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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수 “실패 없을 것 같은 내 이력... 너무 위험해”

입력
2023.09.20 11:00
수정
2023.09.21 09:39
0 0

[김지은의 ‘삶도’ 시즌2 : 실패연대기] <17>배우 김혜수①

10대부터 ‘스타’… 출연 영화 관객 수 5500만
37년 ‘정상’ 지킨 배우 김혜수와 6시간 인터뷰
“너무 오랫동안 시간은 내 것이 아니었다”

배우 김혜수를 8일 서울 마포구에 있는 강영호 사진작가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잠을 통 못 잤다”면서도 “인터뷰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강영호 사진작가

배우 김혜수를 8일 서울 마포구에 있는 강영호 사진작가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잠을 통 못 잤다”면서도 “인터뷰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강영호 사진작가

“매우 위험하네요.”

누구도 아닌 자신의 이력을 두고 그는 이렇게 단언했다. 짐짓, 심각한 표정을 하고서다. “스스로 대단하다고 착각할 법하다”는 거다. 그 ‘위험한 이력’이란 뭔가.

38년째 주연. 1986년, 열여섯 살에 영화 ‘깜보’로 데뷔한 이래 출연한 영화 35편. 그의 영화를 본 관객 수를 모두 합치면 5,530만 명. 드라마는 특별출연을 제외하고도 47편. 수상 경력은 또 어떤가. 스물세 살에 영화 ‘첫사랑’으로 청룡영화상 최연소 여우주연상 수상(깨지지 않은 기록이다), 이를 포함해 한국 3대 영화상에서 여우주연상 5회 수상, 드라마로 지상파 채널 연기대상 3회 수상.

이름 자체가 상징인 배우, 김혜수(53)의 발자취다. 그런데 그에게 중요한 건 숫자나 트로피가 아니었다. 외려 이력을 한 문장씩 읊어줄 때마다 그는 남의 얘기 듣듯 했다.

“스물세 살 때였다고요?” “최연소 기록이 아직도 안 깨졌어요?” “제가 여우주연상을 다섯 번 받았어요?” “연기대상도 3회나?” 그러더니 거듭 반문했다. “이게 제 얘기라는 거죠?”

반응에서 짐작할 수 있듯, 그는 자신이 받은 상조차 되새겨본 적이 없다. “상 받은 그 순간을 충분히, 진실하게 느꼈으면 된 거라고 생각해요.” 찰나의 기쁨을 영원의 도취로 확장시키지 않으려는 노력으로 들렸다.

그렇다면, 그가 지금까지 연기를 이어온 동력은 무엇인가. “내 청춘의 대부분을 바친 이 시간의 의미가 무엇인지, 나는 과연 어떤 배우인지 그 답을 찾는 게 참 중요했어요. 그에 실패해 여기에 도달한 건지도 몰라요.”

‘그래, 연기는 저런 분들이 하는 거지. 나 그동안 참 수고했다. 이만하면 충분해’라며 깔끔하게 돌아서려던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그 시간마저 딛고 그는 여전히 우리 앞에 서 있다.

과정에서 느끼는 희열, 이를 동력 삼아 성장해온 김혜수의 시간, 이 인터뷰는 그에 관한 것이다. 김혜수라는 자격을 만든 시간의 연대기 말이다. “인생의 목표는 성공이 아닌 성장, 중요한 건 실패가 아닌 시도”라는 삶의 태도가 그의 이름 석 자가 지닌 무게를 만들었다.

정작 그는 “몸이 무겁지, 이름은 가벼워요”라며 호쾌하게 웃었다.

◇그의 이력은 성공적인가, 실패적인가

인터뷰는 강영호 작가의 작업실 내 ‘살롱99’에서 했다. 강의나 모임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배우 김혜수에게도 친숙한 곳이다. ⓒ강영호 사진작가

인터뷰는 강영호 작가의 작업실 내 ‘살롱99’에서 했다. 강의나 모임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배우 김혜수에게도 친숙한 곳이다. ⓒ강영호 사진작가


“난 오늘을 살아.”

(드라마 ‘하이에나’, 정금자)

하루 전날부터 그는 “인터뷰가 기대돼 즐거우면서도 떨린다”고 했다. 작품이 아닌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하는 인터뷰를 하는 건 적어도 최근 20년 동안은 없던 일. 그는 “작품 홍보의 일환이 아닌 인터뷰는 얼마 만인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오랜만”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37년을 전 국민이 다 아는 배우로 살아온 관록의 톱스타인데, 아직도 마음의 설렘을 유지하는 비결은 무엇인가.

