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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뺑뺑이 대신 팀플레이 4시간…'부카츠' 학생에겐 '중2병'이 없다

입력
2023.11.13 14:00
수정
2023.11.25 16:47
3면
0 0

[K스포츠의 추락, J스포츠의 비상]
<1>엉망이 된 코트, 벌어진 격차
일본 중학생 3명 중 2명, 고교생 2명 중 1명꼴 선수
주10시간 이상 방과후 운동부 훈련에 주말엔 경기
'입시 중심' 정서로는 이해 불가 "인간 만들려 운동"
"부카츠 하면 일탈 적어" "한눈팔 겨를 없어" 공감

편집자주

한국 스포츠, 어떻게 기억하나요?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크게 도약한 우리 스포츠는 국민들에게 힘과 위로를 줬습니다. 하지만 저력의 K스포츠가 위기에 섰습니다. 프로 리그가 있는 종목조차 선수가 없어 존망을 걱정합니다. 반면, 라이벌 일본은 호성적을 거두며 멀찍이 달아났습니다. 희비가 엇갈린 양국 스포츠 현실을 취재해 재도약의 해법을 찾아봤습니다.

지난달 19일 저녁 일본 시즈오카시 히가시토요다 중학교 운동장에서 스포츠소년단 소속 초등생 축구 단원들이 드리블과 수비 훈련을 하고 있다. 시즈오카=유대근 기자

지난달 19일 저녁 일본 시즈오카시 히가시토요다 중학교 운동장에서 스포츠소년단 소속 초등생 축구 단원들이 드리블과 수비 훈련을 하고 있다. 시즈오카=유대근 기자


좋았어! 빠르게 전환해 동료에게 볼을 넘기자.

지난달 19일, 가을 저녁의 어둠이 짙게 깔린 일본 시즈오카시 히가시토요다 중학교 운동장에는 기합 소리가 넘쳤다. 스포츠소년단 소속 초등학생 축구부원들이 모여 연습에 열중했다. 코치는 부정적 질책을 거의 하지 않았다. 대신 “잘했어” “발전했어” 등의 표현을 써가며 아이들의 기를 살려줬다. 훈련 모습을 지켜보던 지역주민 우메하라 도미히토(56)는 “일본의 학교 운동장이나 체육관에 가보면 저녁까지 운동하는 아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학생들이 ‘학원 뺑뺑이’를 돌 때 일본 학생들은 운동을 택한 것이다. 일본 아이들은 왜 운동에 진심일까.

오타니의 훌륭한 인품…"타고난 심성에 교육 더해진 결과"

일본에선 인간을 만들기 위해 운동을 시킨다고 해요. 학교나 부모가 아이들에게 운동 부카츠(部活∙운동부 활동)를 적극적으로 권하는 까닭도 여기 있죠.

30년째 한일 양국의 스포츠 분야를 취재해온 오시마 히로시(62) 작가는 일본인들이 학창 시절 운동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이유를 두고 “인간성 함양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일본 야구계 슈퍼스타 오타니 쇼헤이(29∙LA 에인절스)가 대표적인 예라고 설명했다. 오타니는 경기장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고, 심판의 오심에도 미소로 응대해 야구팬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다. 타고난 심성과 가정교육 덕도 있지만 부카츠에서 철저히 배운 결과라는 게 히로시 작가의 분석이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의 간판 스타인 오타니 쇼헤이가 지난 2월 17일 애리조나주 템피 디아블로 스타디움에서 열린 소속팀 LA에인절스 스프링캠프에서 팀 동료들을 향해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애리조나=연합뉴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의 간판 스타인 오타니 쇼헤이가 지난 2월 17일 애리조나주 템피 디아블로 스타디움에서 열린 소속팀 LA에인절스 스프링캠프에서 팀 동료들을 향해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애리조나=연합뉴스

한국인의 상식으로 보면 일본의 초∙중∙고교생은 운동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는다. 일본 문부과학성 산하 문화청의 2018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본 중학생은 3명 중 2명 이상(70.6%)이 운동부 활동을 했다. 고교생도 절반 이상(52.7%)이 운동부에서 땀을 흘렸다. 운동부원들은 주3~5일씩 정규 수업을 마치고 하루 1~4시간가량 훈련한다. 주말에도 쉬지 않는다. 연습 경기나 지역 대회가 주로 주말에 열리기 때문이다.

일본의 축구 발상지인 시즈오카의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아들을 보냈던 박병춘(45) 서울예림디자인고 일본어 교사는 “우리나라 고교생이 일주일에 10시간 넘게 대학 입시와 무관한 활동을 한다고 하면 모두가 뜯어말리겠지만 일본에선 정서가 완전히 다르다”고 설명했다. 요코이 가즈히로(48∙보건체육 교사) 곤코오사카고교 야구부 감독은 “스포츠 추천(체육 특기자) 등 일부 대입 전형에 부카츠 활동이 반영될 뿐 일반 입시 전형에선 전혀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했다. 학생기록부에도 ‘어느 부에서 운동했다’ 정도로만 짧게 언급될 뿐이다. 일본 학생들은 입시와는 무관한 목적으로 운동부 활동을 한다는 얘기다.

