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고도 ⑥ 란우에서 루랑까지
파룽짱뽀(帕隆藏布) 물줄기가 란우 호수로 모인다. 짱뽀(강)는 협곡을 가로질러 266km를 흐른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깊은 협곡이라 한다. 3,555m라는데 물속으로 들어갈 수 없으니 수치를 가늠하기 어렵다. 구름은 산봉우리와 하늘을 잔뜩 가리고 있다. 깊이도 높이도 구분이 어렵다. 설산과 빙하가 많아 수량이 풍부하다. 서쪽으로 강변도로를 30분 달려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最美)’ 빙천(冰川) 매표소에 도착한다. 6대 빙하 중 하나인 미두이빙천(米堆冰川)이다. 빙하를 빙천이라 한다.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빙하, 미두이빙천
가장 아름답다는 표현은 많이 봐서 대수롭지 않은데, 4만6,000개나 된다는 중국의 빙하 중에서 손에 꼽을 정도니 자랑할만하다. 먼발치인데도 설산이 새하얗다. 아래쪽에 두텁게 쌓인 빙하도 보인다. 빛을 뿜는 기운이 예사롭지 않다. 바로 앞인 듯하나 6km나 떨어져 있다. 차를 타고 들어가니 점점 또렷하다. 서서히 설레는 이유가 고산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미지의 세계로 빠져드는 느낌이다.
미두이촌은 빙하와 더불어 살아가는 촌락이다. 마을에서 바라보니 초자연의 색감이다. 말을 모는 젊은이들이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다. 전망대까지 말을 타고 갈 수 있다. 도랑을 건너거나 숲길을 지나는 길도 있다. 약간 오르막이라 호흡을 조절하며 느릿느릿 걷는다. 30분 정도 걸리는데 가까이 갈수록 보는 맛이 환상이다. 빙하에 대한 경외심을 담은 돌무더기가 군데군데 많다. 사이사이에 끼워 놓은 지폐가 살랑거린다.
그동안 차만 타고 이동했다. 고산의 발걸음은 역시 숨가쁘다. 빙하를 마주하고 제자리에 요지부동이다. 속마음은 감동을 외치는데 목청이 도와주지 않는다. 드러내지 않는다고 없지는 않듯이. 누군가 타고 왔을 말이 빙하와 어울려 그림이 됐다. 빙하에서 이탈한 물은 아래로 내려와 고였다가 도랑이 돼 흘러간다. 마을을 거친 미퇴하(米堆河)는 논밭과 삼림을 적시고 파룽짱뽀와 합류한다. 그렇다. 아래로 내려가니 호수가 빙하를 머금고 있다.
아주 보기 드문 빙하다. 1988년 7월 15일 밤, 빙하가 갈라져 쓸려 내렸다. 화산 분출처럼 빙하도 약동했다. 주봉이 6,800m이고 설선(雪線)은 4,600m인데 빙하가 2,400m까지 하강했다. 해양성 빙하이기 때문이다. 따뜻하다는 뜻이지 바닷물은 아니다. 중국에 두 곳만 있다는 ‘살아있는’ 빙하다. 얼음이 감싼 높이는 800m다. 설산과 빙하의 경계가 어딘지 알 필요는 없다. 한가득 신비한 빛을 뿌리는 자연의 매력에 빠지면 그만이다.
호수로 내려가니 반영이 시시각각 변한다. 하늘도 구름도 설산도 빙하도 차례차례 스민다. 손을 담그니 한여름인데도 물이 꽤 차다. 호수에 빠진 반영이 본래 모습보다 경탄을 자아낸다. 고요한 수면이 바람 부는 만큼 잔잔하게 흔들리다 불투명으로 바뀐다. 바람이 사라지니 원래 색감 그대로 깔끔하게 대칭을 유지한다. 빙하와 호수는 그렇게 한 쌍의 나비처럼 훨훨 날아가는 듯하다.
시리도록 눈부신 풍광을 뒷걸음으로 바라보며 돌아온다. 지붕 위로 다시 보니 설산과 빙하의 구분이 관찰된다. 가까이서는 보이지 않더니 신기한 노릇이다. 설산과 빙하를 다 합쳐 미두이빙천이다. 어디서 보더라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지붕 위로 연기가 모락모락 솟아오른다. 관광지로 변해 다소 복잡하지만 식당도, 숙소도 여럿 있다. 신발 벗고 그냥 머무르고 싶어지는 마을이다.
