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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의 다짐: "복권도 사야 당첨된다"

입력
2024.01.08 04:30
수정
2024.01.08 09:22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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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주’와 ‘고시원’이 국립국어원이 편찬하는 표준국어대사전에 지난 연말 표제어로 추가됐다. 표제어 선정 기준은 사용 빈도와 시대상이다. 두 단어가 모두 빈번하게 쓰인다는 건 건물주가 상징하는 풍요와 물욕, 고시원이 암시하는 빈곤과 절망이 동시에 무성한 시대라는 뜻이겠다. 지독한 양극화의 증거이기도 하다.

건물주의 세계와 고시원의 세계 사이의 점점 더 커지는 격차는 차라리 포기하고 회피하려는 마음을 퍼뜨렸다. “이렇게 태어나버렸는데, 저 위로 못 올라갈 텐데,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버거운데, 애쓰고 기 쓰고 힘쓰고 용쓰는 게 무슨 소용?” 법정스님이 무소유를 설파했다면 요즘 시대정신은 무소용인지도 모른다.

나도 무소용교의 신자였다. 마감에 매일 시달리는 기자로 25년 가까이 살고 나니 에너지가 바닥을 보였다. 건물주로 점프해 인생을 리셋하고 싶었지만 은행 잔고는 하찮았고 재벌가 상속자로 밝혀지는 출생의 비밀도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호환마마보다 무서워한다는 가속노화를 부추기는 것들로 도피했다. 술, 단순당, 인터넷 쇼핑, SNS, 쇼츠 영상까지. “죽으면 어차피 썩을 몸인데, 아무려면 어때…”

그러다 지난해 여름 근육운동을 시작했다. 독일 신경생물학자 게랄트 휘터가 유의미한 삶의 방식에 대해 쓴 책 ‘존엄하게 산다는 것’을 읽다가 이 문장에 꽂혀서다.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없지만 매 순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아갈 것을 결정할 수는 있다.” 먹다 떨어뜨린 대봉시처럼 푹 퍼져서 살다가 생을 마감하긴 억울했다. “죽어서 썩으려고 태어난 건 아니잖아…”

피티숍 회원권을 끊어 무념무상인 채로 다녔다. 당장의 소용은 따지지 않았다. 그래서 계속할 수 있었다. 올라붙지 않는 엉덩이 근육에 일주일 단위로 좌절했다면, 런지 한 세트 할 때마다 벌크업 된 나를 상상했다 꿈 깨기를 반복했다면 금세 질렸을 것이다. 일부러 세지 않은 시간이 쌓이고 흘린 땀이 나도 모르게 늘더니 체중의 1.5배가 넘는 바벨을 들고 데드리프트를 할 수 있게 됐다. 그런 몸의 쓸모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마음은 터진 감 상태를 벗어났다.

선수 시절 김연아는 제목부터 비장한 MBC 다큐멘터리 ‘퀸 연아! 내가 대한민국이다’에서 “무슨 생각 하면서 스트레칭하세요?”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 넷플릭스 신작 다큐 ‘캡틴스 오브 더 월드’에 나온 리오넬 메시의 멘털도 다르지 않았다. “어린 메시를 만난다면 어떤 조언을 하고 싶나요?” “그때 되뇌던 말이요. 축구를 즐기고 하던 걸 계속하라는. 그게 가장 중요하고 결과는 알아서 따라오니까요.”

‘퀸’과 ‘신(神)’의 말이니 깎아 들어야겠지만, 둘이 보통의 사람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본질적으로 같다고 생각한다. 소용됨에 집착하거나 일희일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소용 있고자 하면 소용을 잊어야 한다는 것이 소용의 역설이다. 그래야 힘 빼고 시작할 수 있다. 지치지 않고 몰입할 수도 있다.

이 칼럼을 쓰겠다고 하니 뼈 때리는 말 잘하는 지인이 말했다. “맞아. 복권도 사야 당첨돼.” 그렇다. 소용은 결과이고 시도하지 않으면 소용도 발생하지 않는다. 인생도 세상도 바뀌지 않는다. 그러니 망설이지 말고 무엇이든 시작하고 보는 새해 보내시기를.


최문선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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