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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국민 아닌 박민의 방송인가

입력
2024.02.16 04: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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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7일 오후 KBS 1TV를 통해 방송된 '특별대담 대통령실을 가다'에서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논란과 관련해 박장범 앵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오후 KBS 1TV를 통해 방송된 '특별대담 대통령실을 가다'에서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논란과 관련해 박장범 앵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KBS 간판 예능 ‘개그콘서트’(개콘)의 장수 코너 ‘봉숭아학당’에서 개그맨들은 특정 상품명을 말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새우깡’은 ‘새우○’, ‘포카칩’은 ‘감자칩’, ‘갤럭시노트’는 ‘○○○노트’다. 공영방송의 현실을 ‘셀프 디스(스스로 비판)’해 시청자의 웃음을 끌어낸다.

KBS는 지난 7일 밤 녹화 방송한 윤석열 대통령의 신년 대담에서도 개콘의 주특기를 살렸다. 대담 진행을 맡은 박장범 앵커는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논란을 “이른바 파우치, 외국 회사에서 만든 조그마한 백”이라고 에둘러 표현했다. 온 국민이 알지만 KBS는 차마 말할 수 없었다.

대담은 개콘의 또 다른 인기 코너도 떠올리게 했다. ‘미운 우리 아빠’ 코너는 아빠를 걱정하는 딸과 그런 딸의 속도 모르고 엉뚱한 답을 하는 아빠의 대화가 이어진다. 상식을 비켜간 둘의 대화에서 폭소가 터진다. 박 앵커의 질문이 그랬다. 논란의 본질을 일부러 피했다. 박 앵커는 “의전과 경호 문제가 심각한 것 아닌가”, “여당에서 주장하는 ‘정치공작’에 동의하나”, “특별감찰관제와 제2부속실 설치 계획 있나”라고 질문했다.

윤 대통령은 사과나 유감 표명 없이 “매정하게 끊지 못한 것이 문제”, “대통령과 대통령 부인이 누군가를 박절하게 대하기는 어려워”, “아쉽다”고 어물쩍 넘어갔다. 마지막 박 앵커의 회심의 질문. “이 이슈로 부부 싸움 하셨어요?”라는 일격에 윤 대통령마저 크게 웃었다.

대통령의 신년 대담을 예능 프로그램에 견준다면 과도한 일인가. 국민은 대통령과 달리 박절하고 매정하다. KBS시청자 청원게시판에는 대담 관련 박 앵커의 하차와 KBS의 대국민 사과를 요구하는 청원 수십 개가 올라왔다. 이 중 1,000명 이상이 동의해 KBS가 30일 내에 답변해야 하는 청원만 16건이다. 경제위기, 의대 정원 확충,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당정 관계 등 국민적 관심사가 높은 현안에 윤 대통령의 심도 있는 답변을 끌어내기보다 웃음을 유발하는 예능에 가까웠다고 국민은 판단했다. 야당은 명품백을 파우치로 명명한 KBS 보도가 객관성과 공정성을 위반했다며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를 신청했다.

비난은 KBS가 자초했다. 지난해 11월 박민 사장 취임 이후 KBS의 공정성과 신뢰도는 추락하고 있다. KBS는 박 사장 취임 당일 주요 진행자를 일방적으로 교체하고 일부 프로그램을 폐지했다. 그렇게 만든 뉴스에서 독도를 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EEZ) 경계 안쪽에 그려 넣은 지도를 내보내고도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 지난해 말 마약류 투약 혐의로 경찰조사를 받다 숨진 배우 이선균에 대한 자극적 보도도 KBS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줬다. KBS는 혐의 사실과 동떨어진 이씨와 유흥업소 실장의 사적 대화 녹취록을 보도했다. 방심위는 해당 보도에 대한 민원을 접수하고 심의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브레이크 없는 KBS의 추락을 막을 내부 감사마저 위태롭다. 박 사장은 감사실장을 교체하고, 특별감사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취임 당시 지적한 지난 정권 보도에 대해 징계를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정부가 언론을 장악해 입맛대로 여론을 통제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박민의 방송이 아닌 정성을 다하는 국민의 방송, KBS가 보고 싶다.

강지원 이슈365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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