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대통령에게 죄송하거나 감사하거나

입력
2023.10.20 17:00
18면
0 0

사퇴하며 "대통령께 죄송하다"는 김행
낙마한 장관 후보자들 대국민 사과 인색
새 장관엔 국민 바라보는 인물 발탁해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직원과 대화하고 있다. 뉴스1

이른바 ‘주식 파킹’ 의혹, 인사청문회 중도 이탈 논란 끝에 물러난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의 사퇴 입장문 중 눈에 띈 대목이 있다. “윤석열 대통령님께 누가 되어 죄송합니다.”

자신을 믿고 발탁한 인사권자에 대한 인간적인 미안함이 없을 순 없겠다. 대통령의 국정 운영 계획에 차질이 생겼고, 여론이 악화해 정부·여당의 부담이 커졌으니 말이다. 그러나 사과의 방향이 영 잘못됐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자질 논란과 잇따른 말 바꾸기에 대한 실망, 인사청문회에서 보여준 태도로 인한 분노로 국민들이 등을 돌렸는데, 김행 후보자는 국민보다는 대통령에 대한 사과가 먼저였다. 그는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고, 불법은 결코 저지르지 않았으며 결백을 입증하겠다”고 한 뒤 입장문 말미에서야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고 했다.

김 후보자가 국민을, 장관직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입장문에 고스란히 담겼다. 그는 자신을 “장관 후보자 이전에 국민의힘 당원”이라고 표현했다. “(패배한)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를 지켜봤고, 당원으로서 선당후사(先黨後私)의 자세로 사퇴하기로 결심했다”고도 했다. 현행 정당법은 국무위원의 당적 보유를 금지하지 않고 있으니 법적으로 문제 삼을 순 없지만, 그래도 한 나라의 장관이 되려 했던 사람이 직을 내려놓는 이유로 ‘선당후사’를 거론한 것은 정말 이해할 수 없다.

국민 전체를 위해 아동·청소년, 인구·가족 정책을 수립하고 이끌어야 할 사람이 특정 정당 당원의 정체성을 앞세우고, 마치 왕조 시대 임금을 바라보듯 대통령을 대하는 것이야말로 ‘누를 끼치는’ 일이 아닌가.

그런데 이번 정부 들어 이런 풍경이 낯설지 않다. 지난해 낙마한 한 장관 후보자도 사퇴 입장문에서 “중책을 맡겨주신 대통령께 죄송한 마음 가눌 길 없다”고 했다.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여러 문제가 드러나 사퇴한 다른 장관 후보자들 역시 각종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고 강변한 뒤 “지지하고 성원해주신 대통령에게 감사하다”고 했다. 국민에게 사과한 이들은 일부였고, 모두 입장문 끝부분에 사과를 끼워 넣었다.

이전 정부에서도 크게 다른 점은 없었다. 문재인 정부 때 물러난 장관 후보자 중 많은 이들이 남긴 사퇴의 변은 “개혁의 걸림돌이 되지 않겠다. 정부의 개혁이 성공하길 바란다”는 것이었다. 대부분 낙마에 대한 억울함을 드러내며, 스스로를 ‘희생양’으로 여겼지만 정작 국민에게 사과한 후보자는 드물었다.

자료들을 검색해보니 그래도 2010년대 초반까지는 낙마한 총리·장관 후보자의 사퇴 입장문이 “국민 여러분을 실망시켜 죄송하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진심이 담기지 않은 정치적 수사(修辭)에 불과하다고 비판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그조차도 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갈수록 국민보다는 권력자, 인사권자만 바라보는 이들이 장관으로 중용된다고 볼 수 있겠다.

역대 정부가 대부분 책임장관제를 강조했고, 윤석열 대통령도 대선 후보 시절 “전권을 부여하되 결과에 확실하게 책임지는 분권형 책임장관제를 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런데 대통령에게 ‘죄송하거나 감사한’ 사람들이 장관이 된다면 이들이 무슨 책임을 지고, 정책을 추진할 수 있을까.

여당의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이후 윤 대통령은 연일 민생을 강조하고 있다.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지려면 실력 있는 장관들이 움직여야 한다. 정치권에서는 국정감사 이후 개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새 장관 인선에는 ‘대통령바라기’ 대신 국민의 눈치를 보는 인물이 발탁돼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원칙이 지켜지길 바란다.

한준규 뉴스2부문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