말로만 듣던 설연화(雪蓮花)가 좌판에 깔려있다. 해발 3,000~4,000m 설산에서 자생하는 국화과 식물로 연꽃처럼 핀다는 이름이다. 통째로 말려 약으로 쓰거나 음용한다. 청나라 시대 의학서 본초강목습유에 ‘정기를 보양하고 양기를 확충한다’고 적었다. 부인병에 탁월한 약재다. 차로 많이 마시며 분말은 미용에도 사용한다. 의학서 때문에 술을 담는 사람이 많다. 눈 속에서 필 때 가장 예쁘다 한다. 꽃말은 ‘순결한 사랑’이다. 순수 그 자체인 빙하 마을을 정말 떠나고 싶지 않다.
최초의 티베트 왕이 태어난 곳, 구샹
지나온 망캉, 쭤궁, 바쑤는 모두 창두(昌都)시에 속한 현이다. 미두이빙천은 린즈(林芝)시 관할이다. 린즈의 보미(波密)현으로 간다. 길은 아주 평온하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봉우리가 첩첩산중이다. 구름과 하늘이 서로 자리를 차지하려는 듯 다툰다. 바람의 힘으로 봉우리를 휘감는 광경이 사방에 펼쳐진다. 보미는 ‘조상’이란 뜻이다. 표지판에 구샹(古鄉)이 보인다. ‘나의 살던 고향은’ 고(故)다.
1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마을에 도착한다. 우체국과 병원이 있는 건물 앞에 ‘구샹’을 새긴 바위가 있다. 최초의 토번(티베트) 왕이 태어난 장소라는 표지석이다. 건국신화에 따르면 천신의 아들이 밧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왔다. 언어와 지역이 서로 다른 12명의 무사(巫師)가 수령으로 영접했다. 냐티짼뽀(聶赤贊普)라 불렀다. ‘냐’는 목덜미, ‘티’는 보좌이고 ‘짼뽀’는 왕(통치자)이란 뜻이다. 기원전 3~4세기 일이다. 나란히 새긴 티베트 발음은 구썅(གུ་ཤང་)이다. ‘왕의 거처’라는 뜻인데, 발음 나는 대로 중국어로 옮기니 구샹이 됐다. ‘고향’과 무관하다. 6개 촌을 둔 향이다.
표지석 아래 부분에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 적혀 있다. 너무 자주 쓰니 일반 형용사다. 경치가 멋진 경관대도(景觀大道)이자 ‘빙하 마을’과 ‘티베트 왕의 고향’이다. ‘티베트의 스위스’ ‘설원의 강남’이란 표현이 자연스런 동네다. 분위기는 스위스와 강남에 못지않다. 오히려 둘을 합친 느낌도 든다. 여기는 티베트니까.
10분 정도 가니 장왕고리(藏王故里)다. 초입만 보면 궁전이라도 있을 듯한데 그냥 작은 마을이다. 기원전 부락 연맹의 수령은 고대국가 토번의 모태가 된다. 짼뽀는 용감무쌍한 사내라는 말에서 정교 합일의 법왕(法王)으로 의미가 발전한다. 원나라 말기 편찬된 왕통세계명감에 따르면 ‘토번 왕조는 냐티짼뽀 이후 대를 이어 뵌교(苯教)를 통해 국정을 유지했다’고 전한다. ‘종교’라기 보다 그냥 ‘뵌(བོན་)’이 정확하다. 티베트의 원시 신앙이다. 세계를 하늘과 땅, 지하로 나누고 해와 달, 별과 호수, 바람과 설산 등 자연을 숭배했다.
가까운 곳에 장왕동(藏王洞)이 있다. 토번 왕이 태어났다는 장소다. 막내아들로 태어난 냐티짼뽀는 다섯 손가락이 붙었고 혀가 유난히 컸다. 기괴하게 생긴 괴물과 다름없었다. 신화는 하나가 아니었다. 어느 날 제방이 무너지자 다른 지방으로 쫓겨났다. 타지의 유목민들이 범상치 않은 모습을 보고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손으로 가리킨 방향을 하늘이라 오인했다. 하늘에서 내려온 왕이 됐다. 동굴 안은 그냥 텅 빈 공간이다. 기원을 적은 붉은 천이 걸려 있는데 별로 신령스럽지는 않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마을', 루랑의 매력은?
질퍽한 비포장도로와 만난다. 갑자기 스위스에서 쫓겨난 기분이다. 우기에는 아스팔트 도로가 아니면 예측 못한 일이 생긴다. 산사태도 자주 발생한다. 차마고도 노정이 얼마나 난장판이었을까 상상된다. 굴착기 공사로 외길이다. 대형 트럭이 틈새를 비집고 나온다. 행렬을 짓고 시간이 지나길 기다린다. 도로를 포장하면 문제가 없겠다. 차마고도에서는 질펀한 체험도 나쁘지 않다.
