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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이 가벼운 정치

입력
2024.07.19 17:0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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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당 못할 의혹만 양산한 與 막장 전대
"이재명 보위"만 외치는 野 노잼 전대
기대보다는 우려 앞서는 차기 지도부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나경원(왼쪽부터), 원희룡, 윤상현, 한동훈 후보가 18일 KBS별관 스튜디오에서 국민의힘 제4차 전당대회 당대표 후보 TV토론에 앞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나경원(왼쪽부터), 원희룡, 윤상현, 한동훈 후보가 18일 KBS별관 스튜디오에서 국민의힘 제4차 전당대회 당대표 후보 TV토론에 앞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정치를 엔터테인먼트에 비유한다면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흥행에 성공한 셈이다. 유력 차기 대권주자를 포함한 스타 정치인들이 총출동한 가운데 배신과 음모, 폭로가 난무하는 스토리 전개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지지자들 간 신경전과 폭력사태 등 '희곡·배우·관객'이라는 연극의 3요소를 완벽하게 갖췄다. 여기에 '문자'로만 등장한 김건희 여사의 특별출연은 화룡점정이다.

막장극은 보고 있는 동안은 흥미진진하지만 끝난 뒤엔 빈곤한 내용 탓에 헛헛함이 밀려오는 법이다. 막바지로 접어든 국민의힘 전대도 예외는 아니다. 무엇보다 무대에 오른 후보들이 자신만의 뚜렷한 비전이나 명분이 없다 보니 처음부터 경쟁 후보의 약점을 겨냥한 네거티브에 몰두해 왔다. 나경원·원희룡·윤상현 후보가 연일 윤석열 대통령과 소원해진 한동훈 후보를 겨냥해 배신자론과 총선 패배 책임론을 제기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네거티브는 선거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대에서 꼬리를 물고 제기된 폭로들로 인한 의혹들은 여권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다. 지난 1월 김 여사가 한 후보에게 보낸 문자들이 공개되면서 불거진 당무 개입 논란은 약과다. 문자에 등장한 김 여사의 '댓글팀' 존재 여부가 논란이 되자, 한 후보가 법무부 장관 시절 여론조성팀을 운영해 왔다는 장예찬 전 청년최고위원의 폭로가 이어졌다. 조직적 여론조작은 민주주의 훼손과 국정농단으로 번질 수 있는 사안이다. 이러한 의혹에 영부인이 등장한다는 것 자체가 예사롭지 않은 일인데, 상대 공격을 위해 조자룡 헌 칼처럼 쓰는 무신경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한 후보도 지난 17일 토론회에서 "나 후보가 본인의 국회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과 관련한 공소를 취하해 달라고 요청했다"며 폭로전에 가세했다. 법무부 장관 시절 야당을 상대할 때 선보였던 전투력을 여당 인사에게 발휘한 것이다. 나 후보는 "반헌법적 공소 제기"였다며 펄쩍 뛰었고 당내에서도 "민주당 정권 당시 당을 위해 희생한 사건"이란 비판이 들끓자, 여차했는지 한 후보는 평소와 달리 하루 만에 사과했다. 그렇다고 해서 여당 인사가 자신이 연루된 사건을 비공개적으로 법무부 장관에게 공소 취하를 청탁한 사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야당은 벌써 여권을 향해 댓글팀의 실체와 공소 취하 청탁에 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벼르고 있다. 초가삼간을 태우는 줄 모른 채 당권 확보를 위해 상대의 명줄을 서로 잡고 흔들고 있는 여권의 자업자득이다.

자폭 수준의 국민의힘 전대를 강 건너 불구경 중인 더불어민주당의 전대도 별반 다를 바 없다. 이재명 전 대표의 명분 없는 재출마를 비롯해 강선우·김민석·김병주·민형배·전현희·한준호 등 최고위원 후보의 찐명 호소가 한창이다. 똑같은 주장만 있다 보니 노잼 수준이다. 이들에게 이 전 대표의 연임은 상수이고, "이재명 대통령 시대를 열겠다"(강선우 후보)는 민망한 충성 맹세에도 거침없다. 이재명 방탄이나 보위가 아니면 출마한 이유조차 불분명한 이들이 다수다. 그나마 종합부동산세 개편·금융투자소득세 유예 등을 시사하며 우클릭에 나선 이 전 대표에 맞서 "종부세는 민주당의 근간"이라며 정책 논쟁을 벌이는 김두관 후보가 눈에 띄는 정도다.

이토록 참을 수 없이 가볍기만 한 여야 전대를 보면서 좋은 정치란 무엇인지 자문해 봤다. 거칠게 규정하면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고 내일에 대한 희망을 주는 정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야 전대에는 어제에 대한 반성이 없으니 내일에 대한 희망은커녕 오늘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조차 보이지 않는다. 차기 여야 지도부에 기대보다 한숨부터 나오는 이유다.

김회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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