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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의 위기, 외교의 위기

입력
2024.01.22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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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국 갈등에 불안정 커진 한반도 정세
미 대선에 트럼프 부상으로 큰 변수 생겨
이념 선입견 벗은 현실 외교도 고민해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22일 공화당 대선후보 예비경선인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 연설하고 있다. 뉴햄프셔=로이터 연합뉴스

러처드 닉슨이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대통령 특사와 부통령 자격으로 한국을 방문한 건 1954년 11월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 발효 닷새 전이다. '닉슨'은 휴전이 공산주의 용인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하면서 이승만 당시 대통령의 한국군 단독 북진론을 꺾기 위한 카드였다. 이승만은 휴전 반대와 반공포로 석방 등을 통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완고한 노인으로 미국에 각인돼 있었다. 이승만을 설득하기 위해 강경한 반공주의자인 닉슨 이미지를 활용한 아이젠하워의 특사 이용법이었다. 그런 닉슨이 6·25 전쟁 당사자이자 수십 년간 관계단절에 있던 중국 공산당과 손을 잡고 미중 데탕트 시대를 열었다. 얼마 전 타계한 헨리 키신저는 이를 두고 “시어도어 루스벨트 이후 처음으로 국익에 기초한 선택을 했다”고 평가했다. 닉슨은 중소 간의 국경 충돌과 이념적 분열을 파고들어 베트남전에 흔들리던 미국 위상을 되찾고, 세계 질서 재편의 충격을 줬다. 미중 데탕트는 닉슨 성향상 ‘공산주의자에게 나라를 팔아먹진 않을 것’이라는 믿음에 따라, 보수층 반발도 덜했다. 공산권 맹주 소련이 붕괴되고 냉전시대 종말을 고하는 초석이 됐으니 이념 성향을 뛰어넘은 닉슨의 현실외교는 한 시대의 평가를 받을 만하다.

신냉전 시대라고 한다. 미중 경쟁의 격화와 미국 주도의 군사적 경제적 블록화가 진행되고, 우크라이나전의 장기화와 중러의 밀착 및 미국의 봉쇄정책에 대응한 중국의 응전이 그렇다. 북한은 이러한 정세 변화에 큰 기회를 잡았다. 뒷짐을 진 중러의 방조와 유엔의 무력화 속에 무차별적 미사일 시험과 핵 고도화를 진척시켰고, 무엇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계기가 된 북러의 군사, 경제협력은 기왕의 유엔 제재마저 뒷문이 활짝 열린 모양새다. 한미동맹과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가 한반도 주변 긴장을 고조시킨 반작용 또한 만만찮게 됐다. 북한은 우리 측의 감시 정찰 잠정 유예를 빌미로 9·19 군사합의 파기와 함께 “대사변 준비” 등 위기 조성에 혈안이 된 형편이라 지난해 동맹 복원의 낙관론과 달리 호락호락할 게 없는 갑진년의 한반도 상황이다.

더욱이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심상치 않은 부상은 어떤 주변 변수보다 더 큰 위험요인이다. 트럼프의 사법리스크가 발목을 잡을 거란 관측도 있지만, 미국 사법부가 내란을 각오하지 않는다면 국민 절반의 지지를 받는 트럼프를 좌초시킬 용기를 내겠느냐는 말이 더 그럴듯하다. 공화당 후보 독주체제를 공고히 하고 있는 트럼프의 기세는 캠프데이비드 선언을 포함한 동맹의 미래에 대한 불안정성을 점점 더 높일 게 분명하다. 블록화나 동맹 강화, 북한문제, 한미나 한미일 연합훈련 등 조 바이든 대통령의 대외정책 기조를 뒤엎을 게 명백한 트럼프식의 미국 일방주의와 리얼리티쇼 수준의 쇼맨십이 몰고 올 파장에 우리는 대비돼 있지 않다. 상황 변화만 지켜볼 뿐 대비하기도 어정쩡한 입장이기도 하다.

트럼프는 선거 과정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해 우호적 언행을 심심찮게 드러내는 걸 보면 북핵 용인만이 아니라 핵군축을 하자고 덤벼들 개연성도 부정할 수 없다. 그것이 어쩌면 외교정책 관성에 이끌리지 않았던 트럼프식 현실외교에 더 맞닿아 있을 것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하는 수준에서 핵문제를 포함한 우리의 안보 전략과 외교 정책 방향을 어떻게 정할지 고민해야 할 시기다. 우리로선 안보의 위기인 동시에 우리 외교의 위기이기도 하다. 닉슨처럼 이념적 선입견을 벗는다면 전략적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도 부디 명심하기 바란다. 기왕의 관성과 진영논리에 빠지다 보면 북한의 고전적인 통미봉남 행태에 허둥댈 수도 있으니 말이다.

정진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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