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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의 눈높이

입력
2024.07.26 04: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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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2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야외 정원인 파인그라스에서 가진 국민의힘 신임 지도부와의 만찬에 앞서 한동훈(왼쪽) 대표의 손을 잡고 대화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2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야외 정원인 파인그라스에서 가진 국민의힘 신임 지도부와의 만찬에 앞서 한동훈(왼쪽) 대표의 손을 잡고 대화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국민의힘이 다시 한동훈 체제로 갈아탔다. 총선을 100일 앞두고 맡은 비대위원장이 단거리 질주였다면 당대표는 윤석열 정부의 남은 임기 3년을 결정지을 수도 있는 장거리 승부다. 윤 대통령과의 운명공동체를 강조하지만 그간의 언행에 비춰 서로 부딪치고 얼굴 붉힐 일이 잦아질 수밖에 없다.

총선에 참패하고도 “108석은 굉장히 큰 숫자”라며 당당했다. 맞는 말이다. 잡아먹을 듯 달려든 당대표 선거과정을 생각하면 과분한 의석을 내줬다. 당이 쪼개져도 상관없는지 비방이 난무하고 증오를 부추겼다. “우리 뒤에는 대통령이 있다”는 자신감이 자중지란의 빌미가 됐다. 배신자, 자해라는 섬뜩한 표현까지 등장했다. 남 탓만 읊어대는 막장 드라마가 아예 끝장으로 치닫자 보는 이들은 혀를 차며 등을 돌렸다.

김건희 여사 문자 파동이 모든 사태의 발단이었다. 절차를 건너뛰려다 사달이 났다. 당정의 공식라인을 무시했다. 그러고는 누군가가 뒤늦게 내용을 흘려 뒤통수를 쳤다. 집권여당은 쑥대밭이 됐다. 한동안 잊혔던 국정농단이라는 금기어가 서슴없이 튀어나왔다. “전당대회에 끌어들이지 말라.” 대통령실은 뒤로 물러나 논란의 실체에는 애써 눈을 감았다.

영부인은 법적으로 딱히 권한이 없다. 그런데도 정권의 명운이 걸린 총선 판에 김 여사가 불쑥 끼어들었다. 공적 영역에 사적 관계를 끌어들였다. 윤 대통령이 강조해온 법과 원칙에 어긋나는 처사다. 하물며 힘으로 밀어붙이는 거대 야당도 국회법을 내세워 어떻게든 법치라는 명분을 갖춘다. 한 대표와 알고 지낸 세월이 얼마인데 고작 메시지 몇 건에 그리 야박하냐고 눙칠 일이 아니다. 당선자 축하 자리에서 “당과 뼈가 빠지게 뛰겠다”고 약속한 윤 대통령은 이번에도 박절하지 못했다.

“국민 눈높이와 민심에 바로 반응하겠다.” 지극히 당연한 말이지만 당권을 잡은 한 대표가 포부로 밝혀야 할 만큼 대통령실과 여당을 둘러싼 상황은 상식과 거리가 멀다. 앞서 비대위원장을 맡을 때도 그랬다. “국민이 걱정할 만한 부분이 있다. 국민 눈높이에서 생각할 문제다.” 쉽게 수긍할 만한 지적에 여권 내부 갈등이 폭발했다. 마치 역린을 건드린 것마냥 명품백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누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지 드러났다. 당시 대통령을 향한 90도 폴더 인사는 아직도 선명하게 각인돼 있다.

윤 대통령은 전당대회 축사에서 “국정운영의 고비를 넘을 때마다 당원동지들이 보내주는 눈빛이 든든한 버팀목이었다”고 말했다. 그토록 강렬하게 응원하던 당원들이 머리로는 압도적으로 한동훈을 선택했다. 보수의 적통을 자처해온 중진 의원도 윤 대통령과 원팀을 외친 장관 출신도 속절없이 무너졌다. 김 여사의 사과를 요구하고 윤 대통령의 변화를 촉구해온 국민적 공감대가 당심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 입증됐다.

“저희가 잘하겠습니다.” 한 대표가 현충원을 찾아 재차 다짐했다. 이제 “우리가 잘하겠습니다”로 바꿔야 할 때다. 진정 여당과 한배를 탔다면 윤 대통령이 달라져야 한다. 그게 1호 당원의 자부심을 지키는 길이다. 가뜩이나 야당의 파상공세에 끌려다니는 처지다. 윤심이 발목 잡고 김 여사 리스크에 뒷걸음질 치는데 정쟁을 넘어 민생을 챙길 수 있을까. 결국 윤 대통령의 눈높이에 달렸다. 딴 곳을 쳐다보며 초점이 달라 우왕좌왕하는 시행착오는 2년이 지나도록 충분히 봤다.

김광수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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