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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토픽인 줄 알았는데"

입력
2023.03.07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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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지난달 7일 튀르키예 남동부 카라만마라슈에서 메수트 한제르가 전날 발생한 규모 7.8의 강진으로 사망한 15세 딸 이르마크의 손을 꼭 잡고 있다. 왼쪽이 부친 한제르의 손이다. AFP 연합뉴스

지난달 7일 튀르키예 남동부 카라만마라슈에서 메수트 한제르가 전날 발생한 규모 7.8의 강진으로 사망한 15세 딸 이르마크의 손을 꼭 잡고 있다. 왼쪽이 부친 한제르의 손이다. AFP 연합뉴스

"해외 토픽인 줄 알았는데, 한국 얘기네. 충격이다."

기사를 읽다 보면 종종 댓글로 이런 반응을 접한다. 나 역시 제목만으로도 아연하게 만드는 기사를 접할 때면 마음 한구석에서 '다른 나라의 사건인가'란 생각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곤 했다. 그러다 세계 여러 나라의 사건·사고를 다루는 국제부에서 일하게 되면서 이 말을 어쩐지 삐딱하게 받아들이게 됐다. 과연 한국에서 일어난 일을 다루지 않았다면, 충격이 아닌 걸까.

으레 '해외 토픽'이라 여길 만한 기사는 내 일상에는 도무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사건을 다룬다. 감동적인 사연일 때도 있지만, 대개 기묘하거나 드물기에 국경을 넘어서까지 소개된다.

2023년 새해에도 전 세계에서 해외 토픽은 이어졌다. 무려 5만 명, 한국으로 치면 작은 도시 하나의 인구가 통째로 사망한 튀르키예·시리아 지진이 발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리스에서는 멀쩡히 선로를 달리던 기차가 정면충돌해 50여 명이 숨졌다. 이탈리아에서는 난파선 침몰로 60명이 죽었고, 불가리아에서는 길가에 버려진 트럭 안에서 40명의 사람이 쏟아져 나왔다. 이들 중 18명은 숨진 채였다. 전 세계를 뒤흔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도 사실 한국에서는 해외 토픽 정도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런 반응은 일종의 심리적 거리 두기라고 할 수도 있겠다. 제아무리 어마어마한 사건·사고라도 '우리나라'에서 일어나지 않았다면 살짝 안심이 된다. 직접 겪을 확률이 낮다고 느껴져서다.

그러니 강 건너 불 구경하듯 넘겨버리면 그만일까. 평소 드문드문 접하던 해외 토픽을 국제부에서 매일 들여다보면서 누군가에게는 이 역시 일상임을 깨닫는다. 할머니 집에서 자고 온다던 막내딸을 지진으로 영원히 떠나보낸 아버지가 이미 숨진 딸의 손을 차마 놓지 못하고 붙잡으며 보인 부정(父情)이 한국의 것과 다를 리 없다. 그리스 기차 사고의 피해자 대부분이 축제를 즐기고 돌아오던 청년이었다는 사실은 '이태원 참사'를 겪은 한국 사회에 기시감을 준다.

외신에도 '이상한 뉴스' '기이한 뉴스'가 있다. 한국의 사건·사고도 얼마든지 다뤄질 수 있다. 언젠가 나의 비극을 접한 이역만리의 누군가는 해외 토픽이라며 무심히 바라볼 수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비춰보면 휴전국에서 살면서 현재 진행형인 전쟁에 무관심하고, 난민 인정에 까다로운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과연 '국익'에 부합할지 의문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천재지변 위협도 바짝 다가와 "해외 토픽인 줄 알았는데 한국 얘기"였던 사건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생면부지 남의 일을 내 일처럼 여기는 공감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이유다.

다른 나라에서는 해외 토픽이었던 이태원 참사와 이후 이어진 일련의 사건에서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다. 한 유족은 지난해 시체 팔이 운운한 정치인을 비판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유가족들끼리 마음속으로는 '똑같이 새끼 죽어봐라' 하고 싶어도 그 말이 너무 끔찍해서 말할 수 없었다"고. 유족들은 결국 저주 대신 "그래, 넌 네 새끼 잘 키워서 이 나라의 기둥 만들어라"는 덕담을 건넸다.

자신이 겪은 사건이 너무나 참담하기에 같은 부모의 처지에서 비슷한 고통을 당하라고는 차마 못 한 그에게서 공감의 위력을 체감한다. 그건 그저 남의 일이라 여기며 막말을 쏟아낸 정치인은 평생 모를, 위력일 테다.

전혼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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