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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러문항 배제' 방향은 맞지만 사교육비 증가 '풍선효과' 막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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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러문항 배제' 방향은 맞지만 사교육비 증가 '풍선효과' 막을 수 있을까

입력
2023.06.20 04:30
수정
2023.06.20 16:08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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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 "킬러문항 배제"...평가원장은 사퇴
'물수능' 피하려 '준킬러' 많아질 수도
EBS연계 확대, 학부모 체감도 높지만
"학교에서 EBS 가르치는 곳?" 반발도
단편접근 '풍선효과' 우려..."종합대책을"

19일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 한 시민이 학원 홍보문구를 보고 있다. 뉴시스

19일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 한 시민이 학원 홍보문구를 보고 있다. 뉴시스

국민의힘과 정부가 19일 공교육 과정에서 다루지 않은 '킬러문항'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배제하기로 했다. 당정은 그간 시험의 변별력을 유지하기 위해 출제된 킬러문항이 "학생들을 사교육으로 내모는 근본 원인이었다"며 적정 난이도를 확보하기 위해 "출제 기법을 고도화하겠다"고 밝혔다. 또 입시 대형 학원의 거짓·과장 광고가 학생과 학부모들을 불안하게 만든다며 학원들의 불법 행위에도 엄중 대응하기로 했다. 정부가 대대적 감사를 예고했던 수능 출제기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이규민 원장은 이날 전격 사의를 밝혀 다섯 달 남은 수능의 출제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당정 "킬러문항이 사교육 조장"...이규민 평가원장 사퇴

국민의힘과 교육부는 이날 국회에서 '학교 교육 경쟁력 제고 및 사교육 경감 관련 당정 협의회'를 열어 사교육비 경감 대책으로 "공교육 과정에서 다루지 않은 내용(킬러문항)은 수능 출제를 배제하겠다"고 밝혔다. 입시업계에선 1등급(상위 4% 이내) 수험생도 맞히기 어려워 '상위 1%'를 가리는 초고난도 문제를 킬러문항이라고 부른다. 그동안 수능 일부 문항은 교과서에서 볼 수 없는 과학·경제·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개념이 지문이나 자료로 활용돼, 대학 교수조차 풀기 어렵다는 지적을 받았다. EBS교재 과학지문에서 다뤄진 '클라이버의 기초 대사량 연구'에 EBS교재 사회 지문에서 쓰였던 통계학의 '최소제곱법'까지 결합시킨 지난해 수능 국어영역 17번 문제가 대표적이다.

킬러문항 배제는 윤석열 대통령이 수능 문항의 교육과정 밖 출제를 '사교육 이권 카르텔'로 규정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당정협의회에서 "대통령이 이 문제를 여러 차례 지적하셨음에도 신속하게 대책을 내놓지 못한 데 대해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단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정부는 윤 대통령이 3월부터 '교육과정 내 출제'를 강조했지만 6월 모의평가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며 교육부 담당 국장을 경질하고, 출제기관인 교육과정평가원도 감사하기로 했다.

이규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3월 2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시행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이규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3월 2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시행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이런 당정의 압박 속에 이규민 평가원장은 이날 "6월 모의평가와 관련하여 기관장으로 책임을 지고 사임한다"고 밝혔다. 2021년 12월 강태중 전 평가원장이 수능 문제 오류에 책임을 지고 사퇴한 적이 있지만 평가원장이 수능 실시 5개월을 앞두고 사퇴하는 건 이례적이다.

난이도 유지하려 '준킬러문항' 늘면 "풍선효과" 우려

'킬러문항 배제'라는 원론적 메시지에 대해서는 교육계에서 큰 이견이 나오지 않는다. 의대 입시 열풍 속에서 '킬러문항 모의고사'로 합격생을 배출한 입시학원 등이 성행하는 등 킬러문항이 사교육 시장을 달궈온 탓이다. 교육 시민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수능 출제에 관한 대통령의 이와 같은 발언을 지지한다"고 밝혔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교육과정에 없는 킬러문항 배제는 당연하다"는 입장을 냈다. 이는 지난 대선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교육 공약에도 포함됐던 내용이기도 하다.

문제는 시험의 난이도 유지를 위한 '준킬러문항'의 확대와 이로 인해 생기는 사교육시장의 '풍선효과'다. 이 부총리는 이날 "공정한 수능은 결코 '물수능'(쉬운 수능)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지만 킬러문항 없이 적정 난이도를 유지하려면 입시업계가 말하는 정답률 20% 안팎의 '준킬러문항'이 늘어날 거란 관측이 나온다. 이덕난 국회 입법조사연구관은 "킬러문항을 없애고 준킬러문항으로 대체한다면 1등급을 놓고 하는 경쟁이 2, 3, 4등급을 노리는 경쟁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킬러문항이 최상위권 학생들 간의 경쟁을 촉발했다면 준킬러문항은 중상위권 학생의 경쟁을 촉발해 사교육 수요를 늘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19일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 '킬러문항'을 분석해준다는 홍보 문구가 보인다. 뉴시스

19일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 '킬러문항'을 분석해준다는 홍보 문구가 보인다. 뉴시스


당정 "EBS 통한 지원 강화"...연계율 늘어나나

당정은 "학생들이 스스로 공부할 수 있도록 EBS를 활용한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뒷받침할 구체적인 정책 수단은 언급되지 않았지만 교육계에선 EBS교재의 수능 연계율을 높여 사교육 부담을 더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현재 연계율은 50%로 수능 문항의 절반 정도가 EBS교재 속 지문·자료와 관련 있는 내용이다. 한국교육개발원이 2021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4분의 1이 정부 대책 중 사교육 경감효과가 가장 큰 정책으로 꼽기도 했다.

사교육비 감소와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EBS교재 70% 연계'가 되던 초반에는 사교육비 총액이 줄었다. 2011학년도 수능부터 70%의 연계율이 적용되다 2022학년도 수능부터 연계율이 50%로 낮춰졌는데, 사교육비 총액은 2010~2015년 매년 감소하다 이후 증가세로 돌아섰다. 단 총액 감소에는 이 시기 학생수가 줄어든 점도 영향을 미쳤다.

문제는 학교에서 교육과정과 교과서에 따른 수업 대신 'EBS 문제풀이'가 주를 이룰 수 있다는 우려다. 지난 정부에서 EBS교재 연계율을 낮춘 것도 이런 지적에 따른 것이었다.

결국 수능 난이도 조정을 통해 사교육비 부담을 더는 건 효과가 크지 않아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대책 수립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송경원 정의당 정책위원은 "사교육비는 자녀가 목표에 도달했다고 해서 멈추는 게 아니라 옆집 자녀가 더 잘하면 우리 집 사교육비를 더 지출하는 등 무한히 팽창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며 "학교 서열과 입시경쟁이 원인인데 그 해법을 수능 난이도 조정으로 찾으려는 것은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교육부는 21일 학교 교육 경쟁력 제고 방안, 27일 사교육 경감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홍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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