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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팔트로 나선 선생님들

입력
2023.09.08 04: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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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이초등학교 교사의 49재 추모일인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추모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9월 2일 저녁 경부고속도로는 평소와 달랐다. 상행선을 달리며 본 하행선 1차로엔, 전세버스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보통 주말엔 고속버스나 결혼식 대절버스들이 전용차로를 점령하지만, 이날은 ‘교육권 수호’ ‘교사추모집회’ 문구를 단 버스들이 길게 꼬리를 물었다. 30만 명이 참가한 ‘서이초 교사 추모 행사’가 열린 날이다.

버스 안엔 검은 옷을 갖춰 입은 교사들이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다. 젊은 교사의 황망한 죽음에 대한 애도, 천직으로 여겼던 교직에 대한 회한, 목숨을 놓은 동료와 살아남은 나의 고민이 다르지 않다는 위기감, 연가를 쓰면 징계하겠다는 당국에 대한 분노. 그런 감정들이 전국 교사를 한자리에 불러모았다.

보수적인 공무원 사회에서도 점잖기론 둘째 가라면 서러울 교사 집단이 세대, 소속, 근무지를 가리지 않고 한데 모였다. 교사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사례는 매우 드물다. 세월을 많이 거슬러 1998년 정년 단축에 반대하는 연쇄집회(여의도, 장충단공원)까지는 가야 유례가 발견된다.


서울지역 초·중·고 교사와 가족 등 1만여 명이 1998년 11월 서울 장충단공원에서 '근조 교육현장' 플래카드를 들고 교원정년단축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박서강 기자

25년 만에 선생님들은 아스팔트 위에 섰다. 그땐 정년이 걸렸지만 이젠 목숨이 달려, 더 엄중하고 절박해 보인다. 그렇다면 정부는 '사상 초유'라는 비상한 문제의식하에서 접근했어야 했다. 스스로 목숨을 놓은 양천구 교사는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고 했지만, 교육당국은 교사들의 추모를 공안사건처럼 다루며 엄포로써 기세를 꺾으려 했다. 그래서 집회에 참가한 한 교사는 “교직생활 처음으로 병가를 쓰고 왔다”며 울분을 토했다.

영혼을 장기간 잠식해온 분노와 절망은 서이초 사건을 계기로 임계점을 넘었다. 왜 분노하고 절망했을까? 주변 교사들 얘기나 인터넷에 올라온 교사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대략 몇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분위기를 해치는 소수 아이들에게 90% 이상 에너지를 쏟아붓느라, 남은 10%의 에너지를 나눠 가지는 나머지 스무 명 이상 아이들이 애먼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것. 두 번째. 그 소수 아이들을 효과적으로 제어하며 교사의 관심과 체력을 다른 아이에게 돌려줄 어떠한 수단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세 번째. 아이를 훈육하고 바르게 이끌어가는 과정에서 학부모는 사실상 아무 책임도 지지 않고 권리만 행사하는 주체로 올라섰다는 점이다.

학부모의 갑질, 시간외 문자 세례, 사회적 위세 과시를 막을 수단이 사실상 없다고 교사들은 말한다. 교직은 친절과 상냥함만 높이 사는 ‘서비스업’이 됐고, 지금 학교에선 제 일을 해내는 것보다 민원ㆍ항의를 받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

연이은 교사 사망 사건의 본질은 △공무원이 △공무를 하다가 △공무 때문에 죽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궁극적 책임은 바로 공무의 최종 주재자인 정부에 있다.

다른 공무원들도 유심히 지켜본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부당한 민원이나 낮은 처우로 인한 사기 저하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공직사회 전체가 피하지 못하는 문제다. 지금 교사가 경험하는 ‘자존감 붕괴’를 언젠간 경찰관이, 소방관이, 교도관이 겪을 수 있다. 국가공무원(75만 명) 절반(36만 명)을 차지하는 교사의 자존감을 높일 방도를 찾지 못하면, 그 절망과 열패감은 공직 전체로 확산될 수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아직까지 첫 단추를 꿸 구멍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다. 치유는 공감에서 시작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잊었기 때문이다.

이영창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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