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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의 역사는 돌고, 돌고, 돈다

입력
2024.07.25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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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윤석열(왼쪽 첫 번째) 대통령이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 특별수사팀장이었던 2013년 9월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조영곤(오른쪽 첫 번째)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의 수사외압에 대해 폭로하고 있다. 김주성 기자

윤석열(왼쪽 첫 번째) 대통령이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 특별수사팀장이었던 2013년 9월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조영곤(오른쪽 첫 번째)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의 수사외압에 대해 폭로하고 있다. 김주성 기자

“9시 넘어선 전화하지 마라.”

수년 전 저녁 시간에 1시간남짓 길게 통화한 후에 사회부장은 이렇게 말하며 “넌 왜 그렇게 말이 많냐?”고 물었다.

수시로 보고 받고 지시 내리던 사회부장이 이렇게 얘기한 건, 당일 후배가 썼던 기사의 뉘앙스를 조절하기 위해 일부 표현을 고쳐 달라고 건의하는 통화가 장시간 이어진 탓이다. 대답은 이랬다. “저나 후배들이 취재한 내용과 톤이 다르게 기사가 나가면 허탈하지 않겠습니까? 끝까지 반영될 수 있도록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겁니다. 판단은 부장 몫입니다. 안 들어주시면 어쩔 수 없죠, 권한은 부장에게 있는 거니까요. 전 제 할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기사가 출고되기까진 수많은 과정을 거친다. 현장 기자가 취재해서 발제하고 기사를 쓰지만, 그 과정에서 팀장이나 데스크 등과 논의를 거치게 되고 결과적으로 데스크의 승인이 떨어져야 한다. 데스크 승인을 받은 기사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뒤에서 욕할지언정 현장 기자가 제멋대로 고쳐서 내보내면 징계 내지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대부분의 조직도 비슷할 것이다.

검찰 조직이라고 다르지 않다. 검찰의 수사와 기소 권한은 법 테두리 내에서 제한적으로 행사해야 하는 만큼 내부 통제가 더 엄격하다. 단계별 결재를 거쳐 최종적으로 검찰총장이 책임을 지게 된다. 문제는 일선 검사와 총장 및 수뇌부 판단이 다를 경우 생긴다.

윤석열 대통령이 2013년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 특별수사팀장을 맡았을 때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과 반목했던 게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은 2013년 9월 국정감사에서 조 당시 지검장 등 검찰 지휘부의 수사외압을 폭로했고, 조 지검장은 수사팀의 절차적 문제를 지적하고 맞섰다. 이 사건으로, 윤 대통령은 지시 불이행 등을 이유로 정직 1개월 징계를 받고 수사에서 배제됐지만, 수사는 수사팀 의견대로 진행됐다.

임은정 대전지검 중요경제범죄조사단 부장검사 사례도 있다. 그는 서울중앙지검 공판2부 소속이던 2012년 12월 반공임시특별법 위반 혐의로 징역 15년이 확정된 고 윤길중 진보당 간사 유족이 청구한 재심 사건에서 무죄를 구형했다. 당시 검찰 지휘부는 법원에 판단을 떠넘기는 ‘백지구형’을 지시했지만 임 부장검사가 거부했다. 지휘부는 이에 다른 검사에게 사건을 넘겼지만, 그는 재판 당일 법정 출입문을 걸어 잠근 뒤 무죄를 구형했고, 무죄가 선고됐다. 그는 이 일로 정직 4개월 처분을 받았지만 대법원에서 취소 판결을 확정 받았다.

김건희 여사 ‘출장조사’ 사건은 이원석 검찰총장과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대표되는 일선 검찰청과 대검 간 갈등으로만 볼 것이 아니다. 그간 ‘인사 패싱’ 등으로 영향을 미친 법무부와 용산, 전 정부의 수사지휘권 배제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검찰 안팎의 시선들이 진상파악 후 사태 전개에 주목하는 이유다. 서초동의 사건은 결국 전례를 살펴 실마리를 풀어야 할 것이다. 검찰 조직의 근간을 이루는 검찰총장의 지휘권에 대한 권위나 열과 성을 다해 수사한 수사팀 결론 모두 존중돼야 한다. 영국의 역사학자이자 정치학자인 E. H.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과거는 미래의 거울’ ‘역사는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 없는 대화’라고 했다. 서초동의 역사 역시 돌고 돌고 돈다. 기자도 여전히 저녁 때마다 데스크에게 전화를 한다.

안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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