8일 그를 만났다. 인터뷰는 그의 오랜 친구인 강영호 사진작가의 서울 마포구 작업실에서 했다. 사진 촬영을 포함해 6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떨린다니 의외였어요.

“너무 애 같죠, 내가. 그런데 이 인터뷰는 떨리더라고. 난 소통을 참 좋아하거든요. 내가 원하는 소통.”

-38년째 ‘주연’ 자리를 지켜온 족적 자체도 그렇지만 그간 쌓아 올린 이력이 대단해요. 게다가 무명 시절도 없죠. 돌이켜보면 이런 이력이 성공적인가요, 실패적인가요.

“매우 위험한 이력이죠. 너무 위험한 이력이야. 액면 그대로만 보면, 거의 주연만 했고, 깨지기 어려운 최연소 기록도 갖고 있잖아요. 실패가 없을 것 같은 이력, 그 자체가 얼마나 위험해요? 착각하기 쉬운 이력, 허상에 휩싸이기 쉬운 이력이잖아요.”

-그런데 수상 이력을 잘 모르네요. 세어 본 적이 없나요.

“내 것을 남기는 데 관심이 없어요. 트로피도 집에 없고 회사에 있죠. 상을 받는 순간에는 정말 감사하게 받아요. 그 순간은 진심이죠. 그러나 그게 다예요. 그 순간을 충분히 진실하게 느꼈으면 된 거죠.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지나간 것엔 의미를 두지 않아요.”

그에게 가장 중요한 시간은 ‘지금 이 순간’이니까.

-37년간 영화와 드라마를 합쳐 80편 넘게 했어요. 쉴 새 없이 연기를 한 것 아닌가요.

“예전엔 1년에 여러 작품을 하기도 했으니까. 당연한 게 아닌데 당연한 듯 말이에요. 물론 내가 설계한 건 아니죠. 내 의지가 차단됐다고 해야 하나. 내 의지가 중요하지 않았던 시기가 있었죠.”

-시간의 주인이 내가 아니었던 거네요.

“너무 어릴 때 데뷔했으니까. 내 의지가 무참하게 없어지면 내가 없는 거나 똑같더라고요. 그런 시기를 꽤 길게 보냈죠.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면 제일 속상하고 아까운 게, 친구들의 시간과 내 시간이 다른 거였어요. 물론 그래서 우쭐한 면도 있었지만, 아깝고 불안하기도 했죠. (그러면 안 되겠다고 깨달은) 이후에는 모든 순간을 다 내 의지로 해요.”

-그 시절 덕에 시간의 소중함을 알게 된 건가요.

“너무나, 절실하게.”

그는 한때 원하지 않은 영화를 찍은 적도, 그래서 지금으로는 상상이 안 되는 태도로 촬영에 임한 적도 있다고 했다. 그로 인해 흘린 눈물을 아직도 기억한다. 내 시간의 결정권을 상실해 얻은 실패의 기억이다.

열다섯 살이었던 소녀 김혜수. 데뷔작인 영화 ‘깜보’ 개봉(1986)을 앞둔 1985년, 공동 주연인 배우 박중훈씨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열다섯 살이었던 소녀 김혜수. 데뷔작인 영화 ‘깜보’ 개봉(1986)을 앞둔 1985년, 공동 주연인 배우 박중훈씨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너무 어릴 때부터 연예인이었으니 개인 시간이라는 것도 거의 없었겠어요.

“잠도 그래서 줄였어요. 연예인으로 사니까 내 시간을 내가 원하는 대로 쓸 수가 없잖아요. 어릴 때는 특히. 그러니 잠이라도 줄이지 않으면 그나마 내 시간이 정말 없는 거예요. 그래서 내겐 시간이 엄청나게 중요해요. 나는 사람을 만날 때도 ‘내 시간을 얼마나 줄 수 있는 사람인가, 내가 얼마나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인가’ 생각해요. 물론 일에 쏟아붓는 시간은 별개의 문제고요.”

-잠을 줄였다니, 언제부터인가요.

“아마 고등학교 2학년 말부터 그랬을 거예요. 대입 준비를 해야 하는데 공부할 시간이 없으니까. 통에 든 인스턴트 가루 커피를 밥 숟가락에 반 정도 퍼서 입에 털어 넣으면 밤을 새울 수가 있더라고요. 카페인에 예민하다는 걸 그때 알았죠. 잠을 안 자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참 신났어요. 공부도 하고 책도 봤지만, 딱히 할 일이 없어도 혼자서 깨어 있는 게 참 좋더라고요. ‘내 시간’으로 느껴진 거죠.”

세상이 잠든 밤, 혼자 깨어 자기 시간을 누렸을 소녀 혜수가 그려졌다. 소박한 행복이다.

