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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이 되고 마는 요양보호사들

입력
2023.06.06 04:3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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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지난해 6월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요양서비스노동조합(현 돌봄서비스노조)이 개최한 권리보장 집회에서 한 요양보호사가 눈물을 닦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6월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요양서비스노동조합(현 돌봄서비스노조)이 개최한 권리보장 집회에서 한 요양보호사가 눈물을 닦고 있다. 연합뉴스

"어르신을 돌보려고 어쩔 수 없이 한 행동인데 남편과 자식한테 창피한 엄마가 된 것 같아요. 아직도 그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죠."

서울의 한 요양시설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50대 A씨에게는 4년 전 '노인학대 가해자'란 주홍글씨가 새겨졌다. 어느 날 치매 환자의 온몸에 멍이 들어 시설이 뒤집어졌고 A씨가 가해자로 지목됐다. 그 환자가 침대에서 떨어진 날 가장 많은 시간을 돌본 게 A씨였기 때문이다. A씨 말에 따르면 그 환자는 수시로 벽과 침대 난간에 자신의 몸을 부딪치거나 자해하는 탓에 몸은 늘 상처투성이였다. 이날 유독 심했던 터라 말려보려고 두 팔을 붙잡았는데 이게 폐쇄회로(CC)TV에 찍혔다.

그는 경찰 조사를 받아야 했고, 요양원은 그 책임을 물어 한 달 치 월급을 감봉 처리했다. A씨는 이날 집에 들어가지 않고 하루 종일 밖을 서성였다. 돈 때문에 속상해서가 아니었다. 도저히 가족들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 그는 "살림만 한 가정주부가 학대 가해자가 된 것만으로도 자식하고 남편을 보는 게 창피했다"며 "어르신을 돕고자 했던 행동이 이렇게 돌아오니 자괴감이 밀려왔다"고 읊조렸다. A씨는 최근에서야 정신과 약을 끊었다.

요양보호사들은 업무 시간 내내 고공에서 외줄 타기를 하는 처지다. 자칫 A씨처럼 '어르신을 학대한 죄인'이 될 수도 있어서다. 이불이 만신창이가 되게 뜯거나 변을 식판 위에 올려놓는 모습을 보고 "이러시면 안 돼요"라며 소리를 크게 치는 날에는 시설로부터 호출과 함께 경고장이 날아온다. 어르신에게 성추행을 당해 무의식적으로 손을 과하게 뿌리치는 순간 피해자에서 학대 가해자로 상황이 뒤바뀌기도 한다.

한국일보가 비영리공공조사네트워크 공공의창, 민주노총 산하 돌봄노조서비스와 함께 노인 돌봄에 대한 국민 인식과 현실의 간극을 알아보고자 지난 4월에 만난 요양보호사들은 한결같이 웃음을 잃은 모습이었다. 학대 가해자로 몰리는 억울함의 정도나 기사에 차마 담지 못할 수준의 성추행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오히려 "그게 일상이에요"라고 덤덤해하는 모습이 더 충격적이었다.

입소자와 보호자는 물론 시설 대표, 사회복지사, 공무원 모두에게 잠재적 가해자란 따가운 눈총을 받는 것도 억울하지만, 자신들을 허드렛일이나 하는 일꾼으로 취급하는 현실이 이들을 더 슬프게 한다. 월급을 적게 주려고 근무시간 8시간 중 4시간을 휴식 처리하는 시설도 많을뿐더러 4시간도 온전히 쉬지 못한다. 복도 소파에 겨우 눈을 붙일 뿐이다. "어르신들의 자식들도 못 하는 일을 우리가 하고, 국가에서 자격증을 주며 인정한 직업 아니냐"며 이들이 항변하는 이유다.

물론 많은 시설에서 어르신을 폭행하고 방치하는 나쁜 학대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최근에도 요양원에서 노인학대 사건이 잇따라 터져 국민의 공분을 샀다. 당연히 비판받아야 한다. 다만 학대 사건이 반복된다는 이유로 모든 보호사를 잠재적 학대 가해자로 모는 건 아닌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요양서비스의 질을 높이려면 보호사와 입소자, 보호자 간 상호 존중이 뒷받침돼야 한다. 지금의 시스템에선 서로를 향한 불신만 남은 건 아닌지 되짚어 봐야 한다. 내년이면 노인 1,000만 명 시대가 열린다. 우리 사회가 이를 맞을 준비가 돼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자.




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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