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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바깥의 장애인 노동

입력
2023.04.19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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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2014년 전남의 한 외딴섬 염전에서 시각장애인과 지적장애인들이 수년간 감금당한 채 강제노역한 사건이 있었다. 이들의 실상은 이른바 '염전노예 사건'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장애인 인권유린·노동착취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들끓었고, 당시 박근혜 대통령도 "21세기에 있을 수 없는 충격적인 일"이라며 발본색원을 지시했을 정도로 한동안 우리 사회가 떠들썩했다.

그런데 이 사건이 역설적으로 장애인의 노동 능력을 입증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장애인들에 대한 노동착취는 이들이 충분히 일할 능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장애인은 어떤 형태로든 노동을 해왔다. '장애의 정치'라는 책을 쓴 영국 학자 마이클 올리버는 장애인들이 노동시장에서 배제된 것은 초기 산업자본주의 이후라고 분석했다. 봉건사회에서 장애인들은 가족·장원 공동체에 속한 집단 노동력의 일부로 농업과 가내수공업에서 다양한 작업을 했다. 그런데 산업화 초기, 공장 기계의 속도에 맞춰 일할 수 있는 사람은 신체 손상이 없는 성인 남성뿐이었고 결국 장애인은 '생산성 없는 존재'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공장에서 작동하는 기계에 몸을 맞출 수 없다는 이유로 장애인은 노동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으로 취급됐고, 그들의 노동은 평가절하됐다. 그리고 이런 시각은 우리나라의 법과 제도에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우선 우리나라 장애인은 최저임금 적용 대상이 아니다. 최저임금법 7조는 '정신장애나 신체장애로 근로 능력이 현저히 낮은 사람'은 최저임금 적용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장애인이 최저임금을 적용받으려면 장애인고용공단이 실시하는 작업능력평가를 통과해야 한다. 그 결과 최저임금을 적용받지 못하는 장애인 노동자의 지난해 월평균 임금은 37만 원으로 추산됐다. 이들은 정부가 근로자의 생활안정에 필요하다고 정한 최소 금액의 불과 5분의 1만 받고 일하는 셈이다.

우리나라엔 장애인 의무고용제도가 있다. 50인 이상 기업은 근로자의 3.1%를 장애인으로 고용해야 하고, 이를 지키지 못하면 고용부담금을 내야 한다. 부담금 규모는 의무고용 미달 인원에 따라 결정되는데, 여기에도 장애인의 노동에 대한 평가절하가 바닥에 깔려 있다. 산정 기준이 되는 부담기초액이 최저임금의 60%에 불과하다. 이 기준은 1991년 이후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기준 금액이 지나치게 낮게 설정된 탓에 기업들은 장애인을 고용하는 것보다 부담금 납부를 선호한다. 장애인을 고용할 때 들어가는 월급과 4대보험료, 시설·인력 관리 비용 등을 감안하면 '고용부담금이 싸게 먹힌다'는 것이다.

결국 장애인의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만든 제도가 오히려 장애인의 고용을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고용부담금 기준을 최저임금 수준으로 올리고, 궁극적으로는 해당 기업의 평균임금만큼 높여야 장애인 고용이 실질적으로 늘어날 거라 지적한다.

법과 제도가 충분히 갖춰져도 노동 현장에서 온갖 차별을 겪는 게 장애인의 현실이다. 그런데 최소한의 원칙·기준이 되는 법과 제도마저 장애인의 노동을 깎아내리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생산적 경제활동에 참여하려는 장애인들의 자립 의지는 꺾일 수밖에 없다.

한준규 정책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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