2002~2003년 시즌 당시 일본 시즈오카가 연고지인 시미즈 에스 펄스에서 뛰었던 안정환의 모습.

2002~2003년 시즌 당시 일본 시즈오카가 연고지인 시미즈 에스 펄스에서 뛰었던 안정환의 모습.


"이겨도 상대 앞에서 너무 좋아하지 말라"

일본 학교들도 부카츠를 교육과 떼어놓고 보지 않는다. 교과 교육만으로는 온전히 배우기 어려운 인성과 사회성을 부카츠를 통해 익힐 수 있기 때문이다. 훈련 과정에서 인내심을 기르고, 규칙 안에서 경쟁하며, 팀플레이(협동)를 하지 않으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없다는 걸 깨닫고, 패배했을 때 이를 복기해 다시 재도약하는 힘을 키울 수 있다. 축구 국가대표 출신인 이영표 전 강원 FC 사장은 “친구를 내신 경쟁에서 눌러야 할 대상으로만 보면 내가 잘하는 만큼 남이 못하길 바라게 된다”면서 “제대로 된 스포츠 교육을 받으면 승자에게 박수를, 패자에게 위로를 보내주며 이타심을 기를 수 있다”고 했다. 야마자키 타쓰야 도쿄 간다여학원고 소프트볼부 지도교사는 “’경기에서 이겨도 상대팀 앞에서 너무 좋아하지 말라’는 점을 부원들에게 가장 강조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20일 일본 오사카의 곤코오사카고교 여자 배구부원들이 체육관에서 연습을 하고 있다. 뒤편으로는 훈련 중인 농구부원들이 보인다. 오사카=유대근 기자

지난달 20일 일본 오사카의 곤코오사카고교 여자 배구부원들이 체육관에서 연습을 하고 있다. 뒤편으로는 훈련 중인 농구부원들이 보인다. 오사카=유대근 기자

실제로 일본에선 부카츠 활동에 적극적인 학생일수록 일탈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 있다. 일본에서도 ‘중2병’(사춘기 때 심리적 혼란과 불만이 쌓여 반항과 일탈이 잦아지는 현상)이라는 용어가 쓰이지만, 운동하는 학생들은 생활 패턴이 단순해져 일탈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소프트볼 금메달리스트인 사토 리에(43) 도쿄여자체육대 교수는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내가 졸업한 고교는 문무양도(文武兩道·공부와 운동을 모두 중시하는 기조)를 강조했던 터라 수업이 오후 3시에 끝나면 4시간 동안 운동한 뒤 학교에 남아 오후 9시까지 공부하고 귀가했다”면서 “공부와 부카츠 활동만 해도 너무 바빠서 한눈팔 겨를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박 교사는 “사춘기 아이들의 내면에는 엄청난 에너지가 쌓여 있는데 이를 운동을 통해 건강하게 분출시켜 주면 사고를 덜 치는 것 같다”고 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소프트볼 금메달리스트인 사토 리에 도쿄여자체육대 교수가 지난달 12일 학교 연구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며 소프트볼 공을 쥐고 있다. 도쿄=유대근 기자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소프트볼 금메달리스트인 사토 리에 도쿄여자체육대 교수가 지난달 12일 학교 연구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며 소프트볼 공을 쥐고 있다. 도쿄=유대근 기자


지도교사 과로 등 '블랙 부카츠' 문제도…"지역사회 이관 논의"

부카츠 활동의 ‘그림자’도 있다. ‘고몬’(顧問)으로 불리는 부카츠 지도교사의 과로 문제가 대표적이다. 선수 출신 전문 지도자를 운동부 감독으로 고용하는 우리와 달리 일본에선 일반 교사가 운동부를 맡는다. 이들은 교과 수업을 진행한 뒤 방과후에 부카츠 연습도 지도한다. 주말엔 시합까지 챙겨야 하니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잔업 수당도 매우 적다. 시합 출전 등으로 아이들을 종일 지도하는 날에도 3,600엔(약 3만2,000원)밖에 받지 못한다. ‘블랙 부카츠’(부카츠 활동의 어두운 면을 통칭하는 용어)라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다.

이 때문에 일본에선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학교가 맡아온 방과후 스포츠 활동을 지역사회로 조금씩 넘기려는 움직임이 있다. 다만, 부카츠의 순기능이 워낙 크기에 급작스레 축소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우메하라는 “운동을 통해 아이들이 인간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어, 운동부 기능이 지역사회로 일부 이양돼도 스포츠를 하려는 학생 수요가 크게 줄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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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즈오카·오사카= 유대근 기자
김지섭 기자
이오늘 인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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