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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향한 통렬한 풍자와 비판… '스위니 토드'가 오래 사랑받는 이유

입력
2023.01.06 04:3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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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공연 칼럼니스트인 박병성이 한국일보 객원기자로 뮤지컬 등 공연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격주로 연재합니다.

뮤지컬 '스위니 토드'의 스위니 토드(왼쪽·강필석)와 러빗 부인(전미도). 오디컴퍼니 제공

뮤지컬 '스위니 토드'의 스위니 토드(왼쪽·강필석)와 러빗 부인(전미도). 오디컴퍼니 제공

뮤지컬 '스위니 토드'의 인기가 새해에도 이어지고 있다. TV드라마를 통해 대중에게도 친숙한 전미도가 오랜만에 출연하는 무대라는 점도 크게 작용했지만 조승우나 전미도 등 스타들의 출연으로 인지도를 쌓아올린 후 이제는 작품 자체가 브랜드가 된 듯하다.

'스위니 토드'는 소재나 깊이로 보자면 대중성이 높은 작품은 아니다. '인육파이를 만드는 파이 가게와 무분별한 살인을 하는 살인마'라는 소재는 자극적이지만 '스위니 토드'는 이를 자극적으로만 풀지 않았다. 1막 마지막 살인 계획을 세우며 즐거워하는 러빗 부인과 스위니 토드의 노래 ‘어 리틀 프리스트(A Little Priest)’는 여러 직업들을 늘어놓으며 사회 지도층들을 파이로 만들어 먹을 생각에 신나 있는 두 명의 살인마를 풍자적으로 보여준다. '주둥이만 살아 있는 변호사 파이나, 도둑놈과 사기꾼을 섞은 정치인 파이'라는 대목에서 관객도 통쾌한 웃음을 터뜨리며 살육의 카니발에 참여하게 된다.

인기 장르인 복수극 구조에 사회 비판적 색채를 담아내고, 스위니 토드에 동조하면서도 그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것이 뮤지컬 ‘스위니 토드’의 매력이자 덜 대중적인 이 작품의 장수 비결이다. 이 작품은 뮤지컬계의 전설인 연출가 해롤드 프린스(1928~2019)와 작곡가 스티븐 손드하임(1930~2021)의 1979년작이다.

해롤드 프린스와 스티븐 손드하임은 뚜렷한 기승전결보다는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로 극을 이끌어가는 '콘셉트 뮤지컬'을 시도하며 '컴퍼니'(1970), '폴리스'(1971), '소야곡'(1973), '태평양 서곡'(1976) 등을 선보였다. 프린스와 손드하임의 작품은 평단의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작품처럼 폭넓은 사랑을 받지는 못했다. 깊이 있는 철학과 메시지를 담아내면서도 다양한 양식을 뮤지컬과 결합시켜 장르적 실험을 했던 이들의 작업은 '메릴리 위 롤 얼롱'(1982)이 대중으로부터 외면당하면서 결국 각자의 길을 가게 된다.

프린스와 손드하임은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많은 토니상을 받은 사람들이지만 둘이 함께한 작품은 평단의 호응에 비해 대중의 지지는 약했다. '스위니 토드'는 손드하임과 프린스의 호흡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 발표된 작품으로 이 콤비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인육 파이를 만드는 파이 가게와 살인마 이발사 이야기는 빅토리아 시대에 떠돌던 유명한 도시 괴담이었다. 자극적인 살인마의 이야기는 '진주 목걸이'란 제목의 타블로이드판 소설로 연재되면서 더욱 인기를 끌었다. '진주 목걸이'라는 제목은 면도칼이 지나간 자리에 빨갛게 배어나오는 피를 은유한 것이다. 빅토리아의 도시 괴담은 자극적 스릴러 소재로 인기를 얻었다.

1973년 크리스토퍼 본드는 이 소재를 멜로드라마 구조의 복수극으로 각색해 연극을 올렸다. 이전까지 무분별한 살인을 하는 살인마에 초점이 놓였다면, 본드는 그가 왜 살인을 저지르게 됐는지 이유를 생각했고 판사에게 가족을 빼앗긴 이발사를 떠올렸던 것이다. 본드의 연극에서 자극을 받은 손드하임과 프린스는 이를 뮤지컬로 만들면서 멜로드라마적 복수극에 사회비판적 색채를 가미했다.

뮤지컬 '스위니 토드'에서 스위니 토드와 러빗 부인이 사회 지도층을 파이로 만들어 먹을 생각에 신나서 부르는 '어 리틀 프리스트'를 함께 노래하고 있다. 오디컴퍼니 제공

뮤지컬 '스위니 토드'에서 스위니 토드와 러빗 부인이 사회 지도층을 파이로 만들어 먹을 생각에 신나서 부르는 '어 리틀 프리스트'를 함께 노래하고 있다. 오디컴퍼니 제공

모든 이야기가 그렇듯 도시 괴담 또한 그 사회의 특징을 반영한다. 인육파이와 살인마 이발사의 도시 괴담이 퍼졌던 빅토리아 시대는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빈부 격차는 커지고 도시 서민의 삶은 낙후됐다. 가난과 불평등한 삶에 대한 분노는 인육파이를 만들고 무차별적 살인을 저지르는 이발사를 태어나게 했다. 손드하임과 프린스는 본드의 멜로드라마적 이야기 구조에 도시 괴담이 생겨났던 빅토리아 시대의 환경을 결합해 사회 비판적 메시지가 뚜렷한 뮤지컬 '스위니 토드'를 만들어냈다.

가족을 빼앗긴 벤저민 파커가 복수를 하는 플롯이 주요한 이야기 구조지만 그 이면에는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한 빈부 격차, 사회적 불평등과 분노가 깊이 담겨 있다. 극을 알리는 날카로운 휘슬소리나 살인과 소비가 시스템화된 이발소와 파이 가게의 구조는 산업화를 떠오르게 하고, 극 전반에 반복되는 노래 '스위니 토드의 발라드'는 그러한 사회가 불러온 악마를 상징한다.

이발사에서 살인마로 변신하는 1막 마지막의 ‘에피파니(Epiphany)’와 각종 사회 지도층을 파이로 만들 생각에 들떠 있는 ‘어 리틀 프리스트'는 풍자적일 뿐만 아니라 작품의 특징을 가장 잘 반영한 장면이다. 손드하임과 프린스는 빅토리아 시대의 절망을 통쾌한 풍자로 맞서면서도 스위니 토드를 동정하지 않고 살인마라는 인식을 놓지 않으려고 했다. 시대의 아픔을 예술로 승화하고 있는 '스위니 토드'는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키며 예술의 위대함을 증명하고 있다. 작품은 3월 5일까지 샤롯데씨어터에서 한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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