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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수학자·전쟁 영웅·동성애자… 인간 튜링, 편견에 질문을 던지다

입력
2023.11.21 15:00
수정
2023.11.21 19:39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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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튜링머신'

편집자주

공연 칼럼니스트인 박병성이 한국일보 객원기자로 뮤지컬 등 공연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격주로 연재합니다.

연극 '튜링머신'. 크리에이티브테이블 석영 제공

연극 '튜링머신'. 크리에이티브테이블 석영 제공

애플사의 로고는 한입을 베어 먹은 사과 모양이다. 이 로고와 관련해서는 최초의 컴퓨터를 만든 영국 수학자 앨런 튜링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라는 풍문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독일군의 암호를 풀기 위해 최초의 컴퓨터를 만든 '컴퓨터 과학의 아버지' 앨런 튜링은 수백만 명의 목숨을 구했지만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화학적 거세를 당하고 결국 청산가리가 묻은 사과를 먹고 자살을 한다. 연극 '튜링 머신'은 바로 그 앨런 튜링의 이야기이다.

무대는 사면이 객석으로 둘러싸여 있다. 천장에는 거대한 원형 모양의 틀 기둥이 있고 그 아래 둥근 모양이나 직육면체의 작은 테이블이 여러 개 놓여 있다. 그 위에 체스판, 방독면, 러닝화, 잠옷, 액자, 독일 암호기 애니그마 그리고 사과가 있다. 이 물건들은 앨런 튜링이 들려주는 이야기의 단초가 되는 물건들이다.

작품은 총 세 개의 시간대를 오간다. 1952년 현재 집에 도둑이 들었다는 튜링의 신고로 로스 수사관이 이를 조사한다. 어딘지 의심스러운 튜링을 조사하면서 그의 과거가 하나씩 밝혀진다. 조사 과정 중 로스 수사관은 튜링의 강의 '기계는 생각할 수 있는가'에 참여해 논쟁을 벌인다. "영혼이 없는 기계가 어떻게 생각을 할 수 있는가, 단지 프로그램 된 상태로 행동하는 것을 생각한다고 할 수 있는가." 로스의 생각은 아마도 보통 일반인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에 튜링은 "기계는 인간과 다르다. 그러니 생각도 다르게 한다. 그렇다면 인간처럼 생각하지 않을 때, 우리는 그것이 생각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려야 할까"라며 반문한다.

연극 '튜링머신'. 크리에이티브테이블 석영 제공

연극 '튜링머신'. 크리에이티브테이블 석영 제공

1938년 튜링은 체스 선수 휴 알렉산더를 만나 독일의 암호를 푸는 기계 만드는 작업을 함께한다. 2년여 동안 실패를 거듭한 가운데 알렉산더마저 떠난 뒤에도 튜링은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생각해 내는 기계를 완성한다. 독일의 암호를 해독했지만 결정적 한방으로 전쟁을 종결짓기 위해 지속되는 희생을 눈감는다. 암호 대응을 지연시켰기 때문에 전쟁에서 형이 죽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로스는 분노한다. 전쟁 중이라는 변명으로 책임을 회피하려던 튜링도, 튜링에 대한 수사가 그가 비밀을 잘 지키는지를 알기 위한 정부 담당자의 술책임을 알게 된 로스도 모두 시스템 안에서 기계처럼 움직이고 있었다는 걸 깨닫고 자책한다. 누가 인간이고, 누가 기계인가.

1950년 튜링은 거리에서 호텔의 서버로 일하는 아널드 머레이를 만나 사귄다. 사회적으로 동성애를 범죄시하던 시기, 이것이 문제가 되자 머레이는 튜링에게 매수된 것이라며 빠져나간다. 로스도, 알렉산더도 튜링에게 동성애를 인정하지 말고 조용히 넘어가라고 하지만 튜링은 법정에서 동성애를 인정한다. "진짜 단 하나의 범죄는 자신을 수치스럽게 여기는 것, 인습에 순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감옥에 간 튜링은 감옥행과 화학적 거세 중 아이러니하게도 후자를 선택한다. 감옥에서는 더 이상 연구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두 개의 결정이 모순 같지만 동성애자이자 과학자로서 어떤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여기에 또 하나의 시간대가 잠시 등장한다. 1930년. 열여덟 살의 튜링이 처음으로 동성에게 호감을 느꼈던 때이다. 그의 이름은 크리스토퍼. 크리스토퍼는 튜링이 개발한 암호 해독기에 붙인 이름이기도 하다. 세상의 편견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크리스토퍼에 대한 사랑과 '생각하는 기계'는 튜링에게 같은 의미이다.

연극 '튜링머신'. 크리에이티브테이블 석영 제공

연극 '튜링머신'. 크리에이티브테이블 석영 제공

연극 ‘튜링 머신’은 ‘컴퓨터’와 ‘동성애’ 그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두 요소를 플롯으로 삼아 그의 삶을 복기한다. 과학자로서의 업적과 사적인 취향은 그의 삶에서 다른 영역인 것 같지만 결국 그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다. 인간은 타자(他者)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는가. 인간은 편견 없이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가. 수학처럼 명증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싶었던 앨런 튜링은 결코 그렇지 못한 세상 속에서 고독하게 인습에 대항한다. 그의 용기 있는 패배는 다음 세대에 바통이 전해져 다시 시도된다.

작품의 배우는 단 두 명. 고상호가 앨런 튜링을 맡고, 이승주가 각 시대의 중요 인물과 그밖에 역할을 도맡아 한다.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와 세련된 무대, 그리고 자연스러운 연출이 밀도 있게 극을 이끌어간다. 무엇보다도 편견 없이 자신을 들여다보았던 한 인간이 겪는 내적 고뇌와 성찰을 담아낸 지적인 희곡은 삶에 대해 깊게 사색하게 한다. '튜링 머신'은 25일까지 LG아트센터 U+스테이지에서 공연한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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