-작품으로 따지면, 언제 내 시간의 주인이 됐나요.

“영화 ‘닥터 K’(1999)예요. 내 의지로 처음 선택한 작품이에요. 20대 후반이니 말도 안 되는 일이죠.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자의식으로 무언가를 해나가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모든 게 참 느렸어요. 그래도 그때라도 시작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후회하지도 않죠. 그것도 굉장히 오래 생각하고, 망설이고, 큰 용기를 내서 한 거니까.”

사진 촬영을 하던 강영호 작가가 옆에서 거들었다. “그때 영화 포스터를 찍으면서 우리 처음 만났잖아요.” 강 작가의 말에 그는 눈이 동그래졌다. “어머, 정말?” 그와 강 작가는 지기(知己) 사이다.

-시간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과거 인터뷰에서 ‘만약 배우를 그만둔다면 조용히 사라지고 싶다’는 취지로 말을 한 적이 있던데 왜 그런가요.

“내 인생은 뜻하지 않게 좋은 순간이건, 나쁜 순간이건 좀 요란했어요. 복에 겨운 소리일 수도 있는데 ‘나만의 시간’이란 게 언제부터인지 없어졌죠. 물론 주책스럽게 나 스스로 공개할 때도 있지만. 어떤 땐 정말 공유돼선 안 되는 일조차 강제로 알려지기도 했죠. 이기적이거나 얌체 같은 생각일 수도 있어요. 필요에 따라 이런 건 공유하고, 어떤 건 나만의 것이고 싶다는 게. 그럼에도 이 일을 하다가 조용히 사라지는 것 정도는 꿈꿔볼 수 있지 않을까.”

◇실패를 흘려보내다

스튜디오 촬영이 끝나고 인터뷰를 할 땐, 그는 고무줄로 머리를 돌돌 말아 질끈 묶었다. 한층 편한 태도로 인터뷰에 몰입했다. ⓒ강영호 사진작가

스튜디오 촬영이 끝나고 인터뷰를 할 땐, 그는 고무줄로 머리를 돌돌 말아 질끈 묶었다. 한층 편한 태도로 인터뷰에 몰입했다. ⓒ강영호 사진작가


“회사에서 내 의자를 잃는 것보다 무서운 건 동료를 잃는 거야.”

(드라마 ‘직장의 신’, 미스 김)

-대중은 ‘배우 김혜수’를 강한 이미지로 여기는 듯해요. 하지만, 살다 보면 힘든 일이 없을 수는 없죠. 일의 실패든, 인연의 실패든. 그런 때는 어떻게 견디나요.

“(영화 ‘밀수’ 촬영 때 생긴 이마의 흉터를 가리키며) 어느 날 상처가 생기고 봉합하고 아물어도 이렇게 흉터가 남잖아요. 흉터를 보면 다친 날이 떠오르기도 하고 그걸 잊으려고 하기도 하죠. 삶을 지나오면서 그걸 깨달았어요. 이겨내거나 견디려고 한다고 해서 가능한 게 아니라는 것. 그러니 상처를 굳이 잊으려고 애를 쓰지 말자고. 그래서 난 그냥 흘려보냈어요. 그렇다고 괜찮은 척하지도 않아요. 가장 중요한 순간에 난 ‘나부터’예요. 힘들면 웅크리고 있기도 하고요. 내가 아파 죽겠는데 왜 씩씩한 척해. 그리고 난 이런 구분을 하는 지각은 있어요. 자책해야 할 때와 현실을 직시해야 할 때를 구분하는 지각. 다행이죠.”

-인생의 고비들이 자신한테 준 건 뭘까요.

“사람을 잃고, 사람을 얻죠. 시간과 더불어 중요하게 여기는 존재가 사람이에요. 그리고 (그런 고비들로) 나를 좀 더 뚜렷하게 알게 되더라고요. 사람은 자신이 가장 나락으로 떨어지는 순간, 그리고 내가 꿈꾼 것 이상으로 빛나는 순간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깨달아요.”

-영화 ‘내가 죽던 날’에 “내 곁에 아무도 남지 않았다” “네가 남았다”라는 대사가 나와요. 구원의 메시지인데, 작품이 구원이 된 적도 있나요.

“참 재미있는 게 사적으로 힘든 일이 있을 때는 책(대본이나 시나리오)도 안 봐야 하는데, 난 그렇지를 못한 거예요. 시나리오든, 대본이든 들어오면 빨리 보고 답을 주는 게 습관처럼 돼서. 그때 본 책 중 하나가 드라마 ‘직장의 신’이었어요. 대본이 진짜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한다고 한 거예요. 그런데 결과적으로 참 다행이었어요. 왜냐하면 우리 일은 시작하면 그것 말고 다른 건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강력한 힘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난 그 드라마를 찍으면서 살아남은 거예요. 심지어 ‘직장의 신’은 코미디였잖아요.”

