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알면서도 아내를 잃어버린...뮤지컬 '하데스타운'의 오르페우스는 시인이었다

입력
2024.07.17 17:07
수정
2024.07.17 17:25
19면
0 0

[박병성의 공연한 오후]
뮤지컬 '하데스타운'

편집자주

공연 칼럼니스트인 박병성이 한국일보 객원기자로 뮤지컬 등 공연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격주로 연재합니다.

뮤지컬 '하데스타운'. 에스앤코 제공

뮤지컬 '하데스타운'. 에스앤코 제공

어떤 뮤지컬을 떠올리면 자동으로 재생되는 멜로디가 있다. 허름한 방에 몽환적으로 울리는 '렌트'의 오프닝 기타 연주, 화려한 재즈 오케스트라가 경쾌한 리듬을 만들어 내는 '코러스 라인'의 전주. '하데스타운' 하면 작품의 테마곡인 오르페우스의 사랑 노래 '기다려 줘'와 더불어 오프닝에 강렬하게 울려 퍼지는 트럼본 연주가 귓가에 맴돈다. 끈적이고 강렬한 트럼본 연주는 광산의 뜨거운 열기와 매캐한 연기가 가득한 하데스타운으로 관객들을 안내한다.

뮤지컬 '하데스타운'은 그리스 신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를 소재로 한다. 현대 뮤지컬에서 신화를 다룬 작품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복잡하고 다채로운 이해관계가 뒤엉킨 현대인에게 신화의 세계는 너무나도 운명적이고 인간관계는 단순하다. 그럼에도 매우 잘 알려진 신화로 만든 뮤지컬이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히트할 수 있었던 것은 작품의 작곡가이자 원개발자인 싱어송라이터 아나이스 미첼이 10년 넘게 작품 개발에 공을 들여 신화를 현대적으로 각색한 덕분이다.

가난하나 자유로운 지상과 풍요하되 자유 잃은 지하 세계

뮤지컬 '하데스타운'. 에스앤코 제공

뮤지컬 '하데스타운'. 에스앤코 제공

'하데스타운'은 지상과 지하 세계를 삶과 죽음으로 분리된 공간이 아닌, 가난하지만 자유로운 지상과 풍요롭지만 자유를 잃은 지하 세계로 설정한다. 지상은 점점 겨울이 길어지며 꽃과 나무가 자라지 않아 황폐해져 가고, 하데스가 지배하는 지하 세계 사람들은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자유를 빼앗기고 자신의 이름조차 잊어버린다. 현실의 가혹함을 알았던 에우리디케는 가난과 배고픈 날이 계속되자 작곡에만 물두하는 남편 오르페우스를 떠나 하계로 내려간다.

하데스와 페르세포네의 이야기는 또 다른 사랑의 형태를 보여준다. 하데스는 페르세포네의 미모에 반해 납치한다. 그러자 지상의 생명은 시들고 황폐해져 간다. 그래서 1년 중 반은 페르세포네를 지상으로 보내고 그리워하고 걱정하며 마음을 졸인다. 하데스가 지하 세계에 세운 두꺼운 벽은 아이러니하게도 이곳 사람들이 가진 것을 지키고 자유롭게 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는 페르세포네를 사랑해 가두었고 소유에 집착하지만 자신이 왜 그렇게 집착하는지는 잊은 듯하다.

또 다른 신들도 등장한다. '맥베스'의 마녀들처럼 운명의 여신 3명이 재즈 트리오로 나온다. 그들은 오르페우스가 실패할 것을 예고하듯 주위를 맴돌며 인간에게 주어진 운명과 한계를 상기시킨다. 반면 헤르메스는 작품을 이끄는 해설자로 운명에 맞서는 오르페우스를 우호적 태도로 응원한다.

오르페우스는 사랑 노래('서사시3')로 하데스의 견고한 벽을 부수고 차디차게 굳었던 마음에 사랑의 마음을 되살려 낸다. 그리고 아내 에우리디케와 되돌아갈 기회를 얻지만 신화와 마찬가지로 지상으로 올라오는 입구에서 뒤를 돌아보면서 에우리디케를 잃게 된다. 오르페우스는 흔들리지 않는 확신보다는 풍부한 감성과 자유, 그리고 상상력을 지닌 시인이었다. 긴 어둠의 길을 걸으며 아내가 정말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데스타운’은 실패의 노래와 그 불안전한 노래를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인간의 존재를 긍정한다. 매번 언덕으로 돌을 굴려 올리는 시지프스를 긍정하는 카뮈처럼. 반복되는 실패가 언젠가는 사랑을 완성할 것이라고 믿는다.

멜로디·서사적 가사 매력적인 뮤지컬 넘버

뮤지컬 '하데스타운'. 에스앤코 제공

뮤지컬 '하데스타운'. 에스앤코 제공

'하데스타운'은 비교적 단순한 신화를 현대에도 유효한 메시지를 지닌 이야기로 풀어낸다. 특히 노래는 기성 뮤지컬 넘버와는 구별되는 독특한 매력을 지녔다. 노래 자체로 독특한 음악적 색채를 지니면서도 드라마를 이끌어 가는 구성력도 뛰어나다. 뉴올리언스 재즈와 포크 록을 결합한 멜로디도 매력적이지만 서사적 가사는 신들의 이야기를 노래한 그리스 연극을 떠올리게 한다. 미완의 사랑 노래가 서서히 완성되는 과정을 통해 지하의 왕 하데스의 사랑 이야기가 퍼즐처럼 완성되고, 이렇게 완성된 사랑 노래가 하데스의 마음을 열고 잊었던 사랑의 감정을 싹트게 한다.

누구 하나 나무랄 데 없는 재능 있는 배우들의 연기가 작품의 매력을 온전히 전한다. 독창적 극 구조와 색깔이 분명한 음악이 매력적이면서도 음악이 중심이 돼 서사를 이끌어가는 전형적인 뮤지컬 방식을 구현하는 놀라운 작품이다. 올해 10월 6일까지 서울 송파구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한다.


객원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