큰 덩치로 도로를 짓누르며 트럭이 지나고 있다. 좁은 길을 유유히 빠져나간다. 창문에 관음보살의 화신인 도모(度母)를 그린 탕카(唐卡)가 걸렸다. 활불(活佛) 초상화도 있다. 자신이 신봉하는 종교 지도자다. 백미러에 공경을 표시하는 카딱(哈達)을 묶었다. 티베트 글자인 ‘옴(ༀ)’도 휙 지나간다. 극락왕생을 염원하는 육자진언 ‘옴마니밧메훔’의 첫 글자다. 부처를 앞세우고 전진하는 듯하다. 국도도 험하기는 마찬가지다. 무사 안전을 바라는 마음이다.
파룽짱뽀는 북쪽에서 오는 이궁짱뽀와 만난다. 두 물줄기가 하나로 합쳐지는 지점에 다리가 있다. 천연의 요새로 알려진 지명을 딴 퉁마이대교(通麥大橋)다. 1950년대에 처음 다리를 세웠는데 무너졌다. 다시 지었는데 다리 구실을 제대로 못했다. 2015년 415.8m 길이의 현수교를 세웠다. 쇠줄을 양쪽에 걸고 고정시켜 높이 59.5m에 이르는 다리다. 험악한 협곡을 연결하는 길이라 난공사였다. 덕분에 흔들림 없이 협곡을 무사히 건넌다.
대교 옆에 위험천만하게 보이는 다리가 하나 더 있다. 사람이건 동물이건 집어삼킬 듯 강물이 빠르게 흐른다. 마방이 건너던 옛 다리다. 오랫동안 소중한 다리였다. 외줄에 묶고 협곡을 넘던 다큐멘터리가 아니라도 충분히 짐작된다. 오래 보관할 수 있는 푸얼차가 넘어야 할 다리다. 생명을 머금은 비타민을 잉태하고 있다. 강바람에 타르초가 하늘거린다. 색 바랜 천 조각이 대교의 쇠줄보다 강해 보인다.
다리 위로 하늘을 우러러본다. 협곡 사이로 불쑥 나온 설산은 겹겹이라 얼마나 깊은지 알 길이 없다. 구름으로 몸을 가리니 범접하기 힘들다. 강은 깊고 능선 길은 좁다. 물줄기를 따라가는 길이 진행방향이다. 서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계속 남하한다. 동선이 이리저리 오가니 앞선 길을 힐끔거리게 된다. 터널을 자주 통과한다. 강 위로 달릴 수 없으니 산을 뚫을 수밖에 없다. 들락거리길 반복한다. 그 옛날 마방은 대체 어디로 다녔다는 말인지.
2시간을 힘겹게 달리니 평원이 나타난다. ‘용왕이 사는 골짜기’라는 루랑(魯朗)이다. 이곳을 관장하는 용왕님은 풍채가 대단했던 듯하다. 식당 거리에 한 가지 요리만 판다. 반드시 먹고 지나야 한다는 석과계(石鍋雞)다. 소문이란 모두가 동의해야 잘 퍼진다. 충칭 사람 허다이윈이 루랑에서 27년을 생활하고 1999년 고향으로 돌아가 식당을 열었다. 루랑에서 먹던 닭 요리로 대성공을 거뒀다.
영계에 삼이나 천마 등 약재를 넣고 고아 먹는 음식이다. 티베트로 소문이 넘어오는 데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정통’ 입맛을 무기로 루랑의 석과계도 날개 돋친 듯 유명해졌다. 티베트 약재가 ‘효험이 좋다’는 이야기는 굳이 할 필요도 없다. 국물과 함께 나온 닭고기를 먼저 먹는다. 초원의 풀을 먹고 자란 닭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쫄깃하고 부드러우니 허겁지겁 먹는다. 배부를 만도 한데 아직 멀었다. 닭고기를 건져 먹고 나면 국물에 야채와 버섯, 두부 등을 넣는다. 살짝 익혀 먹는데 여전히 꿀맛이다.
식당 옆에 말이 많다. 3km 거리에 목장이 있다. 백마와 눈이 마주친다. 억척같이 차마고도를 다니던 DNA를 가졌으니 어른 하나는 거뜬한 눈치다. 말 타고 가서 그냥 목장에 몸을 던지고 싶다. 루랑은 ‘신선이 거주하는 지방’이란 별칭을 갖고 있다. ‘천연 산소 카페’이며 심지어 ‘생명의 유전자은행’이란 찬사도 곁들여진다. 별명 만드는 선수마다 루랑이 너무 좋았나 보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不想回家) 마을’이란 이름을 하나 더 지었다. 어디 루랑 뿐이랴. 미두이빙천은 물론이고 차마고도 어디나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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