화 수준을 뜻하는 용어라 즉각 지방을 비하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노환규 전 의협 회장도 "정부는 의사들을 이길 수 없다. 의사들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어리석은 발상"이라고 발언한 후 집중 포화를 맞았다.

같은 의료계 종사자들까지 등을 돌려 전공의 파업은 설 자리를 잃은 모양새가 됐다. 간호사와 의료기사 등으로 구성된 보건의료노조는 이날 대국민 호소문을 통해 "환자를 살려야 할 의사들이 정부를 굴복시키겠다며 집단적으로 진료를 중단하는 것은 반(反)의료 행위"라며 국민 촛불행동 을 제안했다.

정부도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강경대응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거두지 않고 있어 한동안 의료공백 차질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선처 없이 기계적으로 엄정대응하겠다"고 단언했다.

이서현 기자
오세운 기자
이유진 기자
김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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