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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폭’이라는 이름이 죽이는 것들

입력
2023.05.05 16:00
수정
2023.05.05 19:1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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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노조가 바꿔온 긍정적 측면은 지워
노조가 협상 안 하면, 현장 중간착취 만연
선진국은 대신 직업알선에 공공이 개입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3일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이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 양회동씨가 분신한 강원 강릉 난곡동 춘천지법 강릉지원 내 화단에서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양씨는 노동절이었던 지난 1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앞두고 자신의 몸에 화학성 물질을 끼얹고 분신, 다음 날인 2일 오후 중 숨졌다. 뉴스1

모욕을 주는 가장 쉬운 방식은 싸잡아 말하기다. 잘못한 행위만 문제 삼지 않고, 직접 관련 없는 행실이나 의도, 가정환경, 속한 집단(인종·성별·계층·지역·학력·장애 여부 등)의 속성까지 함부로 규정하고 비난하는 방식이다. 이런 비난을 받는 사람은 ‘숨 쉴 구멍’이 없어진다. 행위가 아니라 ‘존재’가 비난 대상으로 ‘낙인’받기 때문이다.

정부가 ‘건폭’(건설노조+조폭)이라는 단어를 내놓았을 때, 의도한 것도 이 점이었을 것이다. 실제 경찰은 지난달 조직폭력배가 돈을 뜯기 위해 만든 노조를 ‘건설노조’라고 표현해서 발표했다. 경기남부경찰청은 보도자료에서 ‘경인지역 건설노조 부본부장 조직폭력배 A씨, 법률국장 조직폭력배 B씨, 차장 조직폭력배 C씨 등 총 6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모 방송사는 이를 보도하며 민주노총 건설노조 제호를 수차례 내보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성명을 내고 “조폭들이 건설 관련 노조를 만들어 건설현장에서 억대 돈을 뜯어냈다는 보도가 쏟아졌다”며 “그런데 어떤 노조 소속인지는 찾아볼 수가 없다”고 비판했다.

정당한 비난(비판)을 하려면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 그 외 다른 개별 노조들의 정책과 지향점은 무척 다르다. 물론 타워크레인 월례비(급행료) 수수관행, 조합원 채용협상 과정에서 선을 넘는 업무방해나 폭력 행사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런 행위 자체만 비판하면 된다. 민주노총은 과거부터 월례비나 ‘똥떼기’(현장 팀장의 팀원 임금 착취) 등의 근절을 위해 노력해왔는데, 지도부의 정책과 현장 일부의 잘못된 행위를 구분하지 않는 것도 손쉬운 ‘싸잡아 비난하기’의 형태이다.

정부가 창조한 ‘건폭’이라는 이름은, 오랜 기간 ‘노가다’로 비하받으며 위험하고 힘든 건설현장을 그나마 다닐 만한 직장으로 만들어온 건설노조의 긍정적인 면을 아예 표백시켜 버린다. 건설 노동자는 상용직이 아니기 때문에 노조가 채용협상을 하지 않으면, 직업소개소나 ‘오야지’(팀 반장)를 통해 일감을 구해야 한다. 여기서 임금 상당 부분을 중간착취(떼이기) 당한다. 오야지에서 오야지로 이어지는 불법 재하도급으로 인해, 2021년 광주에서 재개발 지역 철거 작업 중 건물이 버스를 덮쳐 9명의 시민이 숨졌다. 애초 해체공사비는 3.3㎡(1평)당 28만 원이었는데, 불법하도급에 따른 중간착취가 연쇄적으로 개입하면서 최종 3.3㎡당 4만 원으로 떨어졌다. 건설노조의 단체협상을 형법상 강요·공갈로 본다면, 이런 불법하도급의 지옥에서 신음하는 공사판으로 완전히 회귀하자는 것이다. 정부는 불법하도급을 거의 단속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여러 선진국들은 직업알선 분야에 공공이 개입한다. 네덜란드와 호주는 전통적으로 직업알선이 국가의 역할이었다. 점차 민간기관을 참여시키긴 했지만, 아웃소싱 형태라서 공공통제의 끈을 놓지 않았다. 독일도 연방고용공단을 중심으로 공공고용서비스가 잘 발달돼 있다. 정부가 건설노조의 채용협상을 비판하려면, 이런 노력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더구나 유럽의 공공고용서비스 기관들은 노조를 중심으로 노사단체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한국의 직업안정법(33조)도 노조를 근로자공급사업의 주체로 인정하고 있다.

쉽게 모욕당한 이의 선택을 우리 사회는 이번에도 마주했다. 지난 노동절(5월 1일), 민주노총 건설노조 소속 양회동씨가 분신해 다음 날 사망했다. 조합원 채용 강요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상태였다. 노동계의 슬픔이 크다. 그의 명복을 빈다.

이진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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