그는 ‘직장의 신’으로 2013년 연말 ‘KBS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받았다.

-일이 살린 거네요.

“맞아요. 사람마다 다 운명의 순간이란 게 있나 봐요. 이 나이에 이런 얘기 하는 게 건방지지만, 누구나 삶에 고비가 오잖아요. 그게 한 번도 아니죠. 그런데 그 운명에서 살아남을 기회도 함께 오는 것 같아요.”

-일에는 신비한 힘이 있어요.

“맞아요. 그리고 내가 그렇게 단순하기도 하고요. (웃음)”

-그런가 하면 ‘연기가 내 길이 아닌가’ 의심한 적은 없었나요.

“음, 아마 90년대 중반 즈음까진 연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땐 하도 연기를 못한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가지고.”

-그런 때도 있었나요.

“그럼요. (웃음) 나 스스로도 연기가 안 맞는다는 생각도 들고요. 아니, 그렇게 열심히 하는데 늘지도 않는 것 같고, 거기다 못한다고까지 하니까. 그런데 시나브로 과정이 재미있어지더라고요. 지금도 물론 아주 열심히 하죠. 그건 자신 있을 정도로. 아마 나만큼 열심히 노력하는 배우는 없을 거예요.”

-작품 할 때는 못 먹고, 못 잔다면서요.

“먹는 거야 어쩔 수 없이 조절하는 거고요. 잠은 안 잤죠. 그런데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해요. 잠이 건강에 아주 중요하다는 걸 그간엔 몰랐어요.”

-얼마나 몰입해 준비하는지 관객이나 시청자는 알지 못하죠.

“알 필요가 없죠. 관객이나 시청자는 결과를 보는 거니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요. ‘실은 제가 이만큼 노력했는데요’라거나 ‘이런 사정이 있었거든요, 알아주실래요’라고 할 수가 있나요?”

-사람들이 이런 말도 많이 하죠. ‘김혜수는 칭찬 장인’이라는.

“난 좋은 건 많이 나누자는 쪽이에요. 정보건 지식이건. 좋은 걸 나눠서 손해 볼 일 없잖아요? 좋은 말도 마찬가지예요. 난 말의 힘을 믿거든요. 온기 있는 말 한마디가 얼마나 내적인 힘이 되는데. 그리고 상대에게 얼마나 큰 동기부여가 되는데. 꾹 참는다고 저축되는 것도 아니고요. 나도 여러 번 경험했어요.”

-본인에게도 그런 한마디가 있나요.

“20대부터 친하게 지내온 언니가 있어요. 올해 생일에도 만났죠. 언니가 제게 그렇게 말하거든요. ‘혜수야, 나는 너한테 사랑을 배웠어.’ 언니는 아낌없이 그런 얘기를 해요. 제겐 언니가 ‘마음의 고향’ 같죠. 묵직한 느낌이 있는 사람이거든요. 특별한 일이 있는 경우를 빼고 서로의 생일마다 만나 그런 얘기를 나눴을 거예요. 같은 말이지만 언니가 매번 진심인 걸 알아요. 그런 말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게 참 좋아요.”

그를 향한 후배 여성 배우들의 마음은 각별하다. 손예진은 “김혜수 선배는 30년 넘게 배우를 하면서 한 번도 대중의 눈 밖에 난 적이 없다. 그건 어디서 나온 힘일까, 나도 그럴 수 있을까 생각한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를 가리켜 한지민은 “제게 늘 좋은 본보기가 돼주는 선배”, 천우희는 “늘 힘을 주는 선배이자 함께 연기하고 싶은 배우”라고 말했다.

그는 이미 존재 자체로 의미가 됐다. 역사이기도, 증명이기도, 위로이기도, 응원이기도, 이상향이기도 한.

지금의 ‘김혜수’라는 상징에 이르기까지, 그의 연료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실패, ‘나는 어떤 연기자인가’ 그 답에 이르는 데 실패해서였다.

※[실패연대기] 배우 김혜수②로 이어집니다. 기사는 21일 오전 11시에 공개됩니다.

연기의 의미를 찾아 이어진 배우의 여정. 그는 “나의 고유성을 인정하고부터 마음이 좀 편해졌다”고 말했다. ⓒ강영호 사진작가

연기의 의미를 찾아 이어진 배우의 여정. 그는 “나의 고유성을 인정하고부터 마음이 좀 편해졌다”고 말했다. ⓒ강영호 사진작가



김지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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